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한림원, 제4차 학술대회 진행
- 박응규 박명수 이은선 교수 등 발제자 나서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미국의 오랜 동맹에 따른 한국교회의 영향과 주요 역할을 알아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국기독교한림원(이사장 조용목 목사, 원장 정상운 박사)은 지난 11월 17일 경기도 안양 은혜와진리교회(담임 조용목 목사)에서 ‘한국기독교와 한미동맹 70주년’을 주제로 제4차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국내 신학대학의 전·현직 총장들이 참여하는 한림원은 그간 시대의 이슈에 맞는 주제를 선정해 신학적으로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주로 해 왔다. 이번에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초기 미 선교사들을 재조명하고 대한민국 발전 과정 속 기독교 역할 등에 대해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발제는 박응규 교수(아신대, 개혁신학회 회장),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명예교수,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이은선 교수(안양대 명예교수, 전 한국복음주의역사신학회 회장) 등이 맡았다.
박응규 교수 “알렌·헐버트, 한미 관계의 우호적 초석 마련”
먼저 박응규 교수는 ‘개항 이후 초기 한미 관계와 선교사의 역할’을 알렌 선교사와 헐버트 선교사를 중심으로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알렌과 헐버트는 개항 이후 초기 한미관계와 한국 선교역사에서 개척자의 역할을 어려운 상황에서 잘 감당해 낸 선구자”라며 “알렌이 설립한 제중원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의료기관이며, 교육기관이었다. 특히 왕실과 조선 정부의 관리들에게 기독교와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이미지를 주어 향후 선교와 한미관계의 우호적 발전에 토대를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헐버트에 대해서 평생을 한국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박 교수는 “헐버트는 한국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고, 아리랑을 채보해 한국인의 감성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매김케 했다. 1905년에는 고종의 비밀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해 일본의 보호국화가 강제된 것임을 알리기도 했고, 19907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가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벌였다”면서 “그는 생전에 사후 한국에 묻히기를 소원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 보다도 한국이 최후의 안식처가 되길 원할 정도로 한국 사랑이 극진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알렌과 헐버트는 선교사역 초기에 개척자로서 한국에서의 선교의 문을 여는데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며, 개항 이후 초기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고 미국의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만들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한국이 자주권과 독립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키도 했다”며 “이러한 토대로 한미관계가 더욱 발전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할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으로 나아가는 데에 초석을 닦는 매우 중요한 과업을 가장 어려운 시기에 수행한 공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명수 교수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대한민국의 주권 시사”
박명수 교수는 1952년 6월 18일에 일어난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석방’ 사건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접근을 펼쳤다. 당시 유엔부사령부의 입장을 무시하고, 반공포로를 석방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분석이다.
박 교수는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과 이승만이 자유송환이라는 공동목표를 달성키 위해 미국의 묵인하에 이승만이 실행한 것으로 반공포로 석방 자체는 한미 간의 갈등 요소가 되지 않았다”며 “다만 미국은 이승만이 미국의 지시를 넘어 한국군을 임의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미국의 권위에 대한 상당한 도전이라고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한편으로는 자유송환이라는 미국과의 공동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민국에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이승만은 한국의 군사권 행사는 여전히 이승만에게 있으며, 따라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주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이은선 교수 “70년대 한국교회, 한미동맹 강화 기여했지만··· 독재정권에 눈 감아”
이은선 교수는 ‘1970년대 한미갈등과 기독교’를 주제로 70년대 한국교회의 민족복음화 운동 시기의 한미동맹과 국가와 교회의 유착관계에 대해 발제했다.
이 교수는 “70년대 한미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미군철수와 북한군의 군사력 증강에 따른 안보불안과 그에 따라 성립된 유신체제 하의 인권탄압”이라며 “한국교회는 이 기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73년), 엑스폴로 74(74년), 민족복음화 성회(77년) 등 국가의 지원으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는 박정희 정부가 10월 유신을 단행하면서 강조했던 국가안보 위기 속 반공정신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국가와 협력했고, 이 반공을 지지하는데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없었다”며 “복음주의 교회들은 정부의 편의제공 속에 대형집회를 열면서 한국교회 성장을 도모했고, 동시에 한국에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지지하고 국제적으로 선전하는 입장이 됐다”고 봤다.
이 교수는 “이러한 관계에 대해 진보적 역사가들은 교회와 정치의 유착관계라 비판한다. 그렇지만 70년대 시대적 상황 가운데 국가안보와 한미동맹을 굳건케 하여 교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한 일정 기여를 인정한다”면서 “박정희 정권이 끝내 민주화로 이행하지 못하고 비극적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한국의 보수 교회들이 그의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역할을 거의 감당하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학술대회에 앞서 드려진 개회예배는 임성택 목사(전 강서대 총장)의 인도로 목창균 목사(전 서울신대 총장)가 기도하고, 안명준 교수(평택대 명예)가 마가복음 8장14~21절 성경봉독한 후 정상운 박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제하의 설교말씀을 전했다.
정 박사는 “우리나라는 남북이 대치하는 가운데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정치와 외교와 안보를 잘 해서가 아니라 그 이면에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고 보호해주셔서 전쟁과 가난을 이기고 여기까지 왔다”며 “70년간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로 차고 넘치는 복을 주셨기에 그동안의 어려움 속에서도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가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오직 주님 한 분만 붙잡고 주님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심기도에 이은 대표기도 시간에는 이동주 교수(전 아신대)와 길원평 교수(한동대 석좌), 이억주 교수(전 칼빈대)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교회와 동성애 확산 저지를 위해, 한국기독교한림원과 은혜와진리교회를 위해 기도했으며, 조용목 목사(이사장)가 축도함으로 예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