• 최종편집 2024-03-19(화)
 
  • 임성택 교수(강서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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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대학에서 일할 때, 발생한 각종 소송에 대응한 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 일을 맡은 변호사가 필자에게 늘 했던 말이 있다. “본안을 다투기보다 절차상의 하자를 다투는 것이 최선입니다. 절차상의 하자가 발생하면 법원은 본안 자체를 다투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법원과 법관은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중히 여기고 이것이 무시된 법안 자체는 다루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헌법재판소가 일명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법안 자체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근 일년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그야말로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통과했다. 안건조정위란 다수 정당이 수적 우세를 내세워 자당에 유리한 법안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입법 장치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과반수를 획득하기 위해 2021년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20224월 법사위로 사·보임시켰으나 양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하자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만들어 결국 해당 법안 중재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절차상의 하자를 인정하면서도 법안 자체는 유효하다는 이해불가능한 판단을 내놓았다. 입법 절차는 위헌이지만 위법한 절차에서 나온 법안을 인정함으로 정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검수완박 법안에 가표를 던진 4인의 재판관인 유남석·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소속, 이석태 재판관은 민변과 참여연대 출신으로 모두 당시 여당이 지명한 재판관들이다. 이런 구성으로 볼 때 예정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헌재의 결정이 정치적 결정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던져 버릴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이 땅의 사법적 권위의 최종점에 서 있어야 한다. 그 권위는 의심받아서는 안되며,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이익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정치적 성향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법정신과 절차에 대한 기준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법원의 최종적 권위마저도 눈감고 정치적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하여 공분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시각이 아닐 것이다.

 

민주사회의 근간은 법이고, 이 법은 언제나 공정해야 하고, 그 정신과 의미에 철두철미해야 하며, 이것은 상급심으로 갈수록 더욱 치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헌재의 위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중요성을 시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므로 그의 결정도 도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지금 헌재는 의심과 비난을 넘어 조롱을 받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사법적 권위가 대단한 도전에 직면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불행한 신호이다.

 

교회와 목회자들은 이 일에 주목하고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는 한갓 일부 정치인이나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국운과 관계된 것이고 앞으로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사안들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법치 국가에서 법을 수호해야 할 법원이 스스로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경시한다면, 더 이상 법치국가일 수가 없다. 법원이 이러하다면 과연 이를 바로 잡을 책무가 교회에 있을 수도 있다. 법의 깊은 뿌리에는 인간의 양심과 사회적 윤리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을 깨우고 역동적으로 활성화시켜 법으로 법이 되게 하는 법윤리의 각성을 촉구할 수 있는 것은 종교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사회의 양심적 마지노선으로서,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판결을 계속하는 사법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정 능력을 고양하여 반민주적 적폐들을 응징할 수 있는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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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절차는 위법인데 결과물은 합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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