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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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형통하는 것, 모든 사람들이 다 바라고 추구하는 삶일 것입니다. 사전에서 형통이란, ‘모든 것이 뜻과 같이 잘되어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누구의 뜻대로 잘되어가는 것인가, 만사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뒤돌아 보면 내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 남고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은 다 찢어지고 부서집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하면 형통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형통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39:2) 그때의 요셉은 애굽에 팔려온 노예소년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의 요셉을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요셉에게는 형통의 잠재력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형통은 하나님과 계약대상인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킬 때 약속된 축복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형통을 선택하면서 계속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전진해 나갔습니다. 그 선택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바로왕의 앞에 위풍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노예요셉의 삼십세 때 일어난 일입니다. 정말 놀라운 출세입니다. 어쩌다 애굽까지 팔려온 파란 만장한 노예소년일지라도 계속해서 형통을 선택할 때 이런 일이 이루어 질수 있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형통을 선택했는가? 요셉은 이집트 땅을 처음 밟았을 때 형들에게 노예로 팔려온 상처투성이의 불쌍한 소년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애굽의 장군집에 팔린 소년 노예는 말 그대로 노예입니다. 사람취급도 못 당하는 무시와 멸시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내가 노예로 살 사람이 아닌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닌데... 배신당한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악을 행한 그들이 가족입니다. 보통은 원망과 분노로 칼을 갈면서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삶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노예의 삶에 충실했습니다.

 

형통한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거부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노예의 삶에 순종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급기야 주인 보디발 장군의 신임을 얻어 그 집에서 가정총무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요셉이 총리대신이 된 시간과 통합해 보면 노예의 때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고난도 축복으로 통합되는 것이 형통입니다. 주님 안에서는 내게 좋은 것 나쁜 것, 이것 저것 가려서 따질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뜻 안에 들어있는 것은 모두 다 축복입니다.

내 뜻대로 안 되서 못 견디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는 요셉의 형통을 봅시다.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후에 요셉은 자신의 삶을 사명 안에서 통찰합니다. 가족의 배신으로 당한 상처와 아픔, 노예시간의 고통, 총리대신의 영광...

그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자신의 삶을 쓰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살다보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야 하는지 모를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사명으로 감당하게 하십니다. (50:20) 내 뜻대로 되어지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눈을 돌려 나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봅시다.

사람취급 못 받던 노예가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져 위대한 총리대신 요셉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사명으로 주신 분이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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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세기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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