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 신종교개혁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에 관심
  • 포스트모던 사관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사관 제시

박정규 박사.jpg

 

강원도 영월 출생... 서울대 종교학과 거쳐 독일과 미국서 공부

이형기(李亨基)1938417,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그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종교학과에서 한국 종교학의 석학인 신사훈 박사 밑에서 어학과 종교학의 이론에 대한 기초훈련을 쌓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교역학 석사과정(M.Div)을 마치고, 독일 뮌스터대학 신학부를 거쳐 미국 하바드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석사(Th.M), 드류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Ph.D)를 마쳤다.

그는 미국 뉴욕 엠허스트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1978-1980)로 사역하다가 1980년 모교 장로회신학대학의 부름을 받고 교수로서 신학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대외적으로는 한국교회사학회장(1997-1998), 공적신학과교회연구소장(2008-2016)을 비롯?WCC 산하 여러 분과에 소속위원으로도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세계교회사>(1994), <에큐메니칼운동사>(1994), <역사 속의 교회>(1995), <기독교사상사>(공저 2002) 등이 있다.

그는 '나의 신학 수업의 여정'이란 글에서 "인간은 개인적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산다. 나는 한 아내의 남편과 두 자녀의 아비로서 가정공동체 안에서 살았고, 통합측 장로교단 안에서 목사로서 활동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장신신학공동체 안에서 23년 간(1980-2014) 신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다. 지나고 보면 이와 같은 공동체 안에서의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뜻?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2005년에 고관절 수술을 하였고, 2013년에 경추수술을 하였으나, 과학기술적 지식과 인문과학적 지혜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의 원천이기도 한 생명의 샘, 곧 하나님의 영께서 모든 제2차적 원인들을 통하여 부족한 사람을 큰 병으로부터 치유하여 주심에 아무리 크게 감사해도 부족하다"(에큐메니칼운동과 에큐메니즘, 2017 p.19)라고 진술한 바 있다.

 

1980년 이후 장신대서 은퇴할 때까지 교수 생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그에게 사사한 제자들이 20199월에 그의 팔순을 기리는 기념논문집 두 권을 만들어 스승에게 헌납하였다. 그 논문집 제2<공적신학과 교회갱신>에서 출판위원장 임희국은 출간에 즈음하여란 인사말에서 "이형기 선생님은 1980년 모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에 교회사 교수로 부임하였고, 이때부터 4반세기 동안 교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4반세기 선생님의 신학여정에는 그 이동의 폭이 넓었습니다. 부임 후 약 5년 동안에는 종교개혁자 루터를 비롯하여 그 시대의 서양교회사 및 신학사상을 가르치셨고, 그 다음 약 5년 동안에는 본 훼퍼와 칼 바르트를 중심으로 한 20세기 개혁교회 신학사상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주력하였고, 1990년대에는 세계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에 나타난 다양한?신학사상을 연구하셨고, 2001년부터 은퇴하시던 때까지는 몰트만의 신학과 포스트모던이즘에 대응하는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선생님의 제자들은 재학한 연도에 따라서 각자의 성향과 지향점에 맞추어 나름의 형형색색 신학사상을 배웠습니다"(공적신학과 교회갱신, 2017 p.7-8).

이형기 박사는 장신대학원 교수 생활을 은퇴한 후의 자신의 신학 활동 편력을 '그동안의 신학 활동을 회고하면서'란 글에서 자신의 신학 여정을 정리하고 있다. "나는 1980-2004년 동안 장신공동체 안에서 나 자신을 키우고 후배들을 키우는 일에 종사하였다. 그리고 은퇴하면서 '나의 신학 수업의 페러다임 이동'(2004)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핵심은 제1시기(1938-1968), 2시기(1980-1985), 3시기(1986-1990), 4시기(1991-2000), 5시기(2001-2016)로 신학연구 페러다임 변화를 정리하였다. 은퇴 후(2005-2012) 바른교회 아카데미 위원장으로? 한국교회 직제 개선을 위한 방안 연구(2011), 한국교회를 향한 경제 선언문(2012)을 공포하였고, 이에 덧붙여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소그룹 연구모임을 결성해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집중 연구하였다.

5시기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불트만 신학과 포스트모던이즘에 대응하는 신학으로?몰트만의 신학과 내러티브 신학에 대한 내용이었다. 몰트만 신학에서는 역사 속의 종말론은 전적으로 몰트만의 종말론으로부터 동기부여를 받고 기독교 신학 역사 속에 나타난 종말론을 평가해 본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 <하나님 나라와 공적신학> 그리고 <교회론의 페러다임 전환>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교회론으로부터 몰트만의 교회론으로, 역시 몰트만의 종말론적 신학에 입각한 글들이었다. 한 마디로 몰트만의 저서들의 신학에?대한 요약 정리였다.

내러티브 신학은 이레네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루터와 칼빈 그리고 칼 바르트와 한스프라이로 이어지는 내러티브 신학을 소개하였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경읽기>는 포스트모던이즘의 '거대 담론'에 대한 불신으로 성서의 거대 담론과 담론들이 위협을 받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한 신학적 대안이었다. 그리고 성서의 내러티브 신학과 교회의 공적책임에서는 한스프라이, 칼 바르트, 몰트만, 크리스라이트, 보캠과 하트, 그리고 스탠리 하우어와스의 내러티브 신학자들을 소개하고, 본문과 본문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와 같은 성경 이해가 공적신학 차원이 취약함을 밝히고, 생명공동체인 하나님의 나라와 이스라엘 및 교회에서 그와 같은 취약성을 크게 보완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관점에서 모던이즘 시기의 역사학자들의 역사관들과 포스트모던 시기의 포스트모던 사관들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 대안적 사관을 제시하였다.

에큐메니칼 신학 분야에서는 운동의 페러다임 전환은 그동안 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에큐메니즘의 역사가 10 차례의 총회를 겪으면서 어떠한 신학적인 페러다임을 보여 왔는가를 논구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신학>(2013)1990년대부터 2013년에 이르는 동안에 강연이나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들을 모음으로서 다양한 에큐메니칼 신학적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번역서인 <에큐메니칼 운동>은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서 그동안 축적된 에큐메니칼 운동과 에큐메니즘에 대한 매우 귀하고 꼭 필요한 자료들을 싣고 있다"(에큐메니칼 운동과 에큐메니즘, 2017 pp. 20-23).

 

포스트모던이즘에 대한 신학적 대안 모색

임희국 박사 은퇴 기념논문집(2020)'장신대 역사신학의 발자취'란 논문을 쓴 서원모 박사는 이형기의 역사신학을 '신학의 전환 신정통주의 신학'이란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형기는 자신의 신학사상의 변천을 서술하면서 1986년부터 1990년까지를 제3시기라 불렀다. 1시기가 유년기로부터 장신대 신대원과 대학원 졸업까지의 시기(1938-1968)라면, 2시기는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을 연구한 시기로 1980년부터 1985년에 해당한다. 1980년에 이형기가 <에라스무스와 루터에 있어서 인간론 비교>라는 논문으로 드류대학(Derew University)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시기로, 가을학기부터 장신대 강의를 시작했다. 하바드(Havard University) 신학부에서 공부할 때에도(1972-1974) 그는 종교개혁 분야를 공부하였으니 종교개혁 신학에 대한 관심은 뿌리가 깊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개혁 신학에 대한 관심은 <종교개혁 신학사상: 루터와 칼빈을 중심하여>(1984)<기독교 강요 요약>(1985)의 출판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런데 이형기는 1986년부터 자신의 신학이 "신종교개혁신학" 혹은 "신정통주의신학"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미국에서 귀국하여 종교개혁 신학과 세계교회사만을 강의하다보니 너무 신학의 시야가 비좁은 것으로 여겨졌고, 이종성 박사 등이 신정통주의를 소개하는 분위기도 함께 작용하여 당시에는 종교개혁 신학보다 신정통주의 신학서들이 더 큰 감명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오늘을 사는 교회에게 말하는 것으로 생생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1986년에 장로회신학대학 신학성명의 초안을 작성하였는데, 이 초안에서부터 신종교개혁 신학이 암시되었고, 대화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에 대해 눈을 띄게 되었다.

1985년 신학성명을 기초한 이형기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성명 안에는 신종교개혁 신학, 대화의 신학, 에큐메니칼 신학 등 신학의 새로운 방향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오늘의 사람들과 교회에게 말하는 신학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이루어졌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종교개혁신학에서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넘어가는 확실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칼 바르트의 신학을 개관한 서적들과 바르트의 신학입문서를 번역했고, 본 훼퍼의 교회와 사상을 연구했다. 특히 그는 바르트의 신학입문서를 번역하면서 바르트의 성경해석에 대한 자신의 논문을 첨부했는데, 이것이 그의 신학 제2기의 말씀 이해에서 바르트의 말씀 이해로 페러다임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교회사연구, 이제는 한국과 아시아로, 임희국 교수 은퇴 기념도서, 2020 pp.83-85).

이형기의 제4(1991-2000)에 해당하는 시기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나타난 신학으로 페러다임이 이동하는 시기를 말한다. 그는 이미 1990년에 세계교회협의회(WCC), 2차 바티칸공의회(1962-), 세계개혁교회연맹(WARC),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섭렵하여 바르트 신학에서 에큐메니칼 신학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같은 책, p.86).

이형기의 제5(200년 이후)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과 몰트만 신학과 내러티브 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의 이형기는 포스트모던이즘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면서 에큐메니칼 신학과 몰트만의 종말론적 복음., 내러티브 신학을 종합하였다. 포스트모던이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 시대의 문화적이고 사상적인 흐름을 읽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모던이즘에 대한 포스트모던이즘의 비판은 받아들이면서도 극단적인 해체론은 경계하면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합한 기독교 신학을 탐구했다.

그는 바르트, 몰트만, 에큐메니칼 신학이 스탠리 그랜츠가 포스트모던 신학의 요건으로 제시한 개인주의, 합리주의, 이원론, 주지주의를 넘어서는 복음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포스트모던이즘에 대한 신학적 대안으로 내러티브(narative) 신학에 주목하였다. 이 시기에 이형기 박사는 몰트만의 희망신학에 매료되어 있었고, 그는 몰트만 신학을 통해 복음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와 하나님 나라 모두가 그것보다 큰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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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이형기 박사(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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