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하나됨을 꿈꾸지 않는 교회에 복음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연합기관의 하나된 힘을 병폐로 단정 지어서는 안돼

 

차진태 기자.jpg

 

현대사의 가장 큰 재앙으로 기록될 코로나19의 지독한 확산세가 전혀 주춤할 줄 모르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새해의 아침은 밝아왔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세 번째 새해는 이제는 공포가 아닌 무던한 익숙함 속에 우리가 코로나로 수년 간 잊고 지냈던 본연의 일상에 안부를 묻고 있다.

 

나는 누구이고,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었나?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는 공동의 적이자, 서로의 관심을 공유하는 중대한 매개지만, 반대로 코로나가 없었던 우리의 일상이 어렴풋한 기억에만 맴도는 것은 우리가 어느덧 삶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씁쓸한 반증일 것이다.

 

새해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다시금 깨우칠 것을 요구한다. 코로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우리의 신앙이 이제 다시 삶의 중심으로 당당히 자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신앙은 점차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되어 코로나에 경도된 이 사회를 새로운 빛과 희망의 이슈로 끌어줄 것을 확신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코로나를 억누를 새로운 빛과 희망의 이슈는 무엇인가? 단연 대통합이다. 하나됨은 그 자체로 희망이며, 복음의 실현이다. 한국교회 본연의 사명이자, 분열의 시대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의 목표가 바로 대통합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행한 분열의 결과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의 교단이 300개의 교단으로 흩어졌고, 이를 하나로 묶고자 탄생시킨 연합기관은 다시 세 개로 나뉘었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결코 정당화 되지 않을 과거의 죄악 앞에 우리가 대통합을 얘기하는 것은 죄에 대한 철저한 인정이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당연한 회개.

 

하나됨을 꿈꾸지 않는 교회나 목회자가 복음을 얘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죄를 인정치 않는 오만함에 두 눈이 가려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제멋대로 찢어 놓은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잔인함은 지체들의 고통과 아픔을 굳이 외면하려는 무책임이다.

 

그런 관점에서 연초 기관 대통합을 대놓고 반대하고 나선 기성 지형은 총회장의 발언이 매우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교계 분열의 죄책을 누구보다 먼저 얘기해야 할 주요교단의 지도자가 앞장서 통합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납득키 어렵다.

 

자신이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를 온갖 미사어구를 들어 설명하지만, 실상은 설득력 없는 조악한 논리일 뿐이다. “연합기관에 힘이 생기면, 병폐도 생긴다며 지금처럼 삼분열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도 담그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전형이다. 연합기관에 힘을 싣고자 하는 것은 이 사회와 교회 내의 불의를 타파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키 위함인데, 애초에 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처사다. 마치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고, 주인에게 칭찬받기를 바라는 우둔한 종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된 힘이다. 그 힘을 어찌 병폐라 먼저 단정하는가? 과거 하나였던 한기총이 과도한 권력에 불의한 일을 저질렀던 것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사용한 이들의 욕심이 컸던 탓이다. 오히려 스스로 한국교회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면, 이제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연합기관의 기틀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니겠나?

 

여기에 한교총의 공동대표제를 개정한 것조차 문제를 삼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다. 공동대표제는 권력의 분산이라는 이득이 있을지는 몰라도, 동시에 책임의 분산이라는 엄청난 문제를 내포한다. 단순히 권력의 독점이나, 부정부패를 막겠다는 발상은 그 단체의 대표성을 해칠 뿐 아니라 발전을 저해한다. 예장합동측이 금권선거를 예방하겠다며 만들었던 제비뽑기 제도를 결국 폐지한 것은 인물난에서 오는 손해가 너무 컸던 탓이다. 그리고 제비뽑기 제도를 폐지하고, 합동측은 통합측을 제치고 교계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내부의 권력의 독점이나 부정부패조차 막지 못한다고 단정한다면, 과연 한국교회가 종교로서 무슨 존재가치가 있겠나?

 

여기에 한교총 만으로 충분하다. 교단이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열을 고착화하는 동시에, 또다른 분열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과거 한교연이 한기총에서 분열할 당시, 스스로 한국교회 보수 연합운동의 새로운 대표이자, 대안임을 자신했다. 허나 수년이 지나 한교연에서 한교총이 분열하며, 이제는 한교총이 대표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권력을 탐하는 교단들이 있었다.

 

분열은 또 다른 분열을 정당케 한다. 한교총의 분열이 정당화되는 것은 또 다른 분열을 야기할 뿐이다. 반대로 한교총이 결코 이상적이지 않아야 하는 것은 더 이상 대형교단들이 자기 이권에 맞게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새해 한국교회는 다시금 대통합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품는 지금의 희망이, 세상과 국민을 향한 기쁨과 치유로 열매맺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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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새해 다시 대통합의 희망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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