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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차악을 허락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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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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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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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19:8-9).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고전7:38). 이처럼 혼인 문제에 있어서 최선의 길은 주님을 위하여 시집가지 아니하고, 장가가지 아니하고 독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을 위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둘째,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둘 가운데 하나라도 맞지 않는 것이라면 이기적으로 되거나 탈선하기 쉽습니다.

 

혼인에 있어서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차선이 되는 것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입니다. 혼인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부합한 일이며, 사회 구성원을 존속시킬 뿐만 아니라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는 원동력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인 문제는 최선과 차선의 차이일 뿐 모두가 선입니다.

 

선택 문제에 있어서 최선과 차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투표를 하거나 일이 어그러질 때 우리는 일단 최악만 피하자하는 심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차악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마음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후에 마음에 자책하고 통회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삼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대상21:11-12).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리신 벌 세 가지는 모두 다윗에게 고통을 가져오는 것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모두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덜 고통스러운 것으로 온역의 징벌을 택하였습니다. 다윗은 결국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입니다.

 

한 번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19:3). 이 질문의 의도는 이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가리켜 예수님 앞서 보냄 받은 자라고 하신 일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가르침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의 이혼과 부정한 결혼을 반대하다가 결국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14:3-12). 이에 바리새인들은 이혼 문제를 예수님께 질문함으로써 만일 예수님께서 이혼을 금지하신다면 이를 정치적인 쟁점으로 삼아 결국 세례 요한과 같은 운명에 빠뜨리고자 획책한 것입니다(Schaff).

 

이혼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9:4-6).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혼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19:7)라고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19:8-9). 예수님의 말씀은 비록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아내 버림을 허락하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본뜻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간음 외에 이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완악한 사람들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들은 이혼하지 않는 테두리에서 이혼보다 더 심한 악행을 저지를 것입니다. 곧 아내를 학대하거나, 구타하거나, 타인하고 정을 통하거나, 아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맡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자비의 하나님께서 여인들이 당할 수도 있는 최악을 피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차악(이혼)을 허락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예를 들어 잘 알 수 있습니다. 완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교의 영향을 받았던 조선은 한 번 시집가면 이혼할 수도 재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나 가문에 큰 수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속아서 하게 된 혼인이더라도, 남편이 간음한 경우가 명백한데도,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살아가는데도, 시모의 시집살이가 심함에도 불구하고 참아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간혹 친정으로 돌아간다면 동네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의 이러한 일들을 막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으로 인한 최악보다는 차악인 이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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