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 임영천 목사(조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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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중에는 화공(火攻)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때로는 수공(水攻)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사자성어 속에는 화공 관련 책임론이 내재되어 있다. 촉나라의 마속 장군이 제갈량의 분부를 무시하고 자행자지함으로써 적(위병)의 화공을 받아 패전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참수형을 받은 비극이 그 말 속에는 들어 있다. 불이 난 뒤엔 남는 것이라도 있지만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터도 없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마속(馬謖)의 비극에서 보듯이 화공도 무섭기는 하지만, 다른 사례에서 볼 때 수공은 더 무서운 데가 있다고 표현해 볼 수도 있겠다.

 

<초한지>에는 유방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가 서로 싸우는 중에 전자를 대표하는 한신 장군과 후자의 항장(降將; 투항 장군) 장한 사이에 벌어진 폐구성 전투에서 한신이 펼친 수공전(水攻戰)으로 인해 장한의 폐구성 수비군이 전멸하는 장면이 나온다. 파괴된 잔도가 복구되지 않는 한 한나라 군대가 쉽게 자기의 폐구성을 공격해 올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장한 장군은, 그만큼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서도, 갑자기 들이닥친 한나라 병사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모든 게 사면초가라고 판단되자 장한 장군은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어 버렸다.

 

<삼국지>에는 수공전의 실상이 더러 나타난다. 위나라의 조조가 하비성에서 농성하고 있는 여포를 잡기 위해 수공전을 펼친 것이 주효해 마침내 여포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또 조조가 원소의 본거지 기주성을 포위해 수공 작전을 편 결과 끝내 그 성을 함락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평소 조조에 대하여 다소 불안감을 지닌 <삼국지> 독자들에게 조조의 수공 성공 사례들이 그렇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볼 때 다음(관우)의 수공전이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다.

 

관운장에게 밀린 번성의 조인(조조의 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조조가 우금과 방덕 두 장수를 파견하였다. 노련한 우금을 대장으로 삼고 젊은 방덕을 선봉장으로 삼아 대대적인 군대를 동원해 번성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런데 선봉장 방덕이 관운장과 맞붙어 싸울 때, 첫 날은 100여 합을 겨루고도 결판이 나지 않아 관운장을 놀라게 했는데, 둘째 날 50여 합을 겨루고도 결판이 나지 않은 채 돌연 방덕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따라오는 관운장을 향해 방덕이 갑자기 화살을 쏘아 관우의 왼쪽 팔을 관통시켰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우금이 방덕을 불러들이고 나서, 관우와 방덕 간의 직접적인 병기 대결은 이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금·방덕의 군사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번성의 뒤쪽으로 주둔지를 옮기고 나자 관운장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해졌다. 그는 수하들에게 곧 우금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수공전을 펼치겠다는 의미였다. 그때 연일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주변 양강의 물이 불어나고 있었으며, 우금의 병사들은 좁은 증구천 골짜기로 몰려 있었기 때문에 관우는 자기 병사들로 하여금 상류의 물을 가두었다가 적시에 그 물을 터뜨릴 계획이었다. 며칠 뒤 실제로 큰물이 번성 주변으로 넘쳐흐르며 우금의 병사들을 덮쳤을 때, 관우와 우금 간의 싸움은 관우 쪽으로 결정적 승리가 찾아와버렸던 것이다. 우금은 사로잡혔고, 방덕 역시 물에 빠진 채로 사로잡혔다. 그렇게 모든 것은 끝나버린 것이다.

 

이제는 유럽 쪽의 수공전 이야기로 가 보기로 하겠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속국(?)인 네덜란드마저 가톨릭 획일 국가로 만들기 위해 일명 피의 법정이라고 불렸던 그 무서운 재판소를 과도기로 하여, 종국엔 저네들 식의 종교재판소를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 안에도 설치하겠다고 나오자 지금껏 지배국 스페인에게 순종적이기만 했던 네덜란드인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성상파괴운동을 시발로 하여 터진 무장투쟁의 저항운동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양상으로 확대되었으니, 곧 저항군 세력의 거점이었던 레이덴에서 맞붙은 양쪽의 전투(1574)는 그들의 생명줄이라고 할 제방을 허물어 물바다를 만들며 결사 항전한 네덜란드 군의 우세 쪽으로 전쟁 양상이 바뀌어 갔던 것이다.

 

사실 스페인군이 레이덴을 포위했을 때의 레이덴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1년 가까운 포위 작전으로 인해 식량이 바닥나 있었으며, 그 결과 아사(餓死)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나,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시민군은 저항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패망해 죽을 바엔 지금껏 그들의 생명줄로 여겨왔던 둑(제방)을 무너뜨림으로써 스페인군을 몰아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게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으로 인해, 결국 스페인군은 거센 바다물결 앞에 맥없이 패퇴하고 말았다. 수공전도 정당방위의 목적에서라면 용인될 수 있는 일임이 입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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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임영천 목사의 ‘수공전도 펼칠 만한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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