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왕 헤롯 아그립바 1세와 2세의 이야기이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할아버지 헤롯 대왕이 통치했던 곳을 지배하며 정권 유지를 위해 친유대교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성도들을 박해하고 야고보를 목 베는가 하면 베드로를 투옥했다. 사실 그는 세상적으로 보면 성공한 유대 왕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교만해졌다. 결국 그는 가이사랴에서 두로와의 외교에 성공하고 축제를 개최하는 날, 하나님의 진노를 사 충에게 먹히는 심판을 받아 죽었다. 즉 스스로를 속이고 자신이 신인 양 행세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행12장) 다음으로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자기 누이 베니게와의 관계에서 염문을 뿌렸다. 그는 그의 추함을 가리기 위함인지 사람들 앞에 나설때는 위의를 베풀었다. 즉 거창한 행렬로써 사람들의 비아냥과 수근거림을 제압하려 했다.(행25:23) 하지만 그는 유대전쟁(66~70년)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암살당하는 최후를 맞았다. 이렇게 스스로 속이는 교만은 사치스러운 겉치장으로는 가릴 수 없다. 스스로 교만한 인생은 환난의 때를 생각지 못하므로 결국 환난에 처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고로 악인들은 자기의 날들을 주의치도 않고 헤아리지도 않는다. 이 땅에서 장구한 세월동안 쾌락과 사치를 즐기며 불의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이처럼 악인들은 영적으로 매우 둔감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최후가 아주 가까워진 날에도 자신들의 삶을 돌이켜 참회의 자리에 서기 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과 부패에 심취하려 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 정해 두신 시간표에 따라 악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며 그들의 악행을 징벌 하신다. 이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을 홀로 통치해 가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이 세상의 한정된 삶에 묶여 있는 죄인들의 시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실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은 악인들이 기승을 부리고 부패한 권력과 타락한 세력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혼탁한 세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라보아야한다. 오히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현재의 삶에만 시선이 머물러 그리스도 없는 세상의 영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내적으로 죄악을 가리기 위해 그리스도 없는 세상의 사치로 치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종교적 형식으로만 자신을 치장하여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행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스스로 죽음을 향해 치닫는 행위와 같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그 길에서 돌이키어야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시인하며 살아야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오스’는 헬라 세계에 있어서 종이 주인을 가리켜 부르는 호칭이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주인은 종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종의 행사가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즉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시는 분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퀴리오스’는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일 뿐 아니라 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기도 하다. 헬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 이름 앞에 항상 ‘주’라는 호칭을 붙였다. 가령 ‘퀴리오스 세리피스’라는 말은, ’세라피스‘는 신이라는 뜻이다. 예수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은 그분이 본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을 하나님이 아닌 한 뛰어난 인간이나 종교의 창시자로 본다면 그분의 사역과 영생의 언약들도 다 예수라는 인간이 하는 것으로 믿게 된다. 예수를 절대적인 하님의 아들로 믿어야 그분의 대속과 부활 사역을 믿을 수 있으며 그분이 약속하신 영생구원의 약속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언약으로 확신 할 수 있다.
끝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그분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퀴리오스’는 당시 로마 황제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분만이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세를 지닌 분이요.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유일하신 왕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고로 우리는 이러한 의미가 담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입으로 성도들과 교회 앞에서 ‘나는 이제부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여겨 주시기 때문이다(마10:32,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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