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 ‘기독교회사’저술하고 ‘한국복음주의신학회’창립
  • 일생을 교수와 목회에 헌신한 복음주의적 개혁주의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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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 출신... 군목 제대 후 미국 유학

은석 김의환(恩石 金義煥) 박사는 19331119일 전라남도 장흥군 대적읍에서 출생했다. 의환이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어머니와 함께 경남 진주로 이사하여 진주고등학교로 진학해 1951년 졸업하고, 1953년 고려신학대학 신학과에 입학하여 1957년에 졸업한 후 육군 군목으로?입대하여 2년 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제대 후 미국 커버넌트신학교(Covenant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했다가, 1960년에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레피즈에 있는 칼빈신학교(Calvin Seminary)를 졸업하였다.

그 후 1963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하고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고, 1966년에 미국 템플대학교(Temple university)에서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The Korean Church under Japanese Occupation with Special Reference Movement with Presbyterianism>이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미국개혁장로회(CRC) 필라델피아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OMF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일본 선교사로 가고자 하였으나, 당시 일본 정부가 한국인 선교사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아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1966년 귀국 후 그의 모교인 부산의 고려신학대학의 교수로 가게 되었는데, 정식 발령이 나기 전에 특강을 하는 중에 한 학생이 "전에는 고신측에서 승동측과 합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다시 환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목사님은 역사신학자로서 이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분열하는 것이 무슨 하나님의 뜻이냐"고 대답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고려신학대학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을 총신대학교의 명신홍 학장이 그를 초청하여 19673월부터 총신대학교 조교수로 가르치기 시작하여 부교수, 정교수로 봉직하다가 1976년 총신대학교를 사임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총신대 교수직 사임하고 미국서 교회개척

당시 그가 총신대학교를 사임한 배경은 안식년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 LA에 갔을 때, 총신대 이사회에서 외국에 가족이 있는 교수들은 3개월 안에 모두 한국으로 이주시키라는 결의가 있었는데, 이 요구에 응할 수 없었던 그는 교수직을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에서 나성한인교회를 개척하여 1995년까지 시무했으며, 그 기간 1982년부터는 미국에 국제신학교(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하여 1995년까지 학장을 역임하였고, 1985년에는 미국 개혁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초빙교수가 되기도 했다.

1995년 다시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부름 받아 1999년까지 총장직을 역임한 후, 1999년부터 2002년까지는 서울 성북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였고, 2002년에 한국 칼빈대학교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2007년까지 재직하였다. 그는 1967년 총신대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54년 간 교수로, 목회자로, 총장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교회와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지사충성을 다하다가, 20105월 주님의 부름을 받아 영면에 들어갔다.

 

개혁주의 신학을 복음주의와 접목시킨 칼빈주의자

은석 김의환 박사를 흔히 개혁주의 신학자요, 칼빈주의 학자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가 교회사학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은석은 1982년에 <기독교회사>(성광문화사)를 저술하고, <복음주의 신학과 한국교회>(2004), ,현대신학과 개혁주의 신앙>(2004) 등 여러 편의 교회사와 관련된 책을 썼다.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는 이인선 박사는 김의환 박사를 가리켜 복음주의적인 개혁신학자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은석이 개혁주의 신학을 복음주의와 접목시키고자 한 것을 일컬어 지적한 것이다.(한국교회를 빛낸 칼빈주의자들, 2020 p.895). 김의환 박사는 칼빈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의 기초 위에 교회사가(敎會史家)의 안목으로 자유주의 신학이나, 민중신학, 또는 WCC신학 등을 비판하였다. 진정한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따르면서 알미니안주의를 포함하여 개혁주의와 구분된다. 복음주의는 성경의 권위와 교회의 영적 갱신과 선교적 책임감을 일깨우는데 공헌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의 흐름을 정리한 김의환은 먼저 복음주의의 두 가지 과제로 건전한 정통신학의 보수와 발전, 즉 이단과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기독교 진리를 수호하는 책무를 감당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세계 선교전략을 수립하여 선교지도자들을 양성하여 오늘의 상황에 맞는 가장 효과적인 선교를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복음주의 운동의 결실로 ACTS 설립에 역할

김의환 박사는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에 미국 교계를 신복음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모습을 보았고, 거기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이들 신복음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복음주의의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을 한국교회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첫째로, 이러한 복음주의의 연합된 복음전파 활동에 영향을 받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를 설립하는데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다. 이는 한국에서 복음주의운동이 전개되어 결실을 맺은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ACTS19745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개교하였다.

둘째로, 김 박사는 미국에서 신복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했던 복음주의신학회(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를 국내에서도 설립코자 하였다. 한국교회가?1960년대에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의 대립 속에서 분열하면서 교단의 벽에 갇혀 있던 상황에서 김 박사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교류를 끌어내고자 하였다. 미국에서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의 폐쇄성과 현대주의의 탈교회화 현상을 동시에 비판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려는 목적에 동조하는 신학자들의 교류를 촉진하고자 하였다. 한국에서 이러한 시도를 제일 먼저 했던 사람이 바로 김의환이었다.

그는 귀국하여 미국에서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조직되었던 미국의 복음주의신학회를 본받아 한국복음주의신학회를 1971년에 조직히였다. 기록을 보면, "1971년도에 김의환 한철하 오병세 조종남 제씨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를 창설하고, 한국 내의 신학정립과 해외 학자들과의 신학운동을 다짐한다. 그후 10여년 간 잠시 침체기에 들어가 있었으나, 해외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젊은 학자들끼리 자주 만나 복음주의신학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됨에 따라 당시 회장직을 맡아 보고 있던 한철하 박사가 발전적 해체를 하고 재출발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의환 박사는 한국교회가 교단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건전한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복음주의신학회를 조직하고자 하였다. 김의환은 철저한 개혁주의자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의 신학논쟁 과정에서 가지게 되었던 소극주의적이고, 환원주의적이며, 생활과 분리된 신앙생활을 하는 반동적인 신학의 부정주의적인 정신 풍토를 극복하고자 했다.

김의환은 예장합동 교단의 경직된 교단적?분위기 속에서도 분명한 교회연합 활동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활동하며 기여했다. 교회연합 활동에서 자유주의자들의 조직과 연합을 우선시 하는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비판하면서 교회연합과 일치에서는 교리적인 순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교회의 사회참여도 복음주의적 시각 반영

김박사는 이러한 개혁주의적인 신학을 가지고 복음주의적인 선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는 김의환 자신이 일본에 선교사로 가고자 했을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교수 사역을 하면서도 선교활동에는 항상 적극적이었다. 그는 1990년대 이전부터 한국교회의 선교적인 사명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그의 교회사적이고 세계사적인 안목에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하여서도 개혁주의적이며 복음주의적인 시각에서 교회사적이며 선교사적인 면에서의 입장임을 엿볼 수 있게 노력하곤 한다. 그는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두 가지 유형을 언급한다.

첫째 유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따르는 탈세계적인 경건주의를 부르짖는다. 이러한 탈세상적 경건주의는 현실도피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기도원 운동과 일반은총을 무시하는 재세례파적인 부흥운동이 난무하게 된다는 것을 경계한다. 둘째 유형은 교회가 현실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유형이다. 한국교회는 일제하에서 민족주의 영향으로 정치참여의 반열에 직접참여하는 형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의식의 보유자는 될 수 있어도 민족주의자는 될 수 없다. 정교분리의 기본정신을 떠나 교회 이름으로 한 정권에 부질없이 관여하여 복음의 본질을 훼손시킨다고 경고한다.

그는 한국교회의 사회참여는 경건주의적이고 부정주의적인 반응과 정치 현실에 대한 직접 참여의 양극단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은 첫째 말씀의 봉사, 둘째 기도의 봉사, 셋째 구제의 봉사라는 교회 원래의 본질을 말한다. 또 그는 교회는 신앙적 문제에 저촉될 때만이 교회의 이름으로 정치영역에 직접 발언할 수 있다는 개혁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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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은석 김의환 박사(1933-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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