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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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인류 발전의 가장 결정적 사건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있으니 바로 영국의 '산업혁명'이다.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변화를 통해 전 세계 사회, 경제, 정치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산업혁명'은 인류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는 단초가 된다.

 

'산업혁명'은 인류사에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힐만한 일이지만, 당시 모든 이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18~19세기 영국의 가장 보편화된 산업 중 하나가 바로 섬유를 가공하는 '방직업'이었는데,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방직기가 숙련공의 역할을 대신하며, 엄청난 실업자가 발생한 것이다. 모든 공장은 인건비도 들지 않고, 대량생산마저 가능한 방직기를 들여놨고, 그 결과 방직 공장의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고,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아침에 삶이 파괴된 노동자들의 분노가 향한 종착지는 바로 '방직기'였다. 방직기가 없었다면,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을 이유도 없고, 또 월급을 받지 못해 굶을 일도 없을테니 말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방직기'를 직접 파괴하기 시작한다. 발전을 거부함으로, 자신들의 잃어버린 위치를 되찾고자 했던 것, 변화와 발전을 거부하는 '러다이트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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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다음백과

 

19세기에 일어났던 '러다이트 운동'은 이후 시대가 한 번씩 크게 도약 발전할 때마다 종종 등장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20세기 후반 컴퓨터의 보급과 맞물린 과학기술시대의 도래는 네오러다이트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러다이트 운동'이 제4차산업혁명시대의 시작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AI가 모든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며, 결국 인간의 존재가치가 없어질 것이라는 본질적이 우려다. 과거 영국의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처지와 매우 닮아있는 이 우려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찾기 위한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을 꿈꾸고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러다이트 운동'은 의외로 기독교계에도 널리 뻗쳐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절대적이라 여겼던 목회자의 영역마저 AI가 침범할 것이라는 우려로, 특히 코로나를 지나며, 새롭게 자리잡은 '온라인 예배' 문화가 'AI 설교'도 마냥 판타지가 아닐 수 있음을 의심케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 분위기에 일부 목회자들은 제4차산업혁명시대에 보내는 기대의 한 켠에 자신의 존재적 가치마저 혹여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걱정과 우려를 토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변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로 이어지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폐쇄적 교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역사에서 반복됐던 '러다이트 운동'이 주는 교훈은 하나다. '공의' '공익'을 전제한 시대의 발전과 흐름은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이 방직기계를 파괴해 자기 자리를 되찾고자 했지만,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결국 또다른 방직기계였다. 하지만 새롭게 변화한 시대는 인간이 해야 할 또 다른 역할을 선사한다. 네오러다이트운동가들이 컴퓨터의 보급·발전에 반기를 들었지만, 결국 컴퓨터의 발전은 새로운 산업 환경 속에 수많은 직업을 양산해 냈다. 파도가 클수록 이를 넘고자 하는 서퍼들은 결코 파도에 맞서지 않으며, 파도의 흐름에 순응하는 원리와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직접으로 기독교 목회자의 영역을 AI가 대신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대전 유성에 위치한 국립중앙과학관에는 향후 AI로 인해 사라질 직업군이 나열되어 있다. 그 곳에는 텔레마케터, 계산원, 청소부 등의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촬영기사, 측량기사, 건설 노동자 등의 기술집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판사, 기자, 학자 등 일에 있어 사고와 판단이 고도로 요하는 직업들도 AI가 대체할 수 것이라고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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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국립중앙과학관 내 어린이과학관에 걸린 게시물

 

하지만 이 중에 '종교인'은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기술 뿐 아니라 작가의 감정이 요구되는 화가조차 사라지는 직업군에 들어가 있지만, 종교인은 없다.

 

이 간단한 그림은 목회자의 영역을 결코 과학의 기술로 대체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AI가 대신 전할 수 없는 것은 그 분의 뜻에 대한 근본적 이해도 불가능할 뿐더러, 결정적인 사명이 없기 때문이다.

 

AI는 과학적 기술과 기존에 입력된 통계로 자기 역할에 대한 판단을 한다. 하지만 설교는 단순히 지식과 통계, 정보로 이뤄지는게 아니다. 하나님과의 주권적 관계와 성경에 대한 의미적 해석, 그리고 무엇보다 AI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목회자의 '감성'이 바로 설교에 녹아있다.

 

수년 전, 새에덴교회의 소강석 목사는 '광대 목회'로 한국교회의 주목을 끈 적이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그들의 시름을 덜어내는 어릿광대의 얼굴에는 '눈물' 한 방울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광대는 사람들의 걱정과 근심을 받아냄으로 그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희생' 광대의 눈물 한 방울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한 조용한 희생의 의미를 담는다.

 

광대목회의 핵심은 바로 그 한 방울의 눈물을 얼굴에 새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들에 대한 애정, 철저한 섬김을 담아내야 한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 영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희생이라는 감성은 AI가 지배하는 시대에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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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4차산업혁명시대 속 러다이트 운동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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