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1.jpg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근으로 채찍을 만드사 야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요한복음> 2: 13-21)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내어쫓으시던 일화가 담겨 있다. 어느 시대든지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의 후원 아래 이루어졌다. 경제가 어려우면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어렵다. 경제력은 현대 사회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신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예수님은 그런 물신주의에 지배된 장사아치들을 성전에서 내어쫓으셨다. 이 사건은 후에 장사아치들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을 꼬드겨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는 데 한 몫 하게 된다. 이때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시는 우리 안에 물신주의가 판치는 것을 싫어하신다.
때론 물신주의가 사탄과 한 패가 되어 괴롭히는 때가 있다. 나도 젊었을 때에 가난으로 인하여 괴로울 때가 있었다. 그것은 사탄이 나에게 가해 온 시험이었다.  
퇴직금을 사기꾼에게 고스란히 날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심한 구박을 받고 살았다. 어머니는 툭 하면 아버지에게 나가서 돈 벌어 오라는 말을 자주 하였고, 아버지는 어깨를 움츠리고 밖에 나갔다가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때에 돌아왔다. 그동안에 아버지는 정씨 문중에도 다녀오고, 난 화원을 하는 친구 집에도 다녀왔다. 한 번은 문중 어른 C가 소개하여서 출판사에 다녀왔다며 서예 전집을 들고 들어왔다. 출판사 사장인 K는 예서체, 전서체 등 12권으로 된 서예 전집이 요즘 잘 팔린다며 당신더러 팔아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K는 아버지로부터 27만원을 받은 후 50만원자리 책이니 동창들에게 팔아 보라고 권하였다는 것이다. 27만원은 당시 대기업 회사원 봉급이었다. 어머니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왔다며 비아냥거렸지만, 아버지는 그걸 팔 자신이 있어 했다. 아마도 십여 년 간 어머니 몰래 모아 두었던 아버지의 비상금을 몽땅 털어 그 책을 산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후 여러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지만, 하루에 열 잔 이상의 차를 얻어 마신 후 배만 잔뜩 불려서 귀가하곤 하였다.
그 즈음에 서독에 가 있던 누나가 휴가를 얻어 집에 들렸다. 누나는 여행용 가죽 가방에 전자 계산기와 햄과 담배와 양주 등을 잔뜩 넣어 가지고 와서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대학생인 내가 외출할 대 옷이 별로 없어 와이셔츠와 바지한 벌만 줄창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입고 있던 청바지를 벗어서 입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서독에선 젊은이들이 신사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서구에서 유행되는 옷차림도 곁들여 설명하여 주었다. 누나는 청조끼도 입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고 한국에서도 곧 유행할 거라는 감이 왔다. 누나가 준 초록색 청바지를 입어 보니, 가랑이 부분이 너무 조여 거시까가 아프기가지 하였지만, 누나는 잘 맞는다고 계속 우기더니 자신이 입고 다니던 푸른 색 청바지 한 벌을 더 내놓았다. 그러나 바지 길이는 맞는데, 그 거시기 부분이 매우 아팠다. 곁에서 이를 지켜 보던 어머니도 “어쩜 저렇게 딱 맞느냐”며 거들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청바지 생활은 시작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요즘 서구에서는 청바지가 유행이라며 여자용 청바지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그러면 친구들은 하기야 청바지는 남녀 구분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며 위로하기도 하였고, 옷가게하는 형을 두고 있던 친구는 청바지도 남녀 구분이 있어 여성용은 남성용보다 가랑이가 2.5인치 더 올라간다는 귀띔을 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6개월을 계속 청바지만 입고 다니자 거시기 부분이 아픈 것도 조금 가셔졌고, 대학 4년을 견딜 수가 있었다. 요즘도 그때 일을 생각하여 보면, 내 안에 있는 물신주의를 물리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조그만 개척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지휘를 하며 어려움을 극복하였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주님께 정성드려 예배드리는 생활을 지속할 때 물신주의가 끼어들지 못하였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기독교인의 행복론 - 89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