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3,24)
20년도 넘는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A 자매에게 이웃집에 사는 분이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에 일 년 안에 돌려받겠다는 조건으로 천만 원을 빌려주었습니다. 은행 이자보다 싼 이자였습니다. 자신도 힘들지만 평소 싹싹하고 친절한 사람이기에 털끝만치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은 몇 달 동안은 꼭꼭 이자를 보내주더니 어느 날 밤 이사 간다는 말도 없이 그 지역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이사한 지역을 찾아보았지만 주민등록마저 말소됐는지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신뢰했던 사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A자매는 며칠 동안 앓아누웠습니다. 침대에서 분을 삭이고 있는데 문득 내면에서 “돈을 뜯긴 너 보다 못 갚고 달아난 그가 더 불쌍하지 않느냐?”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불쌍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이웃이야, 나는 빌려줄 돈이라도 있었지만 그는 갚을 돈마저 없었던 사람이지. 하나님, 그 분의 형편이 풀리게 하시고 영육 간에 은혜를 내려주세요.'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은 후에 그 돈에 대하여 빌려 간 사람이 직접 들고 찾아오면 받을지언정 자신이 애써 수소문하고 고소하는 일을 하지 않으리라 작정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어찌나 가볍고 기뻤는지 '성령의 위로가 바로 이런 것이 구나.'라고 그 자매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다 5 년도 넘게 지난 어느 날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전철 안 맞은편에서 수심 깊은 표정으로 옆 사람과 대화하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A 자매의 돈을 빌려갔던 이웃이었습니다.
정면이 아니었기에 그 쪽에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보통 마음으로는 그녀 앞에 가서 다짜고짜 멱살을 잡아 끌어내리고 싶었을 텐데, 자신도 의심하리만큼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그녀 눈길을 피해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했는데도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A 자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야무지고 똑똑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인데, 그런 마음 가지고는 결코 그냥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그녀를 보는 순간 왜 그렇게 편안한지 왜 그렇게 불쌍하게만 느껴졌는지. 나 아닌 전혀 다른 마음이 있는 거예요. 은혜란 바로 주님이 붙잡아 주시는 새 마음 같아요.”
그렇습니다. 은혜란 내 능력이 아니라, 내 힘이 아니라 전혀 다른 능력으로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은혜로 구원 받은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무시하거나 함부로 조롱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이 붙잡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죄를 지을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이 사회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능 만점을 받았었던 의대생이 여친의 이별 통보에 격분하여 여친을 살해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막아주시지 않는다면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하나님께서 막아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도 다 살인, 간음, 도둑, 사기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죄 짓는 일을 막아주실까요?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 거듭난 자라도 죄를 짓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잘 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위의 말씀 ‘하나님께로 난 자’는 영이지 육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일지라도 영을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고 육신을 따라 살아간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십니다.
하나님의 붙드심을 체험하려면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그렇게 할 때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죄를 짓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오히려 A 자매가 체험했던 것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상대에게 복을 빌어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