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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한국교회 진정으로 연합되기를’
    최근 교계에서는 세 개의 연합 단체들이 하나로 되기 위한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본래 세 개의 단체들은 하나였다. 1980년대 고 한경직 목사님을 중심으로 복음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로 하나의 단체였는데, 수년 전에 분열하여 지금의 세 개 단체가 된 것이다. 한국 교계를 보면, 분열하기는 쉬운데 연합하고 통합하기는 쉽지 않다. 교단들도 여러 개가 하나로 뭉쳤다가도 어떤 연유로 다시 분열하는 경우들이 있다. 하나로 뭉친다는 것이 상업광고(廣告)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힘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고 하신다. 그 하나 됨을 깨는 사람이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거치면서 장로교 교단들이 분열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를 거치면서는 교단의 숫자를 다 헤아리기조차 어렵게 나뉘어졌다. 교단들이 분열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으나, 실제적으로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교리나 신학적인 차이로 인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주로 헤게모니(Hegemonie) 싸움이었다고 본다. 누가 큰 세력을 갖느냐, 누가 교권을 차지하느냐의 지루한 분열이었다. 연합 단체도 이런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 한기총이 구심점을 잃더니, 여러 개로 쪼개지고 말았다. 이에 대하여 수년 전부터 연합 단체를 합동한다는 소문과, 로드맵도 나오는 듯 했지만, 실상은 결혼하고 싶지 않은 처녀·총각이 맞선보는 자리에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처럼 열매를 맺지 못했다. 마음은 있으나 결단이 없으니, 지지부진하여 지금까지 온 것이다. 이제라도 진정으로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분열하는 양태였지만, 이제는 복음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물론 연합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것은 인정하고, 먼저 정리해야 한다. 어찌 맞선 보는 자리에 목욕도 하지 않고 나오겠는가? 그리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성경에 보면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열렸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의 할례와 그들의 구원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안디옥교회나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이나 욕심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난다. 거기에 충실하면 된다. 한국교회가 분열됨으로 여러 가지 손해된 일도 있었다. 일례로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 정국에서 한국교회는 가장 소중하고 근본적인 예배 문제에 있어서도 혼선을 빚었다. 어느 연합 단체는 비대면 예배를 주장하고, 다른 단체는 대면 예배를 강조하였다. 적어도 한국교회가 예배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야 했다. 그런데 분열되어 있다 보니, 목소리도 달랐다. 또 정부와의 문제나, 언론과의 문제, 그리고 사회 전반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복음적인 마음을 담아 같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한국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물리적으로 하나만 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연합 정신에, 형제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편지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2~4)고 하신다. 연합 단체는 대외적인 일들도 효과적으로 잘해야 되지만,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여러 개의 연합 단체를 하나로 묶는 물리적인 것만큼 중요한 것이, 형제에 대한 격려이다. 히브리서에서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10:24)라고 하신다. 분열하고 나뉘는 과정에는 반드시 상처와 아픔이 있다. 이것이 먼저 치유되면 좋겠다. 격려하고 섬기는 마음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지금 하나됨의 중심에 서 있는 분들로부터 이런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이제는 분열이 아닌, 하나됨을 통하여 한국교회를 세워갔으면 좋겠다. 하나된 믿음을 통하여 주님 나라를 확장하고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회 속에서 본과 덕이 됨으로, 복음의 지경을 더욱 넓혀가는 소망스런 일들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한국교회 진정으로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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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2021-11-21
  • [사설] 한국기독교의 우파와 좌파
    지금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 크게 ‘극우파 세력’과 ‘보수 세력’, ‘종북좌파 세력’과 ‘진보 세력’이라는 네 가지 정치적 색깔을 가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우파와 보수를 한데 묶어 ‘우파’라 부르고, 종북좌파와 진보를 한데 묶어 ‘좌파’라 부른다. 그러나 극우와 보수, 또는 종북과 진보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파를 ‘보수 세력’이라 하고, 좌파를 ‘진보 세력’이라고 한다. 정당도 좌파는 오랜 집권을 해온 보수 세력을 '타락한 극우파'로 보고 척결대상으로 삼고, 또 우파는 현 집권 여당인 진보 세력을 '종북좌파'로 보고 척결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기독교는 해방 후 정치권의 좌우(左右) 논쟁과 북한지역의 공산화 그리고 6·25 전쟁을 통한 좌파의 기독교에 대한 악랄한 적대감을 체험했다. 공산주의자들인 좌파는 기독교를 반혁명집단으로 보고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혁명인사로 몰아 처형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좌파 공산주의운동을 모두 반기독교운동으로 본다. 따라서 자연히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우파 자본주의를 친기독교 세력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사회는 우파는 극우파와 보수파로 나누이고, 좌파는 종북좌파와 진보파로 나누인다. 그런데 한국기독교 안에는 소수이지만, 극우파도 있고, 종북좌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건전한 보수파거나 건강한 진보파이다. 이 둘이 두 바퀴처럼 교회와 사회를 이끌고 있다. 우리사회는 종교적으로 ‘동불서기(東佛西基)’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은 대체로 보수적인 불교가, 서쪽은 대체로 진보적인 기독교가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으로도 동쪽 영남지역은 보수 세력이 강하고, 서쪽 호남지역은 진보 세력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극우파들의 선동적 주장처럼 한국사회가 오래지 않아 종북좌파에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호남지역에 교회가 버티고 있는 한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기독교는 사회변화를 원하는 진보는 될지언정, 교회를 파괴하려는 종북좌파는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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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11-14
  • [사설] 닮은 꼴: 100년전 중국의 ‘비기독교운동’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2년, 중국에서는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비기독교운동’(非基督敎運動)이란 것이다. 그 뜻은 기독교가 하는 짓은 다 틀렸고, 기독교는 못된 짓을 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운동은 먼저 베이징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이 시작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적 힘을 실은 것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좌파들이었다. 가장 열심을 낸 조직은 ‘공청단’ (共靑團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이었다. 이들은 “기독교인 한 명 늘어나면, 중국인이 한 명 줄어든다”며, 중국에서 기독교가 계속 전파되면 국가도 망하고 민족도 망한다고 선동했다. 그래서 국민당 정부가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학교에서 기독교를 추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1922년부터 소위 ‘교육권의 환수’라는 명분을 내세워 교회가 설립한 모든 미션스쿨에서 교회를 추방하고 교육부가 직접 관할토록 조치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에 관한 필수 수업을 개설할 수 없고, 선생과 학생들에게 예배 참석 의무를 폐지했다. 그리고 이어 소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철저하게 기독교를 추방하였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종교교육으로서 선택과목이나 과외활동으로서만 기독교를 인정했다. 학교에서 교회를 축출하는 이 교육권 환수운동은 1927년 5년만에 완수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비기독교운동’과 ‘교육권 환수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반기독교세력이 모두 기독교 학교 출신들이었다. 당시 유명한 기독교 학교들이 앞장서 정부가 학교를 환수하고 서양선교사들을 축출하라고 촉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때는 아직 중국이 공산화 되기 전이었다. ◇딱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의 미션스쿨이 바로 이 같은 위기에 처했다. 좌파들은 기독교가 학교교육에 개입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학생들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미션스쿨의 본 설립 목적인 구성원의 예배의 참석과 성경공부를 거부한다. 그로 인해 예배와 성경공부가 사라진 미션스쿨은 전교조가 장악한 지 오래이다. 좌파정부는 이 마저도 숨통을 끊으려는 ‘사립학교법’을 순차적으로 개정해 가고 있다.
    • 연지골
    • 사설
    2021-11-14
  • [기자수첩] 진실을 외면한 비판은 폭력이다 #소강석 목사 #정부 #사과
    이쯤되면, 애초부터 진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듯 보인다. 그저 잘못된 오해나, 가짜뉴스에 의한 헤프닝일 것이라 생각했던 사건이 어느 순간 맹목적인 비판으로 흘러가고 있는 모양새다.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진하며, 수면 위로 드러난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자기합리화는 지금 이 상황을 매우 지저분한 밑바닥으로 이끌고 있다. “소강석 목사는 한국교회가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모 단체의 대표인 한 원로 목회자의 발언, 그리고 이를 미끼로 대중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 단체 소속의 일부 목회자들, 이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바로 ‘정부’와 ‘사과’였다. 허나 소 목사는 애초 ‘정부’란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엄밀히 ‘사과’를 직접 입에 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를 바로 잡을 틈 없이, 해당 발언은 완전한 사실이 되어 세간에 일파만파 퍼져 나갔고, 이를 접한 대중들의 분노는 다시 고스란히 소 목사로 향했다. 자연스레 ‘진실게임’ 양상으로 접어든 이 사건에서 다행히 당사자인 원로 목회자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적극적인 유감을 표했지만, 문제는 그 주변인들이었다. 소 목사를 위해 해명방송까지 하겠다는 대표의 입장조차 무시한 채, 여전히 해당 발언이 사실임을 주장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결국 보다못한 교계 언론들까지 나섰다. 문제의 발언 자체가 지난해 말 예장합동측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나왔다기에, 당시 자리에 참석한 언론들이 스스로 그때 상황을 증언하고 나선 것이다. 기자회견 현장에서 이를 직접 목격한 목격자들의 증언과 팩트 체크, 더 이상 이보다 정확한 진실은 없을 것이기에, 매우 이례적이지만, 언론들의 증언은 불필요한 분란 해소에 분명 도움이 될 듯 보였다. 하지만 며칠 후, 올라온 한 목회자의 반박 영상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애초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문제 삼았던 상황에서, 기자들의 증언이 이어지자, 말을 슬그머니 바꿔 사과를 한 것 자체가 문제이지, 그 대상은 전혀 중요치 않다는 듯 말한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소 목사는 사과란 말은 한 적이 없지만, 발언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사과였고, 특히 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든 정부에게 사과하든 사과해야 한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애초에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모 단체 대표인 원로 목회자는 “소강석 목사가 한국교회가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이 비판의 핵심은 바로 ‘정부’였다. 하지만 ‘정부’란 단어가 완전한 거짓으로 밝혀지자, 이제는 소 목사의 발언을 “국민에게 사과하든 정부에게 사과하든 사과해야 한다”로 새롭게 꾸며내며, 자신들의 거짓을 감추려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진실이 드러난 상황에, 억지로 이어가는 비판은 무리일 수 밖에 없다. 그의 논리를 축약하면, 한국교회는 코로나 사태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 -> 잘못하지 않았으니 국민에게 사과해서는 안된다 -> 소강석 목사와 한교총은 국민들에 사과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말리지 않았다 -> 이를 말리지 않아 한국교회가 코로나 발원지로 인식됐다 한국교회가 국민에게 사과를 함으로써,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꼴이 되고, 이로인해 한국교회가 코로나 발원지가 됐다는 논리인데, 이러한 발상 자체가 매우 놀라울 지경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국민들에 대한 사과에 매우 적극적인 종교다. 어쩌면 단 한 순간도 국민들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지 않은 적이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특히 지난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당시에는 “한국교회가 국민들 앞에 잘못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 한국교회가 함부로 사과조차 해서 안되는 그런 고고한 종교가 되어 버렸나? 더욱이 일부 교회에서 부정할 수 없는 대규모 확산까지 터져, 이를 우려하는 국민들의 시선이 가득한 상황에, 사과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만약 한국교회가 혹 국민들에 코로나 발원지로 잘못 인식됐다면, 그것은 ‘사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언론의 잘못된 여론몰이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소 목사는 올 초 이러한 문제를 매우 정면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소 목사측이 비판 영상을 내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소 목사측은 그런 적이 전혀 없었다는 반응이다. 사실 원로 목회자나 위 목회자가 속한 단체는 한국교회를 매우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는 단체다. 충분히 존경받을만한 사역을 하면서 굳이 남을 비판하며, 자신을 드러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던 모두는 서로간의 방식이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그것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오직 자기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며, 이를 비판하는 것은 상대방에 충분히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한국교회가 이뤄낸 예배회복은 모두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어느 한 사람, 혹은 어느 한 단체만의 노력으로 쟁취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 목사 역시, 충분히 이를 인정하고 있다. 예배 회복이 발표된 당일 소 목사는 자신의 SNS에서 한교총 뿐 아니라 한국교회 주요 연합단체들과 중요 단체들을 거론하며, “모두의 노력”이라고 감사를 전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감사 속에는 바로 위 단체도 들어 있었다. ‘위드 코로나’에 접어든 한국교회는 이제 새로운 출구 전략을 도모하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그저 비판을 목적으로 한 불필요한 시비는 위기를 가까스로 견디고 버텨낸, 개교회들의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제 진정 한국교회의 미래와 온전한 회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야 할 때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1-10-30
  • [기자수첩] ‘소강석 목사’ ‘정부’ ‘사과’··· 모든 게 ‘인포데믹’
    “소강석 목사는 과연 교회가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그야말로 뜬금없는 주제가 그 진위 여부를 두고 교계에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소강석 목사가 “교회는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었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일부 목회자들은 유튜브 영상까지 찍으며, 소 목사에 대한 맹공을 퍼붓고 있는 실정이다. 허나 이번 논란이 참으로 이상한 것은 최근 1~2년 새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일거수일투족이 교계언론에 공개됐던 소강석 목사인데, 해당 발언은 언론들에게도 그야말로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주제가 갑자기 논란이 된 것은 최근 교계의 한 원로 목회자가 유튜브 인터뷰에서 소강석 목사를 언급하면서다. 해당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면 “소강석 목사, 그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하데, 교회가 정부에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그것은 나와 생각이 조금 다른데. 정부가 교회에 사과를 해야 하지 않나.”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발언 자체가 매우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던 것은 현재 한국교회가 마주한 ‘대면예배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이 진실이라면 그야말로 소 목사는 한국교회의 역적일수도 있다. 헌데 결론부터 말하면 해당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소 목사는 교회가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으며,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전형적인 ‘가짜뉴스’에 의한 ‘인포데믹’일 뿐이다. 가짜뉴스의 핵심 ‘정부’ 그리고 ‘사과’ 기자는 서두에서 이 논란 자체가 참으로 이상하다고 말했다. 진위를 다투는 사안에 대해 ‘사실 혹은 거짓’이라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기 이전에 이를 굳이 이상하다고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로 목회자가 참고한 발언의 진원지가 다름아닌 ‘기자회견’이었다. 신문과 방송의 시선이 집중되는 기자회견은 그야말로 가장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모임 중 하나다. 이 안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행위나 발언들이 즉각 언론에 공개되고, 그 증거들이 그대로 기사로 남는 상황에 이를 두고 진위 여부가 일어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자리는 지난해 11월 3일 예장합동측이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위드(with) 코로나 시대 종교 영향도 인식조사’ 발표 및 특별기자회견이었다. 당시 예장합동측 미래정책전략개발위원회는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코로나 속 종교 영향도에 대한 인식조사 설문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언론에 공개했었다. 이날 교단 총회장으로 기자회견에 동석했던 소 목사는 기독교가 ‘20~30년 후 가장 쇠퇴할 것 같은 종교 1위’로 뽑힌 참담한 결과에 △한국교회가 시대정신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으며, △리더십을 세우지 못했다 는 세 가지의 원인을 지적하며, 교회의 자성을 요구했다. 이 외에도 여러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 어떤 누구도 소 목사의 발언에 대한 이의나 문제를 지적치 않았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있을지 1년이 다 된 어느 시점에 뜬금없이 한 원로 목회자에 의해 소 목사의 발언이 다시 회자되더니, ‘교회가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 소강석 목사’란 전혀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말이 퍼져 나갔다. 이 가짜뉴스의 핵심 단어는 ‘정부’ 그리고 ‘사과’다. 가짜뉴스가 만들어진 과정을 역으로 추측키 위해서는 이 두 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당시 기자회견을 보도했던 대부분의 언론들의 기사에서는 이 단어들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굳이 보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일반언론이 기사에서 <소강석 목사는 3일 "(코로나19 상황 속에) 한국 교회가 세 가지를 잘못했는데 시대 정신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으며 리더십을 세우지 못했다"고 사과했다.>고 ‘사과’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소 목사의 발언이 아닌 기자 개인의 해석과 표현이었다. 기자가 소 목사의 자성적인 자세를 사과로 본 것이다. 기자의 이런 해석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소 목사는 분명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인정했고, 굳이 생략했지만, 당연히 사과로 연결될 수 있다. 문제는 사과의 대상이다. 소 목사의 발언에 연관 지을 사과의 대상은 엄밀히 사회와 국민이다. 교회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당연한 반성인 것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몇몇 대규모 확산이 번진 터라, 교회를 향한 국민들의 여론이 좋을 리가 없었고, 이에 교계 곳곳에서는 자발적으로 국민들을 향해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이 지나며 갑작스레 그 사과의 대상이 ‘정부’로 돌변한다. 기자회견이라는 매우 공개된 자리에서의 발언이었고, 언론에 발언 내용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에, ‘정부’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추가된 것이다. 사실 문제의 시발점이 된 원로 목회자 역시 왜곡된 정보, 가짜뉴스에 의한 인포데믹의 피해자로 보인다. 얼마 전 소강석 목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해당 원로 목회자와 대화를 나눴고, 그 분께서 “내가 확인을 못했다. 큰 실례를 범했다. 다음에 해명 방송을 하겠다”고 말했음을 전했다. 이렇게 당사자들 간의 오해를 풀고, 원로 목회자의 사과로 모든 사건은 정리된 것이다. 하지만 일부 목회자들이 최근 해당 사건을 굳이 다시 끄집어 논란을 지속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나름 자료까지 제시하며, 소강석 목사가 ‘한국교회가 정부에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날 기자회견에서는 ‘정부’ ‘사과’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기에, 제시할 증거 역시 있을 리 없다. 프레임을 위한 누군가의 의도적 ‘거짓’ 문제는 이러한 선동이 대중들을 흥분시키고, 소 목사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을 부추긴다는데 있다. 애초에 사실은 중요치 않은 양 ‘친 정부’ 프레임에 어떻게든 소강석 목사를 엮으려는 듯한 모양새다. 일부 교계 목회자들은 현재 교계 전체를 대상으로 ‘친 정부’와 ‘반 정부’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편가르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 안에 중립은 없고, 평화, 협력, 대화도 없다. 오직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만 있을 뿐이며, 내 편이 아니면 적일 뿐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상대의 의도에 관계없이, 자기 임의로 상대를 특정 프레임에 가두고, 대중들로 하여금 무자비한 심판을 종용한다. 진실이 관계없는 것은 거짓조차도 정의를 위한 수단이라 정당화 하기에, 대중들은 차오르는 양심을 억누르며, 자기도 모르는 진실에 돌을 던지고 있다. ‘정부’란 단어의 등장은 바로 프레임을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냈을 철저한 의도적 거짓이다. 애초에 의도한 거짓이기에, 진실이 드러났어도 바로 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논란의 당사자들 역시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국민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를 실행키 위한 서로의 방법이 다를 뿐, 그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순간 이를 인정치 않고, 자신들의 방법만을 정답으로 내세우다 보니,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결과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지금 비대면예배, 온라인예배의 정당성을 두고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논란 역시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지 못한 목회자들의 피토하는 안타까운 심정에서 기인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정이 잘못되어서는 안된다. 대면예배, 비대면예배의 정당성을 논하기 위해 예배에 정치적 이념을 투영하고 있다는 죄악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치 갈등이 점점 극으로 치닫는 동안 예배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은, 진영 간의 승패와 관계없이 우리 모두가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처절한 현실이 되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1-10-26
  • [사설] 종교성의 회복- 복음선교의 긴급성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라고 한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이 곧 종교성의 본질이다. 인류는 에덴에서 범죄로 인해 생명의 창조주와의 관계가 단절됐다. 이에 죄를 범한 인간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에덴 동편에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 3:22-24)라고 한다. 이로 인해 에덴을 잃은 인간의 정신 세계에는 '생명의 주님'이 아니면 메꿀 수 없는 동공(洞空)이 생긴 것이다. 인류는 어떻게든 이 동공을 메꿔보려고 끊임없는 그 생명의 주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 신의 용서와 사랑을 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고, 또 끝내 희생제사까지 드렸으나 창조주 하나님과의 대화의 길은 죄로 인해 막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가 추구해온 그 종교성은 타락하여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먼저 인류에게 계시하기 전에는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과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이 다시 만난 사건이 예수의 인카네이션(聖肉身)이다. 성경은 이를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 1:1,2)라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의 품 안에 있던 독생자 그리스도의 탄생, 그의 십자가의 죽음, 그의 부활이 곧 인류가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생명의 주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여신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종교성이 회복되고 참된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제 인류는 그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예배이다. 이 얼마나 인류가 오랜동안 찾고 갈망하던 아버지이신가. 그런데도 인류사회는 아직도 그 타락한 종교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이 미몽(迷夢)에 빠져 '종교'의 이름으로 미신과 우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다(롬 1:18-25). 바로 여기에 긴급한 복음선교의 핑요성이 제기된다. 복음이 곧 생명이요, 복음의 조명을 받지 못한 인간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우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연지골
    • 사설
    2021-10-17
  • [연지골] 초기 기독교 문서들
    △초기 기독교에는 정경(正經, canon)으로 채택된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와 사도들의 서신들과 요한계시록 외에도, 유대기독교 복음서들과 영지주의자들의 문서 등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복음서에는 '히브리인복음' '나사렛인복음' '에비온인복음' '이집트인복음' '베드로복음' '마리아복음' '니고데모복음' '바돌로매복음' '야고보원복음' '빌립복음' '요셉복음' '맛디아복음' '위(僞)마태복음' 등이 있고, 또 사도들의 활동을 기록한 '베드로행전' '바울행전' '요한행전' '도마행전' 안드레행전' '바울과 테클라행전' '바나바행전' '빌립행전' '빌리도행전' '야고보행전' '다대오행전' '열두 사도행전' 등이 있으며, 또 편지로는 '사도서신' 고린도3서' '라오디게아서' '바나바서신' '그리스도와 압갈서신' '구세주대화록' '베드로의 빌립보 편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요한외경' '베드로순교록' '바울순교록' '베드로선포' 등이 있고, 또 묵시록적 형태에는 '디다케' '열두 사도들의 교훈' '시벨레 예언집' '에스라 5,6서' '솔로몬의 유언' '엘카시아의 책' '바울묵시' '아담묵시' '야고보묵시' '베드로묵시' '도마묵시' '스데반계시록' '야고보 제1,2계시록' 등도 있다. 이외에도 영지주의적 작품으로는 '도마복음' '진리복음' '나세네인시편' '솔로몬 송가' 등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중세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성경 밖의 교회의 전승은 일체 인정하지 않자, '교회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경이 교회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즉 기록된 성경과 교회의 전승이 같은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초기 교회 안에 돌아다니던 수많은 문서들 중,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고,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를 구분하고 확정한 것이 곧 가톨릭교회라는 것이다. 보편적이란 뜻의 '가톨릭'이란 말은 초대 기독교 전체를 이르는 말이었다. 지금의 로마 가톨릭과는 다른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로마 교구를 중심으로 1054년에 동방교회인 그리스 정교회와 갈라질 때 붙은 서방교회의 이름이다. 당시에는 기독교 전체에 5대 교구가 있었다. 5대 교구는 예루살렘 교구, 안디옥 교구, 알렉산드리아 교구, 로마 교구, 콘스탄티노플 교구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구와 안디옥 교구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교구는 일찌기 이슬람에 점령됨으로써 크게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러면 이들 문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영감된 정경(성경)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어떤 것은 성경 밖의 '기독교문서'로만 분류되었는가? 마태복음으로 시작되는 27권으로 된 신약성경의 정경화(正經化) 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많은 문서들 가운데 정경성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감(靈感, inspiration)이다. 초기 교회는 어느 책이 참되고 권위가 있는지를 그 책들의 사도적 기원에서 찾았다. 역사적으로 정경화 과정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보증하는 책들을 수용하고 승인하는 과정이었다. 신약 27권에 대한 정경화가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선언이 나온 것은 4세기 후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성령이 교회를 통해 이루신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교회는 성경을 소유하며, 성경은 유일한 신앙의 규범이다.
    • 연지골
    • 연지골
    2021-10-17
  • [사설]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섹트들
    종교는 보편성을 잃을 때 섹트(sect)에 빠지게 된다.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교리를 말하면서도 섹트는 전혀 다른 종교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정통성을 벗어난 '이단'(異端)이 되는 것이다. 섹트란 말은 조직체 내부에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진리로 내세우며 남을 배척하는 독선적인 분파를 이르는 말이다. 지금 한국기독교에도 이런 섹트는 여럿이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신천지'나, 요즘 일간지 광고란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며 자신들의 목사를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라며 신성모독을 일삼는 '은혜로교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기독교계 섹트 가운데는 이처럼 노골적으로 이단성을 드러내지 않는 집단들도 있다. 그들은 성경 66권 가운데 특정한 계시만을 강조하며 그 계시가 자신들의 조직을 통해 완성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이들은 절대 다수의 보편적 교회를 오히려 성경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난한다. 사실은 정통을 강조하는 극보수나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세대주의도 섹트에 가깝다. 이런 집단은 딱히 이단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단성이 있다'고는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독생자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나, 부활 등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주 초기부터 이단설(異端說)이 많았다. 그래서 이단에 대한 정의(定義)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325년부터 787년까지 오랜 기간 벌어진 초대교회의 교리논쟁도 이들 이단설에 대한 정통주의의 확립을 위해서 도입된 것이었다. 거기에서 확립된 신앙을 '보편적' 혹은 '보편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 지도자 가운데 예언자적인 면모를 지닌 열광주의자가 있어 자신을 기독교 복음의 정통주의자로 자처한다. 한국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갔다. 예수 믿고 영육간 평안과 구원을 받겠다고 찾아간 집단이 섹트일 때, 구원은 고사하고 재산괴 인생조차 몽땅 그 집단에 바치고 만다. 이것이 비정통주의의 함정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보편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해하고 교인과 국민들이 섹트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해야 할 책무가 있다.
    • 연지골
    • 사설
    2021-10-17
  • [기자수첩] 한국교회가 정부에 굴복했다고요?
    여론이 등돌린 교회, 여론을 등에 업은 방역 코로나 초 ‘선제적 대처’ 못한 교회, 스스로 위기 자초 위드 코로나 대비한 전략 수립 시급··· 신뢰회복 필수 정부의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 조치가 장기화되며, 국민들의 불편이 점차 가중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소상공인의 호소는 어느 순간 분노가 된지 오래고, 직장을 잃고 주저앉은 가장의 손에 쥐어진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오히려 삶의 허탈감만 더할 뿐이다. 교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국교회 130년 역사상 처음으로 예배가 셧다운 되는 아픔을 겪었고, 그 틈에 등장한 비대면 예배는 여전히 그 정당성을 두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유독 교회만 대놓고 차별하는 듯한 정부의 불공정한 방역기준은 정부에 대한 교회의 반감을 폭발시키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정부와 교회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교회 내부의 갈등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며, 여전히 내부 총질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총을 손에 쥔 자는 스스로 시대의 심판자를 자처하며, 철저한 자기기준으로 배교자를 규정하고, 군중으로 하여금 그에게 돌을 던지게 선동했다. 이 뿐 아니라 거듭되는 위기를 틈타 ‘애국’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정치의 지저분한 부산물을 교회 안에 들여 놓았고, 이를 매개로 폭발시킨 정치적 이념 충돌은 교회 본연의 정체성을 지워 버렸다. 오직 아군과 적군만 존재하는 철저한 이분법과 전체주의적 의식이 이성을 지배하며, 애초 교회가 추구했던 합리적인 사고는 총질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선제적 대처’ 자율방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합리적 사고를 잃어버린 교회가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추락한 위상, 국민들의 잃어버린 신뢰, 목회자들의 도덕성 타락, 교계 분열 등코로나 이전부터 최악 그 자체였던 현실은 간과한 채 여전히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의 리더라는 과거의 영광만을 답습했다. 특히 교계 일부 인사들의 입버릇 같은 “한국교회가 정부에 굴복했다”는 비판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묵과한 왜곡적 사고의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지난해 초로 돌아가 보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기미를 보이던 당시, 한국교회는 그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이전의 메르스나 신종플루, 사스와 확실히 다른 전파 속도를 보이고, 신천지에서 대규모 확산이 사회 전체에 물의를 일으켰지만, 교계 연합단체와 주요 교단들은 그저 남의 일인 양 관망하기 바빴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시 소강석 목사를 포함해 몇몇 지도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며, 교회의 선제적 대처를 주장했었다. 교회가 스스로 방역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적용함으로 국가와 국민이 인정하는 안전한 예배환경을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코로나 사태 초기, 이러한 ‘선제적 대처’에 대한 조언이 무시됐다는 점은 현 상황에 너무도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만약 당시 한국교회 스스로 방역, 의료, 차단 등 다방면에 걸쳐 자체적인 방역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부의 예배 간섭, 통제는 결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코로나 사태에서 정부의 방역 기준에 교회가 포함된 것은 애초 ‘자율 방역’의 기회를 놓친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부에 분노하는 교회, 그런 교회에 분노하는 국민 신뢰 회복, 예배 회복 동시 이룰 고도의 전략 필요 반대로 이러한 배경은 정부와 교회의 협상 테이블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고정시켜 놓았다. 교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완전히 등을 돌려 버린 상황은, 사실 교회로 하여금 쉽사리 어떤 것도 선택치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교회에 대한 부당한 탄압조차 국민들의 지지를 받던 상황에, 그나마 일정 수라도 대면 예배를 유지했던 것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서 이뤄낸 최선의 결과였다. 물론 비대면 예배를 결코 제대로 된 예배라 말할 수 없다. 비대면 예배는 어디까지나 임시적 조치일 뿐이다. 허나 코로나 상황에서 교회가 임시적 방편까지 써가며, 비대면 예배를 해야 했던 이유 역시 명확했다. 만약 교회가 정부의 제재만을 생각했다면, 정부의 방역에 정면으로 맞섰겠지만, 교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간과할 수도 없었다. 앞서 말했듯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교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땅바닥에 추락했고, 그런 분위기에 편승한 언론들은 교회를 겨냥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사실 코로나 사태에 있어 예배 회복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회복이었고, 이미지 재고였다. 코로나 사태에서 정부의 교회 탄압은 지극히 노골적이었고, 불공정했다. 이에 대한 교회의 분노 역시 당연했고,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분노는 자칫 이런 상황에 이기적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무너진 국민들의 신뢰가 교회를 향한 분노로 뒤바뀔 수도 있다. ‘악법도 법이다’는 매우 모순적인 명언이 한국교회에 필요했던 것은 사회와 국민 전체를 위해 부당한 탄압조차 스스로 감내하는 희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그 어느 집단보다 방역에 앞장서고, 안으로는 하루 7~8번의 예배를 드리며, 탄압 속에서도 대면예배를 지키려는 노력은 국민들의 등돌린 여론을 조금이나마 환기시키기 충분하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경쟁으로 치닫는 요즘의 시대는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전략’은 필수적이다.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 이상 지붕 위에 십자가만 달아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던 그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할 동시다발적인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당연히 내부 총질은 자제해야 한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끝없이 얽힌 요즘 시대에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내부 총질을 자행하는 것은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 코로나가 정점에 치닫은 현재 시대는 다시 한 번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교회 역시 살아남을 전략을 고민해야 함이 먼저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1-10-14
  • [토요시평] 임영천 목사의 ‘토머스 모어와 이가환의 경우’
    오래전 나는 영국의 대법관 토머스 모어(1477-1535)가 등장하는 영화 <천일의 앤>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 영화는 당시 영국 왕 헨리8세가 앤 불린과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영국식 종교개혁을 강행하려던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영화 가운데서 나에게 강하게 인상지어져 있는 몇몇 인물들 가운데 그(모어)가 들어 있었다. 그의 어떤 면 때문이었을까. 대법관 신분이었던 그가 개신교도라고 할 신자들을 잡아다가 처형하는 일에 열광적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무려 여섯 명의 개신교도들을 이단으로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그의 명저라고 알려진 <유토피아>(1516)에는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그가 실제에 있어서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마도 시청자(필자)를 놀라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놀라게 된 것이 꼭 그 ‘저서’와 ‘실제’가 다른 이중적인 처신을 보여주었다는 데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식의 이중적 처신이 권장할 일은 못된다고 하더라도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나약한 인간인지라,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넘어가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믿는 가톨릭교와 다른 프로테스탄트 신자라고 해서, 그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이야 그의 판단에 속한 문제라고 봐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죄과(?)로 그가 그들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특권마저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사실 앞에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그리스도교 신자였다고 한다면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던가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그렇게 잔인한 화형 판결을 다수 신자들에게 내렸을 수 있을까 물어야 할 판이다. 여기서 막말(?)을 하나 덧붙이기로 한다면, 헨리8세가 영국식 종교개혁이란 미명 하에 새로운 이단 종교를 만드는 것까지 확인된 이상 그(모어)는 이제 국왕을 이단자로 재판에 회부하고 그에게 화형 판결을 내려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에겐 그럴 힘까지야 없었기 때문에 결국 반역죄로 그 자신이 국왕에 의해 처단당하고 만 것이었다. 요즘 필자는 다른 일로 서기원 작가의 장편소설 <조선백자 마리아 상>(1979)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소설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오래전에 읽어서 그 내용을 많이 잊어버렸던 세부사항들을 다시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었던 점이 하나의 큰 수확이었다. 특히 그 작품 속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 이가환에 대해서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또한 큰 소득이었다. 조선 정조 때 이가환(1742-1801)은 대단한 권력자였다. 형조판서 직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적들에 의해 쫓기다 보니 정조가 그를 보호하려고 중앙 정부 아닌 지방 외직으로 보냈다. 그는 광주(현 남양주) 목사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공서파(攻西派) 정적들에게 몰리게 된 것은 그가 천주교신자라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광주에 부임하자마자 천주교신도들을 혹독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이는 자체 모순이지만 그는 그렇게라도 해서 정적들의 공격을 둔화시켜 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권일신을 비롯한 다수 신도들을 너무도 잔혹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원망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조선백자 마리아 상>에서는 이런 이가환의 가학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끝이 난다. 그 후의 이가환의 이야기는, 수난 형식의 것으로, 황인경 작가의 전5권 대하장편 <소설 ‘목민심서’>(1992)에 다시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광주 목사 때 천주교도들을 혹독하게 고문한 것 이상으로 자기 자신이 혹독하게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젠 정적들에 의해 그 자신이 천주교신자로 몰려 고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거기서 끝내 목숨마저 잃고야 만다. 나는 동·서양의 두 권력자들이 처음엔 신자들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다가 뒤에 가서는 자기 자신들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큰 세력에 의해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사례를 살펴보았다. 토머스 모어와 이가환의 이야기는, 먼저는 종교적인 이유로 세도를 부리다가 후에는 또 그 종교적인 이유로 더 큰 권력에 의해 자기 목숨마저 잃게 된 종교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상호 유사점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토머스 모어나 이가환이 당대 약자들이었던 신도들을 다수 잔인하게 희생시키지만 않았더라면 그들(모어와 이가환)이 후에 헨리8세나 공서파 정적들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되었다 하더라도 얼마나 명예스러운 일이었을까, 라고….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영화 관람자들이나 소설 독자들에게 “결국은 심은 대로 거두고 말았구먼!”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만 것이 아닌가, 라고….
    • 연지골
    • 토요시평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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