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요 경험이며 도리이다. 임금이 둘일 수 없고 남편이나 아내가 둘일 수 없다. 오직 하나를 사랑할 뿐이다. 한 분에게만 충성할 뿐 그 외에는 거짓이요 자기 분열증 현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미래를 물질에게 맡기는 잘못된 안내자를 구하는 때가 많다. 그렇지만 황금은 결코 나의 미래를 위탁할 수 있는 안내자가 될 수 없다.
1912년 4월 14일 당시 최고의 여객선 타이타닉(titanic)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한 참사가 벌어졌다. 많은 일화 가운데 하나는 보트로 구출할 수 있는 사람 중 두 여자가 자기 선실로 돌아갔는데 한 사람은 성경을 가지러 갔으며 한 여자는 잊어버리고 나온 보석 상자를 가지러 갔다가 시간을 많이 소비하다 구출 보트를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여자는 이 보석상자만 가져도 충분하였는데 다른 선실에 흩어져 있는 돈이나 보석들을 많이 찾아내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다 침몰 당하고만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 정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큼 물질에 의존하여 있음은 나 자신과 하나님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질은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위치에 물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금송아지의 교훈이다.인간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황금의 송아지를 섬길 것인지 그 황금을 창조한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선택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 출애굽기에는 우리에게 두 가지 대조적인 사건을 보여 주고 있다. 두 가지 대조적 사건이란 올라가는 운동과 내려가는 운동이다.
올라가는 운동, 이는 곧 영적운동이다. 심령과 몸이 올라가는 것으로 이러한 운동이 출애굽 전체를 좌우했고 이 운동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올라간 순종의 운동이었고 말씀을 받으려고 올라가는 말씀 운동이었으며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는 기도의 운동이었다(출 19장).
내려가는 운동, 이것은 세속으로 물드는 운동으로 마침내 금송아지를 섬기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는 운동이니 올라가는 가나안을 향한 운동과는 대조적인 운동이다. 이들의 근본적인 방향은 가나안행이지만 그들은 동시에 때때로 애굽에 내려가려는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우리에게도 위와 같은 운동이 전개 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백하기를 원하는바 선은 (가나안으로 향한 성향)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애굽으로 향하는 성향)이 있도다(롬 7:19). 올라가는 성향의 클라이 막스는 십계명이고 내려가는 운동의 극치는 금송아지다. 그런데 문제는 올라가는 운동에 참여하는 자는 적고 내려가는 운동에 참여하는 자는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내려가는 운동에 참여한 자는 불신자들이었나? 아니다. 금송아지는 불신자가 아니요 그들은 홍해를 건넜던 자들이었고 말씀을 받은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도 이 땅에 있는 교회 가운데는 두 가지 타입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모세 타입의 교회요 또 하나는 아론 타입의 교회이다. 모세 타입의 교회는 산위에 있는 교회로 인내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교회요 예언자적 입장에 서있는 교회이다. 반대로 아론 타입의 교회는 산 위에는 올라가 보지 못하고 산 아래 속에 파묻힌 교회요 현재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조급해 하는 교회요, 샤머니즘 기복 신앙의 교회이다.
오늘의 교회를 엄격한 의미에서 따져 볼 때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은 교회가 별로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화려한 예배당 외식제도 철학 과학 이것으로 만족해하고 신령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다. 그들은 일어나서 먹고 마시고 뛰 놀았다.(6절)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자는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라고 하셨다.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지 않는 자는 어두움의 일을 왕으로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섬기느냐 사탄을 따르느냐 이지 그 중립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그들의 결단을 요구 할 때 과감하게 돌아서는 용기를 보여 주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세상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는 과감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결정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란다. 사탄의 종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하나님을 요구한다. 현대인들이 보아야 할 교훈이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