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성택 교수(전 강서대 총장)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 10:5)”라는 말씀에서 갈등을 느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숫자 대결이다. 여기에는 선악도 없고, 참과 거짓도 무의미하며, 오직 내편, 네편의 갈등 밖에 없다. 이 갈등으로 인륜이 무너지고, 질서가 무너지고, 가치가 무너지고, 교육이 무너지더라도 이길 수 있다면 그 무너짐을 가속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세몰이로 정권이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 가치 따위는 안중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勢)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펜덤도 그 중에 하나다. 인기 연예인이 몰고다니던 펜덤 문화가 이제는 정치인들이 또 다른 전유물이 되고 있다. 인기 연예인의 펜덤은 순수하다. 그냥 좋아서 쫒아다니는 일명 ‘빠순이’이 수준이며, 극렬 극성팬이라고해도 그 열광 그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펜덤은 다르다. 순수도 없고 단순함도 없다. 오직 이념적 동질성에 이기적 목적을 위해 얼키고 설켜 이 땅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지금 여당이고 야당이고 팬덤 만들기에 정신이 없고, 다수의 여론을 선점하기 위한 피나는 전쟁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 전쟁에 무너지는 현실의 것이 무엇인지, 망가지는 미래의 것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다. 이렇게 망가져가는 현실과 미래를 보면서 과연 민주라는 이름과 자유라는 명분으로 지금의 이런 사태를 대책이 없이 방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심해 본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급진적 경제성장을 가져온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시절이었다. 필자는 결코 그의 군사장기집권과 유신독재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장기집권의 정권 안정은 경제성장의 기반과 체계적 경제개발계획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만일 그에게서 독재의 굴레가 없이 시해당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것이 진정 우문(愚問)일까?
왜 필자가 안정된 왕정이 낫겠다고 말했을까? 선한 왕의 종신집권은 분명히 안정과 경제적 성장과 문화 창달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그에게는 팬덤이 필요하지도 않고, 여론의 조작하고 자의석으로 형성할 필요도 없다. 이 바보같은 생각을 만든 비극적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어쨌던 역사에서 왕정은 패배했고, 공화정이 승리했다. 민주공화정은 우리의 정치적 현실이다. 이런 정치의 현실적 승리는 투표에 있고, 그 결과는 권력으로 귀결했다.
그러면 선한 왕정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자유 민주 공화정은 없는가? 문제는 ‘민주’요, ‘국민이 주인인 나라’, 곧 ‘자유’다. 가장 바람직하고 인간적인 나라임에도 지금 우리의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어 괴물처럼 흉물로 우리 앞에 있다. 지금 우리의 민주가 제대로 된 민주인가? 지금 우리의 자유가 제대로 된 자유인가? 지금 우리의 공화정이 제대로 된 공화정인가? 아무리 양보해도 이것은 제대로 된 자유민주공화국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투쟁과 교회의 기도는 ‘하나님의 왕정’이 이 땅의 ‘자유 민주 공화국’의 왕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의무가 앞선 자유이다. 진정한 민주는 책임지는 시민의식이며, 진정한 공화정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 미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실종되어버린 의무와 시민의식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미학을 되돌려 놓음이 투쟁의 급선무이다.
어쩌면 이것을 잃어버린 시간만큼의 회복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지금부터 이 싸움을 시작하여야 한다. 왕정을 끌어올 수 없는 이 시대에 우리의 새로운 왕정은 정상적으로 국민이 왕의 자리에 올라서는 일이다. ‘의무와 시민의식과 정치미학’을 신봉하는 이가 소수일지라도 그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여 그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이미 망가져버린 현실의 우리 자유민주공화국을 고치려고 해봐야 될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쿠데타도, 비상계엄도 방법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는 소수의 왕정의식을 가진 이들이 모여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제대로된 ‘의무와 시민의식과 정치미학’은 신정에서 왕정으로의 전환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천부적인 권리이다. 이것을 포기하면 펜덤에 휩싸인 독재자이며, 이런 사회는 비극적 몰락과 갈등과 대결의 피투성이만 보게 될 것이다.
차라리 왕정이 낫겠다는 현실적 생각에서 출발한 결론이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정치이념 자체가 이상적이지 않는가? 유토피아는 현실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것을 열망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열망하는 유토피아가 그리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인간적인 열망이 실현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름없는 자의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올바른 자유민주공화정을 왕정으로 완성시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