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만섭 목사(화평교회)
지난 2010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책 가운데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저서가 있다. 이 책은 출간되면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타고, 국내에서만 무려 2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어린이를 위한 책까지 나왔으니 대단하다. 그러나 영미권에서는 10만 부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관심을 끈 책이다. 샌델 교수는 공동체의 도덕을 개선해 나가는데, 네 가지 관점이 있음을 말한다. 공리주의적 관점, 자유주의적 관점, 공동체주의 관점 등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의로운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닌가?
최근 유명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 ‘공직 선거 위반’으로 법원에서는 징역형과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그러나 자신은 무죄라며, 세상 법정에서의 2심, 3심이 남아있다고 항변한다. 또 민심과 역사의 법정을 들먹인다. 그래서 그가 과거에 타인에 대하여 발언한 것이 비교가 된다. 당시 탄핵을 당하는 대통령에 관한 문제에서 ‘법률 해석은 범죄자가 아니라, 판•검사가 한다’고 했었다. 또 수년 전 자신에게 유리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는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본인과 관련된 판결 문제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을 때에는 ‘사법부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높이 칭찬했었다. 그런 정치 지도자가 최근 법원에서 자신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자,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선동하였다. 그러나 사법부가 그에게 실형을 선고한 이유는 ‘선거제도의 기능과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가 기대하는 사법부의 2심, 3심은 다른 결정을 내릴까?
우리는 흔히 사법부의 결정이 내려지면 빈말이라도 ‘존중한다’고 한다. 즉 사법부의 결정을 일종의 정의로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리와 사법적 판단이 자신들의 생각과 합치되지 않아도, 이를 수긍하는 것이다. 사법부의 존재는 자유민주주의 제도하에서 권력의 집중을 막고자 하여 두는 국가기관이다. 그리고 사법부의 역할은 권력자들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권력자들의 막강한 횡포나 전횡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유력 정치인이 사법부의 결정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결국 ‘사법 정의’를 부인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정치인이 재판을 받는 곳에 자당 국회의원 70여 명이 대거 몰려가, 희희락락하면서 사법부를 압박하려 한 것을 보아도 도대체 사회 정의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다 사법부의 1심 판결이 나오자, 그가 속한 정당(국내 제1당의 막강한 세력)이 함께 나서서 사법부를 심판한다고 압박한다. 게다가 자기들끼리도 당내에서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은 ‘죽여 버리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나왔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무섭다. 정말 무섭다. 자신들이 믿는 세력과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국가나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뱉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분(憤)에 사로잡혀 행패를 부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듯하다.
사실 지난 정권하에서 사법부가 잘못을 많이 하였다. 사법부의 공정성이 결여되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명백한 범죄가 있는 의원이 기소된 지 4년 2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로 의원직 상실형이 나왔으나, 이미 의원직을 무사히(?) 마치고 모든 세비를 다 받아먹고 난 다음이었다. 또 자녀 입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모 의원도 5년이 다 돼 가는데도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유명 정치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도 2년 2개월 만에 겨우 1심 판결이 나온 것이다.(법의 취지는 6개월 이내에 나와야 하는데) 또 지난 정권 당시 광역시장 선거 개입의 불법성을 다루는 문제에서도 1심 선고가 나오는데 3년 10개월이 걸렸다. 이런 사법부의 행태이니,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입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을 때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추켜세우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타도의 대상으로 우습게 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공동체 속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시민의식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 값싸고 잘못된 의리 때문에 국가 사회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한국리서치가 ‘주요 사회기관 역할수행 긍정 평가’에서 정당은 8%로 최하위였다. 이런 정당들이지만, 그들이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안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걱정하게 된다. 무너진 공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은 국민들이 어서 속히 깨어나야 한다. ‘확증 편향’을 버려야 한다. 이번에 실형이 선고된 유명 정치인은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정의(正義)와 공의(公義)에 눈감을 수가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