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크기변환]이영은 목사 최종.jpg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왜 이런 이를 당해야 하는가?하나님이 그렇게 무능력하신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돕지 않으시는 분이신가? 이스라엘의 이 질문은 오늘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에스겔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질문이 풀어집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수많은 사람 들이 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눈에 크게 들어와 사랑을 하고 청혼을 하듯이 많은 민족 중에 오직 하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눈에 들어와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무슨 조건이 있어서 사랑한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눈에 들은 처음 만남은 천하게 버려진 피투성이에 벌거벗은 몸 이었습니다.(16:6~7)

 

내 옷으로 너를 가리고 물로 씻기고 기름을 바르고.. (16:8~9)”

수놓은 옷에 물돼지 가죽신, 가는베와 명주, 패물과 온갖 보석장식의 면류관을 씌워 주셔서 왕후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16:10~13)

하나님을 잘 만나서 왕후의 명성과 영화로 온 세상 중에서 높아졌는데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사랑을 배신합니다. 이런 배신은 어디에 있을 수도 없는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16:15~16)

배신당한 사랑! 이것은 인간 사랑의 모형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사랑하기에 얼마나 미성숙하고 불완전한가, 사랑은 마음에 한 사람만을 담아야 그 사랑이 진실합니다. 그러나 진실이 없으니 정한 마음이 안되어 조금만 속이면 유혹에 빠져 헛된 것들을 마음에 담는 배반과 반역의 본성을 가진 사람과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애초에 불가능한 사랑 이었습니다. 진실한 사랑이 어려운 대상과의 사랑은 사랑하는 쪽이 아픕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이 아픈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해서만이 아닙니다. 유혹에 빠져 부서지고 비뚤어진 곳을 길이라고 가고 있으니 결과는 파멸인데 그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더 아픈 것입니다. 속아서 눈에 좋은 대로 가다 보면 영혼이 끌려갑니다.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세상의 속임에는 잘도 속아 따라갑니다. 고귀한 왕후가 사창가의 창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인줄 알고 속아서 갔는데 현실은 고통 속에서 착취와 파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에서 마귀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귀의 노예로 존재가 변하니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던 귀한 왕후였는가를 잊어 버렸습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2:19)“

하나님을 반역하여 떠난 배신당한 사랑도 아픔이지만 사랑하는 자들이 파멸해 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것이 더 아프지 않겠습니까? 아픈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놓아 버리시면 이 사랑은 깨어집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에 한번 담은 그 사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한 사랑을 지키시려는 하나님 때문에 이 사랑이 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목숨 걸고 지키십니다. 한쪽에서 죽기 살기로 놓지 않으면 사랑은 깨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양쪽이 함께 반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는데, 일방적으로 한쪽이 놓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 놓지 않는 쪽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아픈 사랑의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목숨 걸고 지키신 그 사랑으로 그분의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목숨 걸고 지키신 그분의 사랑 때문에 이 사랑은 깨질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서 그 사랑을 끝까지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절규가 심판입니다. 돌아올 수만 있다면, 자신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시고 온 세상에 무능력한 하나님으로 오해받으시는 것도 하나님은 괜찮습니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라고 질문 할 수 도 없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심판은 그 사랑을 놓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아픈 사랑의 사연입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WAIC 칼럼] 이영은 목사 ‘깨어질 수 없는 사랑’(겔 16:1~22)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