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출신... "신실한 개혁주의 역사학자"
이상규(李象奎)는 1952년, 경북 영주시 안정면 용산리에서 아버지 이창(李昌)과 어머니 박귀돌(朴貴乭) 사이에 태어났다. 그때는 6.25 전쟁 중이라 출생신고를 늦게 해 호적상 생일은 1952년 12월 13일로 되어 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 이창은 전쟁 중인 1952년 2월 24일 40세의 나이로 늑막염으로 돌아가셨다. 경북 예천 용문이 고향인 어머니는 17세 때에 남편과 혼인하여 1930년 장남 재영(在榮)을 비롯 10남매를 두었으나 절반은 죽고 5남매만 살아남았다. 상규는 그 중 막내였다.?장남 재영은 1950년 8월 좌익의 난동을 피해 잠시 집을 나갔는데 그 뒤 행방불명 되어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
이상규는 1964년 2월, 고향의 안정남부국민학교를 마치고, 그해 경북 경산시 압량면에 있는 메노나이트 중학교로 진학하여 그곳에서 기독교적인 교양과 중등교육을 받았다. 그는 후일 이곳에서 자신의 신앙의 기초가 확립되는 시기였다고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이때 기독교 학술월간지?기독교사상지와 기독교서회가 펴낸 현대신서 시리즈 중 민경배가 쓴 '한국의 기독교회사'란 문고판을 처음 접하고 기독교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에 사는 누님 댁에서 잠시 지낼 때, 1970년 4월에 창간된 함석헌의 '씨알의소리'와 1969년 7월 안병무가 창간한 '현존'을 접하고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고려신학대학?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학부서 강의 시작
1975년 2월, 부산고려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고려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목회학 과정(M.Div)에 이어 신학석사 과정(Th.M)을 마친 후, 학부에서 교양과목과 이론신학 등을 강의하다가 군대에 갔다. 제대 후 1987년 2월, 호주로 유학 길에 올라 호주신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1990년 3월부터 고신대학교에서 만 36년간 교수로 사역한 후 2018년 2월말에 정년퇴임하였다.(정년퇴임기념논문집 <한국교회와 개혁신학>, 이상규의 '내가 살아온 날들' 2018, p.53 이하).
아신대학교 대학원 박응규 박사는 '이상규 박사의 학문여정에 관한 소고'란 글에서, 이상규 박사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성실하게 연구한, 교회를 위한 교회사가(敎會史家)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에게 교회의 역사를 진솔하게 가르친 '교회의 교사'였다고 평했다. 그는 이상규 박사의 한국교회사 연구에 대한 고찰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이상규는 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주제, 인물, 사상별 접근을 통한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분석하였다. 이상규는 이 책에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통합사적인 안목으로 읽어 내고 있다. 그가 통사적인 차원에서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저술하기 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엮었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역사적 연속성이 내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초대교회를 비롯하여 종교개혁사와 현대교회사 그리고 한국교회사에 이르는 역사의 강줄기를 따라가며 역사의 긴 폭을 헤아리는 안목을 지니고 있으며, 본류는 지류를 형성하고, 지류는 다시 본류로 통합되는 역사의 연속성을 보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다양한 주제별 접근은 지류일 뿐만?아니라, 동시에 본류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접근방식이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해석하며 서술하는 데에도 여실히 반영되어 나타난다.
둘째, 주제, 인물, 사상별 접근을 통한 <해방전후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이상규가 스스로 인정했드시 한국교회사 분야로 볼 때, 그의 대표 작품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특히 2012년을 전후하여 한국에서의 장로회 총회조직(1912)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학술모임에서 논문을 발표하거나 토론에 참여하면서 장로교의 역사와 신학 혹은 신학전통과 그 유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에 관한 본서를 출판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도 저자의 저술의 특성인 중요한 주제들을 선별하여 연구한 주옥같은 논문들로 구성되었으며, 또한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로서 한국교회사 현황?등에 대한 글들이 담겨있다.
셋째, 이상규 교수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 신학적 토대에서 연구하고 가르쳤고, 그것이 학자로서 그의 신학적 기초이자 그가 속한 고신대학이 지향하는 신학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 왔으며, 교수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연구와 교육이기에 다른 욕심없이 본업에 충실하고자 했고, 이 일에만 집중하고 살아왔다. 그는 그의 전공학문을 통해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 길을 올곧게 걸어왔다. 개혁주의가 그의 학문적 기초이자 토대이기도 했지만, 그가 고신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역점을 두었던 바가 개혁주의 사상에 관한 과목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모든 강의와 연구활동에 있어서 기독교적 기초 혹은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낼 때, 기독교대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 따라 동료 교수들과 고신대학이 기독교 이념형성에 기초한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는 훗날 <개혁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으로 저술한 책이 <한국에서 칼빈연구>란 자료집 성격의 책이었고, 이는 한국기독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낸 책이었다.
"이상규의 기독교 역사관은 '통합사적' 역사관"
이상규의 기독교 역사관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통합적인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규는 교회역사 전반에 걸친 남다른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지금까지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 왔다. 이러한 배후에는 그가 즐겨 인용하곤 하는 필립 샤프(Philip Sharp)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역사는 성경 다음으로 중요하며 지혜의 가장 풍요로운 기초이자 가장 확실한 안내자이다."
그의 연구 분야도 어느 특정한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사를 중심으로 연구했지만, 모든 교회역사를 다 포함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단순히 한국의 상황과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교회역사의 시각에서 보려는 자세를 견지했으며, 또한 서양교회의 역사도 한국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융합의 자세도 지니고 있다. 그는 초대교회에서 현대교회 그리고 한국교회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의 흐름을 헤아리는 긴 안목을 갖고 있으며, 역사의 연속성을 잘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어느 한 시대의 역사도 그리고 어느 한 나라의 역사도 역사의 큰 강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 모든 역사의 흐름을 통전적으로 보면서 다양한 시대와 주제들에 관한 연구에 전력해 왔다고 보여진다.
이상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서양교회사를 한국교회사의 눈으로 인식하고, 한국교회사를 서양교회사적인 전통으로 헤아리는 원근법적인 안목을 갖게 되었다. 또 한 나라 교회의 특수성은 보편교회 안에 있고, 보편성은 개별교회의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근거에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서양교회의 눈으로 읽고, 서양교회의 유산은 한국교회의 눈으로 해독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런 입장을 역사연구에 있어서 '통합적인 접근'(Integrative approach to History)이라고 말해 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면서도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헤아리고자 노력해 왔다. 이런 비교적 시각(Comparative perspective)은 이 집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 주었고, 흔히 신학적 보수주의자가 빠지기 쉬운 독선의 성(城)에서 다소나마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이상규,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 p.4).
대표작, "해방전후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한 마디로 하면, 그는 개혁신학에 기초하여 교회사 전반에 대한 교회론적 사관과 통합사적 접근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여 그의 역사해석과 서술에 독특한 공헌을 해 왔다. 그는 여전히 오늘 우리들에게는 서양교회의 전통에서 한국교회를 헤아리려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서양교회의 유산을 수용하는 창의적 자세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상규는 한국교회가 당면한 도전을 네 가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번째 도전은 이단 문제이다. 과거에는 이단들이 은밀하게 침투하고 은밀하게 활동하였는데, 현대에 와서는 공개적이고 공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두번째 도전은 이슬람의 활동 전개이다. 현재 국내의 무슬림 수가 21만여 명이지만, 2050년에 이르면 개신교 신자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세번째는 동성애 문제와 동성혼 문제이다. 정치계에서 이를 법제화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교회가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네번째 도전은 한국교회의 세속화 문제러서 한국교회가 각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며 가르쳐온 학자의 양심에서 우러난 한국교회를 향한 충정어린 충고라 여겨진다.
이상규 박사의 은퇴기념논문집에 이 박사를 격려하며 남긴 교계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자. 예장합신 총회장을 역임한 박병식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한 역사신학자"라고 했고, 고신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류윤옥 목사는 "은퇴 후가 더욱 더 기대되는 교수"로 평가했다. 또 선한사마리아인 가족 대표 손상률 목사는 이상규의 사람됨을 "종려나무 같이 백향목 같이" 라고 표현했으며, 또 고신측 총회장을 역임한 김상석 목사는 "좋은 스승" 같은 분이라고 했고, 고신대 석좌교수 손봉호 장로는 "신실한 개혁주의 역사학자"라고 평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을 소개하면 (1) 한국교회의 역사적 흐름(1991), (2) 교회개혁사(1997), (3) 교회의 역사(1999), (4) 부산지방 기독교전래사(2001), (5) 한상동과 그의 시대(2006), (6) 한국교회 역사와 신학(2007), (7) 부산지역 기독교회의 선구자들(2012), (8) 해방전후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2015), (9) 한국장로교사(198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