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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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는 인연이 없지 않았다. 20년(41학기)을 S대학에서 “성서개론”과 “기독교개론”을 강의하면서 <죄와 벌>을 “독서보고”의 자료로 택했었다는 인연을 어찌 대수롭지 않다 할 것인가.  
은퇴 후, 일본의 성서학자 아라이 사사구(,1930-)의 <세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읽게 되면서 인연이 더해진다. 아라이는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아니 그랬기 때문에, 신앙문제를 두고 아버지와 자주 다투곤 했었다. 저자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매개로 한 세례”라는 소제목을 붙인 글에서 자신이 “예수를 만나게 된 것은 마르멜라도프를 통해서였다”고 고백한 부분을 인용해본다.   
“...결국 내가 세례를 받게 된 것은 직접 성서를 읽은 결과는 아니었다. 오히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통해서였다...첫 번째로 내가 <죄와 벌>을 읽었을 때, 라스코리니코프 안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발견하고 전율했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읽었을 때, 나는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 안에서 그와 내가 하나로 겹쳐질 수도 있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마르멜라도프의 그 유명한 독백을 통해서, 딸을 팔아먹게 되기까지 완전히 파탄한, 모든 의미로 무자격자인 자신마저도, 그리스도는 최후의 심판에서 ”너희 돼지들아!..너희도 오라“하고 불러 주실 것이라며, 취기를 빌어 고백하는 대목을 거듭거듭 읽어가는 가운데, 혹 나처럼 염치없는 사람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살도록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일로 해서 나는 성서를 통독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누가 5:31-32)”는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는 회개를 결심 한 것이다...아버지와도 화해했다. “  
<죄와 벌>에서 마르멜라도프는 결코 주역은 아니다. 라스코리니코프와 나란히 주역을 맡고 있는 소냐의 아비로 작품 들머리에 잠깐 등장했다가 곧 마차에 치어 죽어버린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인상은 너무나 강렬해서 독자들을 풀어주지 않는다.  
주인공 라스코리니코프가 마르멜라도프를 만나게 되는 것은 선술집에서였다. 사람만나기를 싫어했던 주인공, 술집이라고는 얼씬도 하지 않던 그가 “무언가 새로운 무엇이 그의 내부에 태어나는가 싶더니, 인간에 대한 심한 허기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무도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는 마르멜라도프도 말벗을 찾고 있는 터.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로, 한 마디도 말을 건넨 적이 없으며,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는데도, 묘하게 첫눈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만남이 있는 법이다.”
마르멜라도프에게는 전처에서 난 18세 나는 딸 소냐가 있다. 그리고 폐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 카타리나에게는 자식이 셋이나 딸려 있다. 그가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와서는 다시 관리로 복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술타령은 계속되었고, 더 이상 직장에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아내 카타리나에게 건네주었던 월급을 훔쳐내서는 술집에서 탕진했다. 이제 초로에 접어든 이 주정뱅이는 딸 소냐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술타령을 일삼고 있다.   
마르멜라도프에게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찾아내는데 거의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럴 만한 낌새가 느껴지는 작자를 만나면, 아내 카타리나가 양가 출신으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것, 그런 그녀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자신이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그런데도 이 못난 놈은 그 꿈을 무참히 깨어버려서 지금 그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에 대해서 숨 쉴 틈도 없이 뇌까리는 것이었다. “아내의 양말까지 마셔 버렸다”느니, 자신의 딸이 “노란 감찰”을 단 창녀라는 사실 조차 자상하게 몸짓을 섞어가며 지껄이는 것이었다. 듣는 이가 경멸 섞인 흥미를 나타내기라도 하면 그의 이야기는 더 불타오르곤 했다.  
그가 숨을 거두는 장면. 딸의 맨발을 가리키면서 “맨발이야 맨발”하더니,  “딸 소냐! 용서해다오”하고는 소냐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소냐는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을 받아주는 심판자였을까. 그렇다면 소냐를 심판자로 만들어 준 것은 너덜하기만한 마르멜라도프의 인생이었단 말인가. ‘마르멜라도프’란 과일로 만든 젤리란 뜻이란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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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의 마르멜라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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