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1(금)

연지골
Home >  연지골

실시간뉴스

실시간 연지골 기사

  • [기자수첩] 교단의 ‘총신 우선주의’에 소외되는 ‘칼빈·대신·광신’
    소위 '총칼대광'으로 꼽히는 예장합동측(총회장 오정호 목사) 소속 신학대학 중 총신대와 칼빈대, 대신대, 광신대 간의 심각한 지원 격차에 교단 내부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 교단의 신학대학 임에도 총회가 총신대와 나머지 대학을 대하는 온도차가 실로 크다는 것인데, 칼빈, 대신, 광신의 보이지 않는 한숨이 커지고 있다. 예장합동측은 지난해 제108회 총회에서 매년 총신대에 무려 10억원을 지원할 것을 결의했다. 총신이 살아야 총회가 산다는 기조에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오정호 총회장은 지난 10월 총신대에 개인적으로 10억원을 기부했다. 아무리 개인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총회장임을 감안할 때, 사실상 무려 20억원의 후원금이 한 해 동안 지원되는 셈이다. 지난 5월에는 총회 임원회가 총신대를 제외한 칼빈대, 대신대, 광신대에 대한 지원안도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 액수가 심히 차이났다. 각 학교당 단 5,000만원, 자발적 지원도 아니고, 3개 학교의 재정 지원 요청에 응한 결과였다. 20억원 대 5천만원은 현재 총회가 총신과 나머지 학교를 대하는 온도차를 보여주는 매우 잔인한 지표다. '총칼대광' 모두 총회의 자식같은 대학일진대, 어느새 교단은 칼대광 세 학교의 이름은 지운 채 오직 총신 우선의 운영을 하고 있다. 특히 오정호 총회장의 유별난 총신 사랑이 일각에서는 총신우선주의를 넘어 총신우월주의로까지 번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지난해 총회에서 전 총대가 총신 교가를 부르는 모습은 총신 출신들에게는 매우 감동적인 연출이었겠지만, 반대로 칼빈 대신 광신 출신에게는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점차 '총칼대광'이 아닌 '총신과 비총신'으로 구분되어 가는 총회 분위기가 결국 지원금에서조차 무려 40배에 이르는 격차가 벌어지자 일각에서는 "해도해도 정말 너무한다"는 분노섞인 볼멘소리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총신만 이 교단의 대학인가? 칼빈 대신 광신 출신들도 이 교단의 엄연한 회원이고, 똑같이 교단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은 극도의 폭력과도 같다"면서 "지방 신학대학들이 현재 생존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오히려 이런 때에 총회가 지방 신학대학을 살리기 위한 노력과 지원을 더욱 펼쳐야 할 때인데, 전혀 이러한 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모 학교 관계자는 "정부의 날선 대학인증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야말로 처절히 버티고 있다. 제발 총회가 이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현재 총회 임원회는 3개 학교에 지원이 결정된 5,000만원을 재정상 이유로 아직 집행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6-20
  • [토요시평] 남과 북은 보내는 내용이 너무 다르다
    북한은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9일까지 쓰레기를 담은 풍선 1,000여 개를 한국에 보냈다(3,500개를 보낸다고 했다) 그 속에는 가축 거름, 담배 꽁초, 휴지 조각 등 그야말로 오물(汚物)을 잔뜩 담아 보낸 것이다. 이것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기가 막힌 허접한 발상이다. 이에 남한에서 탈북민 단체가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라고 주장’하는 김정은의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과 1달러짜리 지폐와 가수 나훈아와 임영웅의 트로트 노래가 담긴 음반과 드라마 ‘겨울연가’의 영상이 담긴 휴대용 저장장치를 보냈더니, 또 오물을 보내는 답례(?)를 했다. 너무나도 격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참으로 남과 북의 차이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남한에서는 북쪽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유’와 ‘문화’와 ‘삶에 필요한 것’들을 풍선을 통해 보내준 반면, 북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위협을 주는 괴상천외(怪狀天外)한 물건들을 보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남한과 북한의 모든 차이는 뚜렷하게 대비가 된다. 남한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달러와 식량과 문화와 자유를 선물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도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단체에서마저. 그러나 북한 당국은 우리에게 보내 줄 물건이 쓰레기와 오물밖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남북 간의 체제에서 너무나 다른 것도 엿볼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의 허락하에 그의 여동생 김여정이 명령하면 오물과 쓰레기를 모아 남한에 ‘오물 폭탄’으로 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물건을 그 누가 보낸다고 하여도 이에 대하여 엄청난 반대와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사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사람도 없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소위 말하는 ‘김여정 하명법’(남북관계발전법개정)을 지난 2020년 국회에서 통과되어, 이를 어길 경우 벌칙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잘못된 법이라고 해도 문재인 정권과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에 풍선을 한동안 보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으로 결정하여 다시 민간 차원에서 풍선을 보내게 되었다. 이를 정부에서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이므로 제한할 수 없어, 대북 전단 살포를 막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자유’와 ‘독재’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남북 간에 이런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것을 금지하기로 한 것은 지난 2018년 4월 27일로,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의 봄’을 선언하고, 그해 9월 19일 ‘군사 분야 합의서’를 작성한 후 풍선 등 살포 행위를 중지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합의서를 작성한 후 5년간 3,400여 회의 합의 위반과 우리에 대한 도발을 일삼아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23년 11월 22일 정찰위성 등을 쏘는 등 잇단 도발을 해 왔다. 그리고 북한은 같은 해 11월 23일 ‘군사합의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다. 또 2014년 1월 5일부터 7일 사이에 서해 완충구역에서는 수백 발의 포 사격을 감행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5월 27일부터 6월 2일 사이에는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하고, 오물 풍선을 보내고, 전방지역에서 GPS 교란작전을 폈다. 약속은 지키기 위하여 맺게 되는 것인데, 이처럼 무참하게 일방적으로 깬다면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기만이 된다. 아무튼 북한의 오물 풍선을 받아 들고,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고, 이 오물 풍선이 앞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다. 북한이 보내는 풍선에 오물 대신 생·화학물질을 실려 보낼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정쟁(政爭)의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북한 당국이 노리는 ‘남남 갈등’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북한은 오물 사건 이후,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자, 오물 풍선 살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있다. 반면에 최전방 부대 철책선 사이에 대전차 방벽을 높이 쌓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대북 민간 단체들이 보내는 풍선 내용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면, 이것은 북한의 체제가 얼마나 약하고, 악한 정권인가를 가늠해 보는 지렛대가 된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한국에서 보내는 풍선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그 대신 오물 풍선으로 협박하고 휴전선에 장벽을 쌓는다고 하여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자유의 물결은 막지 못할 것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4-06-18
  • [기자수첩] 새에덴교회 향한 사회적 관심에 '한국교회 신뢰도' 동반 상승
    6.25 해외 참전용사들을 무려 18년째 섬겨오고 있는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의 놀라운 헌신이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강석 목사가 이끄는 새에덴교회의 방미단이 오는 14~15일, 미 텍사스에서 대대적인 보은행사를 열 것이라는 소식이 연일 언론의 관심 포화를 받고 있는 것이다. 주요 일간지를 포함해, 수십여개 유수 언론들은 전 세계 어느 국가도 하지 못한 위대한 보훈을, 특정 대기업이나 유명 사회 단체가 아닌 일개 단일 교회가 해냈다는 소식에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코 범상치 않은 주요 언론들의 특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그야말로 전율케 하고 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잊혀진 과거의 용사들을 오늘날 모두가 만끽하는 평화의 영웅으로 부활시킨 새에덴교회의 헌신은 보은과 보훈에 대한 국민적 인지를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문화로서의 보훈, 삶 속에서 실천하고 되새기는 보은의 가치는 바로 새에덴교회가 대한민국에 만들어 낸 새로운 국민 운동이 됐다. 하지만 18년을 이어온 새에덴교회의 진심이 만들어 낸 가장 최고의 가치가 있으니, 바로 '신뢰의 회복'이다. 빠르게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의 처참한 현실과 사람들의 외면 속에 새에덴교회는 교회 본연의 공익적 사명을 200% 수행함으로 세상으로 하여금 교회를 다시 되돌아보게끔 했다. 70~90년대 한국교회의 급성장이 멈춘 이후, 점차 자기 교회의 부흥만을 최고로 여기던 이기적 관습이 최근 10여년 새 교회의 규모, 지역을 가리지 않고, 완전히 만연한 가운데, 18년 이상을 사회 공익에 헌신해 온 새에덴교회의 진심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한 '신뢰'로 재탄생한 것이다. 오늘날 위기를 부르짖는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신뢰의 부재'로 귀결된다. 더이상 교회의 경건함을 믿지 않고, 목회자의 도덕에 기대치 않는 현실은 교회와 목회자 스스로가 만들어 낸 오늘날 한국교회의 냉철한 단면이다. 더욱이 좌우, 빨강과 파랑에 극도로 함몰된 일부 교회의 모습은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정치 집단으로 까지 비춰졌다. 그런 상황에 언론들을 사로잡은 새에덴교회의 소식은 국민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전도의 문을 여는 확실한 반전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새에덴교회를 향한 사회적 관심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기독교 이미지 상승 효과와 광고 효과를 동반한다.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휩쓴 가수 싸이의 연말 뉴욕스퀘어 공연이 문화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듯, 새에덴교회의 보은 행사는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 재고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내부적으로 한국교회 전체의 위기를 반전시킬 확실한 전도 효과로, 국외적으로는 그저 양적 성장으로만 알려진 한국교회의 새로운 공익적 이미지 창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기대된다. 여기에 다른 교회들이 새에덴교회가 길을 터 놓은 보은 보훈의 대열에 자연스레 동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그야말로 한국교회의 제2의 부흥도 충분히 노려볼만 하다. 18년째 이어오고 있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새에덴교회의 헌신이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6-10
  • [토요시평] 국회의장, 형님이 적격입니다
    정치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 지도자는 뛰어난 경력과 자질과 경험과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와 희생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될 때, 본인도 국가도 국민도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정치인들의 수준과 생각과 행동이 실망을 넘어,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300 의석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171석을 차지하였다. 그러니 국회의장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할 것이 뻔하다. 국회의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회를 민주적이고, 선진국형으로 만들 수도 있고, 또는 다수당의 횡포를 도와주는 후진국형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또 국회의장의 중립적 태도는 국회에서 여•야의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은 국회를 난장판으로, ‘정글의 법칙’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4명의 다선 의원들이 후보로 나왔으나, 두 사람은 당 대표의 입김으로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선의의 경쟁과 조직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되는데, 먼저 당 대표가 막강한 권력으로 ‘교통정리’를 해 버린 것이다.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두 명의 후보가 남았는데, 한 명은 명심(당 대표의 의중)이 당심이며, 당심이 곧 민심이라고 했다. 명심과 당심은 모르겠으나, 민심은 아니라고 본다. 누가 이런 폐쇄적이고, 일당 독재적이고, ‘더불어’와 ‘민주’를 뺀 당을 계속 지지한다는 것인가? 이들은 지난 총선에서 자신들을 찍어주지 않은 49.5%의 국민들까지도 ‘민심’에 억지로 잡아서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러자 또 한 후보는 명심으로 알려진 당 대표가 ‘형님이 딱 적격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맞받아친다. 입법부의 수장이며,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 자리가 ‘형님’ ‘아우’가 결정하면 되는 것인가? 하기야 어느 모 방송의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현 야당 대표를 ‘대통령’이라고 아나운서가 말해 버리는 기가 막힌 일도 벌어졌다. 국회의원은 우리 헌법에서 당익이 아닌 국익을 우선 해야 되는데(제46조) 이들은 당익 정도가 아니라, 사익(私益)에 준하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현재 야당의 당 대표는 여러 가지 사법적 혐의로 인하여 여러 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정말 사법부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래서 어떤 권력이나 힘 앞에서도 ‘법의 평등 정신’을 구현한다면, 그는 사법의 정의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그 명심이 곧 민심이라니, 제정신이 있는 국민이라면 정신이 번쩍 날 말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는 ‘형님....’ 어쩌고 하던 사람으로 결정되었다. 명심이 민심이라는 아부도, ‘형님’ ‘아우’ 관계보다는 못한 모양이다. 야당 대표는 국가 서열 8위이다. 그런데 국가 서열 2위의 국회의장을 마음 먹는 대로 만드는 나라, 그런 일을 벌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권, 우리의 민주주의적 권위와 가치가 이처럼 추락해도 되는 것인가? 오죽 하면 같은 야권에서도 ‘자괴감이 든다’는 사람도 있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이라고 쓴소리를 했을까? 힘은 모두 소진하면, 힘이 없는 것과 다름 없다. 거대 힘을 가진 정당이 그 힘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집과 만용을 위해서 쏟아낸다면, 그들도 국민들에게도 결코 유익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힘이 있는 정당의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어렵다. 부디 국민들이, 국민들의 대표로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선출해 주었으니, 제발 자신들의 조직을 결속하고, 분풀이하듯 힘을 다하지 말고, 국가 전체를 위한 일에 진력하기 바란다. 요즘은 정치권을 보면서, 두렵고 안타까우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게 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큰 권력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놓으신 것을 찾을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4-05-17
  • [기자수첩] 민찬기 목사의 부총회장 출마,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찬기 목사(예수인교회)가 결국 세번째 부총회장 출마를 공식화 했다. 수많은 논란과 불법에 대한 지적, 결정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의 '출마 불가'를 골자로 한 유권해석까지 있었으나, 이 모두를 무시하고 그의 소속노회는 지난 16일 민찬기 목사를 제109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추천일 뿐 후보 확정은 아니며, 오히려 선관위는 앞선 결정에 기반해, 민찬기 목사의 후보 추천을 반려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아직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번 결정이 야기할 총회의 혼란이다. 이미 민 목사의 출마설이 불거져 나온 올 초부터 총회 내부는 상당한 혼란이 지속되어 왔다. 총회선거규정 제3장 9조 6항 ‘동일 직책에는 2회만 입후보가 가능하다(단,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의 해석을 두고, 법 전문가들의 자문까지 받아가며, 치열하게 대립했다. 결정적으로 민 목사의 소속 노회는 다소 애매할 수 있는 '불소급원칙'의 적용이 가능한지를 선관위에 질의했고, 선관위는 내부 투표를 거쳐, '불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선거 공고를 통해 이번 선거의 원칙을 분명히 고지했지만, 서울북노회는 결국 이를 무시하고 민 목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현재 민 목사측은 개정 정관의 '불소급원칙'의 적용에 집착하고 있다. 자신이 두 번 출마한 것은 맞으나, 불소급원칙에 따라 첫 번째 출마는 개수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소급원칙'의 적용 여부를 떠나, 민 목사가 103회, 106회 두 번에 걸쳐 부총회장에 출마했던 것은 지울 수 없는 팩트라는 점이다. 총회선거규정 제3장 9조 6항이 목표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 사람의 독점적 출마를 막아 총회원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다양한 인재들의 등용으로 총회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 취지는 해당 규정을 승인한 모든 총대원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의 정당성은 '법'으로 증명하려 하고 있다. 양떼를 돌보는 하나님의 사명자라 불리며,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을 자처하는 이들이 고작 '최소한의 도덕'일 뿐인 '법'에 집착해 당당함을 과시한다. 허나 목회자는 성경적 윤리, 최대한의 도덕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증명해야 한다. 법을 떠나 자신의 양심이 진실을 알고, 하나님의 직시하심을 인정한다면,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민 목사는 자신을 추천한 노회원들에게 "노회에 불이익이 안가게 하겠다"며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허나 민 목사의 이러한 다짐이 너무도 이기적인 것은 그의 3회 출마 욕심은 나비효과가 되어 다음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예비후보들은 물론 총회 전체의 질서를 흐트러뜨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민 목사가 노회에 대한 불이익을 우려하기 전에 총회의 질서, 후배들을 향한 배려를 먼저 생각했다면 과연 이렇게 출마에 집착했을까 싶다. 더욱이 그가 언급한 '좋은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반드시 출마에 성공해 부총회장에 당선되겠다는 것인가? 총회를 이토록 혼란스럽게 만들고, 결국 부총회장에 당선된다한들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좋은 결과인가? 부총회장 선거는 특정 당선자의 승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모두의 승리, 총회의 승리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4-17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우리는 총선을 제대로 치룬 것인가?’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4년 전과 비슷한 의석으로 또다시 여소야대가 되었다. 헌법개헌 저지선과 대통령 탄핵 마지노선조차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우려가 되는 가운데 현 여당이 참패를 당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인데, 그중에 한 정당에서(혹은 군소정당과 합하여) 의원 200명이면, 헌법을 개정할 수 있고, 대통령을 탄핵 소추할 수 있다. 또 국회의원 180석이면 국회선진화법(다수당의 횡포와 독주를 막기 위해 2012년 개정됨)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 법에는 국회의장 본회의 직권상정 제한,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최장 90일간 논의, 안건신속처리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말하는데, 이런 협력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리고 패스트트랙(다른 당의 협조 없이 법안 강행 처리)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필리버스터(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강제로 종료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의석 150석이면 국무총리 임명 동의,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 대법관 임명 동의, 법안 단독처리, 예산안 단독처리, 상임위원장 다수 확보, 대통령을 제외한 탄핵소추 의결, 계엄해제 요구, 국회의장직 확보 등을 갖게 된다. 따라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을 확보하였고, 조국혁신당의 12석 등 범야권이 192석이 된 상태이다. 그야말로 야권은 대통령을 직접 건드리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부도 여당도 이런 거대 야당의 도움 없이는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번에 대거 당선된 야권 의원들은 과연 국민들의 지도자감이 되는가? 현재 민주당 대표인 이재명 씨는 과거 전과 4범이 있는데 그에 대한 시비도 끝나지 않았고, 현재에도 3가지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 대하여 ‘셰셰’하면 된다는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에 출마한 나경원 후보에 대하여 ‘나베’라고 하였다. 이는 ‘나경원+아베’라는 것으로 즉 친일파라고 선전전을 한 것이다. 이 나베라는 말은 일본어로 ‘냄비’라는 말도 되는데, 이는 여성의 성(性)을 비하하는 것이며, 여성에 대한 강한 경멸의 의미가 있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리고 수원에 출마한 김준혁 씨는 근거 없이 6.25 때 김활란 이대 총장이 이대생을 미군에게 성상납했다고 발언했었고, 심지어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서도 성적인 막말을 하였다. 전 최강욱 의원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것을 빗대어 말하면서, ‘암컷이 나와서 설친다’고 하여 큰 논란이 있었다. 이는 민주당 사람들이 여성 혐오에 대한 DNA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안산에 출마한 양문석 후보는 자신의 딸 이름으로 불법 대출한 것이 드러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재산 신고가 잘못되어 선관위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이다. 그리고 조국혁신당을 만든 조국 씨는 자녀의 입학 비리 문제로 부인이 이미 4년 형을 살고 있고, 본인도 2심까지 유죄가 나온 상태이다. 뿐만이 아니라, 이 당의 비례대표 1번인 박은정 전 검사는 그의 남편에 대한 ‘전관예우’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후보는 전에 음주와 무면허 운전으로 전과가 있는 사람도 있다. 또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의 울산시장 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은 황운하 씨도 조국당을 통하여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일반 서민들의 도덕적, 윤리적, 상식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된다고 하니 허탈하다. 우리가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하여 참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싸가지(이조시대 한양에는 4대문이 있었다. 동대문(仁), 서대문(義), 남대문(禮), 북문(智)를 뜻하는데, 이 4가지가 없는 것을 사가지가 없다고 하였고, 이를 전라도 사투리로 싸가지로 표현한 것)없는 인사들을 뽑아놓고 앞으로 4년 동안 그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결정을 한 국민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는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이 차지하게 되면서, 그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평등법’ ‘군형법개정안’을 발의하고,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주는 ‘생활동반자법’ ‘건강가정기본법’ ‘모자보건법’ ‘민법개정안’ 등을 발의하는 것을 보았다. 또 코로나 때는 감염병 예방법이라며,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각 시설을 폐쇄하거나 간판을 떼 가는 등의 법안을 뚝딱 만드는 것도 보았다(그것이 교회를 대상으로 하면 교회 시설이 폐쇄되고, 교회 간판도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야 현 정권을 심판한다하여 거야 정당을 만들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가진 거대 야당들의 횡포가 시작된다면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가진 가치나 성경적 가르침에 대하여 반하는 일들이 세차게 몰려오고 있다. 한국교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4-04-12
  • [기자수첩] 총선 결과에 초조해진 한국교회, 소강석 목사의 ‘원 리더십’ 재조명
    다시 한 번 여소야대 정국이 현실화 됐다.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들은 불통의 현 정부를 탓하며 야권에 힘을 실었다. 총 300석의 의석 중 진보계 정당(민주당, 조국혁신당, 새로운 미래, 진보당)이 189석을 차지했고, 보수계 정당(국민의힘, 개혁신당)은 111석에 그쳤다. 교계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보수권은 진보권에 지난 4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향후 4년간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게 됐다.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허나 기독교적 입장에서 포괄적차별금지법 등의 반사회적 악법 포화를 막아냈던 지난 4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새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을 듯 싶다. 실제 진보세가 강했던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성혁명, 가족해체, 표현의 자유 억압, 친권 침해 등을 골자로 한 악법이 무려 50여개 이상이 등장했다. 그리고 해당 발의의 대부분은 민주당, 정의당 등 진보 진영 의원들에 의해 이뤄졌다. 다행히 한국교회 등의 적극적인 반발과 저지로 결국 대부분의 제정 시도가 무산되기는 했지만, 문제는 해당 법안을 발의했던 의원들 상당수가 이번 제22대 국회 입성에 다시 한 번 성공하며, 재발의는 불 보듯 뻔하게 된 사실이다. 오히려 그들 입장에서는 지난 21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치밀하게 보완된 법안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기에 이전보다 분명 더욱 힘든 고난의 시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오늘의 위기가 지난 수년 간 지독히도 예측했던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한교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그토록 지적하고 외쳤던 ‘원 리더십’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예측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왜의 침략을 예측해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율곡 이이처럼 소 목사는 한국교회의 대대적 위기가 반드시 반복될 것이라고 외쳤었다. 앞선 코로나 시기는 한국교회를 향한 정부의 예배 탄압과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절정에 이르던 때로,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분란이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실시간으로 갉아먹던 정말 아찔한 시간이었다. 이런 때에 등장한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는 특유의 걸출한 정치력으로 서서히 상황을 반전시켰다. 정부, 국회, 지역을 넘나드는 그의 협상과 정치는 사회와 교회를 절체절명의 절벽 끝에서 끌어올렸다. 그런 소 목사가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강조했던 것이 있으니 바로 '한국교회의 연합'이었다. 당시 소 목사는 "지금은 당장 위기를 넘겼을 지 모르지만, 제2의 코로나, 제2의 포괄적차별금지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현재의 분열된 한국교회로는 이를 막아내기 힘들다.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교회가 하나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실제 3년여의 시간을 오직 연합에 매진키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교회는 하나되지 못했고, 위기를 막아낼 최소한의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했다. 잠시잠깐의 안정에 머물러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외면한 결과로 반사회적악법 제정을 더욱 강하게 밀어부칠 제22대 국회를 넋놓고 바라보게 생겼다. 더욱 암울한 것은 과거 정치권과 대등한 줄다리기를 펼쳤던 소 목사와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교계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교계는 다가올 위기 극복을 위해 이미 정치권에서 한 발 물러나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소 목사의 정치력에 다시 기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대안은 특출난 인물이나 특정 권력이 아닌, 위기에 맞설 상시적인 대응 시스템, 즉 '원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충분히 예측된 위기와 고지된 대안, 하지만 아무런 변화없는 한국교회의 현실, 이번 총선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교회 스스로의 방만을 꾸짖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4-11
  • [기자수첩] 소강석 목사가 제시한 ‘존중’과 ‘반대’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
    교계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의 정계 진출이 일단 무산됐다.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어제(13일) 임태훈 전 소장의 비례대표 '컷오프'(공천배제)를 통보했다. 앞서 야권의 임 전 소장의 비례대표 추천 소식이 전해진 후, 기독교계는 각종 성명과 메시지로 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며, 굵직한 여러 논란을 일으켜 온 임 전 소장이 국회에 진출했을 시 파장을 우려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군대 내 동성애를 막는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개정에 앞장서며, 교계 및 시민계와 크게 대립한 인물이다. 일단 더불어민주연합의 컷오프로 상황은 마무리 됐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교회의 스탠스는 분명히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서 일부 언론과 교계 단체는 이번 임태훈 전 소장의 비례대표 추천 사건을 '동성애자'에 초점을 맞춰 이를 비판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한국교회가 힘을 합쳐 '동성애자' 국회의원을 탄생을 막아야 한다는 뉘앙슨데, 이는 현 한국교회의 반사회적 악법 대응 정책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스탠스다. 정확히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그들의 증오한 적이 없으며, 당연히 단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의 사회적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을 막을 이유도, 막아서도 안된다. 그것은 '동성애자' 이전에 국민으로서 국가에서 보장한 합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이번 임태훈 전 소장의 정계 진출을 우려한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가 그동안 보여온 동성애 관련 행보들이 매우 그릇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확히는 '군형법 제92조' 폐지를 중심으로, 반사회적, 반성경적 악법 형성에 앞장섰던 그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 일어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이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린 소강석 목사는 혼잡했던 한국교회의 스탠스를 매우 간결히 정리하며, 주목을 끌었다.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한 매우 합리적인 입장이다. 소 목사는 "동성애자도 일반인과 똑같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열어야 한다"며 국가가 부여한 임 전 소장의 ‘정치 참여권’을 철저히 존중하면서도, "(임 전 소장은) 군 내에서 지나치게 동성애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며, 군 기강도 무너뜨리는 우를 범했다. 이런 분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다면 포괄적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위한 평등법 추진에 올인할 것"이라는 그의 행보와 사상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표했다. 교회는 그 특성상 총선에 있어 매우 중립적인 위치여야 한다. 그럼에도 선거와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소 목사는 바로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향후 사회 혹은 교계 진보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복기하며, 한국교회의 '동성애 혐오 사건'으로 일방적으로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비차원이라도 한국교회는 종교적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더욱 상식적이고, 또한 합리적인 대응을 펼쳐야 한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3-14
  • [기자수첩] 한국교회여 '중앙'처럼 개혁하라
    한국교회의 위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이제는 완연히 고착되는 분위기다. 아이들로 북적이던 주일예배의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거리에 넘쳐나던 교회 전도지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삶의 중심점이 교회에 있던 그 시절 그 때의 당연했던 일가족의 일상은 어느새 믿음의 계보가 단절되며, 서로의 신앙조차 공유치 못하는 암울한 시대가 됐다.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인지와 이에 따른 각성, 근본적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당장 어제 오늘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굳이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핑계대지 않더라도 이미 한국교회는 충분히 무너졌고, 심각한 위기였다. 당장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던 지난 2017년, 우리는 제2의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며, 한국교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었다.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문을 닫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자각과 함께,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많은 대안과 방편을 연구했던 지난 2017년은 한국교회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했을만큼,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진심같았던 자성과 강력했던 구호에 비해 변화를 위한 별다른 실천은 없었다. 여전히 목회자의 도덕은 바닥에 맞닿았고, 성도들의 신앙은 가벼웠으며, 한 번 선을 넘은 교회의 세속화는 돌아올 수 없는 질주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이단들의 행태는 더이상 막을 수 없을만큼 퍼져 나갔다. 어쩌면 그 사이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 펜데믹'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무지와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했다. 한국교회 스스로 자초했던 일련의 위기와 목회자들의 양심없는 무책임함이 어느새 모두 코로나 탓으로 둔갑됐다. 한국교회가 무너진 것도, 침체한 것도, 부흥이 끊어진 것도 모두 코로나 때문이라는 매우 훌륭한 핑계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외면하고, 남들의 눈치만 보는 자세로는 결코 '제2의 종교개혁'은 불가능하다. 현 시점 국가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는 사실 10여년 전부터 교계 내에서 제기됐던 '다음세대 부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한국교회는 지난 10년간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었다. 그런 한국교회가 오늘날 국가의 '저출산 문제'에 앞장선다는 현실은 자랑스럽지만 한편의 씁쓸함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 한국교회는 예장 중앙총회의 개혁 정신을 충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 백기환 총회장이 설립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중앙총회(총회장 이영희 목사)는 근래 지독했던 교단 분쟁을 이겨내고, 완전한 정상화를 이룬 교단이다. 개혁 초기,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부패한 기득권을 몰아내고, 온전한 정상화를 이루기까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결국 총회 모두가 하나된 의지로 이를 이뤄냈다. 중앙총회 개혁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로 꼽을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진단 △하나님의 의를 위한 망설임 없는 실천 △총회원 전체의 하나된 힘, 바로 그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2017년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진단은 많았지만, 이에 대한 실천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관은 이후 한국교회 분열의 고착화로 이어지며,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 중앙총회가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했던 당시의 교단 개혁을 이뤄낼 수 있던 비결은 이 세가지 쟁점 모두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 중에 단 한가지라도 부족했다면, 오늘의 회복된 중앙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분쟁 초기부터 개혁을 이끌었던 류금순 전 총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총회원들의 결집력은 24번의 고소고발을 모두 승리로 이끈 전무후무한 무용담을 만들어냈다. 사실 중앙은 개혁에 있어 매우 훈련된 교단 중 하나다. 정도는 지키되, 시대의 흐름은 거부하지 않았다. 고 백기환 총회장은 과거 시대의 그릇된 편견 속에서도 여목제도를 실시해 한국교회의 선도를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여목의 존재는 매우 파격적인 제도였지만, 고 백기환 총회장과 중앙총회는 여목제도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물결임을 분명히 인지했다. 기왕 해야 한다면, 매우 성경적이고, 올바르게 실시해야 한다는 기조로 여목제도를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중앙총회가 이끈 여목제도는 현재 한국교회 전체로 자리잡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앙은 또 다른 개혁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중앙총회는 전권위원회를 통해 '목사 이중직'을 허용키로 했다. 현재 목사 이중직에 대한 교계의 의견은 매우 분분하며, 신학적 논란으로 이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단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미 현실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미 이중직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며, 기본적인 공과금조차 내지 못한 채, 교회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한 교회의 목회자들은 택시, 주유소 등에서 일하며, 교회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이런 목회자들에 교단의 '목회자 이중직 금지 조항'은 아무런 의미없는 사실상 사법(死法)화 된지 오래다. 중앙총회는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하되, 그 정도(正道)를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막을 수 없다면 올바로 이끌고,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목회자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에, 이를 막연히 막을게 아니라, 차라리 신학적이고 현실적인 연구를 지원함으로, 이들이 신앙적 양심에 괴롭지 않고, 건강한 목회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 중앙의 목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중앙의 이러한 개혁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확신한 인지와 그에 따른 실천, 분명한 결단력이 결국 미래를 만들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총회는 지난 역사에서 여러 차례, 기득권이 만든 대세에 이끌려 쉽게 갈 수 었었지만, 그때마다 보장된 불의한 안정보다는 미래를 위한 가난한 개혁을 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단이 오늘날 교단개혁의 새로운 표본처럼 중앙의 존재를 한국교회에 드러내고 있다. 오랜 위기에 신음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지난 역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교회여, '중앙'처럼 개혁하라!"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3-12
  • [기자수첩] 총선 전쟁에 함몰된 한국교회의 3.1절··· 그래도 소강석은 ‘연합’을 외쳤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지독했던 폭압에 맞서 전 국민이 하나되어 대한의 독립을 외친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가장 큰 자랑임이 분명했다. 세대와 계급을 초월한 비폭력 평화운동이라는 그 의미는 물론이고, 그 배경에 다름아닌 기독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민주 대한민국을 누리는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국교회의 성도로서 큰 자부심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3.1절 105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는 한국교회가 주도한 일부 대형 집회들을 바라보며, 지난 독립의 역사와 선진들의 희생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마주해야 했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이들의 3.1절 행사는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한국 기독교의 위용을 자랑하는 듯 하지만, 숭고한 ‘3.1정신’이 지배해야 할 그 속에, 그저 승리에 혈안이 된 ‘이념’만을 채워넣었던 그들의 집회는 적어도 우리가 아는 3.1절과 하등 상관이 없어 보였다. 선진들의 피흘림이 기억되지 않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17세 소녀의 희생이 빛바래진 이날의 풍경을 보며 우리가 3.1절을 기념했다고 자부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독한 ‘총선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이날의 3.1절은 총선 전쟁의 역사적 운명을 가를 중대한 전투지로 미리 선점됐고, 선봉을 자처한 이들 기독교 세력은 대한민국을 독립의 함성이 아닌 이념의 전투적 구호로 물들였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 어떤 이념을 품고, 구호를 외칠 수 있어도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당연히 이들의 구호는 결코 잘못되지 아니지만, 이날이 다름아닌 민족 전체가 하나되어 일제에 항거했던 3.1절이었다는 사실은 그 이성을 거부하고 있다. 이와달리 소강석 목사는 3.1절에 대한 매우 면밀한 연구가 돋보이는 메시지로 각광을 받았다. 인천기독교총연합회의 3.1절 기념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소강석 목사는 3.1절의 역사적 의의와 사건, 기독교적 의미, 3.1정신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심도깊은 내용을 설교에 담았다. 특히 우리가 익히 몰랐던 잊혀진 3.1절의 영웅들을 발굴하는 것과 3.1절과 기독교의 역사적 관계를 변증하는 노력은 그가 평소에 대한민국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반증했다. 일제 헌병에 팔이 잘리고도 만세를 외쳤던 광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윤형숙 열사, 열사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찰스 클라크, 맥퀸, 스코필드 등 기독교 선교사 등에 대한 일화, 그리고 기독교가 3.1운동을 주도한 배경을 연구한 그의 설교는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애국적이었다. 결정적으로 소 목사는 미완에 그친 3.1운동의 진정한 완성을 바로 ‘연합’으로 봤다. 이념과 지역의 극단적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연합단체마저 뿔뿔이 분열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며, 민족의 독립이라는 절대적 대의 앞에 이념, 지역,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가 됐던 ‘3.1운동’의 위대한 정신을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중대한 선택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총선 승리에 함몰되어 국가와 국민을 반으로 가르는 행위를 결코 교회가 주도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교회는 총선의 여파로 나뉘어진 틈을 메꾸고,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는 화합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만세 함성이 퍼지는 3.1절의 아침에도 ‘이승만의 위대한 민주주의 건국’과 ‘김구의 치열했던 독립투쟁’이 양립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곱씹으며, 지금 우리가 ‘3.1정신’의 하나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 지 차분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3-0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