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만섭 목사(화평교회)
지난 5일 여당의 원내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였다. 그런데 제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100여일 만에 야당이 탄핵(彈劾-소추가 곤란한 대통령, 국무 위원, 법관 등의 고위 공무원이 저지른 위법 행위에 대하여 국회에서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함) 7건, 특검(特檢-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비리 및 잘못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소하기까지의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독립 수사 기구) 12건, 청문회 13번(인사청문회를 빼고)을 했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가 탄핵과 특검을 이 정도로 해야 할 정도로 국정(國情)이 문란한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래도 정치 민주화가 되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는, 우리나라 국회처럼 포용과 협치와 협상과 상생을 못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제21대 국회에서도 익히 보아왔던 장면이다. 제21대 국회에서 180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개원하자마자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여, 의석 비율에 따른 관례를 깨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하여 여·야간에 긴밀한 협조를 하지 않고, 인사 관련 탄핵안은 힘으로 밀어붙여 결국 국민들 간에 심각한 불안과 갈등을 조장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도 범야권의 192명 국회의원은 밤중에 11개의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야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보통 여당에게 배분하는 것이 관례인 운영위원장, 법제사법위원장도 야당이 막바로 차지하였다. 더군다나 전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을 강성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임명하는 악수(惡手)를 두었다.
전문가들은 제21대 국회에서 특정 다수당의 폐해를 네 가지로 지적한다. 하나는 민주화 이후 협치 규범과 관행을 파괴했다.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국회를 극단의 대결 구도로 몰아갔다. 또 하나는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을 국회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하였다. 심지어 ‘위장 탈당’을 통해서 처리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었고,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생살리기 법안보다는 특정 세력의 표를 얻으려고 포퓰리즘도 서슴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국가 재정에도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또한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한 방탄의 수단으로 민의의 전당을 방패막이로 삼은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 제22대 국회도 21대 국회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국회는 ‘특검’과 ‘탄핵’ 무드에 사로잡혔다. 물론 특검과 탄핵이 국회가 가진 권리라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 권리를 넘어서고 있다. 온통 특검과 탄핵을 일삼다 보니, 국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위배 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윤석열 정부는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된 법률 여러 건에 대하여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단원제(상·하원이 없음) 국회에서의 경솔과 횡포를 막는 수단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한 경우가 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635회, 트루먼 대통령이 250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81건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함에 여·야 간에 충분히 협치하지 못하고, 국가의 재정이나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숙의하지 못한 가운데, 거대 야당은 반복하여 ‘탄핵’ ‘특검’ ‘법률 제정’을 하고, 이에 대통령은 계속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것도 독단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통계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세력과의 진영 간에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평균 72%포인트였고, 현 윤석열 대통령도 60%포인트를 넘나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34%포인트, 탄핵을 당했던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59%포인트였다.
이렇듯 모든 국민들 간의 갈등 조장은 상당 부분 정치인들이 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의 화합과 화평보다는 국민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골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권력 연장에 사용하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이웃 나라 난장판 국회를 가리켜 동물국회, 식물국회, 괴물국회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를 보면 여기에 더하여 ‘독재국회’ ‘망국국회’ ‘한풀이국회’ ‘증오국회’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는 결국 국민 무시라고 봐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더 이상 수준 이하의 ‘막가파식 정치인’들을 무조건 두둔하지 말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교훈하여, 바르고 공정한 정치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인을 만들고, 정치인의 수준이 그 국가의 미래를 가늠한다는 명제(命題)를 잊지 않게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