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만섭 목사(화평교회)
지난해 12월 29일 미국의 전직 지미 카터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1977년 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4년간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된 1976년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컸던 때이다. 이로 인하여 그는 변변한 미국 중앙 정치의 경험도 별로 없는 가운데, 조지아주 주지사를 지낸 것만으로 명함을 내밀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의 정치 공약은 놀랍게도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것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 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는 만만치 않았다. 중동의 오일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세력이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여 52명을 인질로 444일간 억류한 사태는 미국민들의 자존심을 구기는,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지미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강한 미국’을 내세운 로널드 레이건에게 다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지미 카터는 현직에 있을 때, 아주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대통령이다. 그는 57세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자기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을 지낸 경력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민주주의, 인권, 평화, 기아 퇴치라는 미국 진보계 민주당이 주창하는 것들에 헌신하였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40년 이상을 이런 일에 몰두하였다.
그는 퇴임 후,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이끌어서 전세계 14개국에서 4,447채의 주택을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을 하였다. 또 분쟁 지역의 외교에서 막후 협상을 벌여 해결사 및 중재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는 북한, 수단, 아이티,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을 누볐다. 그래서 지미 카터를 ‘사태를 해결한다’는 의미로 ‘미스터 픽스 잇’(Mr.Fix. it)이라고 불렀다. 그로 인하여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런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한국과는 그리 친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 지미 카터는 1977년 대통령에 취임 하자 마자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한다’고 밝혔다. 당시 참모인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안보담당 보좌관은 신중론을 폈지만, 카터는 한국의 유신체제와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이 문제로 양국은 심각한 갈등이 생겼었다.
그런데 지미 카터 대통령은 한국보다는 북한의 김일성에게 더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1994년 6월 1차 북핵 위기가 있을 때, 카터는 당시 클린턴 행정부와 협의도 없이,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들여 평양을 방문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카터는 김일성과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즉 ‘미국이 대북 제재를 중단하면 북한도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주장을 폈다. 그때까지 강경했던 클린턴 행정부도 어쩔 수 없이 ‘제네바 합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때 카터의 역할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하여 사실상 보유하는 나라로 만들어 준 셈이 되고 말았다.
또 카터는 2010년 천안함 폭침이 북한에 의하여 발생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이, 북한이 원하는 6자회담 개최에 대한 것을, 북한의 입장대로 뉴욕타임스에 기고하였다. 그리고 2011년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나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북한 인권 문제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식량 지원 중단한 것을 ‘인권침해’로 비난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2014년 카터가 설립한 ‘카터센터’에서는 당시 내란 음모와 선동 협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우려한다고 논평하였다. 그는 평화나 인권을 말하면서도, 이를 악용하여 독재를 벌이는 자들에게는 관대하므로, 그들이 평화와 인권 뒤에서 벌이는 허위와 위선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야 했다.
지미 카터는 100세까지 장수하였다. 그의 부고(訃告) 기사는 이미 오래전에 쓰여졌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내보낸 지미 카터의 부고 기사는 지난 2017년 사망한 로이 리드 기자가 쓴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부고 기사도 지난해 사망한 에드워드 월시 기자가 작성해 놓은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의 부고 기사도 이미 2021년에 사망한 해럴드 잭슨 기자의 글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놀랍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 진보 대통령이 가졌던 인식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공산주의 북한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유민주주의 한국에 대해서는 왜 그리 박정(薄情)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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