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규 박사(서울교회사연구소장, 전 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교수)
‘구술사’ 및 ‘미시사’ 통해 지역교회사 발굴에 공헌
역사방법론에 기여한 사가… 여성 교역자들의 역할 중요시
경북 김천 출신, 불름하르트 연구로 바젤대학서 학위 받아
임희국(林熙國)은 1955년 1월 17일, 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삼락동은 일제 때 경부선 철도가 생기기 전에는 소위 양반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선비의 고장이요, 지역에서 가장 큰 유림촌(儒林村)으로 시가지 중심을 이룬 마을이었다. 일컬어 구읍(舊邑)으로 불리는 김천의 행정 교육 중심지였다.
임희국이 태어난 1955년은 6.25 전쟁이 3여년 만에 겨우 휴전으로 매듭 짓고 나라가 심히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러나 희국은 어릴 때부터 글을 읽고 쓰며 머리가 총명한 소년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초등학교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중고등학교는 당시로서는 대도시인 대구로 유학을 가 선교사들이 세운 계성(啓聖) 중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미션스쿨에서 학업과 신앙훈련을 받고, 계명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2월 24일?문학사(B.A)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이어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교역학 석사(M.Div) 과정을 마치고, 다시 대학원 석사(Th.M) 과정에 진학했다.
당시 상황을 임희국은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신학수업 3년으로 전임교역자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판단해서 공부를 좀 더 하기로 했다. 전공을 교회사 분야로 선택했다. 대학원 수업은 세미나식으로 진행되었다. 석사학위 논문을 이형기 교수의 지도로 초기 칼 바르트(K. Barth)의 성경해석에 관하여 서술했다. 그런데 논문 작성 과정에서 바르트 신학사상이 불름하르트(Blumhardt) 부자(父子)의 영향 아래 새로이 출발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것이 몇 년 뒤에 바젤에서 불름하르트(아들) 연구에 연계되었다."(교회사연구, 이제는 한국과 아시아로, p.29). 이 연구로 장신대 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학위를 받았다.
임희국은 1987년 9월, 로흐만 교수의 추천으로 스위스 바젤개혁교회 총회장학금을 받아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거쳐, 바젤대학교 신학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하여,이곳에서 로흐만 교수의 지도로 불름하르트 연구로 학위논문을 쓰게 되었다. 학위논문 내용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독일어권의 교회사와 신학사상사로 전공 정체성을 여기에 두고, 불름하르트의 설교를 신학화 한 학문성을 인정받아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영남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 강의하며 지역교회사 탐구
그의 논문은 지금까지의 불름하르트 연구를 한 걸음 넘어 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불름하르트의 우주적 이해(Universal Cosmic)를 밝힌 점이 특출하다는 평이었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 그 해에 경산에 있는 영남신학대학교에서 1995년 3월 학기부터 역사신학(교회사) 분야를 맡아 가르치기 시작해, 세계교회사와 함께 선택과목으로 영남지역교회사 과목을 병설했다. 이것이 그의 지역교회사 탐구의 디딤돌을 놓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를 중심해 경상도내 경산, 청도, 고령, 경주 등지의 역사있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초기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며, 학생들에게 과제를 주어 연구케 했다. 이어 안동지역의 유림문화권, 경주지역의 불교문화권, 고령지역의 가야문화권을 대상으로 지역 교역자들과도 협력하여 지방교회사 연구에 기초를 다졌다.
그런 가운데 안동지역 선교에 큰 영향을 끼친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 이원영(李源永) 목사에 관한 자료와 정보협력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당시 안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김기수 목사였고, 김 목사를 통해 그의 유족 중 대구 대봉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이정순 권사를 알게 되었다. 이원영 목사는 퇴계 이황 선생의 14세 후손으로 뼈속까지 유림사상이 가득한 인물이었으나 안동에 온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1919년 안동과 예안 3.1독립운동 시에 만세 시위를 주동하고 투옥되어 경성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중 성령을 받아 평생 향촌 안동에서 목사로 헌신하였다. 그는 지역사회와 교회가 존경하는 목사요, 독립운동가와 교육자, 그리고 선비의 삶을 산 실천가였다.
임희국에게 이원영 연구는 스위스 바젤에서 배운 기독교의 보편성과 특성, 곧 그리스도교의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주력한 것이었다. 이원영 연구를 통해 미시사(Micro-History) 연구에 천착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이것은 교회사 연구에서 거시적 연구 뒤에 가려져 있던 작은 규모의 역사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즉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거시사(Macro-History) 작업에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미시사 작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안동 유림 출신 이원영 목사 연구로 서북지역과 영남지역 간의 개신교 선교 비교
영남지역의 장로교회는 역사 속에서, 한편 평안도 서북지역과 연계되어 그 영향을 받았고, 또 다른 한편 영남의 유림전통을 선별적으로 계승하면서 발전하였다. 서북지역은 조선시대에 중앙정부로부터 홀대를 받았기에 정치권력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중국 대륙에 인접해 있으므로 무역에 종사하는 상인층을 중심으로 대륙의 문물이 소개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을 겪은 평양주민들은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명치유신으로 국력을 키운 덕택에 중국을 이겼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서양문물을 한국에 가져오는 개신교 선교사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비하여 경상도 북부지역에는 조선시대의 지배이념인 성리학(性理學) 전통이 뿌리깊게 자리 잡았으므로 서양종교와 문물이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게다가 외세를 배격하는 위정척사(衛政斥邪) 운동이 1880년 안동유림의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를 시작으로 전국에 확산되었다. 이처럼 영남지역은 여러가지 면에서 평안도 서북지역과는 다른 환경이었다. 그런데 안동 유생 가운데 몇몇은 그리스도교 신앙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관한 연구가 지금까지 드물었는데, 이원영 연구를 통해 상세히 그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임희국은 임옥 목사와 그의 부인 이연옥의 생애와 리더십 연구로 계속 이어갔다.
김수만 장로 전기 통해 '구술사'의 중요성 발견
다음으로는 교회사 연구 형태 가운데 하나인 구술사(Oral History) 연구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그 실례가 된 주인공은 김수만(1901-1971) 장로 전기 집필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 연구의 단초는 영남신학대학교 재직시 김석구 학생이 수집 제공한 자료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김수만은 1946년부터 세상을 떠난 1971년까지 25년간 안동지역의 남후면, 임하면, 길안면 내의 여러 동네를 찾아다니며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10여 개 마을에 교회를 개척 설립한 전도자이다. 그의 실화를 근거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교인들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그의 이름과 행적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확산되어 있는 사실을 수집 정리해 경상도 북부지역의 무명의 전도자 행적을 정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역사 속에 숨겨져 잠자고 있는 실체를 증인들로부터 캐낸 살아있는 전도자의 이야기요, 선교역사 연구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임희국은 이름하여 교회사 속의 구술사 연구라는 장으로 만든 것이다.
임희국의 관심사는 한국교회사의 면모를 파악하며 연구할 수록 연구분야가 점점 확대되어 갔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큰 밑거름으로 작용한 여성교역자들의 연구와 여성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사실의 인식으로 나간 것이다. 현역에서 은퇴해 물러나 있는 여교역자들의 삶과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구술사로 서술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다. 이 일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라 임희국은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는 세미나 참석자들을 '역사방법론' 과목의 실습의 일환으로 학생들을 도우미로 활용하였다.
연구대상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소재한 예장통합측의 여교역자 안식관에 기거하고 있는 은퇴교역자들이었다. 안식관에 거처하고 있는 11명의 왕년의 전도 사역자들에게 장신대 대학원생들을 1명씩 짝을 이루어 ①가족사항, (②학교 및 신학교, ③청소년 시절의 사회환경 및 겪은 역사적 사건, (④배우자 및 자녀, 사회경험, ⑤교역자로 사명 깨들은 계기, (⑥ 목회경력, ⑦내게 힘이 된 성경 및 찬송, ⑧다음세대에 전해주고 싶은 신앙유산 및 후배에게 남기고 싶은 말, ⑨사전에 이력서 작성 및 소장하고 있는 자료 수집 등을 정리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이들의 사역과 역사가 한국교회 부흥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파악하기도 하지만 귀중한 자료로 삼을 수 있겠기 때문이었다.
개교회사 및 지역 노회 역사연구로 확대
마지막으로, 임희국의 관심사는 마을 및 지역교회사 연구와 함께 개교회사 및 노회역사 연구로 관심의 폭과 연구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어 갔다. 구체적인 성과물로는 서울 동신교회 50년사, 소망교회 30년사, 평양노회 100년사, 강원노회 60년사 등을 집필하기에 이르렀고, 특이한 연구 프로젝트로는 제주지역 전통문화와 그리스도교 연구가 있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예장통합 역사위원회의 사업으로 장로교회 전수조사를 한 것은 큰 과제였고 보람된 일로 기억하고 싶다고 하였다. (같은 책, p.34-60 참조).
임희국 박사는 1995년 이래로 2019년까지 세계화 시대에 상응하는 지역교회사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가 진척되는 동안에 이 연구가 교회사 바깥 일반 역사학계에서도 담론으로 정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포스터모던 시대에 일반역사학에서 논의되는 새로운 연구방법을 살펴가면서 1995년 이래로 25년 간의 지역교회사 연구를 진척시켰다고 회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불름하르트가 증언한 하나님나라(Ph.D 학위논문), 선비목사 이원영(2013), 여성지도자 이연옥(2011), 김수만 장로 절면서 10개 교회 세움(2004), 베이도의 선교와 사상(2013), 성효 최거덕 목사(2010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