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1(금)
 
  • 박정규 박사(서울교회사연구소장, 전 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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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천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역사의 재 해석이 중요

새문안교회 100년사등 저술국사학자로서 교회사 연구

 

양주 덕정 출신... 고려대에서 한국사 전공

윤경로(尹慶老)1947420, 경기도 양주시 덕정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과 초등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1967년 서울 경동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학의 명문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문학사(BA),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후 1974년 교육학석사(MA), 그리고 1988년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 역사문화학부에서 가르치기 시작해?교수협의회 회장을 비롯 총장직무대행을 등을 지냈다.

 

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사법시험관리위원회 민간대표,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 및 통일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재일동포교육진흥재단 공동대표, 서울YMCA 시민논단위원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운영위원,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 등을 맡았으며, 한성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윤경로는 일반 사학자이면서 한국교회 역사를 탐구해온 역사학자요, 교회사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국사학에 뿌리를 두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관련 연구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크리스챤 학자이다. 그는 자신이 봉사하고 있는 한국 장로교의 어머니 교회인 <새문안교회 100년사>라는 거작을 남겼고, 자신의 학윈논문도 한국 기독교와 깊은 연관이 깃든 <105인 사건과 신민회 연구>(1990)를 쓴 바 있다. 그는 "역사란 고백하는 것이다. 역사란 지나온 사실을 파악하여 교훈을 얻고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한국근현대사의 성찰과 고백, 윤경로 2008 서문)라고 한다. 

 

역사는 인류생활의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해석

그는 자신의 저서 속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계속 설명한다. 역사란 인류생활에 관한 과거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물음은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같다고 한다. 이 물음에 대한 정의는 간단치 않다고 전재하고, 우선 인간에 관한 과거의 기록이면 모든 것이 역사가 될 수 있는가? 라면서 자신의 역사관을 펼치고 있다(위의 책 p.15).

 

우리는 점과 점의 연결을 선(Line)이라 부른다. 수많은 점들이 있다 해도 이를 상호 연결시키지 않으면 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의 정의를 이 같은 선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선을 역사선(歷史線)이라 가정해 보자. 이 역사선을 이루고 있는 무수한 점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점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우선 역사선상에 오른 점들은 '과거의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점들은 수학에서의 그 것과는 다르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학적으로는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된다. 다시 말해 선의 크고 작음이나 그 점 자체가 특정한 가치나 의미를 지닐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역사선상의 점들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역사선상에 오르기 위해서 그것 자체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역사선상의 점들은 수많은 과거의 사실(事實, facts) 가운데 의미를 부여받은 사실(史實, Historical facts)로서의 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왔다는 정도이다. 문익점의 삶 전체를 언급하지 아니하고 그 개인의 행적 가운데 전 생애를 주목하지 않고 그가 목화씨를 가지고 돌아와 전했다는 사실(事實)만을 역사는 기억하는 것과 같다. 서양 고대사에 나오는 로마 공화정 말 씨저의 루비콘강 도하를 역사적 사건으로 주목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루비콘강을 도하했지만 씨저의 도하만을 의미있는 사실(事實), 곧 사실(史實)로 보는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서도 1961516일 새벽 정치군인들의 한강 도강만을 우리 현대사에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과 같다고 비교 설명한다. 한강을 가로질러 넘나드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의미가 부여된 점(Meaning of Events)만 연결해 역사화 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을 해석하는 사람

이상과 같은 작업을 행하는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역사가(歷史家)라고 한다.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역사가에 의해 역사선 위에 올려질 때 비로서 그 사실(事實)이 사실(史實)로써 발언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역사가의 사안(史眼)은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 보느냐에 따라 그 선 위에 오를 수도, 제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의 평가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볼 때 '역사란 무엇인가?'란 결국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역사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 가리켜 사관(史觀)이라 한다. 그리고 이 사관은 역사가의 시대 인식과 당 시대의 정치 사회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역사의 정의와 개념이 시대와 상황? 그리고 역사가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규정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인 것이다.

 

예컨데 아놀드 토인비(A. Toynbee)는 역사를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으로 보았으며, 역사철학자 헤겔(Hegel)은 절대정신이?변증법적으로 자기발전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의 역사가와 과거 사실과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하였다. 한편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申采浩)는 역사를 아()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렇듯 역사란 역사가의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그 정의를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객관성을 중시한다. 흔히 역사가의 기본적인 자세와 임무를 과거사실 그 자체가 어떠하였는가를 밝히는데 있다고 정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 만큼 역사에서는 실증성(實證性)과 객관성을 중시한다. 동양에서는 고대로부터 역사를 사()라고 표기하고, 기록하는 사람을 사관(史官)이라 하고, 역사기술에 사용된 사료를 사초(史草)라 하였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나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란 모두 이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엄밀한 이미에서 객관성은 존재하기 어렵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역사선의 비유에서 보듯 수많은 사실 가운데 역사선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역사가의 가치판단에 의한 선별된 사실들이다. 이렇게 볼 때 '선별된 사실' 그 자체에는 이미 역사가의 주관성(主觀性)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또한 시대의 변천과 상황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과거사실 그 자체를 있었던 그대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 복원이 역사연구의 최종 목적도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그것이 현재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하는 역사 해석의 문제가 보다 중요한 관심사이다.

 

역사의 재 해석은 '동학란'에서 '동학 혁명'으로 승화시켜

다시 말해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목적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 그 자체를 알려는 단순한 지적 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사실을 통해 현재 우리 모습을 보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으로 인식하려는 더 근본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들의 역사 공부는 과거 사실을 암기하는 단순한 지적 학습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 공부 내지 역사 연구는 과거의 단순한 사실을 익히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즉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밝히고 이를 해석하는 학문인 것이다. 과거의 소극적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던 인물이나 사건이 시대의 변천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연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우리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평가를 살펴보면 당시의 봉건적 지배 세력은 동학란(東學亂)이라 규정해 동학(東學)이란 혹세무민 하는 종교집단이 정치 사회적 혼란을 틈타 기존 봉건사회를 파괴하려 했다는 시각에서 난()으로 가정한 결과이다. 그러나 19458월 해방 이후 동학에 대한 평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동학이란 개념에서 학문이란 가면을 벗어나 '동학 난'이 아니라 '동학 혁명'으로 바뀌었다 하는 점이다. 즉 난()에서 혁명(革命)으로 그 의미가 크게 제고된 것이다. 비록 당시의 거사는 실패하였으나 그 시대 우리 민족이 풀어나가야 할 역사적 과제였던 반봉건과 반침략의 문제를 온 몸으로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 주목하여 '혁명'이란 적극적인 의미 부여를 한 것이다. (같은 책 p.20). 이를테면 4.19 부정선거 타도에서 4.19 혁명이란 이름으로의 승화랄까? 5.18 광주사태가 아니라 5.18 민주혁명으로 재 해석하기에 이른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역사에 만일이란 테제가 있을 수 없다지만 중세 봉건통치와 일제의 식민지배가 계속되었다면 이 같은 전봉준의 동학반란은 동학혁명으로의 승화는 불가능하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역사는 재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있다"

흔히 말하기를 역사를 공부하면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이미 지나가 없어져 버린 과거를 통해 어떻게 미래를 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역사는 개인이나 가족 혹은 한 사회를 점치는 예언과는 다르다. 뿐만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진입 이후 주목 받고 있는 미래학(未來學)과도 그 궤를?달리한다. 불확실한 각종 통계와 자료분석 그리고 유사한 사회현상 등을 추스려 향후 세계는 이러할 것이며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라고 미래학은 진단하고 예언하지만 정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나온 인류 역사를 보아도 그 같은 추리나 예언대로는 되지 않았다.

 

에드워드 카의 지적대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하였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현재의 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은 나를 나 되게 한 과거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미래를 유추하고 전망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의 현재성이란 의미는 크로체(B. Croce)의 말대로 '모든 과거의 역사는 현대사 이다'란 말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윤경로는 역사는 늘 새롭게 재 해석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예를들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할 당시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세종의 진심과 그 목적이 애민사상에만 집착 해석할 것이 아니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세종의 마음 속에 한글 창제를 통해 백성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다스릴 목적은 없었겠는가? 역사는 이 같은 재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역사관을 그는 피력하고 있다. (같은 책 p.22).

 

주요 저서로는 (1) 105인 사건과 신민회 연구(1990), (2)?한국근대사의 기독교사적 이해(1992), (3) 낙산의 삼학송(1993), (4) 안창호 일대기(공저 1996), (5) 새문안교회 100년사(1987), (6) 한일YMCA 교류 역사(2002), (7) 105인 사건 공판 참관기(2001), 한국근현대사의 성찰과 고백(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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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윤경로 박사(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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