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의 당위성: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론을 통하여

  • 기자
  • 입력 2018.04.11 14:13
  • 글자크기설정

  • 교회는 ‘그의 몸’이고 ‘그의 충만’이다
7-1.jpg
 
본고는 지난해 5월 12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예장연이 개최한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라는 특별세미나에서 최희범 박사가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 소고”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의 일부를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 주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의 장애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본래 ‘하나의 교회’이며, 전우주적 교회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하나됨’을 경험하는 공동체이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에 이기적인 개교회주의가 팽배하고 보편교회의 지체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지키려면 이기적 교파주의와 개교회주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하나됨’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시초부터 햐나의 교회를 지향해 왔으나 근·현대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사회의 대립양상의 영향을 받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다. 만약 교회가 하나됨을 외면하고 사회에 희망을 던져주지 못한다면 이는 사회가 요구하며 하나님이 명하시는 시대적 소명을 거절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이를 매개로 하여 소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통한 또다른 분열을 자초했다. 그리고 이런 분열은 신학적 갈등과 교단 중심의 교회이기주의를 양산했고, 교회당파성과  교회폐쇄성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회연합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는 신학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보혁 갈등, 교파와 개교회 중심의 교회이기주의, 기득권을 담보로 한 당파성과 폐쇄성 등을 꼽을 수 있다.
교회가 과연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일을 힘써 지키라”(엡 4:3)는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적대시 하기까지 할 수 있는가? 이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대한 오해
가장 흔한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에 대한 오해는 연합과 일치를 무조건 모든 교회와 교파간의 차이를 없애고 ‘조직적으로 하나가 되는 운동’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혹자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을 혼합주의 혹은 신앙적 배교행위라고까지 규정한다. 그러나 다양성 속의 일치를 주장하는 오늘날의 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은 기구적 하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교파간 그리고 교단간의 대화와 이해의 폭을 넓히며 공통점을 찾아 함께할 수 있는 사업들을 추진하는 연합운동이지 교리와 장정, 정치제도의 통일을 수반하는 일치운동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2) 성경 해석 방법과 신학적 차이
한국교회의 성경해석 방법론의 차이를 언급할 때 거론되는 것이 기장과 예장의 분열 이유로 지목되는 성경비평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동안 전통적 비평학의 한계도 절실하게 노출된 상황에서, 이제는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경해석의 문제를 서로간의 대화 없이 상대를 과거의 잣대로 단정 짓는 과오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미, 친미, 반북, 친북 등 우리사회의 보수 진보 논쟁에 교회가 신학의 이름으로 개입하여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에 결정적인 방해요소가 되고 있다. 신학과 신앙이 삶과 분리될 수는 없지만 교회는 사회의 투쟁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3) 교회의 권력화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회가 영적 공동체요 사랑과 희생을 전제로 한 생명 공동체가 아닌, 세속적 힘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처럼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가 사람과 돈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권력화 되는 것을 피하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고 역사의식을 고취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은 철저하게 교회를 비세속화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4) 복음의 절대성과 교파·교단의 절대성 혼돈
개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지도자들은 소속 교인들에게 ‘자기 교회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그래서 다른 교회와의 차별성이 교회부흥의 전략으로 채택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복음의 절대성이 아닌, 자기 존재의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려는 유혹은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한국교회 일부에서 흔히 회자되는 ‘장자교단’이니, ‘민주화의 회신’이니 하는 자기 이미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각기 장단점이 있는 교파의 정치제도에 대해서도 절대화하는 것 역시 지양되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연합과 일치운동에는 장애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의 당위성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은 시대적 요청이 그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일치에 대한 성경적 요청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선언한다(엡 1:10). 그리고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라고 교회의 정체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규장하고 있다.
1)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표현이다.
교회는 ‘그(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일컬어진다. 이는 교회가 예수님의 인격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실체라는 의미이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인걱과 사역을 세상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선포하고 드러냄으로 표현하는 것이 교회라는 뜻이다. 세상은 오직 교회(성도)를 통해서만 예수님을 볼 수 있으며,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교회 안에서 세상을 향해 역사하신다. 이는 교회는 예수님의 외적인 표현으로서 그 분의 인격과 성품을 닮을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단순히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이 드러나도록 생각하고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2) 교회는 창조주-피조물 관계의 우주적 모델이다.
교회가 ‘그의 몸’이라는 표현은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표현한다.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몸’이다. 이는 교회가 자기의 주인과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깨닫고 인식하며, 고백하며, 진심으로 따르는 공동체임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입으로만 ‘주’(主)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인생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통제와 지배를 받는 존재임을 기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3) 교회는 피조세계 재창조의 선취 모델이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 곧 죄로 타락한 피조세계를 회복과 재창조 하시는 주님의 충만이다. 이는 만물을 창조질서에 합당하도록 회복하시는 예수님의 역사가 먼저 교회 안에서 성취된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과 주권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선포되어 장차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교회 안에서 먼저 이루어짐을 뜻한다.
상처와 절망으로 무너진 심령들이 치유되고, 파괴된 관계가 회복되고, 이기심과 증오 그리고 편견으로 얼룩진 가치관이 사랑과 섬김의 가치관으로 바뀐다. 궁극적으로 죄인과 하나님의 관계가 원수에서 가족으로 본질적·실제적으로 변화된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전우주적으로 이뤄질 이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먼저 선취된다. 이것이 ‘교회는 그의 충만’이라는 표현의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는 위기라고 한다. 그리고 위기는 기회이기도하다. 한국교회는 이대로는 안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고쳐야 한다. 갱신(Renewal)만으로는 안된다. 개혁(Reform)이래야 한다.
무시무시한 권력에 목숨을 걸고 마주했던 그 사람, 오늘날 한국 교회의 마틴루터는 누구일까? 지금 우리가 바로 그 사람이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의 당위성: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론을 통하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