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문서선교, 기독교문화의 첨병

  • 기자
  • 입력 2018.10.26 11:30
  • 글자크기설정

  • 개교회 성장과 함께 문서선교 함께 가야
14-7.jpg
 
                                             김지원
  

권서인이 있었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천로역정이나 쪽복음이나 전도용 책자를 팔러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든지 무거운 책자를 머리에 이고 다니던 거룩한 발걸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1885 년 4월 언더우드 선교사가 입국하였는데 그는 입국하여 월보 ‘교회’를 발행하였고, ‘성교촬리’를 만들어 문서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3년 후 연동교회 초대목사로 부임한 캐나다 선교사 게일은 ‘천로역정’을 번역하여 보급하므로 문서선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 뿐 아니라 “춘향전” “구운몽” 등도 번역하여 한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의 문서선교 사역은 그가 1888년 제물포에 도착하여 1927년 이 땅을 떠날 때까지 4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땅은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성장했고 결실을 맺어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그 단초가 되었던 문서선교는 거의 실종상태에 있다. 무엇 때문인가? 너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인가. 아니면 직설적인 노방전도에만 매달린 때문인가. 한해 직접 선교비로는 과히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출하고 있으면서도 문서선교에 대해서는 몰이해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개교회의 성장에만 관심이 있을 뿐, 문서선교의 중요성은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보고 배운 대로 하지 않으며 받은 대로 전하지 않는 것일까. 문서선교는 기독교문화의 첨병이다. 구태여 다윗은 시인이었고 사도 바울은 위대한 문장가였단 사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요, 우리에게 주신 사명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문서선교! 무엇이 문제인가?
우 리는 지금 기독교는 있는데 기독교문화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몸은 비대하게 커졌는데 머리가 없는 격이다. 따라서 기독교문화가 없는 곳에서 사단의 문화가 춤을 추고 있다. 기독교문화의 방은 비어있고 깨끗이 소제되었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활개를 치고 마약과 음란이 기승을 부리고 퇴폐와 향락산업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방의 문화가 물밀듯 밀려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 대책이 없다. 대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과 인색함과 몰이해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교회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활기를 잃고 있다. 분명히 아프긴 한데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분명히 잃어버렸지만 무엇을 분실했는지 알지 못하는 한국교회! 이제 함께 기도해야 할 때다.
잡초는 기르지 않아도 자라지만 문화는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 우리 모두 이 선한 일에 관심을 갖자. 물을 주고 가꾸자.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할렐루야!
(시인, 전 한국크리스천문학가협회장)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문서선교, 기독교문화의 첨병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