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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퇴가 없는 선교
    은퇴(Retirement)란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낸 것으로 정의 될 수 있다. 이는 생산활동은 중지했지만 지속적으로 소비는 하고 있는 삶의 형태로,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퇴직’과는 차이가 있다”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필자에게도 은퇴가 찾아왔고, 지난 8월 31일로 대학에서의 정년 교수직을 마감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에게 걱정들을 많이 해 주었던 동료들과 제자들을 보면서 의기소침한 나날을 보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들을 불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갖고 있는 선교관이었다. 즉 “선교에 은퇴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결론은 선교에는 결코 은퇴가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재임용이 되어 지속적으로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또한 자유함을 얻은 관계로 다양한 학교에 출강하면서 각기 다른 목소리들을 청취하게 되었다. 어쩌면 출강 시간이 늘어남에서 오는 일정으로 무척 바빠진 느낌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가졌던 선교의 이론들을 전략화 하기 위해서 지난 10월 31일(토)에는 “재한 이주민 사회통합진흥원”이라는 기관을 창립하여 사단법인화 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교의 특성인 역동적인 삶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칼럼을 집필하기 위해서 은퇴에 관한 자료들을 찾던 중에 매우 긍정적인 글을 발견하였다. 학교에서 퇴직을 하고 한국해외자원봉사단으로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가서 자신이 갖고 있는 달란트를 봉사의 도구로 활용하는 글을 보았다. 이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십니까? 퇴직후 1년 산에도 다니고, 국내 및 해외여행도하며 보내다가 에볼라가 창궐할 때 코이카 해외봉사단 단원 선발에 응시하고, 5주간 국내교육도 마치고, 작년12월 중순 탄자니아로 파견되어 현지어 교육받고 중등학교에서 화학선생으로 제3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힘든 과정을 만날 때마다 긍정의 마인드로 기도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전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이지만 검은 얼굴에 맑은 눈동자를 볼 때마다 힘을 얻습니다.1960년대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 활동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제가 그 자리에 서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지난 6월 5일 우리의 여름방학에 해당하는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한 달 간의 방학동안 탄자니아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어 실습도 할겸, 여행도 해보았습니다. 어제 학교에 갔다 오면서 왠지 글을 쓰고 싶어서 소식 전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일을 할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나의 재능을 새로운 세상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몇 일 전 한국에서 가져 와서 사용하다 고장난 믹서를 고치러 다니면서 우리의70년대 모습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마치 타임 머신타고 과거로의 여행처럼 말입니다. 퇴직 후의 새로운 세상으로 ‘코이카 해외봉사’를 검색해 보세요.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위에 언급한 글에서 “대한민국에서 유통 기간이 지난 재능을 새로운 세상에서 나누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음이 감동을 주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도 이토록 쓰임새가 많음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평생을 살아가야할 우리에게 과연 은퇴란 있는가에 대해서 되묻고 싶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달려갈 길을 에베소 장로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면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했다. 은퇴란 영어로 Retirement이다. 즉 타이어를 다시 끼우고 미지의 새로운 길을 달려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대학에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달려 보지 못했던 길을 달려보고 싶다. 첫째는 세계로선교학교를 통해서 한국교회에서는 선교의 동력을 회복하고, 세계의 선교 현장에서는 효과적인 선교의 열매를 맺어가게 만들고 싶다. 둘째는 사단법인화된 “재한 이주민 사회통합진흥원”과 “세계다문화진흥원”을 통해서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선교적 차원에서 사역할 수 있는 기관으로 육성하고 싶다. 세 번째는 국내외 사역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한국어 교원 수료증을 세계로원격평생교육원을 통해서 제공하고 싶다. 글을 보신 독자님들께서 이제 타이어를 갈아 끼운 저를 위해 새로운 일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싶다.www.worldcan.co.kr(세게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1-13
  • 구하는 자들에게 주라
    박지원의 허생전의 내용이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 씨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 생이 곧 변 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엇을 좀 해보려고 하니 만 냥을 꿔 주시기를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요‘ 하고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변씨의 자제와 손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 씨가 말하였다. ‘이건 너희들이 알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 하겠느냐?’허생은 만 냥을 받자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림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대추며, 석류, 귤, 유자 등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얼마 안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17세기 중반 조선효종 때 경제 구조가 취약함을 한탄하였다. 자고로 사람들은 돈을 빌려 줄 때 결코 아무에게나 빌려 주지 않는다. 돈을 부탁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대단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와 요건을 붙인다. 헌데 변씨를 보자. 비록 불신자 이지만 초면의 허생에게 이름도 묻지 않고 어떤 조건도 제시 하지 않은 채 거금을 내어 주었다. 오늘 날 목회자, 장로, 성도들이 본받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 깊이 생각해 보자. 오늘 날 우리들에게 물질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다하여 물질을 모으고 저축한다. 그런데 왜 아까운 물질을 구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할까? 그것은 주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쓸 곳에 쓰라고 물질을 주셨고(마 25:14, 15) 누구에게든 구하는 자에게 주라(눅 6:30)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즉 너희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까다롭게 조건을 붙이지 말고 또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고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아예 ‘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색하여 물질을 구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그것은 큰 죄악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돈 주머니를 회개한 자가 진정 회개한 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생명처럼 사랑하여 더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탐심 때문에 베푸는 삶을 외면하고 포기한지는 않았던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상에서 소유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세상의 곳간을 넓히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지도 또 행복하게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쌓아두려면 영원한 곳간에 쌓아두어야 할 것이다. 즉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선용하지 않고 창고에 쌓아 두기만 하면 결국 못쓰게 되고 녹슬고 또 도적들의 사냥감이 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대도들이 턴 집들은 묘하게도 모두 다 그 집 은밀한 곳에 현찰을 둔 집들만 공통적으로 털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우리 주변에 있는 가난한 자들이 물질을 구할 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외면하거나 냉정하게 거절하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이제 지금 우리를 살펴보자. 우리는 재물을 쌓아 놓고만 있는 어리석은 자는 아닌지, 그리고 주님과 세상의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려고 하는 기회주의자는 아닌지 말이다. 고로 우리는 부에 대한 탐심, 성에 대한 탐닉, 세상의 영예와 소유에 대한 집착 등을 과감하게 버리자. 주님께서 주신 물질을 구하는 자에게 주지 않고 자기를 위해 치부만 하면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자산들이 상하여 못쓰게 되고 또 엉뚱한 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며 평생 후회하고 후일에 주께 책망을 받기 때문이다.
    • 칼럼
    • 목회자
    2015-11-13
  • 소금으로 맛을 내어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언제나 친절하게 유익한 말을 하고, 묻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對答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골로새서 4장 1-6).바울은 크리스천이 교회 밖 사람들에게 해야 할 말을 음식조리법에 비유하고 있다. 나의 미각이나 사정을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말을 전해야할 상대방의 미각과 문화적 토양에 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사정을 따라 알맞게 소금을 치라는 충고로 받아들이고 싶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뛰어난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기본자세는 역지사지에 있다. “내가 전하는 말씀은 절대 진리”이니, “나의 말은 진리이고 평화이니” 무조건 받아 들여야 한다는 식의 데모꾼의 외침일 수는 없다는 뜻이 아닐까.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한다”했다. “언제나” 하는 말은 늘 그런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는 말일 터. 차라리 그런 체질이 되어 있어야한다는 말로 이해해 보자. “은혜가 넘쳐야한다”는 말은 소금으로 맛을 냈으면, 그 맛의 효과가 제대로 상대방이 동의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되어야한다는 말로 새겨본다. 혀끝에 닿는 맛은 그 사람의 표정을 바꾼다. 곁에서 보는 사람도 그가 뭣을 맛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지경이다. 혀끝으로 단 맛을 맛본 얼굴과 혀뿌리로 쓴 맛을 느낀 표정은 사뭇 다르다. 혀의 양옆에서 신맛을 맛본 표정 또한 다르다. 신맛을 접한 얼굴과 단맛을 맛본 표정은 사뭇 달라서 바라보는 다른 사람도 얼른 감을 잡을 수가 있다. 짠 맛이라면 더 그렇다. 소금으로 맛을 낸다고 하는 노릇은 확 소금을 뿌려 썩지 않게 간을 하는 방부처리가 아니다. 소금은 달콤한 맛에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소태맛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 양과 솜씨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고등어자반”이란 것이 있다. 생선을 제대로 먹어볼 수 없었던 내륙 안동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즐기던 소금으로 간을 친 고등어를 일컫는데,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지방 사람들이 덩달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무나 조리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좋은 스승을 따라 적잖은 시간 훈련을 쌓은 손에서만 제대로 된 “고등어자반”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맛은 인간의 표정을 바꾼다. 그리고 감정을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동작이 쌓여가노라면 인간의 성격을 더 복잡하게 바꾸어가게 마련이다. 아비의 미각은 자손에게 전해지고 어미의 먹거리는 태아의 성격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지 않는가. 히브리인의 성격과 표정을 형성해온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그들이 먹어온 음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 그리스도교회가 세계를 향해서 제공할 수 있는 “말씀”이 어떠해야할지를 충분히 고려한 나머지 내뱉은 말이 아니겠는가. 요한 12장,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 이야기에서, 한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어이 배신자가 될 유다에 대한 비난을 첨가하는 것 까지는 그래도 그 일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에서 수긍이 간다고 하더라도, 6절에서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어서 돈 자루를 맡아가지고 있으면서 거기 넣은 것을 훔쳐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까지 모진 소리를 한 것은 요한기자의 짓궂은 악의가 두드러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모양의 보도가 결국에는 유대인을 핍박하는 구실로 이어졌다는 설은 제법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소금으로 맛을 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 굳이 상처를 내기 위해서 이기보다는 소금으로 맛을 내어 우리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가꾸어간다는 뜻일 것이다.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전신만신 성모 마리아’판이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예수는 저만큼 비껴 있어 유럽의 그리스도교회는 마리아교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접근해보면 나름대로는 소금으로 맛을 내려했던 중세 그리스도교의 심정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의 기독교신학은 소금으로 맛을 내는 여유까지를 가꿀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더욱 알맞게 소금으로 맛을 내는 솜씨를 터득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5-11-12
  • (정신재)문 밖에 선 예수
    문 밖에 선 예수 이 세 영고달픈 삶에 흐물거리는 인생복 받고 부자 되는 길많이 심으면 많이 걷우고교세 늘리는 자 복 받는다 하네화려하고 웅장한 건물 속달콤한 능변과 세련된 제스처철새처럼 모인 군중교회가 복 받은 증거라는데교세 자랑 건물 경쟁교파는 새떼처럼 갈라지고새 시대 새 바리새인세상을 당당하게 앞장서 가네 아름다운 대형 십자가부귀와 명예로 번쩍번쩍교인은 많지만 성도는 어디에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지?믿음 소망 사랑은 애드벌룬이냐?문 밖에 선 예수는 시름없이눈물만 뚝, 뚝, 뚝. 주는 낮고 천한 광야에서도 빛이십니다. 우리는 낮고 천한 죄인이었으나 당신의 한량 없는 은혜로 의의 길에 들어섰사오니, 선한 목자 되시는 주여! 주님 뜻대로 인도하소서. 저희를 인도하시어 하나님 나라에 들이소서. 주의 길은 넓고 크시나이다. 주의 품은 진실되고 아름답습니다. 빛과 소금으로 주님 가신 길 따라 당신께 나아가나이다. 빙수처럼 시원한 말씀으로 죄의 먼지를 씻게 하소서. 빛으로 오신 당신을 앙망하나이다. 거실의 맑은 햇살 속에 당신의 창조가 보이나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소외받는 자들의 아버지시니이다. 두 손 모아 주님께 찬양드리오니 받아 주소서. 지금 현재 여기에 오셔서 아버지의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 주소서. 우리의 수명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주관하시고, 주님이 주신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나를 당신 뜻대로 이루소서.
    • 칼럼
    • 기독시선
    2015-10-30
  •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은 기원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이었다. 살아있는 모든 여성에게 실망한 왕이 손수 상아를 깎아 만든 여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데, 그녀가 옷을 걸치고 있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라 생각하고서는 옷을 입혀주기까지 한다. 자신이 만든 조각물을 실재하는 인간 이상으로 사랑하고 몰입하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에서 운을 띄우기 시작한 “피그말리온”이야기는 훗날 상상도 못했던 방향으로 발전한다. 하마터면 인간이 아닌 인형을 편애하는 소위 “피그말리온 콤플렉스”의 자료 정도로 묻혀있을 뻔했던 이야기가 화려하게 20 세기의 무대조명을 받게 된 것은 익살꾼 버나드 쇼가 1912년에 <피그말리온>이란 희곡을 완성하면서다. 희곡 <피그말리온>은 곧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뮤지컬이 되어 여러 버전으로 변신을 거듭하다가 1964년에는 오트리 헵번이 주연하는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로 많은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내용인즉, 낮은 신분출신의 소녀 일라이자가 비긴즈의 도움으로 언어습관을 고쳐 레이디로 변신하지만, 자아에 눈을 뜨고 그의 곁을 떠난다는 줄거리의 변주들이다. “피그말리온”이 교육심리학의 이론으로 변신한 것도 이 무렵. 1964년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타르가 “인간에게는 남에게서 기대 받은 만큼의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주목을 받게 된 이론 말이다. 그의 이론은 미국의 심리학이 대체로 그렇듯이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결론이라고 했다. 1963년, 로젠타르와 동료 포드가 학생들에게 쥐를 이용한 미로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용 쥐를 넘겨주면서, 한 집단에게는 “이 쥐는 잘 훈련을 받은 영리한 계통의 쥐”라는 정보를 주고, 다른 집단에게는 “이 쥐는 형편없는 쥐”라는 귀띔을 주었다. 실험결과 두 집단 사이에 주목할 만한 차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각각 다른 정보를 받은 학생집단이 쥐를 다루면서 동원한 방법과 기대감의 차이가 실험결과에 반영된 것이라고 로젠타르는 생각했다. 이런 결과는 학생집단과 쥐에서 만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라 생각한 로젠타르는 이듬 해 교육현장에서 실험을 실행한다. 한 초등학교에서 “하버드식 돌발성학습능력 예측 테스트”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가며 실시한 테스트였지만, 내용은 일반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지능테스트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었다. 학급담임교사에게는 “차후 수개월 사이에 성적이 나아지는 아동을 찾아내기 위한 검사”라는 설명을 해두었다. 그러나 실제 검사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암시에 불과했다. 검사결과와는 관계없이 무작위로 선발된 아동의 명부를 학급담임에게 보여주면서 “이 명부에 올라있는 아등은 차후 몇 달 안에 성적이 올라갈 아동”이라고 귀띔해둔 것이다. 그런데 명부에 이름이 올라있는 아동의 성적이 분명히 향상하고 있었다는 것. 보고논문의 주장에 따르면, 성적이 올라간 원인으로서는 담임교사가 명부에 올라있는 아동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대했다는 사실과 아동 편에서도 자신이 기대를 받고 있다고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피그말리온 효과>라 명명된 실험결과는 더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재시험을 한 결과 이러한 효과는 인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교육기관이, 공교육 사교육 할 것 없이, 상당한 반향을 불러 모았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인터넷을 뒤지면 <피그말리온 효과>를 빙자한 특수교육의 선정문구를 쉽게 대할 수 있다. 당시의 교회가 이 이론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리 없지 않는가. 교회성장과 헌금수입에 선용(?)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인간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게 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가나, 자신을 대해주는 다른 사람의 태도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심리학 법칙이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자신이 어떻게 대접받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언동을 바꾸게 된다는 것. 이 이론을 근거로 하는 “피그말리온 효과에 따른 동기부여“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다루는 태도나 방법을 조정함으로서 상대의 부적절한 언동을 적절한 언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보려는 노릇이다. 2천년도 전에 예수는 대접을 받고자 하거든 남을 먼저 대접하라 했지만. 요즘 날로 험해져는 정객들의 말씨를 대하면서, 그들에게 <피그말리온 효과>를 테스트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혹 기대하지 못했던 버전이 축출될지 누가 알겠는가.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5-10-30
  • 인류의 최대의 적 ‘술’
    오늘 이야기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남성도의 간증문의 내용인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집안은 필라델피아의 이름난 명문가의 하나입니다. 나의 가문은 퀘이커 교도의 형제파에 속해 있으며, 이제 천국에 계신 어머니는 한 때 그 단체의 설교가로도 활동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7년간이나 술독에 빠져 주정뱅이로 살았습니다. 이 때문에 돈과 건강과 친구를 잃고 패가 망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도 떨어져 살았고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술을 끊으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술을 끊을 수 있다는 약도 많이 먹었습니다. 수백 번 맹세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무익했습니다. 누구나 나를 절망적이라고 생각 했습니다.마침내 나는 술 때문에 무서운 질병에 걸려 공립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명은 알콜중독에 의한 진전섬망증 이었습니다. 나는 살 가망이 없었으나 독실한 어머니의 기도응답으로 예수님께 그 병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살려 달라고 애원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얽매고 있던 무서운 죄악의 사슬은 끊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병 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수개월 간 술이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건강과 행복을 되찮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천국 백성이 되어 거기가면 나를 기도로 이르게 하신 어머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사람의 이야기였다.그러면 이 실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은 세계의 순위에 꼽힌다고 한다. 술을 마신 이유로는 신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불면증 때문에, 사교 상, 등등 술의 종류만큼이나 많은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일시적 현실 도피와 망각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허나 술에 취해 있는 그 시간이 몽롱하고 기분이 좋고 시름을 잠시 잊게 하고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할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할 뿐이다. 고로 술에 취해 있는 그 시간은 결코 행복한 시간이 아니다. 술을 마실 때 사실상 시간과 생명을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술 취함으로 발단된 골치 아픈 일을 뒤처리 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의 해독은 심각하다. 통계에 따르면 세상 범죄의 4분의 3이 술과 관련되어 있고, 또한 세상 범죄의 90%가 술과 관련되어 있다는 보도도 있다. 또한 의학적으로는 ;과도한 알코올 의존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다양한 질병을 야기 시킨다고 했다. 따라서 알코올 의존자들은 질병과 사망 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수명도 일반인에 비해 10-12년 정도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음주는 뇌세포의 손상과 인격의 결함을 야기 시켜 기억 상실이나 사고와 판단 억제력의 상실을 가져오고, 심한 경우 무의식 현상과 조절 중추에 침범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간과 위장계에 심각한 손상을 주며 암으로 발전될 수 있고, 심장이나 근육 내분비계와 생식 계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한다. 현대는 ‘술 ’ 권하는 사회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술을 먹고 분별력을 잃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술은 인류 최대의 적이며 대다수의 남녀를 노예로 만드는 대적; 이라고 하여 술을 멀리 할 것을 권고했다. 헌데, 오늘 날 더욱 심각한 것은 경건해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술을 마신다고 해서 다 죄로 치부하는 것도 극단적인 태도이다. 술은 적절히 사용하게 되면 나름대로 의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삼하 16:2, 딤전5:23). 문제는 술 마시기를 즐겨 하고, 술에 인박히는 것이다. 즉, 하루라도 술 없으면 살지 못할 정도로 술에 의존하여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경건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이웃으로부터 술주정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사람들이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술을 먹으면 반드시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호 7:15). 오장 육부가 술 때문에 병들게 되며 몸과 정신이 망가지는 것이다. 결국 돈과 몸과 건강과 생명과 시간과 노고와 명예 등 모든 것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것도 죄악이다. 옛 말에 사람의 신체발부는 부모님이 주신 것이라고 하여 그것을 손상시키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 하물며 하나님이 지으신 몸을 술로 병들어 못쓰게 만드는 일이 어찌 죄악이 아니겠는가.
    • 칼럼
    • 목회자
    2015-10-30
  • 헐버트 선교사의 한국사랑
    한국선교 수용사에 나타난 헐버트는 위대한 인물이다. 일부 학계에서 초기 선교사들의 공헌을 폄하하는 운동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도 느껴진다.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하겠다. 조선의 패망과 한국의 건립 시기에 외국 선교사인 헐버트가 있었다. 헐버트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 주 뉴헤이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들베리대학의 총장이었던 칼빈 헐버트 목사였으며 어머니는 다트머스 대학의 창립자 엘리저 윌록의 외증손녀인 매리 우드워드다. 1884년,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에 유니언 신학교에 들어가서 2년간 수학하였다. 1886년(조선 고종 23년)에 길모어, 벙커등과 함께 조선에서 육영공원에 교사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와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교사직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그는 자비로 한글 개인교사를 고용하여 한글을 배워 3년만에 한글로 책을 저술할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육영공원에서 근무하면서 제중원 학당에서도 학생을 가르쳤는데, 1888년 3월경부터 하루 2시간씩 제중원 학당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1888년 9월 미국에 일시귀국하여 메이 한나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 헐버트는 1891년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해 육영공원 교재로 사용하였다. 육영공원에서 교직으로 근무했을때 헐버트는 외국 서적의 번역 작업과 외국에 대한 한국 홍보 활동을 벌여 많은 서적과 기사를 번역, 저술했다. 1896년에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처음으로 채보하였다. 그러던 중, 조선 정부에서 재정상의 이유로 육영공원을 축소 운영하게되자, 헐버트는 1891년에 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헐버트는 1891년 여름 당나귀를 타고 아펜젤러, 모펫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 근교의 석탄 광산의 실태를 파악하였다. 아펜젤러와 모펫은 선교 정보를 얻기 위하여 동행하였다. 1893년에 헐버트는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감리교 출판부인 삼문출판사의 책임을 맡았으며,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한성부에 오기 전 미국의 한 출판사에서 출판에 대한 교육을 받고 왔으며 신시내티에서 신식 인쇄기를 들여왔다. 삼문출판사는 그가 부임한 지 1년이 안 되어 전도지와 종교 서적 1백만여 면을 인쇄하여 경영을 자급자족할 수준에 이르렀다. 1895년 2년간 휴간했던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을 다시 발행하였고, 최초의 영문 소설 한국어 번역판인 천로역정을 출판하였다. 그해 8월에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1897년 5월 조선정부와 고용계약을 맺고 학생수 50명이 되는 한성사범학교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관립영어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1900년부터 1905년 고종의 특사로 미국에 방문하기 전까지 현 경기고등학교의 전신 관립중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일본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1901년부터 영문 월간지 'Korea Review'를 발행하였다. 헐버트 부인도 이화학당에서 음악을 가르쳤으며 외국인 자녀들을 자신의 집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또한 제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현 동대문교회인 볼드윈 교회를 맡아 담임목회를 하였다. 이때 외국 서적의 번역 작업과 외국에 대한 한국 홍보 활동을 벌여 많은 서적과 기사를 번역, 저술했다. 한국의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1908년에는 관립중학교의 제자 오성근과 함께 '대한역사'라는 한글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였다. 헐버트는 고종 황제의 최측근 보필 역할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고종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이었고, 한국의 분리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였으며, 1907년 헤이그 비밀밀사에 적극 지원하여 밀사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지지했다. 그는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매우 유창하게 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 42년 만에 방한하였다. 방한 이후 1주일 후에 헐버트는 병사하여 8월 11일에 최초의 외국인 사회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였고 오늘날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헐버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민국으로 떠나며 언론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필자가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제자의 논문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헐버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요즈음처럼 국정교과서로 인해서 갈등히 심할수록 선교사님들의 한국 사랑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0-27
  • 군주와 군자
    <춘추(春秋)>에는 “송공(宋公=양공(襄公)이 초(楚)나라 군사와 홍(泓)에서 싸워 송이 패했다.”는 아주 짧은 전쟁기록이 있는데, 후세 사람들이 이 기록을 두고 서로 엇갈리는 평가들을 남기고 있어 흥미롭다. <공양전(公羊傳)>에서는, 송과 초 두 나라가 홍수(泓水) 기슭에서 싸우기로 약속했던 모양으로, 송의 양공이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참에, 초나라 군대가 허둥지둥 강을 건너는 장면을 목격한다. 양공의 측근이 “적군이 홍수를 건너버리기 전에 공격하자”하고 권했지만, 주군의 반응은 달랐다. “군자는 사람을 곤궁에 밀어 넣지 아니하는 법, 적군이 미쳐 대열도 가추기 전에 공격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면서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초군이 강을 건너긴 했지만 미쳐 진영을 가다듬지 못하고 있는 틈을 노려, 이를 기회로 잡아야 한다는 측근의 귀띔도 거절한다. “군자는 상대 진영이 정돈되지 않았는데도 진격명령을 내리는 비겁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초군의 진영이 정돈된 것을 보고서야 전투개시의 북을 울린다. 그러나 양공이 이끄는 송의 군대는 대패하고 말았다. 훗날, <공양전>은 양공이 큰일을 앞두고도 “예”를 저버리지 않은 것은 훌륭한 처사였다고 평가했다. 송이 패한 것은 “훌륭한 군주는 있었으나 그에 걸 맞는 신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더해서 “문왕(文王)이라할지라도 그렇게 훌륭한 싸움은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찬사를 덧붙였다. 고대에는 편전(偏戰)이라 해서, 미리 약속해둔 시기와 장소에서 양 진영이 전열을 가다듬은 후에, 북소리로 전투를 시작하고 징소리로 마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공양전>에서는, 양공이 기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못 본 채, 적군이 진영을 가다듬을 때를 기다려, 북과 징으로 시작하고 마치는 ‘편전’의 약속을 지켰기에, “‘군자’의 인의(仁義)를 귀히 여겨 대례(大禮)를 지켰다”고 칭찬한 것이다. 한편 <곡량전(穀梁傳)>은, 그 전투가 송의 양공이 지난 해 초나라에 사로잡힌 적이 있어서 그 수치를 설욕하기 위한 복수전이었다고 풀이하는가 하면, <좌씨전(左氏傳)>은 송의 양공이 맹주로서의 체면을 지키려고 초나라를 공격했고 이에 질세라 초나라의 성왕(成王)이 맞선 싸움이었다고 풀이한다. 그러한 상황해석으로 해서 <곡량전>과 <좌씨전>은 <공양전>의 것과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린다. “적에 비해 우세하면 공격하고, 필적할 만하면 맞서 싸워야하지만, 불리하면 방위 전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 전장에서의 상식이거늘, 요행만을 의지해서 이겨보려는 싸움은 있을 수 없다. 매사에는 기회가 있게 마련이고, 이를 잘 이용해야 기세를 잡을 수 있는 법. 그럼에도 ‘도리’에만 매달려서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기세를 잡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 하는가. ‘시(時)’와 ‘세(勢)’를 잡지 않고서는 ‘도(道)’를 성취할 수는 없는 법” <양곡전>은 제대로 시세를 판단할 줄도 모르는 무능한 군주 양공을 맹비난한다. <좌씨전>의 비난도 만만치 않다. “송나라 백성이 모두 양공을 비난하자, 양공은 ‘군자는 부상한 자를 따라 잡지 아니하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붙잡지 않는 법. 즉 사람을 곤궁으로 밀어 넣지 아니한다. 우리 송나라는 주(周)에게 멸망당한 은(殷)나라의 자손이 책봉된 나라이긴 하지만, 적군의 틈을 노려 공격할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다.’하고 말했다. 이에 자어(子魚)가 대꾸했다. ‘군주께서는 전쟁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소. 강적 초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시기는 바로 하늘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절호의 기회이거늘, 할 일없이 그 기회를 놓친다면 전쟁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오. 전쟁이란 적을 죽이는 노릇일 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라오. 부상자나 노인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만이 군자의 도리라면, 처음부터 전쟁은 하지 말고 굴복하는 것이 좋았지 않소.”훗날 사마천은 송공의 군자다움을 칭찬하면서도, 나란히 자어의 반론을 인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송나라 군대가 대패해서 양공 자신도 부상을 입는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되자, 모든 국민이 양공을 원망했다는 <좌시전>의 서술도 인용했다. <한비자(韓非子)>의 평가는 아주 날카롭다. “양공은 백성을 사랑하지도 않았거니와 신하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다만 들은 풍월에 놀아나 작은 의(義)에 사로잡혔을 뿐이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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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10-27
  • (정신재)땅끝마을
    땅끝마을 이 소 희한 마리짐승으로 달려와숨을 고르고 있는끝과 시작의 교차점뭍이 끝나는 곳에서바다가 열리고바다가 끝나는 곳에서뭍이 열린다땅끝은끝이 아니라또 다른 시작이다.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끝은 보다 포월적인 시선으로 보면 끝이 아니다. “물이 끝나는 곳에서/ 바다가 열리고/ 바다가 끝나는 곳에서/ 뭍이 열린다”. 그래서 “땅끝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이소희 시인은 ‘땅끝 마을’이라 불려지는 전남 해남 출신, 시인이다. 시인의 고향인 해남에 가 보니 바다만 보였다. 그러나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보길도가 나오고, 제주도가 나온다. 시인이 “땅끝”을 “또 다른 시작”으로 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이렇게 볼 때 삶이 이 세상으로만 끝나는 것 같지 않다. 봄에 죽은 씨앗에서 발아하는 새싹을 보면 삶이 소멸로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몸소 당신을 보여주시지 않았던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없으되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 24:38-43).믿음은 온전히 다 믿는 것이지 어느 것은 믿고 어느 것은 안 믿는 취사선택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인류를 사랑하여 이 땅에 오셨음을 믿자.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고 오병리어의 표적을 행하신 것을 믿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을 믿자. 성령으로 신자와 함께 하심을 믿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복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고린도후서> 5:18)음을 믿자.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의를 알리자.
    • 칼럼
    • 기독시선
    2015-10-17
  • 오포세대와 선교
    21세기가 되면서 가장 무섭게 변화된 사회상은 N세대의 등장이다. 서울신학대학 외래교수인 전석재 박사는 한국의 N세대(Net Generation)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N 세대란 1990년 후반에 등장한 용어로 컴퓨터 정보 통신의 발달과 함께 자라고, 네트워크(Network)를 자유롭게 다루며, 그 속에서 생활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한편 10대 후반과 20대 중반으로 진입하는 N세대(Net Generation)를 뜻하기도 한다. 이들은 힙합을 즐기고, 전자메일을 띄우며, 직접대화 보다는 온라인 안에서 네트워크를 즐긴다. 자기가 선호하는 일을 하고,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갈고 닦으며,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 스마트폰의 활용을 즐기며, 개성 있게 살면 성공한다고 믿는 다. 항상 색다른 것과 변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N세대는 상상력과 창의력, 예술성과 문화적 감성들을 과학 기술 세계와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N세대는 포스트모던의 영향으로 다양한 가치와 감성을 중요시하며, 소비문화 속에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결정하고, 변화와 개성을 중요시 하고, 새로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특별히 스마트폰 문화 안에서 SNS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여 서로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정보를 수집하며, 공동체를 형성함으로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또한 N세대들은 자기의 당면한 문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이성문제, 가족간의 관계, 술, 담배 문제보다 미래에 대한 계획, 직업의 선택, 그리고 입시문제가 그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N 세대에게도 엄청난 문제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른바 ‘오포’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이른바 ‘삼포세대’는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이에 더 붙혀서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오포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경향신문 이호준 기자에 의하면 ‘2030세대’(20대와 30대를 아우르는 말) 2명 중 1명은 다섯 가지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취업포털 사람인(人)은 2030세대 2880명을 대상으로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중 포기한 것이 있는가’라고 물은 결과 1660명(57.6%)이 ‘있다’는 답을 했다고 3일 밝혔다.N 세대는 바로 미래의 한국사회를 떠밭치는 세대이다. 어쩌면 기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이 ‘5포’를 통해서 활기찬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치권과 정부에서 수없이 다양한 대책을 내어 놓는 모습도 보인다.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기금도 출연하였다. 사회 지도층들도 뒤질세라 이러한 기금 운동에 참여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만 이러한 운동이 일시적인 윈도우 정책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교적인 차원에서 교회가 이러한 N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서둘러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의 아픈 구석을 치유해 왔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의 공산운동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교회가 성도들 간에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위기 속에서 다섯가지를 포기하고 살겠다고 한 우리 N세대의 문화, 가치, 생활양식을 이해하며, 관계전도를 해야 하겠다. N세대의 문화, 가치, 문제, 갈등,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방치하는 교회가 되지 않아야 하겠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의 문제, 스타일, 문화, 갈등, 그리고 진로를 인정받고 싶고, 이해해 주기를 원하며, 대화하기를 원한다. 우리 기독교인의 도전은 성경의 절대적 가치를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비신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성육신적 사역을 하느냐? 바로 이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오늘날 N 세대들은 다섯가지를 포기하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있다. 그들에게 찬송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한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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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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