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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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몇 년 전에 크로아티아를 방문하였다. 로마의 유적이 잘 보존된 그곳은 기독교의 역사를 다소간 간직한 곳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장소가 전쟁의 포화 속에 잠겨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쟁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추스려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모드리치가 있다. 그는 2018년도에 축구 선수에게 주는 가장 영광스러운 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루카 모드리치는 1985년 9월 9일 출생해 당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부였던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다르에서 멀지 않은 마을인 자톤 오브로바츠키 인근의 소규모 촌락 모드리츠이의 오두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항공정비사 스티페 모드리치와 직물 노동자 라도이카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유년 시절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시기와 겹쳤다. 1991년, 전쟁이 고조되자 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났다. 그의 부친은 크로아티아 육군으로 입대했다. 모드리치의 조부 루카와 6명의 어르신 민간인들이 1991년 12월,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 반군에게 예세니스 마을에서 처형당했다.
모드리치의 가족은 피난길에 올라 콜로바레 호텔에서 7년을 머물다가 자다르의 이즈 호텔로 이동했다. 수천 개의 수류탄이 도시를 강타하는 당시 축구는 현실 도피의 유일한 수단 이었다. 루카 모드리치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당시 다른 많은 아이들을 친구로 사귀고 그의 부모님이 유년 시절에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신경써서 전쟁을 느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드리치는 축구를 시작해, 주로 호텔 주차장에서 공을 찼다.
1992년, 그는 초등학교와 체육 아카데미에 동시에 입학했고, 후자의 경우 가족이 가진 것이 조금밖에 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입학금을 지원했고, 간혹 삼촌이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의 가족의 지지로, 그는 대표단 훈련에 참가해 자다르에 입단했다.
그는 도마고이 바시치 감독과 토미슬라프 바시치 유소년 아카데미 수장의 지도를 받았다. 토미슬라프 바시치는 모드리치가 “운동계에서 아버지처럼 지내는 인물”로, 모드리치 부친의 형편이 어려웠기에 그에게 목재 정강이 보호대를 만들어 주었다고 말했지만, 모드리치 본인은 이 과거담을 부인하고 있다. 너무 어리고 “체중 미달”이라 판단되었기에, 그는 달마티아 지역의 최고 명문인 스플리트의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계약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유소년 대회를 비롯해[12] 재능을 몇 차례 선보인 후, 토미슬라프 바시치는 16세가 된 2001년 말에 모드리치가 디나모 자그레브에 입단하도록 도왔다.
디나모 자그레브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한 시즌 지낸 후, 모드리치는 2003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리그의 즈린스키 모스타르로 임대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다재다능한 경기 방식을 이용해 불과 18세의 나이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모드리치는 이후 “보스니아 리그에서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지 뛸 수 있다.” 라고 자신의 신체 조건을 짚어 말했다. 이듬해, 그는 크로아티아의 인테르 자프레시치로 임대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한 시즌을 보냈고, 소속 구단이 크로아티아 1부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모드리치는 스페인 축구 리그인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을 책임지며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조국 크로아티아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모드리치는 이미 UEFA 올해의 선수상 등 각종 트로피를 휩쓸며 발롱도르 ‘메날두 시대’의 종식을 예견했다.
모드리치는 4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18년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발롱도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 이외의 선수가 이 상을 받은 건 2007년 카카(브라질) 이후 11년 만이다. 모드리치는 수상자로 호명된 뒤 “발롱도르를 수상한 위대한 선수들 사이에 포함됐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최고의 순간은 절대 쉽게 오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이야기하고 싶다”라며 “이 상을 받기까지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오늘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어 빛이 되는 축구선수인 모드리치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이는 고난 속에서도 활짝 피워서 사막을 진동하는 백합화 같은 소식일 수 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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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포화 속에서 피어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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