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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이찬수 목사는 ‘동행’이 아닌 ‘독주’를 바랬나?
    설교 내내 이어진 비판과 지적에 불편함 가중 새에덴교회 향한 도를 넘는 우려에 성도들 경악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가 10일 새에덴교회에서 열린 ‘은혜로운동행기도운동’에서 한 설교를 두고 교계의 논란이 뜨겁다. 시종일관 이어진 기도회와 목회자에 질타는 물론이고, 심지어 기도회가 열린 새에덴교회를 빗댄 극단적 비유에 일각에서는 이를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이라 비판하고 있다. ‘은혜로운동행기도운동’은 일개 교단의 프로젝트를 넘어 지난 6개월 간, 총 14개 지역, 163개 노회를 돌며, 그야말로 전국교회를 눈물과 회개의 장으로 이끌었던 만큼, 당연히 이날 새에덴교회에는 교계와 언론의 관심은 집중됐다. 문제는 2부 말씀을 전한 이찬수 목사의 설교자로서의 ‘시선’이었다. 앞서 1부 설교를 맡은 소강석 목사나 3부 오정현 목사는 ‘동행’이라는 취지에 맞게 자신의 스탠스를 참석한 모든 목회자와 동일한 위치에 고정했다. 하지만 이 목사의 시선은 묘하게 청중과 자신을 분리했다. ‘비판’과 ‘회개’, ‘각성’의 대상에 자신은 없었다. 그 예로 “기도회가 너무 화려하다” “진짜 이렇게 목회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 등 설교 곳곳에서 등장한 비판들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목회자들의 무지에 대한 지적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이 이찬수 목사의 의도는 아닐 것이다. 갈수록 더해가는 한국교회의 위기 속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겹쳐 나온 한탄인 듯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를 듣는 목회자들의 불편함이 결코 작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정적으로 과연 그것들이 그렇게 불편하고, 비판할 일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이 목사는 기도회의 규모와 순서, 찬양의 웅장함을 오직 화려함으로 해석하며 이를 비판의 대상으로 봤지만, 흔한 일반적 시선에서는 그저 최고의 예배를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 가장 최고의 것을 드리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은 지극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과시욕’으로 치부하는 것은, 몇날며칠을 기도하며 준비한 이들의 노력에 대한 폄훼일 뿐이다. 여기에 새에덴교회의 예배당이 50년 후에 텅텅 비어, 술집으로 쓰일 수 있다는 극단적인 우려를 내놓으며 정점을 찍었다. 당시 예배당 안에는 다수의 새에덴교회 성도가 함께 했던 상황, 아무리 그 의도가 좋다 하여도 상황과 자리에 맞지 않는 도를 넘는 발언은 결코 존중받을 수 없는 법. 이를 두고 한 언론은 참석했던 목회자의 말을 빌려 “새에덴교회에 대한 모욕이자, 은혜로운동행기도운동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키도 했다. 한 사람의 설교에 눈물과 무릎으로 함께 달려 온 지난 6개월의 대장정이 한순간에 그 빛을 잃었다. 스스로 깨어있음을 증명하고자 남을 깎아내리고 비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건만, ‘동행’이 아닌 ‘독주’를 택한 듯 보인 그의 설교에 어떠한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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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2022-04-11
  • [사설] 새로운 정부가 유의해야 할 대목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1636만표(48.57%) 표를 얻어 1611만표(47.81%)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0.76%(25만 여표) 차이로 당선됐다. 이로써 20년 집권을 말하던 좌파 운동권 정권은 5년 만에 물러나고 우파 정권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그러나 국회는 아직 좌파 운동권이 주도하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치권이 무속과 신천지 등을 끌어들여 우리사회에 종교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종교자유를 위축시키고 우리사회를 분열시키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무속이든, 신천지든, 종교 문제는 종교계 내부의 문제로 남겨 두어야지, 애초에 정치권이 나서서 이러쿵 저러쿵 휘둘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종교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그것은 믿는 자의 절대신념체계이고,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대표적 다종교사회이다. 다종교사회란 말은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뚜렸한 주류종교가 없이 여러 종교전통이 엇비슷하게 그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가 엇비슷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종교적 현상을 드러내는 민족종교 또는 무속종교 및 기성종교에서 파생한 분파적 현상들이 뒤섞여 있다. 가히 한국사회를 향해 종교박물관이라고 부르는 말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특정 종교에 대한 거부나 혐오는 적절치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사회적 가치관은 그 사회의 주류 종교 또는 지배 종교에서 나온다. 종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의 주류 종교의 정통성과 건강성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관을 공급하는 주류 종교가 기복화 되거나, 세속주의화 하여 본래적 가르침에서 일탈하게 되면 그 종교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도 가치관의 혼돈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사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인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가치가 종교의 자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건강한 문화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모든 영역에서 종교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종교가 폄훼되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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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4-10
  • [연지골] 언더우드 기념관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총회가 에큐메니칼(통합측)과 엔에이이(합동측)로 갈라진 이후, 한국교회에서 최근 하나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쾌거를 이룬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 8일, 통합측 서울노회 소속의 경신학원(이사장 이효종)과 합동측 경기노회 소속의 혜화동 혜성교회(담임목사 정명호)가 이룬 '언더우드 기념관' 준공식이 그것이다. 지상 3층, 지하 4층, 연면적 3,500여 평 규모의 언더우드 기념관은 혜화동 서울성곽을 끼고 자리잡고 있는 경신중고등학교(교장 신광주) 부지에 들어선 체육관 및 교육시설이다. 여기에는 강당(예배당), 체육관, 주자장 등이 들어서 있다. 주일에는 혜성교회의 예배실과 교육관으로 사용된다. 이 건물은 경신학원이 부지를 내고, 혜성교회가 건축비를 담당해 136년 전 이 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름으로 준공한 것이다. 경신학원과 혜성교회는 언덕 위에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이 언더우드 기념관은 설계에서부터 내외부 설비와 완공까지 혜성교회가 건축비 250억원을 들여 준공해 경신학원에 기증했다. 1,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은 평일에는 학교가 사용하다가 주일날에는 혜성교회가 에배당으로 사용한다. 학교측과 교회측이 이같은 시설 건립을 계획하게 된 배경은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학교 운동장이 잔디구장으로 바뀌면서 주일날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던 혜성교회가 주차 공간이 사라지자 학교측과 협의한 끝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학교측은 숙원이던 강당과 체육관이 마련되고, 교회측은 주차장과 새로운 예배당이 확보된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학교와 교회가 서로 필요에 의해서 강당을 지어 학교측에 기증하고, 주일날 교회가 사용하는 사례는 더러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교단이 다른 학교측과 교회측이 서로의 필요를 위해 윈윈하게 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장로교회에서 '통합측'과 '합동측'이라고 불리우는 두 교단은 1959년 제00회 총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문제로 논쟁하다, 서로 간에 사소한 감정을 넘지 못하고 에큐메니칼운동의 주체인 WCC를 지지하는 'CAL측'과 미국 복음동지협의회를 지지하는 'NAE측'으로 갈라졌다. 그 후 칼측은 서울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하고 '통합측'이라 불렀으며, 엔에이측은 서울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하고 '합동측'이라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교단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파 신앙고백의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갈라져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장로교파이다. 그런데도 이 두 교단의 답답한 지도자들 중에는 마치 상대를 이단시 하며 거부해왔다. 그래서 한때는 양 교단 목회자 간의 강단교류를 아예 금지하는 등 형제를 정죄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교단 간에 성취된 에큐메니칼적 업적은 한국교회의 하나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곳곳에서 이런 사업이 논의되고 성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라고 함과 같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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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0
  • [토요시평] 진보가 보는 진보의 몰락?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야당 후보의 0.73%포인트의 승리였다. 이는 야권이 정권을 잡는 것이기도 하지만, 5년 만에 진보 정권의 재집권 실패이기도 하다. 대략 진보건 보수건 10년 정도는 집권하는데, 이번에는 5년 만에 깃발이 넘어간 것이다. 사실 야당은 5년 전 당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지리멸렬했다고 본다. 오죽하면 당에서 인물을 뽑지 못하고 정치 신인인 여당 쪽의 공직자였던 사람을 대선후보로 선택했겠는가? 반면에 여당은 야당에 비하여 많은 것에서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이 참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야당 후보가 주장한 ‘공정’과 ‘상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출범할 때, 과정과 결과가 공정할 것이란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는가? 그러나 그런 정치적 주장과 실제 행태는 너무나 달랐다. 현 정권의 이념적 색채는 어떨까? 2018년 2월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리셉션에서 문 대통령은 공산주의(사회주의) 사상가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하였다. 일종의 사상적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 자리에는 미국의 부통령, 일본의 수상, 북한에서 온 손님들도 있었다. 그만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동조 세력이 있다는 것이었나? 이 정부의 사상적 이념적 색채는 좌파·진보이며, 종북에 가깝다. 현 정부는 왜 5년 만에 대권을 내주게 되었는가? 그것도 정치에 입문한 지 8개월밖에 안 되고 현 정권에서 충성했다 하여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던 사람에게 말이다. 이것은 진보의 가치를 잃어 버린 때문이 아닌가? 이를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인사들의 말을 통하여 들어보자. 진보 논객으로 유명한 전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라는 책의 표지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자신들이 정의라는 독선, 공정을 무시하는 반칙과 특권, 자기들도 믿지 않는 평등의 위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조국(曺國-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장관 역임) 사태로 진보는 파국을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이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진보 전체의 죽음으로 느껴진다’고 평가한다. 고 박원순 씨는 인권변호사, 참여연대를 설립한 시민운동가, 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사람이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한 것은 위선이며, 어리석음으로 보고 있다. 진 교수는 진보가 이 사회를 폐허로 만드는 것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 찬스’는 기회의 평등함이 되고 ‘문서위조’는 과정의 공정함이 되었고 ‘부정입학’은 결과의 정의로움이 되었다고 꼬집는다. 진보의 가치는 전도되고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며 그것을 적발한 검찰과 그것을 알리는 언론을 질타하는 것, 이 적반하장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고 개탄한다. 역시 진보 언론학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싸가지 없는 정치”(싸가지는 욕설이 아닌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를 속되게 하는 말로 해석함)에서, 문재인 정권의 문제점을 ‘싸가지 없음, 오만하다.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청와대 정부가 심화(싸가지 없는 정치)되었고, 이의(異義) 제기마저 가로막는 열성 지지자 집단의 검열 활동이 성공한데 큰 책임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 현 정권을 둘러싼 586운동권 문화는 ‘개인숭배 문화’가 있고, 거기에다 ‘진보의 완장화’가 있어, 싸가지 없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판단이다. 그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주장이 있으면 비아냥대고 저주를 퍼붓는 문화가 있는데, 개인을 숭배하고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써먹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또 있다. 자신을 한 때 ‘묻따민’(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민주당을 찍는다)이라고 소개한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의 유성운 기자는 “사림, 조선의 586”이라는 책에서 조선 시대 당파 싸움을 주도했던 사림(士林)들과 현재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핵심인 586세대를 비교하면서, 공통점을 찾는다. 그는 ‘기득권층을 성토하면서 정작 자신들도 기득권층의 행태를 똑같이 따라 하는 것, 특정 가치관에 매몰되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눈을 감고 엉뚱한 정책을 펴는 것, 그리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신들만의 매트릭스를 꾸며 놓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또 대통령을 비판하면 ‘무엄하다’고 꾸짖는 행태를 보인다고 고발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진보정치의 모습이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졌다고 진보계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보를 자처하는 권력과 세력은 아직도 기세가 등등하다. 그러나 진보의 참된 가치를 잃어버린 세력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현재도 엄청난 권세를 가진 진보세력은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양식 있는 진보 인사들이 보기에도 가치를 잃어버린 진보의 행태는, 보수 세력을 ‘적폐’로 몰았던 그 여세가 자신들을 들이치는 부메랑이 되지는 않을까 살펴보아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2-03-19
  • [기자수첩] ‘연합’에 목숨걸던 한기총 어디갔나?
    임원회 ‘절차상 하자’로 재개최 불가피 WCC 소속 교단 이유로 통합 거부하는 것은 ‘억지’ 한기총 설립 예장통합측 한경직 목사 주도 한기총 설립 정체성은 오직 연합, WCC 논쟁 없었다 한기총-한교총 간 ‘통합 기본 합의서’를 부결시킨 한기총 임원회에 제기된 ‘절차상 하자’ 이의가 사실로 확인되며, 임원회 재개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 보고되지 않은 인원들이 대거 의결에 참여한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더 큰 혼란과 법적 다툼을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 임원회를 재개최하는 것만이 유일한 최선이다. 그런 상황에 다시금 관심을 모으는 것은 ‘한국교회 대통합 프로젝트’다. 앞선 임원회에서 한기총-한교총 간 ‘통합 기본 합의서’가 부결되며, 사실상 ‘통합 무산’이라는 씁쓸한 결말을 맺는 듯 했으나, 해당 임원회의 명백한 하자가 드러나며, ‘한국교회 대통합 프로젝트’는 극적인 부활을 이뤘다. 관건은 ‘WCC’다. 한기총 내 일부 회원들은 한교총 회원 중 WCC에 소속한 교단이 있다며, 한교총과의 통합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WCC는 한국교회 분열의 시작이자, 보수-진보 대립의 상징과도 같은 주제, 그런 만큼 이번 통합 프로젝트의 논란이 될 것을 예측 못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마냥 받아들이기에는 눈에 보이는 의도 가득한 억지가 이를 상당히 곤란하게 만든다. 물론 WCC는 보수교회에서 있어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영역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역사에서 WCC로 인해 합동-통합(장로교), 예감-기감(감리교)이 분열하는 아픔을 겪었고, 기성-예성(성결교)은 WCC와 신앙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NCCK 가입을 놓고, 분열하고 말았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WCC가 몰고 온 한국교회의 상처이자, 불행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상처와 불행을 치유코자 초교파적 연합운동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부터 NCCK가 있긴 했지만, 너무도 진보 일색인 탓에 한국교회 전체의 의견을 담아내지 못한 한계가 있었고, 이에 교계 주요 지도자들이 정치와 이념을 초월한 연합기관 설립에 손을 모았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즉 한기총이었다. 한기총이 보수색채를 띄기는 했지만, 그것은 NCCK와 대비되는 측면에서 유독 부각된 것이었고, 실제는 매우 중립적이었고 이성적이었다. 애초에 보수교회를 대변한다는 것보다는 한국교회를 대변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기에 결코 어느 한쪽에 일부러 치우쳐질 필요도 없었고, 특정 세력 혹은 교단을 배제할 필요도 없었다. 현재 한기총의 일부 임원들이 예장통합측과 함께 할 수 없다며, 한교총을 거부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기총을 설립한 이는 다름 아닌 예장통합측의 한경직 목사였다. 그 이후로도, 김기수 목사, 박종순 목사, 이광선 목사 등 통합측의 지도자들 다수가 한기총의 대표회장을 맡아 한국교회를 이끌었었다. WCC로 인한 한국교회 분열의 상처를 치유코자 만든 한기총에서 당연히 WCC는 논란의 이유도, 주제로 거론될 필요도 없었다. 한기총이 ‘반WCC’ 기조를 갖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한기총-한교연의 분열과 그 즈음 대표회장에 오른 홍재철 목사의 탓이 크다. 홍재철 목사는 예장통합, 기성, 백석 등이 한교연으로 빠져 나간 한기총을 자기 신앙적 정체성에 맞춰 완전한 보수단체로 새로이 구축했다. 여기에 당시 한국교회를 뜨겁게 달궜던 ‘2013 WCC 부산총회’에 맞춰 한기총을 ‘반WCC’의 대표 단체로 만들었다. 중대형교단이 대거 빠져나가며, 대표성을 잃은 한기총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며,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홍재철 목사는 반WCC에 대한 부분을 한기총 정관에까지 삽입한다. 설립 당시의 한기총 정관과 완전히 달라진 당시의 정관을 일부 관계자들이 ‘홍재철 정관’, 혹은 ‘홍정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임원회에서 홍재철 목사는 자신이 만든 ‘홍정관’을 앞세워, WCC 회원교단과 함께할 수 없다는 이유로, 통합 거부 여론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 여론에 경도된 상당수 임원들이 ‘반대’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런 선택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다. 엄밀히 이들은 WCC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WCC에 속한 회원교단이 가입되어 있는 한교총을 거부했다. 이를 WCC 거부로 받아들이기는 너무도 억지스럽다는 것은, 사실상 한국교회에서 WCC에 속한 예장통합, 기감 등과 섞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이를 어느 곳에서도 문제 삼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선교단체, 지역연합회, 복지, 교육 등 한국교회 어느 단체를 가든 통합, 기감의 교회는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당연히 한기총의 임원들 역시 또 다른 단체와 영역에서 통합, 기감과 함께하고 있고, 이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있다. 유독 한기총에서만 통합과 기감 자체를 이단시 하며,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집단인 듯 말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과 함께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절대 이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는 듯 말하는 억지를 범하는 것이다. “한기총은 다르다” “한기총만은 반WCC 정체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가? 헌데 위에서 말했듯 한기총의 본래 정체성에 ‘반WCC’는 없다. 한기총은 WCC를 포함한 각종 분열로 상처입은 한국교회를 하나로 엮기 위해 나온 연합단체다. 그리고 지금 본래의 취지를 잃고 다시 분열된 연합단체를 회복시키기 위해 ‘한국교회 대통합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기총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은 분열의 지속인가? 아니면 연합의 회복인가? 한국교회 대통합이라는 역사적 사명 앞에 한기총 임원회의 전향적 고민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03-14
  • [기자수첩] #대선 #한국교회 #대통합, 그리고 ‘푸른 우물’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치열한 대선이다.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무한의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은 국민들에 있어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최고조에 끌어 올렸다. 대선은 국민들에 있어 어떠한 선택을 하던 결국 실패로 귀결되는 예정된 결말이지만, 이를 알면서도 매주 사게 되는 복권처럼 혹시나 하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도 사전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35%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국민들이 그토록 배신만 당해왔던 선거에 다시 한 번 희망을 걸고 있다는 씁쓸한 반증일 것이다.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 아무도 희망을 책임지지 않은 시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대통령 선거조차 한 판의 도박처럼 모험을 걸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은 교회의 존재 가치에 대한 본질적 회고를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 하나님 품에 안긴 시대의 지성 고 이어령 교수는 소강석 목사의 시집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의 발문에서 교회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회의 위기는 시대의 위기요. 역사의 위기로 종결된 경우가 많다. 시대와 역사를 위해서라도 교회는 끊임없이 정화되고 정신적, 사상적 샘물을 흐르게 하는 깊고 푸른 우물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지난 역사에서 언제나 시대의 최후의 양심이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본질적으로 부여한 사명이자 역할이었다. 교회가 무너진 시대가 온전한 적이 없었고, 반대로 교회의 부흥은 곧 그 사회와 국가의 번성으로 이어졌다. 한국교회가 70~80년대 기적과도 같은 부흥을 이룰 때, 국민들은 교회를 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반복된 전쟁이 가져온 배고픔과 가난, 성숙치 못한 민주주의에 따른 시대의 혼란과 억압 속에 갈 길을 잃은 국민들은 교회의 십자가를 보며, 앞으로 전진했고, 미래를 일궈냈다. 교회 자체가 복음이었고, 국민들의 삶에 스며든 희망이었다. 대선 정국이 뜨거워지며, 한국교회 역시 줄 서기에 한창이다. 1번과 2번이란 별반 다를 바 없는 숫자를 오가며, 치열한 눈치전을 반복하고 있다. 서로의 선택을 두고 정치권의 당사자들 못지않은 이전투구를 펼치며, 스스로 이번 대선의 최고 수훈임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사이 고 이어령 교수가 말했던 ‘푸른 우물’은 점점 오염되어 버렸다. 바닥 끝까지 보일 듯 투명했던 푸르름은 이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탁수(濁水)가 되어 그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교회의 위기를 시대의 위기라고 했던가? 스스로의 과오로 시대를 위기로 몰아넣은 교회가 이제는 더 큰 욕심으로 마지막 양심마저 저 버리려 하고 있다. 어느 순간 아무도 교회를 보며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요 근래 “한국교회는 누구를 택해야 하나?” 란 질문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누구를 택할 때 한국교회에 좀 더 유리하며, 한국교회에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가득한 물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 역사적 의의를 생각하며, 이 질문의 본질적 오류를 생각해 봐야 한다. 누구를 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누가 되든 상관없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이냐에 대한 물음을 먼저해야 한다. 어떠한 공격도 견뎌낼 굳건한 교회,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불의한 탄압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정의로운 교회, 스스로 예배를 지키며 성도들을 보호하며 국민들에 신뢰와 지지를 얻어내는 희망의 교회를 구축할 수 있다면, 굳이 이번 대선에 교회 스스로의 운명을 내던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물음의 해답은 결국 ‘한국교회 대통합’이란 주제로 귀결된다.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진정한 ‘원 리더십’으로 시대를 이끌 수 있다면, 그 어떤 불의한 상황이 닥쳐도 국민들을 보호하며, 시대에 여전히 희망의 빛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03-05
  • [사설] 신천지에 대해 '사교'운운 하는 정치인의 망발
    20대 대선에 느닷없이 '신천지'가 소환되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야당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 당시 신천지에 대한 수색영장 발부를 거부한 것으로 봐서 신천지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우파 기독교인들의 윤석열 지지를 분열시키기 위한 마타도어인 듯 하다. 한국기독교는 신천지라면 무조건 치를 떤다는 정서를 이용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신천지는 한국기독교의 이단집단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당 후보가 선거 연설 중 신천지를 향해 공개적으로 수 차례에 걸쳐 '사교'(詐敎)라고 발언했다. 과연 종교의 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사교'란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사교란 말은 종교를 빙자하여 남을 속여 그 재산과 생명을 갈취하는 사기꾼 조직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사회에 유사종교인 '사이비교'(似而非敎)란 말은 있을 수 있어도, 사교란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집단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범죄집단으로서 두말할 필요없이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당 후보의 이 발언은 신천지에 대한 명예훼손을 넘어 심각한 종교자유의 침해로 밖에 볼 수 없다. 신천지는 기독교의 '이단'임엔 틀림 없다. 그 집단에 교주를 '보혜사'로 보는 교주우상주의가 있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기독교를 심각히 왜곡하고 있다. 기독교의 보혜사는 성자 그리스도와 성령을 일컫는 말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이단이 된다. 그러나 이단의 문제는 종교집단 내부의 정통성의 문제이지, 결코 사회적 문제는 아닌 것이다. 설혹 신천지가 특정 정치집단과 연계되었다 할지라도, 신천지에 대해 '사교'라고 하려면 그 집단의 행태에 사교라고 일컬을 만한 어떤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거니와 사교이면 당연히 우리사회에서 척결되어야 마땅하다. 사교는 범죄집단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기독교를 비롯한 기존 종교단체들도 우리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유력한 정치인들의 종교에 대한 망발을 그대로 침묵해서는 안된다. 비록 신천지가 이단일지라도 그 집단을 향해 사교 운운하는 것을 용납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종교세력이 정치권으로부터 그 같은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종교자유에 대한 침해를 받지 않으려면 기성종교단체들이 정치인들의 망발에 경고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22-02-22
  • [사설] 새해 첫 주일날 예배에 참삭한 여야 후보들
    지난 연초 2022년 1월 2일 첫 주, 대표적 장로교회 두 곳에 여야 대선 후보들이 각각 예배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용인의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서울 명성교회(김하나 목사) 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이는 오는 3월 제20대 대선에 있어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읽힌다. 이 두 교회는 합동측과 통합측에서 각각 대표적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한 교회이다. 새에덴교회는 목사가 호남 출신으로서, 교인들의 분포가 대체로 민주당 지지세가 많고, 명성교회는 설립자 김삼환 목사가 영남출신으로서, 교인들의 분포가 국민의힘 지지세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교회는 각기 이들을 교회 앞에 소개하고, 교인들은 박수로 응답했다. 여기까지는 여타 교회들이 각급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을 소개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일은 새해 대선정국에서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이 두 교회는 각기 합동과 통합의 교단적 색깔이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카리스마적 목회자의 지역색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선거에 교회세력을 이용하려는 후보들의 득표전략에 한국교회가 휘둘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역주의로 표출되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마다 많은 휴유증을 앓아왔다. 멍청한 교회지도자들의 영웅심의 발로로 선거를 치루고 나면 교인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특정 후보에 대한 목회자의 호불호(好不好)는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를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교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있을 뿐 여야가 없다. 따라서 목회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듯한 언동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럼에도 역대 대선에서 아예 내놓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주의 맹주들이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곧바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차라리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목회를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 그래도 이번 대선에는 진보. 보수로 갈라져 있을 뿐, 지역색을 대표하는 후보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이런 기회에 소멸시켜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3월 9일 대선까지는 주일날이 5-6번 더 남았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대형교회들이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2-04
  • [사설] 이재명 후보 크리스챤은 맞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가짜 교인' 논쟁이 뜨겁다. 이재명 후보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분당우리교회에서 주님을 모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교회에서 10년 전에 이미 제적된 사람이라고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은 '가짜 교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비난은 틀린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현재 그 교회에서 10년 전에 제적되었다면, '분당우리교회' 교인이 아닐 뿐, 한국기독교의 '크리스챤'은 맞는 것이다. 왜냐면 한번 그리스도에 대한 공적인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어떤 특정교회의 교인명부에 올라있는가 여부에 관계 없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크리스챤 노미날리티(Nominality)라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에는 교인의 정의를 "교인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 부른다"라고 되어 있을 뿐, 특정교회 등록 여부를 따지지는 않는다. 단지 교인의 의무를 다 했느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성도가 된 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거룩한 교제와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제26장 제2항). 또 총회 헌법 제19조에는 "교인이 신고 없이 교회를 떠나 의무를 행치 않고 6개월을 경과하면 회원권이 정지되고 1년을 경과하면 실종교인이 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소속 교회의 교인의 자격정지일 뿐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격정지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가짜 교인'이란 말은 틀린 말이다. 한국교회 주변에는 이들 노미날리티 외에도 특정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믿음을 가지는 크리스챤들도 상당히 많다. 이들은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세례를 받고, 한때 특정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다가, 교회 구성원 간의 갈등이나 어떤 이유로 매 주일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지만, 자기의 종교적 신분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집에서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며, 교회의 특정행사, 즉 성탄절이나 부활절 또는 기독교 의식으로 진행되는 친인척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도 부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또 교회 앞에서 세례를 받거나 공적인 신앙고백이 없었다 하더라도, 창세 전에 예정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된 자라면 구원 받은 성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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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4
  • [사설] 한국교회여, 자학하지 마라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사회 각층에서 들린다. 대체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도 교인들의 삶과 신앙이 일치되지 않고,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다. 때때로 목사나 장로 등 교회의 중직자들 중에도 '한국교회가 타락했다'는 둥, '더 이상 목사에게 속지 말라'는 둥,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둥, 무책임하고 자학적인 발언을 일삼는 자들도 있다. 이는 한국교회의 윤리적 패배의식에서 나오는 자학(自虐)이다. 그러잖아도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의 교인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20년 지난 한 해 1년동안 대교단 중심으로 전년 대비 39만명이 줄었다는 매우 충격적 통계도 제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개혁'이란 이름 아래 자학적 발언이 지나치면 한국교회의 민족복음화에 크나큰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솔직히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에 비해 사회 윤리적 의식이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국내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구호단체'가 수십 개가 활발히 움직이는데, 이들 단체들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는 회원들의 상당수는 한국 기독교인들이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베풀고자 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비기독교인들 보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많다는 뜻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기적이란 말은, 어떤 의미에서 사회가 교회에 거는 기대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인들의 삶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우리사회가 그 기대를 너무 높게 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국 기독교인들이 일방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가운데 헌금 수준이 가장 높은 교회이다.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 중직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교회에 매달 십일조와 매주 헌금을 한다. 교회는 이 헌금을 교회 안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여, 자학하지 마라.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삶은 비교적 잘 조화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교회를 향한 비판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는 말과 같이, 사회를 향한 봉사와 사랑의 정신에 더 성숙하라는 뜻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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