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진태 기자(편집국장)
인류에 있어 종교가 평화를 말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다종교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이웃 종교의 경사를 축하하고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올해 석가탄신일을 맞아 발표한 축하메시지 역시 이러한 연대의 연장선에 서 있을 것이다. 전쟁과 폭력, 기후 위기로 신음하는 인류를 향해 종교인들이 마음을 모으자는 호소는 사회적으로 볼 때 그저 따뜻하고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 따뜻한 메시지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무겁다. 이웃 종교를 향한 예의와 존중이 지나쳐, 기독교 신앙의 뼈대를 이루는 '언어의 본질'마저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화합이라는 미명 하에 기독교 연합기관의 언어가 본래의 자리에서 이탈해 버린 흔적들이 메시지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장 곤혹스러운 대목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시니 온 세상이 기뻐합니다"라는 고백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세상에 오셨다'는 선언은 단순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이는 인류의 역사 속으로 신(神)이 직접 걸어 들어오신 사건,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만 허락된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신앙 고백이다. 반면 불교의 부처는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 존재, 즉 인간의 성불(成佛)을 뜻한다. 타 종교의 성인을 존중하는 것과, 기독교적 구원론의 핵심 언어를 투영해 그를 사실상 '신의 반열'로 공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는 포용이 아니라 교리적 정체성을 상실한 혼합주의의 단면일 뿐이다.
더욱이 메시지는 기독교가 목숨처럼 수호해 온 '진리'라는 단어의 무게마저 가볍게 전락시켰다. "부처님이 오셔서 열어주신 진리와 자비의 길", "불자들을 통해 진리가 피어나고"라는 구절은 당혹스럽다. 성경이 증언하는 진리는 다원화된 가치 중 하나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절대성을 지닌다. 타 종교의 철학적 깊이를 인정하는 것과 복음의 유일성을 희석하는 것 사이의 경계선이 NCCK의 문장 속에서는 너무나 쉽게 지워져 버렸다.
인류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 문서가 과연 기독교 단체의 연합 공문서인지 의심케 한다.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따라 살아간다면 현재의 모든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선언은 교회가 세상에 던져야 할 본연의 메시지를 망각한 처사다. 인류의 탐욕과 죄악을 치유할 유일한 소망은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선포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타 종교의 해법을 인류의 궁극적 구원책으로 내어놓고 있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는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다. 그러나 참된 화합은 나의 이정표를 지워버린 채 상대방의 길에 동조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선명히 붙드는 이들만이 비로소 타자와의 진정한 대화도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뿌리가 흔들린 나무는 이웃 나무와 진정으로 연대할 수 없다. NCCK는 화합이라는 명분이 기독교의 절대 진리를 허무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신학적 토대를 엄중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본질을 잃어버린 언어는 평화가 아니라 배임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