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성공회·루터파·개혁파·장로회파·환원파·재세례파·침례파 등 파생


중세의 종교개혁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1517년 독일과 스위스를 위시한 유럽 각국에서 교회개혁이 일어났다. 교회개혁의 횃불을 든 사람은 독일 비텐베르그 대학의 신학교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였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그곳 비텐베르그 성(城) 교회 정문에 라틴어로 쓰여진 95개 조의 로마교회의 ‘면죄부’에 대한 반박문을 내걸었다. 비텐베르그 대학 부속 교회당으로 사용되는 그곳에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면죄부는 로마교회가 만든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후손들의 공덕으로 구원하는 교리이다.
루터는 그의 동료 요한 쉬나이더(Johann Schneider)와 함께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을 초청해 로마교회에 고용된 면죄부 장사꾼들이 팔고 다니는 면죄부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토론해 보고자 했다.
루터는 95개 반박문에서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는 순간에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풀려난다고 말하는 자들은 단지 인간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돈이 연보궤에 짤랑하고 떨어지면 욕심과 탐욕도 분명히 증가한다. △면죄부를 사므로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믿는 자들은 그것을 가르치는 자들과 같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면죄부 없이도 죄와 벌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받을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살았든, 죽었든, 모든 그리스도의 축복과 교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은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꾸어주는 것이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 더 선한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궁핍한 사람을 보고도 이를 외면한 채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황이 면죄부 선전원들의 진상을 안다면, 그는 자기 양의 뼈와 살 그리고 그 가죽으로 성 베드로 사원을 세우기 보다는 오히려 그 사원이 재로 화하기를 원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비록 면죄부 담당 주교나 교황이라 할지라도 자기 영혼의 안전을 위해 면죄부에 의한 구원을 믿는 것은 헛된 일이다 라고 면죄부의 효능을 부정했다.

개혁운동의 확산
루터의 이 논박은 교황청의 오랜 착취에 불만을 가진 독일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런데 여기에 면죄부 장사꾼 테첼(Tetzel)이 106개 조에 달하는 반론을 전개하고, 가톨릭의 신학교수들이 루터를 공박하면서 이 논쟁이 확대되었다. 루터는 아직 가톨릭교회의 수도사요 사제였으므로 가톨릭교회는 루터에게 그 위험한 주장을 철회할 것을 명령했다. 그럼에도 루터가 자신의 견해를 끝내 굽히지 않자, 후스와 같은 이단이라고 강력히 비난하며 파문했다.
교황의 이 파문교서는 시편의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주의 원통을 푸시고 우매한 자가 종일 주를 비방하는 것을 기억하소서. 일어나 주를 항거하는 자의 훤화가 항상 상달하나이다”(시 74:22)로 시작해, 베드로와 바울과 모든 성인들을 언급하며 ‘숲 속의 멧돼지와 들짐승’이 주의 포도원에 들어와 파괴하고 있다고 하나님께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루터의 책에서 41가지 주장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루터의 모든 책을 불태울 것을 요구했다.
이 파문교서는  1520년 10월 3일 에크(ECK)를 통해 비텐베르그 대학 총장에게 보내졌다. 그러나 루터는 교황의 이 파문교서를  1520년 12월 10일 오전 비텐베르그의 엘스터 문 바깥에서 많은 교수들과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네가(교황이) 주님의 거룩한 자를 괴롭게 한 것처럼, 영원한 불이 너를 괴롭게 하기를 원하노라”고 선언하며, 교황의 파문교서, 교황의 선언문, 로마교회법, 에크와 엠저의 저작들을 모두 불태웠다. 이로써 루터는 교황청과 완전히 갈라셨다.
사실 교황청은 루터를 파문한 이 결정이 유럽 교회와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인가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루터의 개혁운동은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프랑스에서 전 유럽으로 동시에 퍼져나갔다. 독일에서는 도시마다 루터의 개혁운동을 따르는 시민들과 가톨릭교회를 사수하려는 시민들 간에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고, 스위스에서는 독일어권 취리히를 중심으로는 쯔빙글리의 개혁파가 일어나고, 프랑스어권 제네바를 중심으로는 칼빈이 개혁운동을 주도하여 모든 도시로 파급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개혁신앙을 따르는 ‘위그노’들이 일어났으며, 영국국교회는 정치적인 문제에서 성공회란 이름으로 로마와 갈라섰다.
또 동시에 인문주의자들을 중심한 ‘스위스 형제단’은 가톨릭교회의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루터파나 개혁파보다 더 급진적 교회개혁을 요구했다. 이들을 ‘재세례파’(Anabaptist)라고 부른다. 재세례파의 급진논리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혁파 역시 위협을 느꼈다. 그로인해 재세례파는  많은 희생을 낳았다. 오늘날 재세례파에는 ‘아미시’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파가 북미 대륙에서 교파를 형성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신앙고백
종교개혁세력은 다양한 신앙고백과 신앙문답서를 발표했다. 루터파의 신앙고백으로는 마르틴 루터의 소교리 문답서(1529년),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1530년), 슈말칼트 신조(1537년) 등이 있고, 개혁파의 신앙고백으로는 제1스위스 신앙고백(1536년), 제네바교회 신앙문답서(1537년), 프랑스 신앙고백(1559년), 스코틀랜드 제1신앙고백(1560년), 벨기에 신앙고백(1561년), 하이델베르그 신앙문답(1563년), 아르미니우스 신조(1610년), 도르트 노회 신조(1618년), 재세례파 신조(1632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8년), 스위스 일치 신조(1675년)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루터파와 개혁파가 다같이 동의한 신앙고백서가 하이델베르그 신앙문답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의 대표적 신앙고백서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델베르그 신앙문답은 루터가 별세하고 난 후 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 신학자들이 치열한 신학논쟁을 통해 공동의 신조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루터파의 멜랑히톤의 신학사상과 칼빈의 신학사상이 짙게 반영된 것이다.
하이델베르그 신앙문답은 제1부 타락으로 인한 ‘인간의 비참’, 제2부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구원’, 제3부 은혜로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은 하이델베르그 신앙문답의 일부이다.
“문 76.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답)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며, 그것으로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한다. 또 그것은 그리스도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그의 거룩한 몸에 더 연합함으로써, 그는 비록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위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이며 우리는 그의 뼈 중의 뼈가 되어서 마치 한 몸의 지체들이 한 영혼의 통치를 받드시 한 분 성령에 의해 살아가고 다스림을 받는 것을 뜻한다.
문 78. 그러면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변하는가? 답) 아니다. 세례식에서 물이 그리스도의 피로 변하지 않으며 또 죄를 씻어주지도 않으며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거룩한 표지이며 확정에 불과한 것처럼, 주의 성찬에서도 거룩한 떡은 그리스도의 몸 자체로 변하지 않는다. 다만 성례의 본질과 용례상 그것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불리는 것이다.
문 79.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는 떡을 자신의 몸이라 하시고, 잔을 자신의 피, 혹은 자신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라고 하고, 사도 바울은 무슨 이유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답)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마치 떡과 포도주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흘리신 피도 우리 영혼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참된 음식과 음료임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눈에 보이는 표징과 보증으로써 마치 우리가 주의 기념으로서 이 거룩한 표지를 육신의 입으로 받는 것과 같이, 그의 진짜 몸과 피에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참여하는 것과 또 우리 자신이 마치 우리 몸으로 고난을 받고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그의 고난과 순종이 우리 자신의 것임을 확인하여 주시려는 것이다.”

가톨릭에 항거하는 ‘프로테스탄트’
로마교회의 비성경적 교리와 교회전통을 부정하고 개혁운동에 나선 개혁세력을 통털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한다. 프로테스탄트란 말은 개혁신앙을 따르는 제후들이 1529년 독일 슈파이어 제국의회에 제출한 항의서(저항: Protestatio)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를 스스로는 ‘복음주의’(Evangelical), 또는 ‘개혁주의’(Reformed)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신교’(新敎), 혹은 ‘개신교’(改新敎)라고 번역한다.
오늘날 전 세계에 나타난 수많은 그리스도교 분파(교파)는 대부분 이 프로테스탄트에서 일어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는 교회의 원리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에 둔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깨달음에 따라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그것이 하나의 교파(敎派)로 생성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는 원리에 따라 신교 내에서 교파간, 교단간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단체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그 대표적 기구가 1948년 8월 설립된 세계교회협의회(WCC)이다. 전 세계 교회에는 이처럼 세계적, 지역적, 국가적 에큐메니칼 기구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에큐메니칼 기구들도 하나의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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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그리스도교 분파 이야기/강 춘 오 목사(발행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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