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 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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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17:14).

 

아합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 땅 사르밧에 사는 과부에게 보내어 과부에게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르밧에 보내실 때, 사르밧의 어느 지역이나 사르밧 과부의 용모나 그가 어느 때에 외출할 것이라는 말씀 등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따를 뿐이었습니다. 무작정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갔는데 마침 사르밧에 나무를 줍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과부였습니다.

 

엘리야가 그녀를 만나 떡을 좀 달라고 하자, 그녀는 떡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통에 가루가 조금 있고, 병에 기름이 조금 있는데 그것으로 자신과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에 죽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그녀 말대로 하려니와 그것으로 먼저 그를 위하여 떡을 만들고 후에 그녀와 그녀의 아들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말씀 그 통그 병을 말한 것입니다. ‘그 통그 병은 먼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위한 통과 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지시대로 그 가뭄 때에 먼저 엘리야를 위하여 떡을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다 소비되었다고 하는 순간 그 통과 그 병의 바닥을 보면 또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가뭄 기간에도 세 명의 사람들은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그 통의 가루와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자,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말할 수 없이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방인인 자신에게까지 이런 은혜가 임함을 알고 하루하루가 기뻤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도 매일 반복 되면 자연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던 때에 하늘에서 만나가 매일 내리자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지 못하고 좀 더 자극적인 음식 타령을 한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11:4-5).

 

그 통의 가루그 병의 기름일상적인 통과 병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왕상17:16). 그 결과 그 집에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 처음에는 사랑을 깨닫게 되고 감사 감격하게 되지만 그 마음을 계속 쓰지 못하면 감각이 둔해집니다. 그리고 우연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 멀어지고 타락의 길을 가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바치라는 환경이었고, 사르밧 과부에는 아들이 죽는 환경이었습니다.

 

죽음이란 육신의 목숨을 의미하는 것만 아닙니다. 자녀들의 타락과 방탕한 생활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이 때 영적으로 민감한 성도들은 하나님이 나를 재촉하시는 구나. 다시 힘을 쓰자.’하며 떨어진 믿음을 회복하기 위하여 애를 쓸 것입니다. 하지만 육체가 예민해진 반면 영적으로 둔해진 성도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러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일은 세상일이며, 육적인 일이며, 당장 잘 되는 일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관심사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얼마나 본받아 가는 것인가에 있습니다. 어려움이 임할 때 첫사랑과 첫 은혜를 되새기며 믿음으로 돌아와서 다시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때로는 재앙 같은 복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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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칼럼] 강성률 목사의 ‘그 통’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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