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요 11:21, 32)”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이 죽은 사람도 살리실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습니다. 죽기 전에 오셔서 막아 주셨어야지 이제 오빠가 죽었으니 예수님이 오셨어도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같은 마음입니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시체에 썩은 냄새가 나는데 다시 살 수 있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마르다는 그 말씀을 마지막 날 부활 때 다시 살 걸 로 알아들었습니다. (요 11:2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 11:25~26)”
죽어도 살고 살아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생명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가셨습니다. 무덤 앞에 입구를 막은 돌을 치우라.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 벌써 썩은 냄새가 납니다.” 설마 저 시체가 걸어 나오기라도 할까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40)”
예수님은 무덤 바깥쪽에서 큰 소리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때 도저히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일어납니다. 죽은 시체였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묶인 채 얼굴까지 꽁꽁 싸놓은 상태로 무덤 문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믿게 하시려는 증거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요 11:42) 부활 생명입니다. 부활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이 이름을 부를 때 그 음성을 듣고 죽었던 육체까지 일으켜집니다. 부활의 생명이 육체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활생명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마지막날 다시 사는 사람은 오늘 여기서 부터 삽니다. 부활의 생명은 지금 여기서 부터 일어나는 현재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의 능력은 죽은 몸까지 일으킬 만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생명의 힘이 보이는 물리적인 힘까지로 이어집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면 그의 죽었던 육체의 삶도 살아납니다. 다 죽은 썩은 시체 같은 소망 없는 인생이 생명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부활이고 생명이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았고 그 앞에서 어둠이 물러갔습니다. 부활생명 이신 예수님 앞에서 어둠이 물러갈 때 어두움에 속한 모든 일들도 함께 물러갔습니다. 다 죽어서 시체 같은 가망 없는 삶이 생명의 삶으로 살아납니다. 할렐루야!
왜 이런 불치병이 걸렸는지, 장애가 왔는지, 망했는지, 깨졌는지... 부활생명이신 예수님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앞에서 어둠의 일들이 스스로 물러갑니다. 저는 부활생명 앞에서 해결 받지 못할 인생 문제는 없는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그 생명을 받았습니다.
부활생명이신 예수님, 내게 오셔서 이곳에 임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