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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언론은 권리만 있고, 책무는 없는가? ’
    최근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 가운데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시킬 수 없다고 하여 시끄러웠다. 이에 대하여 MBC와 언론 단체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대통령실에서 그런 조치를 내렸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MBC의 제3노조가 발표한 성명에 보면, 왜 MBC가 그런 조치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제3노조가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MBC는 얼마 전 대통령이 미국을 순방할 때 사석 발언을 타사 기자들에게 알렸고, 또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자막에까지 넣어 방송하였다. 그리고 특파원들이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의원들을 욕을 했다고 백악관과 국무성에도 알렸다. 그리고 전에도 MBC가 보도한 행태를 지적했는데,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손혜원 의원 투기 의혹 보도를 미적거렸고, 조국 법무부장관 의혹에 침묵했고, 울산시장 관권 선거 의혹을 사실상 은폐했고, 똑같은 총선용 비례대표정당을 민주당에는 ‘의병정당’으로, 야당에는 ‘위성정당’이라 불렀고, 천문학적 피해를 일으킨 라임 펀드와 옵티머스 자산운용 사건을 축소 보도하였고, 대장동 비리 의혹을 외면하다 유00로 꼬리를 자르려 한 의혹을 받았고, 공수처의 전방위 통신사찰에 대하여 침묵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 3월 대선 100일간 선거 기간에는 단 하루도 예외 없이 편파 보도를 하면서, 윤석열 후보 인터뷰를 방송하면서 ‘거짓말’이라는 노래를 틀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MBC는 편파 보도에 대하여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로는 진영을 뛰어 넘는 언론노조가 되자고 하면서, 지난 2017년 MBC의 비민주노총 기자 88명이 기자 업무를 빼앗길 때 침묵했다고 꼬집는다. 그렇기 때문에 ‘MBC 구성원들은 지금이라도 특정 정당의 선전도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언론의 본모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자유를 주장할 자격이 생긴다’고 피끓는 호소를 하고 있다. 흔히 MBC를 ‘노영방송’(勞營放送)이라고 한다, 노조(勞組)에 의하여 움직이는 방송이요, 언론이라는 것이다. MBC는 과거 2007년 5월 노무현 정부가 정부의 37개 부처 기자실을 3곳으로 통•폐합하여 언론에 대못을 박았고, 기자들도 허가 없이 공무원을 만나지 못하게 할 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확연하게 편파, 왜곡 보도를 하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대통령실의 국익을 위한 조치에는 한껏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MBC의 불공정 보도를 우려하고 비판하는 일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MBC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이미 잃어버렸는데도, 그에 대한 반성은 없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아주 빈약하다. MBC의 이런 태도에 보조를 맞춘 것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언론들이 있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등록된 우리나라 언론은 총 5,154개(일간전국종합신문 23개, 일간지역종합신문 124개, 경제일간신문 13개, 스포츠일간신문 6개, 일간외국어신문 2개, 기타전문일간신문 55개, 무료일간신문 1개, 전국종합주간신문 33개, 지역종합주간신문 554개, 전문주간신문 673개, 공영방송 19개, 민영방송 12개, 종교특수방송 8개, 종편보도채널방송 6개, 지상파 DMB 3개, 인터넷언론 3,594개, 통신사 28개)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만도 62,806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언론들이 있는데, 이제는 편파, 왜곡을 일삼는 MBC 방송의 영향력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이에 즈음하여 사회 일각에서는 MBC 폐방 운동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언론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어지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언론의 역할과 영향은 지대하다. 그만큼 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할 경우, 돌이키기 어려운 폐해를 사회와 국가와 국민들에게 끼치게 된다. 자신들은 공정한 방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언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형성시키고, 더 나아가 국익을 손상시켜 국민들을 피로감에 시달리게 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공허하고 허탄한 소리인가? 언론은 권리만 있고, 책임과 의무는 없다는 것인가? 남을 비판하고 사회적 부정과 부패를 찾아내고 알리는 언론이야말로, 가장 공정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자리에 있어야 그 일들이 인정을 받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맞다. 그런 측면에서 기독교계 언론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흔히 말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거기에다 선교적 사명까지 감당해야 한다. 교회연합신문이 창간기념일을 맞는다. 축하드리며, 지금까지도 어렵게 교회의 현장을 지키면서 기독교 언론 역사를 만들어 왔지만, 앞으로도 한국교회를 지키는 보루(堡壘)의 역할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2-11-19
  • [기자수첩] 양심에 화인 맞은 한기총의 '꾼'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한기총의 임시 체제가 오랜 기간 지속되며, 대표회장 선출을 위한 총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연합기관 통합 결의에 따른 임시총회의 조치로 쉽사리 새 총회를 열지 못하는 임원회의 속사정은 이해하나, 그렇다고 2년 넘게 계속되어온 임시체제에 대한 불만 역시 충분한 설득력이 있어 조만간 모두를 위한 새로운 결단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다만 문제는 혼란 중에 본색을 드러낸 소위 '꾼'들의 난립이다. 겉으로는 한기총의 정상화를 부르짖으며, 뒤로는 자신의 잇속을 먼저 탐내는 이들 '꾼'들이 오히려 한기총의 정상화를 가로 막는 주범이 되고 있다. 특히 현 임원진에 반발해 세워진 한 비상 조직은 그야말로 '꾼' 정치의 정점을 찍고 있다. 각각 나뉘어진 정치적 진영에 양다리, 세다리를 걸치며, 매일 자신의 살 곳을 옮겨 다니고 있는 이들이 이 조직에 모여 스스로를 한기총의 양심이라 자랑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보인다. 어제 자신들이 속한 진영에서 함께 비난하고, 욕을 토해냈던 상대에게 오늘은 뒤로 몰래 손 내밀며 아부하는 모습은 자신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상황에 맞춰 배신 가능한 인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양심이 화인 맞아 불타 없어진 양, 스스로 행한 일조차 남의 탓으로만 몰아가는 후안무치적 행태는 왜 이들이 '꾼'이 될 수 밖에 없는지를 나타낸다. 최근 한기총의 가장 큰 이슈인 '경매 사태'를 비난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임대료 체납이 시작됐던 당시부터 현재까지 주요 임원진으로서 한기총을 직접 운영해 온 당사자였다. 사무총장, 공동회장, 서기, 각 위원장까지 섭렵하며, 한기총의 주요 요직에 있는 동안 이들은 매월 쌓여가던 임대료 체납 문제를 모른 채 방치했었다. 한기총의 최고 조직인 임원진으로서 방치했었던 일들을 이제와 뒤늦게 몇몇에게만 책임을 몰아가는 것을 과연 정당하다 할 수 있는가? 심지어 체납이 시작된 당시의 사무총장과 근 수 개월 전까지 임원을 맡았던 인물들이 이러한 비난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늘상 자신들이 한기총을 지키고, 수호했던 진정한 ‘주인’들이라 자처했던 이들이, 정작 한기총의 위기 앞에서는 남의 집 불타는 것 바라보며 그저 궁시렁대는 무지렁이 ‘객’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이들 중 그 누구도 이번 경매 위기에서 단돈 1만원도 내놓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한기총이 처한 진짜 위기가 무엇인지를 반증하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11-15
  • [기자수첩] 이건희 회장과 소강석 목사, 그들은 왜 변화를 말했나?
    "마누라 자식 빼곤 다 바꿔라" -고 이건희 회장- "변화해야 할 것에는 빨리 순응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소중하게 지켜라" -소강석 목사- 현대사회의 최대 재앙으로까지 꼽혔던 코로나 펜데믹이 지난 3년의 광포한 시간을 뒤로한 채 서서히 막을 내려 가고 있다. 서로의 얼굴을 가렸던 마스크가 점차 사라지고, 가다서다를 반복했던 학교와 직장의 일상은 이제 대부분 정상으로 회귀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모습은 여전히 혼란하기 그지없다. 마치 코로나의 후폭풍이 교회에만 매섭게 잔존하는 듯, 한국교회의 코로나는 여전히 'Ing'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교회 스스로를 향해 냉철한 비판을 요구하고 있다. 왜 한국교회의 코로나는 끝나지 않고 있는가? 무엇이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나약하게 만든 것인가? 한국교회의 가장 큰 패착은 변화에 대한 실패다. 70~80년대 기적과도 같은 부흥을 겪은 한국교회는 그때의 감흥을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교회가 가장 부흥했던 그때의 모습을 교회의 모범으로 정형화 시킨 점이다. 한국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뒤쳐질 수 밖에 없던 것은 '변화' 자체를 스스로 정한 '모범'에서 벗어난 반교회적 사고로 규정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결국 한국교회를 매우 약하게 만들었다. 자그마한 물결에도 흔들리는 조각배가 되어, 막막한 망망대해 위에서 불안한 항해를 계속해 왔다. 변화를 거부하며 위기대응능력을 전혀 키우지 못한 한국교회에 있어 코로나 펜데믹이 집채만한 해일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다. 1517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모습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변화해 왔다. 장로교회의 핵심인 개혁(Reformed)은 바로 온전한 변화에서 출발한다. 개혁을 거부하고 변화를 멈추는 교회는 결코 온전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 새에덴교회의 모습은 교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코로나 초기 방역 대응부터 예배 대처, 지역사회와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차별화된 선진성을 보여줬다. 여기에 최근에는 엔데믹 시대에 걸맞는 시스템, 엔데믹의 이후를 대비한 목회 전략 등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관심을 받고 있다. 새에덴교회의 돋보이는 위기대처 비결의 바탕에는 '변화'에 주저하지 않았던 개혁정신이 있었다. 끊임없이 갈고 닦은 변화를 통해 갖춘 '기본기'는 지난 3년 간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를 가능케 했고, 변화가 곧 힘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군 고 이건희 회장과 새에덴교회의 소강석 목사는 개혁에 대한 공통적 시각을 견지한다. 지킬 것은 철저히 지키되 바꿀 것은 결코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대적 비전이다. 이러한 그들의 추진력은 세계 최고의 기업 '삼성'을 만들었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모델이 된 '새에덴교회'를 있게 했다. 지난 코로나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교회의 모범적 모습에 대한 새로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당연한 정답들이 때로는 시대에 뒤처진 케케묵은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변화의 출발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10-26
  • [기자수첩] 그들은 왜 소강석 목사를 공격하는가?
    저급한 정치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자칭 기독교인들 "새에덴교회 소강석이가 목사들 집합하여 성경 세미나한다는 명목하에 목회자 천명 모여 1인당 100만원씩 나눠주는 댓가로 광화문 윤석열대통령퇴진 외치는 촛불집회 모이도록 하였다고 하니 큰일입니다" 새에덴교회를 향한 도를 넘는 악의적 비방이 최근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되며, 교계 전체를 경악케 하고 있다. 새에덴교회가 광화문 촛불집회의 배후에 있다는 뜬금없는 억측인데, 'X눈에는 X만 보인다더니···' 몰지각한 일부 기독교인들의 저급한 정치질에 한국교회의 애먼 이미지만 또다시 추락하고 있다. 새에덴교회는 지난 20일 미자립교회 목회자 1,200여명을 초청해 엔데믹 시대의 교회 회복 노하우를 공유하는 ‘2023 목회, Restart 컨퍼런스’를 개최한 바 있다. 특히 이 자리에서 미자립교회 500곳에 각 100만원의 회복 지원금이 전달됐는데, 일부 극성 정치 추종자들이 이를두고 허위 악성루머를 퍼뜨리고 있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엔데믹 시대의 교회 회복', 새에덴교회와 소강석 목사는 이를 위한 철저한 섬김의 역할일 뿐, 그 이상의 어떠한 목적도 이유도 없었다. 당연히 정치적 의도나 그 이상의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이날 행사를 온종일 직접 취재하며 목도한 증인으로서, 결백(?)을 굳이 증언치 않는 것은 의도된 거짓에 해명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루머', 사실상 범죄에 가까운 ‘허위사실 유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저 코로나로 피해입은 미자립교회를 돕고자하는 순수한 섬김까지도 왜곡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노림수는 무엇인가? 사실 새에덴교회의 미자립교회 지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새에덴교회는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번 세미나는 미자립교회를 상대로 한 세번째 섬김 시간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100만원씩 600곳을 지원키도 했었다. 소강석 목사는 예장합동측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을 거쳐, 한국교회의 대표 지도자로 올라선 뒤, 줄곧 극단적 정치권의 타겟이 되어왔다. 온갖 추문과 허위사실, 왜곡과 편집은 이름만 같은 그들만의 ‘소강석’을 만들어냈다. 현장예배 수호와 포괄적차별금지법 저지를 위해 한국교회 최일선에서 정부와 진보 정치권의 횡포를 모두 막아낸 그를 ‘좌파’로 못박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설명 못할 아이러니일 것이다. 결국 극단적인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에덴교회와 소강석 이란 이름의 유명세였던 듯 보인다. 자타공인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소강석’이란 이름을 언급함으로서 받게 되는 관심과 신뢰는 그들 스스로는 결코 얻지 못할 결과물이며, 소 목사에 맞서는 듯한 그들만의 퍼포먼스는 자신들 역시 그와 동급의 인물로 인식케 하는 효과가 있다. ‘관종’(관심종자)이 판치는 정치에 더 이상 계파간의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구나 그러한 저급한 정치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자칭 기독교인들의 행태는 ‘관종’보다도 못한 비열함을 전제한다. 지난 3월 대선 이후,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정치판은 더욱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기독교의 정치 참여를 굳이 논하지 않아도, 기독교인의 정치적 성향을 딱히 규정짓지 않아도, 최소한 교회가 이 더러운 정치판의 하수인은 되지 말아야 한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10-25
  • [토요시평] 임영천 목사의 ‘피난처’와 ‘안네의 일기’의 나라
    요즘 우연한 기회에 네덜란드(화란)의 역사를 좀 들춰보는 일이 있게 되었다. 아니,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상호 ‘침략과 방어’의 역사에 더 관심이 갔기 때문에 지난 16세기 전후의 네덜란드 역사를 그 관점에서 주로 살펴보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스페인의 군주는 펠리페 2세였는데, 그는 특히 가톨릭 옹호자로 이름을 날렸고, 그 때문에 반(反)종교개혁 운동가로서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칼뱅주의 개혁의 바람이 크게 불어 닥침으로써 결국 개신교(개혁 교회)가 강화돼버린 네덜란드를 그대로 놔둘 수가 없다고 판단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어떤 강경책을 써서라도 네덜란드를 스페인처럼 획일적인 가톨릭 국가로 만들 방책으로 ‘스페인 식 종교재판소’를 네덜란드에도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자국 스페인과 이웃 포르투갈에 이 종교재판소를 설치하여 가톨릭 강화(획일화)에 크게 득을 보았던 스페인의 군주는 네덜란드에도 그 종교재판소를 두어 가톨릭 일원화를 획책하려고 하였다. 이 스페인 식 종교재판소가 어떤 기관이었는지 이미 정평이 나 있어서 그 악명을 귀로 듣기만 해도 사람들이 소름 끼칠 정도였는데, 종교 면에서 자유와 관용을 사랑하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이 소식은 마치 푸른 하늘에 날벼락(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19세기 후반에 창작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최후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 속의 ‘대심문관 이야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이야기에서 보듯이,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내려오신 때는 종교재판소의 ‘엄한 화형(火刑)의 뜰’에서 100여 명에 가까운 이단자들이 대심문관인 주교의 지휘 아래 대거 분형(화형)에 처해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 이야기는 15세기 스페인의 도시 세비야, 그러니까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성취되기 직전 시기에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한 도시에서 있었던 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때는 속칭 이단자들에 맞서 교황이 시작한 이를테면 고전적인 종교재판의 성격이 강했지만, 그 재판이 스페인이란 나라에서 그들의 특성에 맞게 발전해(?) 나간, 즉 15세기 후반(1478)부터 스페인에서 시작된 ‘스페인 식 종교재판’이란 것은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 스페인 식 종교재판이란 것은 유대교에서 가톨릭교로 개종을 했다곤 하지만 진심으로 개종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유대인들을 심사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다. 악명 높은 이 재판에서는 정치경찰과 정보원들의 활약에 힘입어, 사실을 그대로 자백하라고 유대인들을 고문하는 일은 다반사였고, 또한 무슨 법적 테두리에 구애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년 뒤 소위 알함브라 칙령(1492)이 발표되고 난 후 유대인들에게 상황은 더 악화되어 갔다. 스페인 정부는 유대인들이 가톨릭교로 개종하는 걸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아예 스페인에서 “모두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4개월 안으로 떠나라는 칙령에 의해, 지금껏 개종을 거부하고 이제야 추방령을 수용한 17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갑자기 그 나라를 떠나면서 질병과 아사(餓死) 등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런 무자비한 스페인 정부가 이제는 네덜란드마저 가톨릭 획일 국가로 만들기 위해 종교재판소를 설치하겠다고 나오자 지금껏 지배국 스페인에 대하여 순종적이기만 했던 네덜란드가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성상파괴운동(1566)을 시발로 해서 터진 저항운동은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 양상의 무장투쟁으로 확대되었고, 북부 의 도시 레이덴에서 맞붙은 양군(兩軍)의 전투(1574)는 그들의 생명줄인 제방을 허물어 물바다를 만들며 결사 항전한 네덜란드 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네덜란드인들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란 원칙에 따라 그들의 종교(개혁교회)를 그대로 지켜나갈 수 있었고, 특히 유대인들과 같은 수난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17세기의 황금시대를 열 수도 있었다. 그러나 1940년 독일 나치 군의 침략을 받아 자기네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영입한 유대인들마저 극도의 박해를 받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일은 그들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수난의 유대인들을 도운 코리 텐 붐 일가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신앙수기 <피난처>가 이 나라에서 나오게 된 것은 큰 축복이었고, 또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와 그 가족의 고통스런 삶이 기록된 <안네의 일기>마저 이 나라에서 탄생하게 된 일은 더 큰 축복이었다. 유대인들이 최후의 피난처로 삼았던 이 관용의 나라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결과는 결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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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2022-10-22
  • [기자수첩] 교계 대통합 꿈 “아직 끝나지 않았다”
    2년 전 소강석 목사의 외침에 모두 아니라 했지만··· 9부능선 넘어 각 단체 자존심 내려놓고, 오직 ‘한국교회’에 집중해야 주변의 많은 관심과 기대가 집중됐던 각 교단 9월 총회가 지나고, 이제 다시 교계의 시선은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향하고 있다. 연합기관 대통합이라는 한국교회의 크나큰 숙원이 올해 안에 반드시 이뤄지길 바라는 기대가 서서히 고개를 드는 것인데, 9부 능선 언저리에서 마지막 방점을 찍지 못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모습이 다소 답답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 자체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깝다. 2년 전 소강석 목사가 연합기관 대통합을 선포할 당시만 해도 교계의 시선은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보수 연합운동이 분열한 지난 십수년 동안 일일이 세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통합 시도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느순간 ‘통합’이라는 주제를 자기 단체의 존립 정당성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며, ‘통합’이란 단어의 신뢰는 추락했고, 그 무게는 심히 가벼워지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 등장한 소강석 목사의 대통합 프로젝트가 그리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대부분 그럴듯한 구호만 외치다, 몇 개월 내 사그러들 것이라며, 그저 스쳐가는 바람인양 이를 지켜봤던게 사실이다. 통합의 당사자 및 지도자들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은 매 한가지다. 어차피 되지 않은 ‘통합’, 굳이 에너지를 낭비해 가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해(害)통합’의 화살만 피하겠다는 구색맞추기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합 프로젝트는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 한교총은 소 목사가 대표회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통합추진위원회를 발족해 ‘기본합의 –> 상세합의-> 임시총회 –> 통합총회 –> 정기총회’로 이어지는 통합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고, 실제 한기총과 기본합의에 이어 상세합의까지 이뤄냈다. 결정적으로 한기총이 지난 6월 임시총회를 통해 ‘상세합의서’를 최종 추인한 것은 연합기관 관계자들조차 놀란 결과였다. 이제 한교총의 ‘임시총회’만 거친다면, 말 그대로 통합총회를 목전에 둔 상황, 9부 능선을 넘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지금 답보상태처럼 보이는 연합기관의 통합 논의를 보면서, 일부 교계는 다시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통합’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며 발생하는 단체 내부의 혼란을 마치 통합의 부작용인 듯 비판하기도 한다. 허나 냉정히 볼 때, 지금 교계 연합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뜨거운 순간이다.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여전히 살아있고, 실제 그에 부합할 결과가 우리 눈 앞에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실망하거나 비판할 이유는 전혀 없다. 애초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통합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대부분이 외면했고, 방해키도 했다. 오히려 그 모두를 이겨내고 이룬 이만큼의 성과는 차라리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는 편이 옳을 지경이다. 허나 그렇기에 아직 넘지 못한 마지막 능선이 너무도 간절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밟고 있는 9부능선의 고지조차 단 한 번도 경험치 못한 곳, 어쩌면 이대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분명한 확신을 주고 있다. 연합기관 내부의 혼란에 굳이 심각해질 필요도 없다. 분열 이후 연합기관들이 달리 평온한 적도 없었지만, ‘통합’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겪는 시련이라면 그 가치는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 번데기의 모습이 아무리 흉하다 하여도 이를 거치지 않고 하늘로 날 수 있는 나비는 없기 때문이다. 가수 고 신해철 씨의 ‘민물장어의 꿈’이란 곡에 이런 구절이 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지금 우리가 도달해야 할 ‘대통합’이라는 문은 각각 덩치만 커진 연합기관들이 한 번에 통과하기에 결코 크지 않다. 각자가 스스로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질 때, 함께 손을 붙잡고 마지막 고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확실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된 한국교회에 갖고 들어갈 자존심은 없다는 사실이다. 나를 버리고, 스스로를 내려 놓을 때, 한국교회는 산다. 그것이 이번 연합기관 대통합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한 핵심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10-04
  • [사설] 사명자의 정계성
    정계성(定界性)이란 일정한 한계 또는 정해진 경계를 뜻한다. 정해진 선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적 규범을 말하는 것이다. 신명기 34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40여년 간 광야로 인도한 지도자 모세가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그 백성을 남겨 둔 채 느보산에 올라 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느보산은 모압 평지 뒷산이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가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세니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라고 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사고를 당했거나, 병들었거나, 늙어 수명이 다했거나 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모세는 사고를 당한 것도, 병든 것도, 늙어 수명을 다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제 요단만 건너면 하나님이 그토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모세가 그토록 들어가고자 했던 가나안 땅이 있는데, 모세는 자기 발로 걸어서 올라간 느보산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신 32:52)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서 죽었다. 이것이 사명자의 정계성이다. 하나님께서 '너는 여기까지만' 이라고 한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정계성을 깨닫지 못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망친 사명자들이 많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요단강을 건넜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마도 모세나 그 아들들이 중심이 된 세습왕국이 건설되고,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역사에서 설 자리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 후 모세의 아들들이나, 여호수아의 아들들에게 특별한 우대를 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물질과 명예와 교권에 눈이 멀어 '너는 여기까지만'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버티다 교회도 망치고, 자신의 명예도 잃는 사명자들이 있다. 이것은 비단 교계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국가나 사회 전반의 지도자들에게도 이 정계성이 필요하다. 모세는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을 눈 앞에 건너다보면서 느보산에서 죽었지만, 그는 영원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사명자는 그 정계성을 지키는 한, 내가 가진 꿈과 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실패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9-27
  • [사설] 기독교계 인권운동 단체들의 침묵
    인권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잔인한 비인권국가로 매도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 두 사건은 명백히 인권 문제와 관련된 사건임에도, 여야 정치권은 이를 놓고 같은 증거를 두고도 전혀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매일 터지는 언론 보도도 여야가 다르게 해석한다. 그런데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정치권의 서로 다른 소리보다, NCC를 비롯한 기독교계의 인권운동 단체들이 이같이 심각한 인권과 관련된 국민의 의혹에 일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여야 정치권의 이 논쟁을 보면서 심각한 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귀순 진정성이 의심되어 북송했다는데, 눈이 가려지고 손이 포승에 묶인 채 판문점으로 강제로 끌려가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진들은 무엇인가? 이는 당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철저히 속인 사건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계 인권단체들은 구 정부쪽이든, 신 정부쪽이든 최소한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국민들의 이 의심에 대해 명백히 밝히라는 요구만이라도 해야 옳다. 그것이 우리사회의 책임있는 주류 종교단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독교계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또 어떤 연유에서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이 중대한 인권 문제에도 침묵한다면 교계연합단체들이나 각 교단 인권운동기관들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아무런 구실도 못하면서 무슨 인권위원회니 하는 명함만 들고 다니며 예산만 낭비할 바에야 해체함이 마땅하다. 특히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그냥 뭉개고 간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닌듯하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흉악범' 둘을 송환한 것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 매우 민감한 국제적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9-27
  • [사설] 우리사회에서의 기독교의 위치
    오늘날 우리사회를 다종교사회라고 한다. 다종교사회란 사회적으로 대표성을 가질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을 공급하는 종교가 여럿이라는 뜻이다. 정부 정책상 소위 '전통종교'라고 불리는 불교가 있고, 또 '전통문화'라고 불리는 유교가 있으며, 그리고 천주교와 기독교가 있다. 이 넷은 그 사회적 영향력이 엇비슷하다. 그래서 한국의 종교학자들이 우리사회를 다종교사회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지금 우리사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기독교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여타 종교에 비해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는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당 수가 6만 개, 전임 목회자가 16만명, 신도가 1천만명에 이르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도덕성과 가치관이 형성되어서야 옳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사회의 지성인들이 정신적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고, 정치적으로 사회가 혼돈에 빠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기독교인들이 주로 이 사회를 주도하는 각 영역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신앙행위에 있어서는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가족과 집안이 만사형통 하고, 또 소시민적 기복성에 만족감을 갖는 것으로 기독교인 행세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명 없는 복제신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는 나는 좀 힘들더라도 이 땅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리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예수 안에 있는 개인이 복을 받고, 만사형통 하게 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과 그 사회에 더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삶은 그 우선 순위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사회의 소시민들은 기독교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21세기의 한국교회가 아직도 기복주의나 개인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은 한국기독교의 미래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9-27
  • [연지골] 동방 교부 아타나시우스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교회 역사에서 니케아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언제나 'the Great'라는 칭호가 붙어 다닌다. 그리고 그는 훗날 '정통신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아타나시우스는 297년경 이집트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랐다.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Alexander)는 소년 아타나시우스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그를 데려다 가르쳤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비서로 삼고 얼마 후 교회의 집사(부제)로 임명했다. 아타나시우스는 고전과 성경, 교부들의 저서들을 공부하면서 금욕자로 생활했다. △로마의 박해 아래 있던 교회는 313년 콘스탄티누스로부터 로마의 ‘합법적 종교’로 인정받아 박해시대가 끝나고, 그리스도론에 대한 견해가 갈라져 있던 교회는 전체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교회회의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니케아에 제1차 세계기독교공의회를 소집했다. 이때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더 감독을 보좌하는 집사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 회의를 지켜보던 아타나시우스는 회의장에서 아리우스주의를 논박하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옹호하는 열정과 지성을 드러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후 장로가 되었다가 328년에 임종을 앞둔 알렉산더 감독의 천거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으로 지명되었다. △325년 니케아에서 아타나시우스의 ‘동일본질’파가 정통신앙이 되고, 아리우스의 ‘유사본질’파는 이단이 되었음에도, 당시에는 아직도 아리우스파가 황실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설득하여 아리우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유배지에서 돌아오도록 했다. 이제는 그들의 공격으로 오히려 아타나시우스가 면직과 추방에 거듭 처해졌다. 첫 번째 유배생활은 트레브에서, 두 번째는 로마에서, 세 번째는 이집트 사막에서 수사들과 함께 보냈다. 황제 율리아누스는 추방된 주교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아타나시우스가 다시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네 번째 다시 이집트로 추방되었다. 362년 율리아누스가 죽자 후임 황제 요비아누스에 의해 다시 교구로 돌아왔으나, 얼마 안가 요비아누스가 죽고 아리우스주의자인 황제 발렌스가 즉위하자 367년에 다섯 번째 다시 추방됐다. 그의 유배생활은 모두 20년이나 되었다. △그는 기독교 정통신앙의 옹호자였지만, 수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아 20년 간의 유배를 견디고, 마침내 373년에 76세의 나이로 아직 아리우스주의와의 투쟁의 종결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교구에서 눈을 감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를 향해 다신론자들, 무신론자들, 거짓말쟁이들, 개새끼들, 이리들, 적그리스도들, 마귀들이라고 불렀다. 교회는 정통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적들로부터는 그토록 심한 증오를 받았고, 그를 지지하는 신도들로부터는 그토록 큰 사랑을 받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 “위대한 계몽자” “하나님의 교회의 모퉁이돌”이라고 칭송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기독교 변증서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니케아 신앙에 대한 교의서로서 '수사들에게 보내는 아리우스파의 역사', 금욕주의를 강조한 '성 나토나우스의 생애'가 있고, '시편 주석'을 비롯한 수많은 편지와 글들이 있다.
    • 연지골
    • 연지골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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