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2(토)
 
  • 사회와 교회를 대신해 노숙인을 섬긴 35년··· 이제 우리가 도와야 할 차례
  • 복음으로 완전히 변화한 노숙인들··· 참좋은친구들 위기로 다시 거리로 내몰려
  • ‘참좋은친구들’의 진짜 사역은 밥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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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친구들은 35년째 서울역 노숙인들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다.

 

여기 35년을 한결같이 서울역에서 소외된 이웃의 친구가 되어준 이들이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추우나 더우나, 친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서울역은 옛 역사(驛社)를 등지고, 새 역사(驛社)에 둥지를 틀고, 과거의 모습을 덮은 채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갔지만 새 시대에서도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소외된 손님들은 3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그 곳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친구 역시 함께 과거에 머물며 그 옆을 지켰습니다.

 

서울역 '참좋은친구들'

오늘은 35년을 서울역 노숙자의 곁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눠온 아름다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모두가 외면하고 괄시하며, 손가락질 했던 노숙인들에 손을 내민 유일한 친구, 정부도 서울시도 포기했던 우리 사회의 아픈 빈 곳을 채워 온 유일한 친구들입니다.

 

참좋은친구들이 처음 서울역을 찾은 것은 지난 19895월이었습니다. '88 서울 올림픽' 당시 강제로 흩어졌던 노숙인들이 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몰려들며, 서울역 일대는 노숙인들로 큰 성황을 이뤘습니다.

 

순식간에 몰려든 노숙인들이 대거 서울역에 자리를 잡았지만, 정부도 서울시도 대책은 없었습니다. 하루 한끼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극악한 환경에 배고픔에 지쳐 쓰러지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저 넋놓고 바라보는 것이 전부일 뿐, 그들을 위한 대책은 사치였습니다. 더구나 올림픽을 치르며, '선진국'의 자부심을 갖게된 우리 국민들에 있어 어쩌면 노숙인들은 인정하기 싫었던 우리 사회의 치부였기에, 누구도 그들을 보려 하지도, 손을 뻗지도 않았습니다.

 

모두가 외면한 그 때, 쓰러진 노숙인들의 때묻은 손을 거리낌없이 잡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서울역 노숙인들의 아버지 신석출 장로였습니다.

 

신 장로는 굶어가는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시작했고, 국민들에 노숙인들도 돌보아야 할 소중한 국민임을 알렸습니다. 그저 더럽고, 냄새나고, 괴팍하다는 노숙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신 장로와 그 친구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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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친구들의 의료사역 전경

 

신 장로와 친구들이 가져온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노숙인들을 돕겠다고 나섰고, 급식사역 뿐 아니라, 의료사역, 문화사역에 동참하코자 하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역의 영역은 점차 넓어졌고, 서울역에서 독립문으로, 그리고 퇴계원으로, 무료급식 뿐 아니라 의료, 숙식, 교육 등의 다양한 사역을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순탄할 줄 알았던 사역이 다시 위기를 맞은 것은 10여년이 지난 1997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IMF 사태는 서울역에도 엄청난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국가 붕괴와 더불어 전국에서 실직자들이 속출했고, 그들 모두는 방황 끝에 서울역으로 찾아왔습니다. 노숙인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그들에 있어 서울역은 절망의 끝자락에 만나는 최후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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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장로는 그때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9712월부터 200012월까지 무려 3년여간 매일 3,800여명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실시했습니다. 끼니 때마다 수백미터를 늘어선 줄은 시대의 불행을 떠안은 안타까움이자, 신 장로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직권적 명령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때는 어떻게 그 일을 감당했을까 싶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원없이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해 준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시간입니다.

 

3년의 시간을 무사히 이겨내며, 신 장로와 친구들의 사역은 자연스레 그 지경을 넓혔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고, 국내 외 크고작은 각종 재난에 긴급구호를 지원했습니다. 태풍 매미, 파키스탄 지진, 태안 기름유출, 미얀마 태풍 피해 등에서 신 장로와 친구들이 보유한 '급식' '의료' '구제' 등의 독보적 경험은 크게 빛을 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3, 공식적으로 '참좋은친구들'의 법인을 설립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서울역 사역을 매진했습니다.

 

그간 후원회장으로 수고했던 신석출 장로가 이사장에 올라 사역을 더욱 체계화 했고, 서울역의 풍경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습니다. 그저 숙식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노숙인들의 계몽을 통해 삶의 의지를 새로 북돋았습니다. 노숙인 사역에 있어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바로 이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포기'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을 포기한 사람만큼 대하기 힘든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신 장로는 하나님의 지음받은 형제 중 그 누구도 귀하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포기한 자신의 삶을 옆에서 붙잡아 주는 신 장로를 보며, 노숙인들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난과 절망 속에서 꽃 피우는 희망,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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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친구들교회는 노숙인들이 복음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스스로 변한 노숙인들이 다른 동료 노숙인들을 변화 시켰습니다. 한때 서울역 광장에 술병이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던 것은 바로 '복음'이 불러온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참좋은친구들교회는 '참좋은친구들' 사역의 핵심이 됐습니다. 89년부터 계속된 사역에서 얻은 결론은 진정한 변화는 오직 '복음' 뿐이라는 확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은 서울역을 위한 하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서울역 노숙인들의 대부분은 세상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본 이들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 처음에는 좌절했고, 스스로에 분노했으며, 차츰 밀물처럼 밀려오는 절망에 삶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런 세상과 단절한 이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 뒤에는 모든 것을 잃은 뒤 아무 것도 채우지 못한 공허한 빈 공간이 존재했습니다. 신 장로가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두 손을 덥썩 잡았을 때,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그 뒤의 광대한 공간이 드러났습니다.

 

신 장로는 그 빈 공간에 오직 복음만을 채웠습니다. 복음이 가슴에 들어온 이들은 신 장로가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 함께 울며, 과거를 반성했고, 세례를 받으며 새 삶의 주인으로 거듭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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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필사를 하는 노숙인들

 

어제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밤낮으로 술과 씨름하며 고성을 지르던 노숙자가 오늘은 고운 성가대복을 입고, 참좋은친구들교회의 단상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외면했던 사람들, 아무도 붙잡으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인생을 다잡은 것은 결국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참좋은친구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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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이 직접 구성한 참좋은친구들교회의 성가대

 

하지만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이 행복 속에 다시 시련은 찾아왔습니다. '참좋은친구들'15년 간 사역하던 건물이 올 초 다른 업자에게 매입되며, 순식간에 철거가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수십여년을 매일같이 노숙인들에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던 장소가 하루 아침에 문을 닫게 되며, 노숙인들은 당장 갈 곳을 잃었습니다. 매일 이 곳을 찾던 400~500명의 노숙인들은 당장 밥 먹을 곳 없이 굶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냄새나고 더러운 그들의 사정을 알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굳게 세워진 '참좋은친구들'의 철벽 앞에서 신 장로는 절규 했습니다. 참좋은친구들이 하루를 문을 닫으면 노숙인들이 하루를 굶어야 되고, 이틀을 문을 닫으면 이틀을 굶어야 했기에, 신 장로의 마음은 타들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숙인들에게 가장 무서운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코로나? 독감? 아닙니다. 바로 배고픔입니다. 굶어본 사람은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압니다. 모든 노숙인들은 배고픔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 '참좋은친구들'이 문을 닫는 것은 단순한 배고픔 이상의 공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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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참좋은친구들이 15년째 사역하던 건물이 다른 업자에 매매되며, 철거의 위기에 처했다.

 

노숙인들에 무료급식은 단순히 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 장로는 전 세계를 셧다운 시켰던 지난 코로나 기간에도 이를 어떻게든 이어 갔습니다. 실내 집합 제한, 거리두기 등의 제재가 있을 때에는 밤새 주먹밥을 만들어서라도 끼니를 대접했습니다. 코로나보다 무서운 것은 배고픔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 장로와 '참좋은친구들'은 거리에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평생 봉사만 했지 집회 같은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굶고 있는 노숙인들을 생각하며, 어설프게나마 현수막을 내걸고 확성기를 들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한국교회에 서울역 노숙인들의 위기를 전하며,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발버둥치며, 그렇게 250여일을 버텨 냈습니다.

 

다행히 그 사이 평소 참좋은친구들을 후원하던 본도시락 최복이 대표의 후원으로 노숙인들에 도시락 나눔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공간을 되찾지 못해, 막막한 길거리 배식을 이어가고 있지만, 예전처럼 말씀과 기도는 놓지 않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길거리 예배를 드리며, 시련을 겪고 있는 참좋은친구들에 하나님의 거룩한 도움이 임하기를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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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 중단 153일 만에 길거리에서 도시락 나눔을 재개했다.

 

허나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겨울의 한파는 신 장로의 가슴을 답답하게만 합니다. 뻥뚫린 서울역의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을 알기에, 요즘에는 하루에도 두서차례 광장과 지하 통로를 둘러보기 일쑤입니다. 얼마 전에는 참좋은친구들에 함께 생활하던 노숙인 형제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수년 전 길거리에 널브러져 술에 빠져 지내던 형제를 전도해 함께 실로암의 식구로 지냈었는데, 올 초 참좋은친구들이 쫓겨나며, 다시 거리로 나온 형제였습니다. 하지만 신 장로는 오랜만에 찾은 형제의 모습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말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다시 예전의 거리 노숙인으로 돌아갔습니다. 다행히 그가 먼저 신 장로를 알아보며, 손을 내밀었지만, 그의 손과 발을 뒤덮은 진물과 상처는 신 장로를 주저 앉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가족들입니다. 가족이 거리로 내몰렸는데, 어찌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그의 상처난 다리를 붙들고 한참을 울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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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친구들' 사태로 거리로 다시 내몰린 노숙인, 신 장로가 아픈 다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좌절에 빠진 노숙인들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일, ‘참좋은친구들의 진짜 사역은 밥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좋은 친구인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노숙인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사람입니다.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고, 아무도 하려 하지않는, 그리고 아무도 할 수 없는 바로 그 사역이 노숙인 사역입니다. 신 장로와 참좋은친구들은 바로 세상이 등돌린 그들을 자청해서 찾아간 천사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와 교회가 참좋은친구들이 처한 고난을 외면치 않는 것은 배려가 아닌 의무입니다. 소외되고 병든 자들과 함께 하라 했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바로 참좋은친구들을 돕는 일입니다.

 

신 장로는 날이 추워질수록 거리에서 떨고 있는 노숙인들 생각에 마음이 타들어 갑니다. 하루라도 빨리 건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서울시와 그리고 한국교회의 도움이 간절합니다. 현재 신 장로는 새로운 건물주와 건물 매입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데, 서울시가 이를 도와주지 않고서는 성사되기 쉽지 않습니다. 서울시가 적극 나서 참좋은친구들의 건물 매입을 위한 자금을 빌려주는 일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안입니다.

 

참좋은친구들은 나를 위한 것도, 노숙인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모두의 편의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참좋은친구들입니다.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을 그간 우리가 해 왔습니다. 그걸 자랑커나 보상해 달라는게 절대 아닙니다. 다만 노숙인들이 다시 변화할 수 있게 그 기회를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오직 참좋은친구들에게만 있습니다. 참좋은친구들 사역의 가치는 절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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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역시 소외된 이들을 위한 나눔에 스스로 나서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 장로는 가끔씩 교회를 찾은 노숙인을 해결해 달라는 교회의 전화를 받을 때면, 지체없이 그 곳으로 달려 갑니다. 그게 바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 역시 서울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지만, 해외로 향하는 선교사들의 지원도 잊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때면 언제나 이를 외면치 않았고, 특히 필리핀에는 참좋은친구들교회가 직접 선교사를 파송해 최근까지 이를 지원해 오고 있습니다

 

참좋은친구들은 말 그대로 참으로 좋은 친구들입니다. 아무도 친구가 되어주려 하지 않았던 서울역 노숙인들에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여인, 거지, 눈먼 소경, 배우지 못한 어부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높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좋은친구들

서울역 노숙인들이 잃어버린 유일한 친구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할 때입니다. <문의: 02-754-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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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서울역 ‘참좋은친구들’의 고난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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