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국독연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 기자
  • 입력 2022.09.01 20:52
  • 글자크기설정

  • 강성률 목사 (신촌예배당)

강성률 목사.jpg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7).

 

식탁에 오르는 풍성한 음식을 볼 때마다 농부들의 땀방울도 물론 고맙지만, 무엇보다 이 나라를 풍요롭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해주시지 않으면 자랄 수도 없고 열매도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가까운 북한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탈북인 김북한(김성근) 목사에 의하면 김일성은 6.25 이후 교회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인간의 힘만으로도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공산주의 사상이었고 사회주의 이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김일성의 이 계획은 성공적으로 보였습니다. 6.25 이후 많은 기독교인들이 남한으로 내려갔거나 지하로 흩어졌기 때문에 북한에는 교회가 흔적도 없었습니다.

 

70년대 전까지 김일성은 평범한 수령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70년대 부터 김일성은 절대화 작업에 의하여 초법적인 존재가 되더니, 80년대는 그에 대하여 우상화 작업을 하여 김일성이 국민을 위하여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김일성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사상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가는 곳마다 김일성의 동상을 세우고 김일성을 칭송했습니다. 이때 김일성의 지위는 국가 위였습니다.

 

90년대 초에는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신격화시켰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경배체제를 김일성 경배체제로 끼어 맞췄고, 믿음이 강요되었으며, 우리의 주일과 같이 한 주에 한 번은 김일성에게 충성을 헌신하는 날로 정하였고, 십계명을 김일성 십대 원칙으로 바꿔 놓았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하나님 자리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법 위에 군림하던 70년대부터 북한에는 흉년이 시작되어 전년 대비 3% 수확이 떨어지더니 다음 해에는 5%씩 계속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수확을 개선하기 위하여 소위 김일성주체농법을 개발하였지만 소출은 전년 대비 떨어지기만 했지 오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산에 있는 낙엽을 모두 긁어 모와 부엽토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1인당 1톤씩의 인분을 내게 하여 거름을 만들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전 국토를 1미터 깊이로 파서 토질을 바꿔보았지만 오히려 소출은 마이너스였다고 합니다.

 

그 기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상대가 비를 동반한 태풍을 예고하면, 그들은 홍수 피해를 덜기 위하여 댐들의 물을 미리 방출하도록 하였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예상했던 태풍의 경로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어 가뭄 현상만 수십 년 거듭되었다고 합니다. 혹 태풍의 이러한 특성을 알고, 태풍예고에도 댐 수문을 열지 않으면 태풍은 그대로 북진하여 거대한 홍수피해를 가져와 김대중 정부 때 남한에서 지원해준 비료와, 그들이 토질을 바꾸기 위하여 1미터 깊이로 파 놓았던 흙마저 모두 씻겨 가 더 깊은 흉년으로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심었고, 열심히 물을 주었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지 않으니 자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김북한 목사가 북한에 살 때는 몰랐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지내보니 하나님께서 꼭 그래 김일성이 하나님이라고 하니 김일성이 너희 곡식을 주나 보라.” 하는 음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니 자라는 것입니다. 곡식도, 우리의 영적인 성장도 하나님이 자라게 하셔야 자라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심었다고 해서 마음을 높일 것이 아니요, 물을 주었다고 해서 마음을 높일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북한 주민 수백만이 굶어 죽고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는 것은 김일성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유일하신 주님으로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우리 마음에 우상이 없는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엘리제사장은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중히 여겨(삼상2:29) 그와 아들들이 한 날에 죽었고(삼상4:11,18),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서는 다윗을 섬겼던 아비아달 제사장(엘리의 자손)마저 고향으로 쫓겨나 가문 전체가 제사장직에서 파면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체면과 명예영광심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겨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을 뿐 아니라(삼상31:2), 사울왕조에서 다윗왕조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도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게임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 술을 사랑하는 사람 이 모두 자신의 환경을 황폐케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처럼, 북한처럼 우리의 삶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유일한 주님으로 모시고 매사에 주님께 여쭙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국독연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