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적 종교적 다원주의 국가에서 교회가 사회정의와
연관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우리는 근현대사회에서 종교의 ‘탈사사화’(de-privatization)를 목격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종교의 사사화 때문에 서양문화에서의 종교의 불가피한 세속화를 연구하는 종교사회학자들 사이에서 관습적 지혜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어느 저명한 사회학자는 “종교의 진화론적 미래는 멸종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더하여 기독교 우파와 그 뒤를 잇는 문화전쟁의 부활은 더 크고 복잡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교회, 국가, 공적 정의에 관한 현대의 논의에 더욱 큰 도전을 가져다주었다.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어떤 이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민주적·종교적 다원주의 국가에서 교회가 사회정의와 연관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자면 그리스도인과 교단은 의회에 로비활동을 해야만 하고 다른 특별 이익집단이 중앙과 지방정부에 그들의 대표기관을 두고 있는 것처럼, 교회의 대표자로서 가능할 수 있는 초교파적 기구를 만들고 명백하게 기독교적 신념에 의해 이끌리는 정치인만을 뽑아야 하는가? 더욱 좁게 말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특별히 기독교 가치에 근거해서 공공 정책의 기반을 놓는 것이 적절 한가 질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만약 근본주의 신앙인이 줄기세포 연구를 제한하는 근거로 성경을 제시한다면, 비그리스도인도 공공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기초를 찾아야만 하는가? 복음주의자는 자선기관을 선택하는 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유력한 증거를 모르몬경에서 증거 본문을 찾거나, 근본주의 그리스도인이 스쿨 바우처(school voucher; 학부모는 자녀가 취학할 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학교를 평가, 선택하고, 선택한 학교에 지불 보증 증서 ‘바우처’를 제출하면, 학교는 바우처를 수합하여 이를 교육 행정당국에 제출하고 공교육비를 배분받는다)를 지원하기 위한 적법한 근거를 수니파 무슬림이 사용하는 코란의 기도문에서 찾아야 하는가?
노이하우스는 1984년 미국의 공적생활이 종교에 적대적이었다고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공공의 결정들은 반드시 공공에 적합한 논의에 의해 만들어져야만 한다. ‥ 대중의 이성으로 조사할 수 없는 믿음에서 파생된 근본주의적인 도덕률은 본래 사적인 도덕이다.”
서구교회의 관계 모델
문화전쟁이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는 바, 종교를 공적생활의 주변부로 몰기 위한 노력, 즉 카사노바가 소위 “무능화시키기 위한 ‘언론 통제 명령’”으로 불렀던 법의 시행은 실패했지만, 공적종교의 가능성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오늘날은 이 문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다양한 의견이 산재해 있다. 에모리대학교의 법학과 교수인 마이클 페리(Michael J. Perry)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범위를 이해하기 위해 유용한 유형분류체계를 제공한다. 페리에 따르면 공적생활에서 종교의 역할에 관한 질문이 생길 때, 사람들은 ‘불가지론자’ ‘배타주의자’ ‘포괄주의자’로 나뉜다.
페리의 유형 분류 체계에서 불가지론자는 “정치와 관련한 종교의 적절한 역할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다”, 신의 존재를 믿거나 믿지 않을 수 있고, 정치의 영역에서 종교의 알맞은 역할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 있다. 반대로 배타주의자와 포괄주의자는 종교의 적절한 역할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배타주의자는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종교적 믿음은 국가의 공적 영역으로부터 가능한 한 배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포괄주의자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 각각의 범주에서 발견될 수 있다. 불가지론자는 공적 종교와 관련된 안건들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이어지는 분석은 배타주의자와 포괄주의자에 한해서 이뤄질 것이다.
1. 불가지론자
불가지론자들은 정치와 종교의 관련성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니 ‘알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며, 정치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2. 배타주의자
포스트모던 철학자인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종교가 사사화 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와 상관없는 단체와 정치적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종교에 관한 발언은 대화를 중단시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베타주의자의 관점에 따르면, 예를 들어 본인의 기독교적 헌신 때문에 낙태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서양인은 “포르노물을 읽는 것이 요즘 자신의 삶에서 유일한 낙이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로타는 두 사람 모두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동일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한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자칭 무신론자였던 존 롤스(John Rawls)는 종교적 믿음이 다원주의 문화에 심각한 분열을 초래하고 사회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정부는 오직 “공적 이성”에 기초한 가치 판단만을 해야만 한다.
롤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적 이성의 이상(the ideal of public reason)에 대한 핵심은 다음과 같다. 곧 시민 각자는 자신들이 정치적 정의관(political of Justice)으로 간주한 틀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이 정의는 다른 사람들이 승인할 것을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이해한 개념을 보호하기 위해 각자가 옳다고 믿는 신념 안에서 준비되는 가치들에 기초한다.” 종교는 개인의 가치 판단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공적 이성”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기독교 철학자인 로버트 아우디(Robert Audi)는 공공 정책에 대한 판단에 능숙한 종교적 이성이 미국의 공적 영역 안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는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신앙에 근거한 이유로 동기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공정책에 직면했을 때, 신앙인은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적어도 몇 가지 설득력 있는 분명한 세속적 이유”를 가져야 한다.
아우디는 그리스도인이 시민들과 토론할 경우에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나타낼 권리가 없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과 공공정책에 관한 사안을 마주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속적 용어를 통해 합리적 이유 또는 근거의 틀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정책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앙인은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이나 공공정책을 주장하거나 지지하지 말아야 할 명백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만일 그가 이러한 법이나 정책에 대한 세속적 근거를 가지고 있거나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2. 포괄주의자
배타주의자는 신앙인들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종교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포괄주의자들은 그것이 철학적으로 부당하며 궁극적으로 비민주주의적인 침묵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카고 대학교의 정치철학 교수인 진 엘쉬타인(Jean Bethke Elshtain)은 한 사람이 종교를 갖는다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앙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경건한(독실한) 신자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일대학교 법학과 교수인 스티븐 카터(Stephen Carter)도 그의 저서 ‘불신의 문화’에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모두를 환영하는 공공의 광장을 상하기보다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대회의 규칙을 정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대화의 규칙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종교적 전통에 의해 형성된 도덕적 양심을 파괴하고 새로운 도덕적 양심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양심은 본래 그의 신앙적 전통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그에게 핵심적인 면이다. 즉 그는 다른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대화에 참여할 권리를 얻기 위해 자신이 인간으로서 가진 가장 중요한 면을 파괴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카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독실한 신앙인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이 수용하는 대화의 형식을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주의자들이 공공의 구성원이 제공하는 어떠한 형태의 대화 형식이라도 그 형식을 수락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인식론적 다양성은 다른 다양성처럼 소중히 다루어져야 하고, 무시되지 말아야 하며, 그리고 명백히 폐지되어서도 안 된다.”
교회와 정치권력의 역학 관계는 초대 교회부터 기독교 역사와 함께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관계를 몇 가지 모델로 구분할 수 있다.
사회학자인 조제 카사노바(Casanova)는 1980년대에 “종교의 숨겨진 이면을 보여주지 않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찾지 못했다”고 논평한다. “우리는 근현대사회에서 종교의 ‘탈사사화’(de-privatization)를 목격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종교의 사사화 때문에 서양문화에서의 종교의 불가피한 세속화를 연구하는 종교사회학자들 사이에서 관습적 지혜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어느 저명한 사회학자는 “종교의 진화론적 미래는 멸종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더하여 기독교 우파와 그 뒤를 잇는 문화전쟁의 부활은 더 크고 복잡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교회, 국가, 공적 정의에 관한 현대의 논의에 더욱 큰 도전을 가져다주었다.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어떤 이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민주적·종교적 다원주의 국가에서 교회가 사회정의와 연관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바꿔 말하자면 그리스도인과 교단은 의회에 로비활동을 해야만 하고 다른 특별 이익집단이 중앙과 지방정부에 그들의 대표기관을 두고 있는 것처럼, 교회의 대표자로서 가능할 수 있는 초교파적 기구를 만들고 명백하게 기독교적 신념에 의해 이끌리는 정치인만을 뽑아야 하는가? 더욱 좁게 말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특별히 기독교 가치에 근거해서 공공 정책의 기반을 놓는 것이 적절 한가 질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만약 근본주의 신앙인이 줄기세포 연구를 제한하는 근거로 성경을 제시한다면, 비그리스도인도 공공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기초를 찾아야만 하는가? 복음주의자는 자선기관을 선택하는 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유력한 증거를 모르몬경에서 증거 본문을 찾거나, 근본주의 그리스도인이 스쿨 바우처(school voucher; 학부모는 자녀가 취학할 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학교를 평가, 선택하고, 선택한 학교에 지불 보증 증서 ‘바우처’를 제출하면, 학교는 바우처를 수합하여 이를 교육 행정당국에 제출하고 공교육비를 배분받는다)를 지원하기 위한 적법한 근거를 수니파 무슬림이 사용하는 코란의 기도문에서 찾아야 하는가?
노이하우스는 1984년 미국의 공적생활이 종교에 적대적이었다고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공공의 결정들은 반드시 공공에 적합한 논의에 의해 만들어져야만 한다. ‥ 대중의 이성으로 조사할 수 없는 믿음에서 파생된 근본주의적인 도덕률은 본래 사적인 도덕이다.”
서구교회의 관계 모델
문화전쟁이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는 바, 종교를 공적생활의 주변부로 몰기 위한 노력, 즉 카사노바가 소위 “무능화시키기 위한 ‘언론 통제 명령’”으로 불렀던 법의 시행은 실패했지만, 공적종교의 가능성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오늘날은 이 문제에 대해 주목할 만한 다양한 의견이 산재해 있다. 에모리대학교의 법학과 교수인 마이클 페리(Michael J. Perry)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범위를 이해하기 위해 유용한 유형분류체계를 제공한다. 페리에 따르면 공적생활에서 종교의 역할에 관한 질문이 생길 때, 사람들은 ‘불가지론자’ ‘배타주의자’ ‘포괄주의자’로 나뉜다.
페리의 유형 분류 체계에서 불가지론자는 “정치와 관련한 종교의 적절한 역할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다”, 신의 존재를 믿거나 믿지 않을 수 있고, 정치의 영역에서 종교의 알맞은 역할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 있다. 반대로 배타주의자와 포괄주의자는 종교의 적절한 역할에 대해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배타주의자는 그 이름이 말해 주듯이 종교적 믿음은 국가의 공적 영역으로부터 가능한 한 배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포괄주의자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 각각의 범주에서 발견될 수 있다. 불가지론자는 공적 종교와 관련된 안건들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이어지는 분석은 배타주의자와 포괄주의자에 한해서 이뤄질 것이다.
1. 불가지론자
불가지론자들은 정치와 종교의 관련성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니 ‘알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신의 존재에 대해서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며, 정치 영역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2. 배타주의자
포스트모던 철학자인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종교가 사사화 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와 상관없는 단체와 정치적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종교에 관한 발언은 대화를 중단시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베타주의자의 관점에 따르면, 예를 들어 본인의 기독교적 헌신 때문에 낙태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서양인은 “포르노물을 읽는 것이 요즘 자신의 삶에서 유일한 낙이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로타는 두 사람 모두 공적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동일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한다.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자칭 무신론자였던 존 롤스(John Rawls)는 종교적 믿음이 다원주의 문화에 심각한 분열을 초래하고 사회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정부는 오직 “공적 이성”에 기초한 가치 판단만을 해야만 한다.
롤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적 이성의 이상(the ideal of public reason)에 대한 핵심은 다음과 같다. 곧 시민 각자는 자신들이 정치적 정의관(political of Justice)으로 간주한 틀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이 정의는 다른 사람들이 승인할 것을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이해한 개념을 보호하기 위해 각자가 옳다고 믿는 신념 안에서 준비되는 가치들에 기초한다.” 종교는 개인의 가치 판단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공적 이성”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기독교 철학자인 로버트 아우디(Robert Audi)는 공공 정책에 대한 판단에 능숙한 종교적 이성이 미국의 공적 영역 안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는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신앙에 근거한 이유로 동기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공정책에 직면했을 때, 신앙인은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적어도 몇 가지 설득력 있는 분명한 세속적 이유”를 가져야 한다.
아우디는 그리스도인이 시민들과 토론할 경우에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나타낼 권리가 없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과 공공정책에 관한 사안을 마주했을 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속적 용어를 통해 합리적 이유 또는 근거의 틀을 마련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정책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앙인은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이나 공공정책을 주장하거나 지지하지 말아야 할 명백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만일 그가 이러한 법이나 정책에 대한 세속적 근거를 가지고 있거나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2. 포괄주의자
배타주의자는 신앙인들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종교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포괄주의자들은 그것이 철학적으로 부당하며 궁극적으로 비민주주의적인 침묵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카고 대학교의 정치철학 교수인 진 엘쉬타인(Jean Bethke Elshtain)은 한 사람이 종교를 갖는다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앙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경건한(독실한) 신자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일대학교 법학과 교수인 스티븐 카터(Stephen Carter)도 그의 저서 ‘불신의 문화’에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모두를 환영하는 공공의 광장을 상하기보다 자유주의 철학자들은 대회의 규칙을 정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대화의 규칙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종교적 전통에 의해 형성된 도덕적 양심을 파괴하고 새로운 도덕적 양심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양심은 본래 그의 신앙적 전통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그에게 핵심적인 면이다. 즉 그는 다른 시민들과 함께 나누는 대화에 참여할 권리를 얻기 위해 자신이 인간으로서 가진 가장 중요한 면을 파괴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카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독실한 신앙인의 경우 자유주의자들이 수용하는 대화의 형식을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주의자들이 공공의 구성원이 제공하는 어떠한 형태의 대화 형식이라도 그 형식을 수락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인식론적 다양성은 다른 다양성처럼 소중히 다루어져야 하고, 무시되지 말아야 하며, 그리고 명백히 폐지되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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