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6(화)
 
  • 강춘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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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7세기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 시대의 예언자이다. 그는 구약 선지자 가운데 그리스도(메시야)의 탄생과 고난을 가장 적나라하게 예언한 선지자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하시고,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웠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호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라고 했다. 창세기로부터 점진적으로 나타난 이 메시야 예언은 이처럼 이사야에 와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사야는 다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53:2-8). 이는 구약의 예언서 가운데 가장 명확히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드러낸 예언이다.

 

이사야의 이 예언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메시야)에 대한 것임을 깨달은 것은 기독교였다.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데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8:34,35).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당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마차를 타고 가면서 읽은 글이 위에 인용된 이사야 53장이다. 기독교는 이사야 53장의 내용이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임을 깨닫고, 그가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의 생과 삶에서 드러난 것임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똑 같은 이 예언을 읽으면서도, 불행하게도 이 예언이 나사렛 예수를 가리킨다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여기에서 갈라진다.

 

또 이사야는 말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60:1-3). 이것이 바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즉 세상을 구원하는 복음의 승리를 가르키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나타난 단순한 종교단체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섭리를 전파하는 복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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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선지자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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