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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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각지의 교회들은 적잖은 “성 유물”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그 수량과 가치는 곧 그 교회의 품격이기도 했다. 중세에 시작된 성 유물 숭배의 열기는 아직도 시들지 않고 있는 지도 모른다. 화염에 휩싸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서 ‘가시관’을 살려 낸 신부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십자가 조각’ ‘그리스도 수난의 못’과 같은 성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유럽을 관광하는 이들은 이름 난 교회들에서 숱한 “성 유물”들을 보게 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대체로 금 은빛으로 둘러싸인 보물단지. 대개는 고개나 끄덕이고 지나가게 마련이다. 혹 관심을 가지고 그 중의 하나에 주목해 본다 하더라도, 유리 그릇 속의 어렴풋한 물체 말고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기가 일쑤. 그래도 주의를 기울이노라면, 인체의 일부분을 연상케 하는 덩어리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화려한 그릇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초라한 내용물을 보고는 실망하기 쉽다. 저게 뭐지 하고 설명서를 보게 되면 “성 누구의 뼈 조각” 혹은 “성 아무개의 팔” 이라 적혀있다. 끔찍스러워 미간을 찌푸리지만 그것이야말로 “보물”이요, 그 “보물”이야말로 그 우람한 모습을 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해설을 들으면서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수와 직접 관계된 유물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까, 수집되는 성 유물의 범위는 성인들과 인연을 맺은 물건들에게로 넓혀진다. 호이징거의 <중세의 가을> 12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중세의 뜨거운 신앙은, 특히 성 유물과 관계되고 있다면, 제아무리 흥미위주가 되었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되었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운부리아 산촌의 민중은 성 로무알도를 박살을 내 죽일 뻔 한다. 성인의 뼈가 탐났기 때문이었다. 서기 1000 년경의 일이었다.”
내친 김에 한 꼭지 더 인용해 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연관된 이야기이니. “1274년, 토마스 아퀴나스가 포사 노바의 수도원에서 사망하자, 그곳 수도사들은 값나가는 성 유물을 잃어버릴까봐, 고매하신 스승의 시신을 가공 보존했다고 한다. 머리를 잘라내어 삶아서 조리를 한 것이다.”
에라, 한 꼭지만 더 보태자. “생 드니 수도사의 보고에 따르면, 1392년 샤르르 6세는 성대한 축하연을 차려놓고, 조상인 성왕 루이의 늑골을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독일어 “Heiligtum”은 “성역 혹은 신성한 것”이란 뜻이었다지만 15-16세기가 되면서 그 첫 번째 뜻으로 “성 유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어 있었다. “보석보다 귀중하고 황금보다 가치가 있다”는 해설과 더불어. 성 유물이 기적을 일으키거나 아름다운 향기를 풍겼다는 이야기는 결코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늘 초자연적인 현상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것은 아니었단다.
성 유물이란 보기에 따라서는 말 뼈다귀인지 굴러다니던 돌멩이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성 유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포장이 필요했으리라. 그릇은 성 유물을 잘 간직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성 유물의 가치를 한껏 뽐내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수단이기도 했다. 담고 있는 그릇과 그 그릇을 가꾸고 있는 여러 장식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유물의 뜻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매체 구실도 했다. 그렇게 성 유물은 미술 혹은 조형 예술의 발전과도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성인보다는 유체나 성 유물이 더 중요한 것처럼 다루고 있는 듯싶은 현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해명이 돌아온다. “생전의 성자도 기적을 기대하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살아있는 성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그 표층에 종교적 경건이라는 덧붙여진 껍데기가 부착되어 있는 성자의 생전의 영력이 유해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사람들이 유해에 갖추어지게 될 영험에 대한 예감을 살아있는 성자에게서 미리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가르(Sigal, Pierre-Andre)의 말이다. 도축할 가축을 가려내는 노릇과 무엇이 다를까. 그의 <정량적 분석>에 따르면, 11세기에서 12세기의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는 기적 4,756건 중, 사후의 기적이 3,594건에 이른다고 했으니.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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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물’ 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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