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Home >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칼럼 기사
-
-
[언론회 논평] 건전한 성교육 전문가를 공격하는 언론들
-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제작 TF회의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성교육을 진행할 때, 변경해야 할 용어 목록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과 ‘섹슈얼리티’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포괄적 성교육은 동성애를 포함시키는 것이고, 섹슈얼리티는 조기 성애화(性愛化)를 조장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현재 사용하는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꾸어서 사용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즉 연애를 이성 교제로, 포궁(胞宮)을 자궁으로, 체험관을 센터교육장으로,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서울시가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는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운영 매뉴얼을 위하여, 청소년성문화센터의 관계자 4명, 청소년성문화센터장, 공무원 2명, 기존 자문위원 2명, 신규 자문위원 2명 등 총 11명이 모여서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자문 위원으로써, 건전한 청소년 성교육 강사로 활동 중이며, 처음 이 회의에 참석한 조우경 대표(글로벌바른가치연구소)가 최근 국내 및 해외에서 논란이 되는 유네스코 포괄적 성교육의 문제점과 국가교육위원회의 방침대로, 섹슈얼리티 등의 단어가 적합하지 않음을 지적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용어들이 수정•보완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소위 말하는 진보 좌파 언론 매체인 한겨레, 여성신문,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오마이뉴스 등의 언론들이 반발하는 기사를 썼고, 여기에 더하여 조우경 대표에 대한 개인정보를 유포하고, 그가 발언한 것도 왜곡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조 대표는 7월 8일 한국교회언론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첫째, 언론들이 조 대표의 개인 정보를 어떻게 안 것이며, 그의 발언을 왜곡시켜 전달받은 경로가 무엇인가를 밝혀라. 둘째, 자신을 리박스쿨과 연계시켜 명예를 실추시킨 것을 해명하라. 셋째, 이 언론들은 다수의 국민이 반대하는 ‘포괄적 성교육’만이 올바른 성교육이라고 하는데, 이는 언론들이 생명과 가정의 가치를 올바로 전하는 성교육을 기독교의 극우 세력에 의한 잘못된 방식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넷째, 조 대표가 교회나 선교회 등에서 강의한 내용을 일반 학교 공교육 현장에서 강의하여, 종교적 편향을 한 것처럼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좌파 진보 매체들이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동안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외설적이고 부적합한 성교육으로 인해 수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민원과 항의를 받았고, 한 명이 23년간 대표의 지위를 가졌으며, 동성애가 정당하다는 주장으로 인하여, 서울시가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재위탁이 불투명해지는 상황 속에서 건전한 성교육 기관을 모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왜곡된 것의 정정보도와 함께, 조 대표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하라고 요구하였다. 조 대표는 부연(敷衍)으로, 자신은 특정 정치인을 당 대표로 출마하라는 것에 동의한 바 없고, 유럽에서도 외면받는 ‘포괄적 성교육’의 현실을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포괄적 성교육에 찬성하는 나라는 벨기에, 에스토니아,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의 5개국 정도이며, 강력하게 이를 반대하는 나라들은 12개국이다. 또 반대하는 입장의 나라들은 8개국으로,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아일랜드, 마케도니아, 스위스, 우크라이나, 영국 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럽에서조차 반대하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성교육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과정이기에, 건강하고 올바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동성애를 옹호하고, 성을 정치적, 혹은 왜곡된 개념으로 가르치는 것을 옹호하고, 건전하고 바른 성교육을 하는 강사를 집중적으로 언론들이 공격하는 것은 결코 바르지 못하다. 이런 상황들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할 것이다. 자라나는 학생들의 성에 대한 바른 지식과 이해, 그리고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은 교육하는 사람들의 막중한 책임이다. 그러므로 ‘성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바른 양심과 교육자에 요구되는 합당한 양식이 뒤따라야 한다. 청소년들에 대한 바른 ‘성교육’은 소위 말하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인격체를 가졌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청소년 세대가 온전한 인격체로 완성되는 것을 돕는 것이다. 언론들도 이념적 다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져 갈 다음 세대를 위한 무거운 채무 의무 의식을 가져야 한다.
-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
[언론회 논평] 건전한 성교육 전문가를 공격하는 언론들
-
-
[언론회 논평] 15만원씩 받아서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면
- 지난 4일 국회에서는 31조 8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되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30조 5천억원보다 1조 3천억원이 더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대통령비서실, 법무부, 감사원, 경찰청 등 특활비를 포함한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 추경예산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경기 진작(振作)을 위한 예산이 가장 많아 무려 17조 3천억원이 들어간다. 이 돈으로 전 국민 1인당 15만원에서 55만원까지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전 국민 1인당 45만원 꼴의 국채(國債)까지 발행한다는 소식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렇게 빚을 얻어서 주는 돈을 받아야 할까? 나라에 국고(國庫)가 넉넉하여 나눠준다면 걱정이 안 되겠지만, 빚으로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이 영 꺼림칙한 일이다. 또 부자들에게도 15만원씩을 준다는데,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며, 필요할까? 거기에다 정부는 113만 명에 대한 빚을 탕감해 주는데, 16조 4천 억원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2,000여 명의 외국인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다 대통령은 앞으로 채무 탕감을 더 해 줄 것이라고 하였다. 그 재원(財源)은 어디서 나오는가? 결국 빚이 아닌가? 아랫돌을 빼어 윗돌에 고인다면, 과연 그 건축물은 괜찮을까?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중은 49.1%로 매우 높아져, 국가 전체가 위험해진다. 국가 채무가 GDP(국내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버는 돈에서 빚이 절반이라면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300조 원(국민 1인당 2,600만원의 빚이 됨)에 달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빚이 400조원이 늘어나 사상 최초로 국가 채무액이 1,000조원을 넘었는데, 이렇게 계속 빚이 늘어나도 국가는 괜찮은가? 한때 부요했던 나라들 가운데 지금은 빈국(貧國)이 된 나라들이 있다. 유럽의 그리스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국(富國)이었는데, 과도한 공공 부문 확대와 복지 지출로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정부 부채 증가가 신용등급을 하락시켰고, 그것이 국채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 실업 증가와 사회 불안 요인으로 악순환되고 있다. 중남미의 석유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부패와 비효율적인 국가 운영으로 어려움을 당하였다. 무리한 사회복지 확대와 국유화로 빈곤이 악순환되고 있다. 동남아의 필리핀도 1970년대까지 아시아의 부국이었는데, 부정부패와 정치의 잘못된 엘리트화를 통하여, 경제가 무너진 국가의 사례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막대한 자산가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올해에만 2,400명이 빠져나갈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높은 세금, 투자 기회 때문이라고 한다. 그 숫자는 3년 내, 6배로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물가 상승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상법 개정’(노란봉투법)으로 불법 파업이 확산되고, 고비용으로 공급과 성장 역량은 제한되고, 노조의 임금 투쟁으로 물가만 올라가는 스태그플레이션(경제가 성장하지 않거나 정체된 상태에서 물가만 상승하는 현상)이 우려된다고 한다. 정부에서 소비자 쿠폰으로 주는 15만원씩을 받아서 오히려 국가에 부작용이 생긴다면, 어떤 국민이 받기를 좋아하겠는가? 그리고 빚을 얻어서 소비 쿠폰을 준다면, 이는 자녀나 손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미리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부는 7월 말부터 소비 쿠폰을 배부할 모양인데, 이제는 국민들이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고 본다.
-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
[언론회 논평] 15만원씩 받아서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면
-
-
[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 2일,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소위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를 겨냥한 것이다. 현행 KBS 이사는 11명에서 15명으로, MBC와 EBS는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국회 추천은 물론, 시청자위원회, 방송 종사자, 학회, 법조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 공영방송과 보도 전문 채널(YTN, 연합뉴스TV)의 보도 책임자를 임명할 때, 직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사장을 임명할 때도 새롭게 구성된 이사 5분의 3 찬성으로 통과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현 정권과 노선을 같이하는 노조와 그 세력들이 방송을 지배하도록 하는 구조로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일방적으로 치우친 이념과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방송을 현 정부와 여당이 영구적으로 차지하며,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을 강행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는 벌써 세 번째인데, 이미 두 차례는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방송3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의 의도는 무엇인가? 방송3법 개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진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나 노조가 다수를 점하는 이사회의 지배구조로는 이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양한 의견이라며, 공영방송의 조직과 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잘못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과 객관성과 진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측에서는 ‘방송이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된 시대를 쐐기 박고, 국민 참여로 방송이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진심인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다양성을 갖췄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편향과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힘을 얻는다고 본다. 어느 권력이든 언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의 개입 차단을 막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고 있는가? 이를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식의 방송법 개정으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괴리감(乖離感)만 더할 뿐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송 길들이기’를 위한 입법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사랑하고, 인정할 만한 방송이 되는 길을 보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수의 권력으로써, 억지로 방송법을 바꾸려는 태도는 오히려 방송을 망치려는 책동으로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많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인가? 지금은 방송법 개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거대 여당의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 정치권이 방송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릴 때, 방송의 순기능은 죽는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방송을 아예 빼앗아가는 악법이 될 것이다.
-
- 칼럼
- WAIC 칼럼
-
[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
-
[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 2일,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변경하는 소위 ‘방송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를 겨냥한 것이다. 현행 KBS 이사는 11명에서 15명으로, MBC와 EBS는 9명에서 13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국회 추천은 물론, 시청자위원회, 방송 종사자, 학회, 법조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다 공영방송과 보도 전문 채널(YTN, 연합뉴스TV)의 보도 책임자를 임명할 때, 직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사장을 임명할 때도 새롭게 구성된 이사 5분의 3 찬성으로 통과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방송의 지배구조를 현 정권과 노선을 같이하는 노조와 그 세력들이 방송을 지배하도록 하는 구조로 변경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도 한국의 공영방송은 일방적으로 치우친 이념과 사고(思考)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방송을 현 정부와 여당이 영구적으로 차지하며,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을 강행으로 처리하려는 시도는 벌써 세 번째인데, 이미 두 차례는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방송3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의 의도는 무엇인가? 방송3법 개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수 있는가이다. 진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나 노조가 다수를 점하는 이사회의 지배구조로는 이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또 다양한 의견이라며, 공영방송의 조직과 운영이 비효율적으로 잘못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방송의 공정성과 다양성과 객관성과 진정성은 보장되기 어렵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측에서는 ‘방송이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된 시대를 쐐기 박고, 국민 참여로 방송이 온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진심인가? 오히려 외형적으로는 다양성을 갖췄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편향과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힘을 얻는다고 본다. 어느 권력이든 언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의 개입 차단을 막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언론들이 독립과 공정성을 지키고 있는가? 이를 믿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런 식의 방송법 개정으로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괴리감(乖離感)만 더할 뿐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송 길들이기’를 위한 입법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사랑하고, 인정할 만한 방송이 되는 길을 보장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수의 권력으로써, 억지로 방송법을 바꾸려는 태도는 오히려 방송을 망치려는 책동으로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많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인가? 지금은 방송법 개정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거대 여당의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 정치권이 방송을 내 편으로 만들려고 억지를 부릴 때, 방송의 순기능은 죽는 것이며, 국민들로부터 방송을 아예 빼앗아가는 악법이 될 것이다.
-
- 칼럼
- WAIC 칼럼
-
[언론회 논평] 방송법 개정이 정치적 중립인가? 악법인가?
-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논평] 하미자 목사의 ‘마땅히 할 일’(신 30:14)
-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은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히 4:12) 둘째, 사람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말씀 속에 깨달음과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시 119:32) 본문을 보면,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는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은 바로 우리의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수만 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수만 가지 율법을 써 주었으나,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여겼다.”(호 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많은 율법 중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열한 가지로 말합니다. 주님의 장막에서 주님과 영원토록 함께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은, 1)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2)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3)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4)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5)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6)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7)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는 사람, 8)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 9)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 10)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는 사람, 11)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시 15: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의와 진리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웃과의 약속을 쉽게 파기하거나 뇌물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그 율법을 여섯 가지로 말합니다. 1) 의롭게 사는 사람, 2)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3)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지 않는 사람, 4)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5)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6)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입니다. “의롭게 사는 사람,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 권세를 부려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 뇌물을 거절하는 사람, 살인자의 음모에 귀를 막는 사람, 악을 꾀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 사람”(사 33:1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안전과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안전한 곳에 산다. 돌로 쌓은 견고한 산성이 그의 은신처가 될 것이다. 먹거리가 끊어지지 않고, 마실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사 3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가는 그 율법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1) 공의를 실천하며, 2) 인자를 사랑하며, 3)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뜻대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박국은 그 율법을 한 가지로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합 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폭력과 다툼과 불의가 판을 치는 상황 속에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히 11:6) 믿음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행 16:31)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
- 칼럼
- WAIC 칼럼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논평] 하미자 목사의 ‘마땅히 할 일’(신 30:14)
-
-
[언론회 논평] 여성을 역차별하는 ‘성평등가족부’가 웬말인가?
-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 부처의 장관들이 내정되고, 청문회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현재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국민연합’과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등의 수 많은 시민 단체들은 이를 우려하며, 일제히 반대 입장을 피력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용어의 잘못 사용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 영문 표기에서 ‘여성’이란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거기에다 ‘gender equality’를 ‘성평등’으로 우리말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이 정한 여성을 차별하지 말라는 규정과도 맞지 않는다. 유엔은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에서 의미를 정리하기를, ‘여성에 대한 차별이란 성에 근거한 모든 구별, 배제 또는 제한을 의미 한다’고 명시한다. 즉 성을 의미하는 것은 ‘sex’(생물학적 성)이지, ‘gender’(사회학적 다양한 성)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엔에서도 사회적 성을 나타내는 ‘gender’에 대한 차별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둘째, 이는 오히려 여성을 역차별하게 된다. 이를테면 성평등을 도입한 나라들에서 성평등을 실행한다며, 화장실과 탈의실 같은 곳에 생물학적 남성이 자유롭게 출입하게 되므로, 여성들의 인권과 안전권이 침해를 당하고, 심지어 성폭력과 같은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20여 년간 ‘성평등’을 진행해 왔던 영국에서도 대법원에서 ‘여성으로 태어나야 여성’이란 판결을 내렸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두 개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젠더를 더욱 강화시킨 ‘성평등가족부’로 만들려는 것은 세계가 놀랄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가족부가 처음 생긴 것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당시로 ‘여성부’가 신설된다. 그리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 부처의 문제점이 계속 노출되었다. 부처 역할의 중복과 비효율성, 남성 역차별 논란, 정치적 논란의 중심, 그리고 정책 실효성 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가족부’ 혹은 ‘성평등가족부’가 있는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독립된 내각의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처에 소속된 형태이다. 그리고 일부 나라인 프랑스,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여성 권리, 여성 권익에 대한 업무로 ‘여성권리부’나 ‘여성평등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아예 ‘젠더’에 대한 평등을 실현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이 노출되고, 세계에 없는 ‘성평등가족부’를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예 폐지를 검토해야 한다. 여성의 권익과 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정부 각 부처에 업무를 할당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장관급의 ‘성평등가족부’를 두어서 국민 간 갈등의 요인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정부의 부처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도 국민들의 눈높이와 세계 각국의 수준에 맞춰야 되지 않는가?
-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
[언론회 논평] 여성을 역차별하는 ‘성평등가족부’가 웬말인가?
-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나’
- 성전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외로운 아이의 울음소리에 당장이라도 괴나리봇짐을 싸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달빛 눈물 쏟으며 잠 못 드는 의로운 사사 한 명이 없어 암전되어 버린 시대 아들을 주시면 주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처절한 서원의 기도 그녀의 눈물이 강물 되어 흐르던 성전에서의 외롭고 차가운 나날들 누구도 알아듣지 못한 비탄의 시를 밤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신 당신 오늘도 아무도 모르게 홀로 기도하는 자들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방울 끝에서 빛나는 이름, 한나. - 어머니의 참된 사랑은 어디서나 위대하다. 인류 역사에는 모정의 미덕을 보여주는 담화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성경에서도 다를 바 없다. 예수와 그 어머니 마리아를 봐도 그렇다.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 모자 간에도 곡진(曲盡)한 사랑은 매한가지다. 어머니 한나의 사랑은 아들 사무엘을 위대한 신앙의 인물로 키워냈다. 그 뒷면에는 ‘눈물이 강물 되어 적셨던 성전에서의 외롭고 차가운 나날들’이 있다. 시인은 그 간절함이 있었기에 한나가 기도의 승자가 됐고, 기도로 승부했기에 아들의 영예를 일궜다고 본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기도하는 자들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방울 끝에서’ 한나라는 이름이 빛나고 있다고 언명(言明)한다. 한나는 위대한 아들 뒤에 숨어 있는 모든 훌륭한 어머니의 대명사다. - 해설 :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한나’
-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별세 지도자를 추모합니다
- 존경하는 별세의 지도자 이중표 목사님이 소천을 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 아산병원에서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였던 때가 기억납니다. “제가 15년을 덜 살 테니까 부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이중표 목사님께 15년의 삶을 돌려 주옵소서...” 그만큼 한국교회에 이중표 목사님의 지도력이 중요하였기 때문 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고 이중표 목사님을 불러 가시고 저는 난처스럽게도 멀쩡하게 살아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종이 1만 평이 넘는 예배당을 짓는다고 하였을 때 너무 기뻐하시고 축하를 해 주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너무나 어린 종이었지만 양수리수양관에서 전국목회자세미나를 하실 때 몇 번이나 강사로 세워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진정한 별세의 지도자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사셨지만 진정한 별세의 삶을 사셨고 별세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별세란 죽어서 가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만이 누리는 은혜의 세계를 별세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한 천대받은 사람들에게 빵을 주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진정으로 하실 일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는 일이었습니다. 민중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의 왕으로 모시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진정한 별세 공동체인 당신의 몸된 교회를 이루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의 말씀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를 준비하는데 도대체 설교문이 안 풀려 종이를 여러번 찢고 찢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런 감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종아, 너는 이 말씀을 설교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 말씀이 목사님의 신앙고백이요 별세신앙과 신학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중표 목사님 20주기 추모예배 강단에 서기 전에 자문해 보았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떤 목사이길래 이 강단에 설 수가 있단 말인가?” 너무나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별세 목사만 별세 교회를 만들고, 별세 목사가 되어야 별세 목회를 할 수 있고, 별세 목사만이 교인들을 행복하게 하고, 별세 목사만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별세 목사만이 민족 평화의 사도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별세 신앙에 견주어 볼 때 너무나 부족하고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래도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민족성전에 가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 너의 도리다.” 한국교회에 진정한 별세 신앙과 별세 신학을 외친 분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어쩌면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만이 별세 신앙을 이루고 별세의 삶을 사시고 별세 목회를 하셨고 별세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별세의 삶을 사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셔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감격과 희열이 있으셨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들고 고독하셨을까? 우리는 이중표 목사님을 보낼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영원하고도 궁극적인 별세의 세계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가셨지만 별세의 교훈과 가르침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의 피와 땀과 눈물로 세운 민족성전을 통하여 별세의 신앙과 별세 신학의 영향력이 많이 많이 확장되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중표 목사님, 천국에 가셔서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저 영원한 별세의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한 별세의 은혜를 누리고 계십니까? 우리가 어르신의 별세 신앙을 조금이라도 지켜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이중표 목사님을 통하여 전달된 별세 신앙과 별세 신학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잘 지켜지고 확장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 칼럼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별세 지도자를 추모합니다
-
-
[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박창식 박사(1961-)
- 경북 상주 출신... 현장 목회자로서 지역교회사에 관심 세천 박창식(細川 朴昌植)은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남적리에서 아버지 박동개(朴洞介)와 어머니 윤일선(尹一善) 사이에 9남매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 세천은 그가 태어난 마을 앞에 흐르는 낙동강 지류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의 학자적인 모습이 연상되기에 걸맞는 아호이다. 박창식은 고향에서 초등학교 1학년 무렵에 가정의 우환으로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그는 상주 부원교회를 중심으로 학생회 활동 등 신앙생활에 진력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목사로서 소명을 가지고 자랐으며, 계명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 후, 대구노회 목사후보생으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1989년에 M.Div 과정을 졸업하고, 1990년 동부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부산에서 짧은 부목사 생활을 거쳐 1993년부터 김천서문교회와 1999년부터 대구 달서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했다. 그는 목회현장에서도 건강한 교회는 지나온 역사를 바탕으로 현재를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교회사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학대학 재학 시절부터 교회사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후 체계적인 역사공부를 위해 일반대학과 신학대학을 오가며 수학한 다음, 2005년 모교인 계명대학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신학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신학대학에 출강하며 꾸준히 후학양성에 힘을 쏟으며, 특히 지역교회사 발굴과 기록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나아가 교계와 교단에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교단 소속 대신대학교 기독교역사문화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냈으며, 대구경북기독교역사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본 필자는 그의 회갑 기념논총<목회와 교회사> 가운데 축사의 글을 기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그와의 인연은 40년 전 부산삼일교회에서 고신대학교 이상규 박사와 함께 <한국개혁주의교회사학회>를 설립하는 총회에서 만나 회장에 장희종 목사, 부회장에 본 필자, 총무에 이상규 박사로 조직을 구성했는데, 그때 필자가 학술연구부장에 박창식 목사를 추천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학문의 동년배로, 목회일선에서 같은 신학교인 대신대학교에서 연구실을 함께 쓰면서 목화와 학문에 전력을 다해 교회사학자로 성장해 왔고, 대구 경북 지방교회사 연구에도 함께 힘을 모아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총회역사위원회가 간행하는 학술지 <장로교 역사와 신앙>과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학술지 <한국성지순례연구>에도 꾸준히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한국교회사 분야 특히 경북 지역의 교회사 연구로 향토교회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소장 학자이다. "교단의 역사 지킴이"란 닉네임 얻어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김남식 박사는 박창식 목사를 "공부하는 목사"로 평가하였다. "그는 목회라는 소명에 순명하였고, 학문이란 바다에서 진주를 캐내었다. 이 두 가지 영역을 균형있게 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이것을 무난히 감당해가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순수와 열정을 읽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같은 책, p.45). 또 예장합동측 총회장 배광식 목사는 그에게 '교단의 역사 지킴이'란 닉네임을 붙였다. "그는 대신대학교의 학교사를 정리하고, 지역교회사를 두루 섭렵하더니 급기야는 교단의 역사 지킴이로서 다대한 역활을 보여주었다. 우리 교단은 한국장로교의 장자교단으로 그 역사에서도 뒤지지 않지만 그동안 역사작업은 많이 미진했다. 제100회기 총회를 맞이하여 총회역사위원회가 조직되었고, 박창식 목사는 처음부터 그 위원회에서 중심적인 역활을 감당해 왔다. 숨겨진 역사들을 발굴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또한 기독교 역사 사적지와 순교 사적지 발굴과 지정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었다. 무엇보다 <총회역사관>의 설치 위원장을 맡아 어려운 여건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이제 빅창식 목사를 일컬어 교단의 역사 지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사료된다"라고 치하했다.(같은 책, p.34). 전 총신대와 대신대 총장을 역임한 정성구 박사도 박창식 목사를 '학자로서의 품위를 지키고'라는 글에서 "인류 역사의 최초 최고의 역사가는 성 누가였다. 흔히 의사 누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당대의 지성적이면서 논리적인 교회 역사가였다. 그는 예수님의 12 제자가 아니면서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헬라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바울과 선교 동역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누가는 바울의 옥중생활을 끝까지 보살핀 주치의였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역사가로써 예민한 필치로 영감을 받아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 누가는 초대교회의 오순절 성령의 사역으로부터 베드로의 설교,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 바울의 선교의 발자취를 따라서 동행하면서 기왕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증거하는 초대교회의 기막힌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만에 하나 누가가 초대교회의 생성과 발전 그리고 사도 바울의 이방전도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복음서와 바울서신 사이에 다리를 놓지 못했을 것이다" 라며, 이번에 박창식 목사의 회갑을 맞이하여 그동안 여러 지면에 기고한 논문들을 묶어 <목회와 교회사>란 회갑 기념논문집을 발간한데 대하여 치하하였다.(같은 책, p.35). "끊임없이 공부하고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목회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했던 고신대학교 이상규 박사는 축하의 글<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란 제하의 글에서, 첫째, 그는 신실한 목회자로 살아왔다.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예장합동 소속 목사로 부산과 김천에 이어 대구에서 목회자로 헌신했다. 둘째, 그는 연구하는 학자였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목회자요 학자였다. 목회훈련 과정을 이수한 후에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한국근대사를 공부하였고, 고신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한국교회사를 공부했다. 대구에서 목회하게 되자 계명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교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분야를 연구했지만, 특히 대구경북지방 기독교 연원을 추적하는 개척자적 연구로<경북기독교회사>를 발행하였다. 셋째, 그는 문필가이자 저술가였다. 칼럼, 수필, 논설, 설교문, 논문 등 다양한 글을 신문이나 학술지에 발표하고 방송에 출연해 강의하기도 하였다. 넷째, 그는 사랑과 의와 신의를 겸비한 신앙인격자이다. 이 점을 해설적으로 말하면 교회에 대한 사랑이 깊고, 공사간의 일처리에 공정하고, 인간 관계에서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란 점을 말한다. 그와 교류 한지 30년이 지났지만 그는 항상 교회 우선적인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진 목회자임을 보게 되었고, 여러 기관이나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공의를 추구하며 바름(正)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동시에 그는 인간 관계에서 신의를 지키는 분이었다 라고 치하했다. (같은 책, pp.49-50).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위의 글귀 '도리불언 하자성혜'를 인용, "복숭아 나무와 오얏 나무는 스스로는 말하지 않지만 그 꽃과 열매가 향기로워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그 나무 아래 저절로 길이 생긴다" 라는 말로 박창식 목사의 군자다운 모습을 그리었다. 한국교회사를 지역중심의 미시사적 연구 초석 현재 대구경북기독교역사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영남대학교 손산문 교수의 평을 들어보자. 그는 박창식 목사에 대해 학여역수(學如逆水)의 연구자라는 제하에 "운전 증에 자동차의 후시경을 보는 것은 뒤로 가고자 함이 아니라 올바로 가고자 함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단순히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나아가 보다 바람직한 미래까지도 조망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전문교회사 연구자로서 박창식 목사의 교회사 연구 특징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첫째로, 한국교회사 연구의 관심을 학문의 장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현장에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을 들었다. 근자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사 연구는 대부분 전문학자들에 의해 학계 안에서의 담론으로만 주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박창식 목사는 신학교 교수로서 학계 뿐 아니라 목회자로서 교회와 교인들에까지 한국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둘째로, 주목할 공헌은 지역교회사 연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동안 한국교회사 연구는 중앙중심의 거시사적인 연구가 주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박창식 목사는 일찌기 지역중심의 미시사적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경북교회사와 영남지역교회사를 탐사해 이 분야에 초석을 놓았다. 셋째로, 예장총회 역사관 설립 및 교단 산하의 신앙유산 발굴 및 보전에 끼친 영향이다. 유적지 발굴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사적지를 전국에 25개 처를 지정 발굴에 큰 역활을 하였다. 그의 학위 논문 제목에 예시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대구 경북지역의 역사고찰이란 것만 보아도 중앙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미개척분야를 발굴한 것은 박 목사의 노력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교회사 연구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박창식 목사는 바쁜 목회일정 가운데서도 '학여역수'의 자세로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해 온 것은 그의 큰 업적이라 할만하다.(같은 책, pp.53-54). 박창식 박사는 자신의 연구 면모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목회자가 본질에서 벗어나 교회사에 기웃거리는 것은 외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나는 그 길에서 갈할 때마다 용천수를 마셨으며, 나태할 때마다 일깨워주는 수많은 영적 거장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과 고뇌는 나의 생애와 사역의 지로(指路)였고 지남(指南)이었다. 나는 목회의 길에서 교회사 연구에 드린 시간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나같은 천학비재한 사람이 그나마 목회의 길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한 길로 걸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같은 책, p.25). 박창식 박사의 역사 연구 방법론은 일반적이긴 하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실증주의적인 역사관이라고 생각된다.
-
- 칼럼
- 박정규 목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
[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박창식 박사(1961-)
-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할렐루야로 찬송하라’(계 19:1-5)
- 할렐루야는 구약에서 시편에 많이 나오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옵니다. 할렐루야의 ‘할렐’은 ‘노래하다, 송축하다’라는 히브리말 ‘할랄’의 강조형태이고, ‘루’는 2인칭 복수명령형, ‘야’는 여호와의 축약형입니다. 그래서 할렐루야는 ‘너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반드시 찬양하여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할렐루야를 불러야 할까요? 첫째, 구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광은 하나님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능력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1절)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2a절) 하나님 심판이 왜 참되신가를 보면, 첫째, 하나님만이 사람의 깊은 속마음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만이 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는 지혜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계 7:12)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2b절)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피를 반드시 갚으십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갚아 주시지만,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작정한 수가 찰 때까지 순교자들이 계속 생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끝까지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처럼 우리도 끝까지 믿음 지키기를 소망합니다.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4절) 여기서 이십사 장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네 생물은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인 사자(용맹성 상징), 송아지(힘), 사람(지능), 독수리(빠름)입니다. “하나님 종들”(5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인 선지자와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두 사회 계급 차별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찬양 핵심은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찬양 내용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적인 죽음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찬양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노래하는 것이 찬양의 핵심입니다. 다음으로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소유하신 일곱 가지를 찬양합니다. 즉 능력, 부, 지혜, 힘, 존귀, 영광, 찬송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찬송’, ‘복’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10)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우리가 드리는 찬송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서 거기에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 나머지 우주가 찬송하는 것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입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동격으로 찬양받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이 아멘하고, 우리는 경배해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는 평생 할렐루야로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
- 칼럼
- WAIC 칼럼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할렐루야로 찬송하라’(계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