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2(일)
 
  • 임성택 교수(강서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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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사진도, 분위기도, 말도. 그러나 외교는 사진이 담아내는 화려한 수사의 분위기가 아니라 수치와 문장으로 남아야 한다. 워싱턴의 단독 회담 뒤 대통령실은 합의문이 필요 없을 만큼 화기애애했다고 평가했지만, 그 말 자체가 이번 만남의 약점을 드러낸다. ‘화기애애가 세제(稅制)를 덮을 수 없고, ‘신뢰가 조문(條文)을 대신할 수 없다. 관세, 주한미군, 방위비라는 난제는 카메라 바깥으로 밀려났고, 회담장의 미소는 구체적 문장으로 굳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특히 핵심 현안 다수가 의제에서 비켜났다는 국내 보도는, 이번 회담을 성공이라 부르기엔 근거가 엷다는 불편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회담의 문법은 시작 전부터 비정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와 발언을 통해 한국 정국을 숙청 혹은 혁명같은 자극적 어휘로 묘사하며 기선제압을 시도했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과감한 칭찬과 구애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아트 오브 더 딜식 심리전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피했다는 외신 평가가 나왔지만, ‘갈등 회피가 곧 성과 창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사(修辭)는 테이블을 열어도, 양보와 교환의 숫자표는 별개다.

 

경제 면에서 굵직한 숫자들이 쏟아졌다.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에 1,5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약속을 내놓았고, 조선·원전·핵심광물·LNG·항공 등 다섯 축에서 11건의 신규 계약이 발표됐다. 대한항공의 대규모 항공기 구매와 장기 엔진 정비, KOGAS의 대형 LNG 구매계약,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투자 확대와 생산거점 이동 신호도 포함됐다. 이쯤 되면 딜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상호주의 딜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대규모 해외투자와 구매 약속의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관세 완화·예외 품목·공급망 보증·규제 유예 같은 되돌아오는 이익이 무엇인지가 공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숫자들은 국내 일자리와 제조여력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불균형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안보 의제는 더 민감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기지 부지의 소유권문제를 거론하며 미국 측 권리를 강조했다는 보도는, 동맹의 기술적 쟁점을 주권의 상징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위험한 신호다. 동맹은 임대·지위협정·공동운용의 조합이지, 영토적 소유의 언어가 아니다. 이 발언이 일회성인지, 향후 협상 어젠다로 떠오를지 냉정히 가늠해야 한다. 정부는 SOFA 체계 내에서 어떤 원칙으로 대응할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조선·원전은 이번 만남의 키워드가 됐다. 미국의 조선 역량 재건 구상(MASGA)과 한국 조선의 기술력 결합은 양국이 윈윈을 노릴 수 있는 드문 분야다. 하지만 산업협력은 의지가 아니라 용량주문인력으로 성사된다. 국내 조선 인력수급, 미국 내 도크·규제·연방조달 체계, 동맹 내 기술이전 범위가 선결과제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재편 움직임이 미국 수요 대응과 맞물려 속도를 내는 정황은 포착되지만, 이것이 한국 내 하청생태계와 지역경제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도 동시에 계산돼야 한다. 대미 수주 확대가 국내 앵커링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생산배분·기술거점·인력양성 계획을 ·미 동시 상생구조로 설계하는 게 관건이다.

 

원전 협력 역시 말보다 조항이 중요하다. 123협정의 해석과 개정 여지, 연료주기와 사용후핵연료 관리, 제재체계와의 정합성을 명확히 해야 민감기술의 공동활용이 가능하다. “유의미한 논의가 있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차라리 한·미 표준형 수출패키지, 금융·보증·책임배분 체계를 담은 실무 합의 초안을 얼마에 공개할 것인지 일정을 못박는 편이 낫다. 국내 전력믹스와 전기요금, 탄소감축 목표와도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관세 협상은 가장 불안한 안정이다. 지난달 잠정 타결설이 돌았지만, 트럼프식 거래의 본질은 딜 이후의 새 청구서. 관세율 표와 예외목록, 단계적 감축 로드맵, 자동차 원산지 기준, 배터리·핵심광물 요건, 디지털세 상호정지 같은 민감항목을 공개하지 않으면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이미 국내 방송은 새 청구서가능성을 경고했고, 이번 회담에서도 이 항목들이 구체 문구로 묶였다는 증거는 아직 빈약하다. 정부가 진짜 성과를 자신한다면 라인-바이-라인 공개와 업계 별 브리핑부터 하라. 경제안보는 브리핑 요약이 아니라 표와 각주로 판가름난다.

 

정치적 상징도 남았다. 대통령은 가을 경주 APEC 초청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제안하며 한반도 정세의 촉매를 트럼프 손에 쥐여줬다. 칭찬과 구애가 악화일로의 수사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징의 제공은 반드시 대가를 동반해야 한다. 초청장과 사진은 쉬우나, 제재 프레임과 억지력의 구조는 어렵다. 어떤 조건부로 어떤 보상을 기대하며, 실패 시 어떤 페널티를 걸었는지 국민은 알아야 한다. 외교의 상징경제학은 항상 쌍방대차대조표로 끝나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공개, 견제, 설계. 첫째, 정부는 관세·투자·조선·원전·LNG·항공 패키지의 구속력과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다는 구호를 우리 산업이 무엇을 돌려받는다는 표로 바꾸라. 둘째, 국회와 업계, 노동·지역 공동체가 참여하는 초당적 점검기구를 즉시 가동하라. 이사회 없는 거래는 늘 비싸게 끝났다. 셋째, 산업·안보 협력을 국내 기반 강화와 연결하는 정책설계를 서두르라. 중간재·부품·인력·R&D에 이르는 흡수체계를 갖춰야 해외투자가 외화유출이 아니라 기술내재화로 귀결된다. 이것이야말로 동맹을 현대화하는 올바른 길이다.

 

교계의 몫도 분명하다. 교회는 외교를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이웃사랑의 확장으로 본다. 관세 한 줄, 기지 한 문장, 계약 한 항목이 곧 가장 약한 이들의 일자리·물가·에너지비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국가 지도자들이 지혜와 담대함으로 공정한 협정을 맺도록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숫자와 사실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예언자적 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평화를 사랑하되 값싼 평화를 경계하고, 협력을 지지하되 일방의 희생을 거부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깨어 기도하는 공동체만이 미소 뒤의 문장을 읽어낸다. 이번 회담의 진짜 평가는 오늘의 사진이 아니라 내일 발표될 표와 조항, 그리고 내년 가계부에서 내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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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회의 없는 화기애애함’이 충분한 성과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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