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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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프로이드가 여러 차례 로마를 방문한 것은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모세 상>이 로마의 성 베드로 빈콜리 성당(San Pietro in Vincoli)’에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895<히스테리의 연구>를 발표했던 프로이드는 1900<꿈의 판단>을 발표하게 되기까지 학문적으로 큰 고비에 처해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도 관계되는 일이었다. 로마에서 만난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은 프로이드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내다보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프로이드는 말했다. “도대체 몇 차례나 이 성당을 찾아왔던가... 나는 모세가 모욕을 느끼며 노여워하고 있는 저 눈초리를 온 몸으로 느껴보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왜 이 조각상이 수수께끼에 싸여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모세의 영혼상태에 대해서, 또 모세의 자세가 보여주고 있는, 얼른 보기로는 평온해 보이는 고요와, 그지없이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는 내면의 대립에 대해서, 더 깊이 파고든다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성 베드로 빈콜리 성당이라는 이름만 해도 그렇다. ’빈콜리란 사슬이란 뜻으로 베드로가 예루살렘 감옥에서 매여 있었던 사슬과 로마의 감옥에서 매여 있던 사슬이 하나로 연결되어 제단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리고 이 교회는 미켈란젤로와 특별한 관계였던, 그러니까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수많은 걸작을 남겨 놓을 수 있게 했던 교황 율리우스 2세 묘역의 일부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의례히 <출애굽기> 3429-30절을 떠올리게 마련. "모세가 손에 두 증거 판을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다. 그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으므로 얼굴에서 그렇게 빛이 났으나 모세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 기록을 근거로,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있는 사이,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 판을 들고 산을 내려온 모세 앞에서, 황금으로 만든 우상을 둘러싸고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래서 진노하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권위의 상징인 수염을 휘날리는 격노한 모세가 손에 들고 있는 율법 판을 막 내던지려 하는 모습을 다듬은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고민 끝에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프로이드는 말했다. “<모세 상>은 모세가 뛰어내리거나 손에 들고 있는 율법 판을 내던지려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노여움에의 전주곡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가버린 한 동작의 흔적이다.”

 

미켈란젤로가 모세의 머리에 이 아니라 을 새겨놓은데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들이 있어왔다. 성서에 기록된 히브리어로는 이지만, 자칫 로 새길 수도 있는 여지가 없지 않는 터라, 많은 사람들이 뿔로 오해하고 있었고, 미켈란젤로도 그 해석을 따랐다는 설명이다.

 

다른 설명도 있다. 11세기 언저리, 유대인의 사회적 지위가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면서, 유대인을 악마와 연결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는데, 모세의 머리에 뿔이 새겨진 것은 악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층도 생겨났다는 설명.

그러나 프로이드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를 받은 예언자이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앞세워 민중들 위에 군림하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 밑에서 민중들과 동일하게 자신을 다스림으로써 자기중심적인 욕구를 억제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니까 프로이드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을 세심히 관찰했고, 그 결과 분노를 터뜨리는 모세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세라는 영웅의 참모습이었다는 것.

 

미켈란젤로는 <모세 상>을 조각할 대리석 앞에 섰을 때, 이미 그 돌덩어리 가 지니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은 다만 모세를 돌덩어리로 부터 풀어놓기 위해서 연장을 잡았다고 하지 않는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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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칼럼] 모세, 미켈란젤로, 프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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