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에는 두개의 단이 있었다. 그 하나는 놋으로 입혀 그 이름을 ‘놋 제단’이라 하였고, 또 다른 하나는 금으로 입혔기에 금단이라 불렀다. 이 두 제단은 각각의 목적도 서로 다르고 희생을 드리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번제단’ 이라하였고, 후자는 향을 피우는 곳이었으므로 향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제 금단이나 향단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자.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은 후에 성막에 필요한 시설과 도구 그리고 비품을 준비 하도록 하는 중에 향을 사를 분향 단을 만들라고 하신다. 분향 단에서 향을 태우는 일은 우리가 현재 기도를 드리는 것을 상징한다(시 14:11-20).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귀 기우리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을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먼저 모든 종교 의식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속에는 보다 높은 차원의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 분향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기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상달되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있기에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교제를 나누며 기도하는 자에게 바로 곁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마 5:6).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향단위의 향은 불의 열기로 부터 소화되어 발생한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과 정렬이 기도로 솟구치는 점을 보여준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답고 뜨거운 교제를 종종 불과 같은 관계로 나타내고 있다. 신약의 사도들의 불같은 성령의 체험이 바로 그것이다. 분 향단은 네모 반 듯 했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중재와 그에 대한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가 동시에 그리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의 보좌로 올라 가셨을 때 성령은 교회에 머무르기 위하여 내려오셨다.
분향 단을 만들어놓고 향을 사르지 않으면 단을 쌓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도는 단순히 “주시옵소서” 하는 간구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시다. 부모는 어린 자녀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 있다. 기저귀가 필요한지 유치원에 갈 때 학비를 준비해 주고 학용품도 옷가지도 다 준비하여 놓고 있다. 먼저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고 날마다 주안에서 잘 성숙해 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성도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엇을 구하느냐이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 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지라(계 8:3-4)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지만 여전히 육신 가운데 있다. 이런 사실을 아신 주님께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하늘보좌 우편에서 대언해 주시고 계신다.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제단의 불과 함께 계속 피게 하기 위하여 향불이 피어나는데 방해나 저해되는 방해요소를 제거해야 하라고하신다. 마찬 가지로 우리들은 기도에 방해 되거나 꺼리는 요소가 있다면 이를 신속히 제거하여 온 교회로 하여금 기도의 향기가 타오르게 해야 한다. 8절에 조석으로 등불을 정리할 때는 향단도 돌보라“고 하신다. 기도는 향불처럼 항상 붙어야하며 꺼져서는 안 된다. 만일 성소의 향불이 꺼지는 날은 이스라엘 전체의 생명이 끊어지는 상태를 의미 하는 것이니 결코 소홀이 할 수가 있겠는가? 제사장은 다른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비록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나 소제의 제사일 지라도 이곳에서는 드리지 못하게 하셨다. 향단에는 다른 향은 사를 수 없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자기 멋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어떻게 그 생활을 신앙 생활 이라고 하겠는가?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방법과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들만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삼상 15:22). 이것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약 4:3). 우리의 믿음의 완성 자이신(히12:2)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에도(마6:10)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에서도 실현되기를 기도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성막을 지으라는 명령을 받은 후에 성막에 필요한 시설과 도구 그리고 비품을 준비 하도록 하는 중에 향을 사를 분향 단을 만들라고 하신다. 분향 단에서 향을 태우는 일은 우리가 현재 기도를 드리는 것을 상징한다(시 14:11-20).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귀 기우리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을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먼저 모든 종교 의식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 속에는 보다 높은 차원의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이 분향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기도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상달되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가 있기에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교제를 나누며 기도하는 자에게 바로 곁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마 5:6).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향단위의 향은 불의 열기로 부터 소화되어 발생한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신앙과 정렬이 기도로 솟구치는 점을 보여준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 할 수 없는 아름답고 뜨거운 교제를 종종 불과 같은 관계로 나타내고 있다. 신약의 사도들의 불같은 성령의 체험이 바로 그것이다. 분 향단은 네모 반 듯 했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중재와 그에 대한 성령의 도우시는 역사가 동시에 그리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의 보좌로 올라 가셨을 때 성령은 교회에 머무르기 위하여 내려오셨다.
분향 단을 만들어놓고 향을 사르지 않으면 단을 쌓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도는 단순히 “주시옵소서” 하는 간구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시다. 부모는 어린 자녀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 있다. 기저귀가 필요한지 유치원에 갈 때 학비를 준비해 주고 학용품도 옷가지도 다 준비하여 놓고 있다. 먼저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고 날마다 주안에서 잘 성숙해 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성도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엇을 구하느냐이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 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지라(계 8:3-4)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지만 여전히 육신 가운데 있다. 이런 사실을 아신 주님께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하늘보좌 우편에서 대언해 주시고 계신다.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제단의 불과 함께 계속 피게 하기 위하여 향불이 피어나는데 방해나 저해되는 방해요소를 제거해야 하라고하신다. 마찬 가지로 우리들은 기도에 방해 되거나 꺼리는 요소가 있다면 이를 신속히 제거하여 온 교회로 하여금 기도의 향기가 타오르게 해야 한다. 8절에 조석으로 등불을 정리할 때는 향단도 돌보라“고 하신다. 기도는 향불처럼 항상 붙어야하며 꺼져서는 안 된다. 만일 성소의 향불이 꺼지는 날은 이스라엘 전체의 생명이 끊어지는 상태를 의미 하는 것이니 결코 소홀이 할 수가 있겠는가? 제사장은 다른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비록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나 소제의 제사일 지라도 이곳에서는 드리지 못하게 하셨다. 향단에는 다른 향은 사를 수 없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버리고 자기 멋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어떻게 그 생활을 신앙 생활 이라고 하겠는가?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방법과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들만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삼상 15:22). 이것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약 4:3). 우리의 믿음의 완성 자이신(히12:2)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에도(마6:10)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에서도 실현되기를 기도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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