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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 인물] 시대의 위기 속에 주목받는 이름 ‘오범열 목사’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라는 표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서 있다. 다툼과 분열은 일상이 되었고, 강단의 영적 권위는 크게 흔들렸다. 교회를 향한 국민적 신뢰 역시 눈에 띄게 약화되며, 교회가 사회 속에서 감당해야 할 도덕적·영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복음의 본질은 흐려지고, 교회는 스스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돌아봐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 안에서는 책임 있는 지도력에 대한 요구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227개 시군구 기독교총연합회를 이끄는 오범열 목사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특정한 정치적 구호나 전면에 나서는 행보보다, 말씀과 기도에 충실한 현장 목회를 중심으로 신뢰를 쌓아온 목회자다. 오범열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 위기를 단순한 교세 감소나 외형적 침체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영적 권위의 약화, 목회자의 도덕성 문제, 교회의 정치화와 이념화, 그리고 다음 세대의 이탈이 맞물린 구조적 위기로 진단한다. 그는 “한국교회의 위기는 어느 한 영역이 아니라 전반에 걸쳐 누적되어 온 문제”라며 “위기에 대한 인식은 분명했지만, 이를 넘어설 실제적 실천과 결단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다. 이어 “결국 한국교회 위기의 근본 원인은 영적 부재에 있다. 회복의 열쇠 역시 영적 회복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준비되고 있는 사역이 바로 ‘2027년 평양장대현교회 성령강림 120주년 대성회’다. 오 목사는 이 대회를 단순한 기념행사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 대회가 한국교회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신앙의 본질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 목사는 “120년 전 성령의 역사로 세워진 한국교회가 오늘의 위기를 지나 다시 새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지금은 화려한 구호보다 회개와 말씀, 그리고 성령의 실제적 역사를 다시 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회는 무너진 강단과 흐려진 복음을 다시 붙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오범열 목사가 전국 규모의 연합체를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은, 한국교회 안팎에서 제기된 연합과 조정의 필요성과 맞닿아 있다. 다양한 목소리와 입장이 얽힌 교계 현실 속에서 그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기보다, 전체를 향한 균형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 목사는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을 뿐이다”며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함께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2027년 한국교회 회복의 새로운 분기점을 앞두고 올 한 해 오범열 목사의 리더십이 한국교회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지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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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3
  • [신년 대담] 이승현 목사 “광야에서 만난 ‘구속사 만나’ 우리를 살린 은혜”
    어느새 구속사 전파의 선두에 자리 잡은 사단법인 세계구속사말씀본부(이사장 이승현 목사·이하 세구본)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설립 2년 만에 전국 7곳에 지역 아카데미를 개설하며 빠르게 기반을 확장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초교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구속사 전문 강사 양성 과정’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사역의 깊이까지 더했다. 매 주일마다 이어지는 구속사 기도회 역시 이러한 흐름을 방증한다. 아직 임시 기도처소에서 모임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 성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예배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구속사 말씀을 향한 갈급함이 현장에서 생생히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생전 “전 세계 열방이 구속사 말씀 앞으로 춤추며 달려올 것”이라 기대했던 고(故) 박윤식 원로목사의 비전이 세구본을 통해 현실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구본은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구속사 사역의 지경을 본격적으로 넓히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구속사 말씀 사역을 이끌고 있는 이사장 이승현 목사가 있다. 현재 평강제일교회 분쟁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 가운데서도, 그는 이 시간을 ‘광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구속사 말씀이 ‘만나’였다고 고백한다. 이에 본보는 이승현 목사를 직접 만나, 2026년 한 해 세구본이 품고 있는 비전과 구체적인 사역 계획을 들어보는 한편, 평강제일교회 사태를 바라보는 그의 솔직한 심경과 신앙적 고백을 함께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이승현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먼저 새해를 맞아 성도들에게 인사 부탁 드린다. = 이사야 43장 19절,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도들과 나누고 싶다. 새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축복된 광야 여정 가운데 새로운 길을 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일의 본질은 ‘해방’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됐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인류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처럼, 우리의 여정 역시 위대한 해방의 한 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올 한 해 하나님의 축복이 교회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모든 성도들의 머리 위에 함께하길 바란다. 세구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간 눈에 띄게 급성장했는데, 예상한 흐름이었는가? =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이렇게 축복하셨겠는가? 구속사 말씀이 지금 이 시대와 너무 정확히 맞아떨어지기에 많은 이들이 깊은 은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구속사 말씀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하도록 밀어붙이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발적으로 지역 아카데미가 세워지고, 구속사 말씀을 앞다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동을 새삼 느낀다. 아카데미를 보면 초교파 목회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은혜의 깊이다. 평생을 기도와 말씀 앞에 무릎 꿇어온 목회자들은 말씀 앞에서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구속사 말씀을 통해 경험하는 은혜의 깊이는 새로운 신앙의 지경을 열어준다. 둘째는 목회 현장에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목회자는 말씀을 통해 성도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야 하지만, 늘 새로운 말씀을 제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구속사 말씀은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통찰과 메시지가 샘솟는다. 목회자들이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 때문이다. 셋째는 사역 방식이다. 세구본은 교육을 빌미로 통제하거나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철저히 섬기는 자세로 사역한다. 이러한 자유로움이 목회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 같다. 2026년 사역 계획을 소개해 달라. = 기존 아카데미의 활성화와 더불어 새로운 아카데미 개설이 우선 과제다. 지난 2025년이 구속사 말씀이 전달될 토대를 마련한 시간이었다면, 올해는 본격적인 확장의 시간이 될 것이다. 특히 일산과 김천 지역의 반응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성장이 아니라, 구속사 말씀이 들어간 지역 교회 생태계가 실제로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난해 시작한 구속사 강사 교육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이제는 수동적으로 말씀을 듣는 단계를 넘어, 각자가 강사로 세워져 구속사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 사역에 대한 계획은 어떠한가? = 교회 분쟁과 함께 한동안 중단됐던 해외 사역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이다. 과거 구속사 운동을 활발히 하다 중단됐던 해외 교회들이 다시 연결되고 있다. 오히려 더욱 정돈된 모습과 구속사 말씀에 대한 갈급함으로 적극적인 요청을 보내오고 있다. 이미 지난해 피지에서 해외 구속사 세미나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원로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전 세계가 구속사 말씀 앞으로 춤추며 달려올 것”이라는 고백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지역 아카데미가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는가? = 구속사는 단순한 성경 지식이나 비밀을 푸는 말씀이 아니다. 구속사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교회와 성도들의 인격적 변화다. 복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기준이 되며, 우리를 복음의 권위에 합당한 인격자로 변화시킨다. 지금 세상은 교회를 주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삶으로 복음을 증명해야 한다. 전도는 말이 아니라 삶이다. 또한 구속사 말씀은 반드시 섬김으로 이어진다. 말씀을 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적인 섬김으로 열매 맺는 것이 구속사의 본질이다.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왜 지금 구속사 말씀이 더욱 절실하다고 보는가? = 강단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시대를 변화시키는 자리다. 예수님 자신이 곧 말씀이시다. 그러나 오늘날 강단에서는 성공, 기복, 인간관계 중심의 설교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모든 해답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한국교회가 다시 빛과 소금의 사명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단에서 말씀이 중심에 서야 한다. 구속사는 모든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속사 말씀을 배우는 성도는 자신의 삶을 다시 예수님께 맞추게 된다. 결국 ‘나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얻게 된다. 평강제일교회 사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2년 6개월이 지났다. = 수많은 거짓과 오해, 핍박과 의도적인 공격 속에서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 성도들은 구속사 말씀을 붙들었다. 우리의 광야 여정 가운데 구속사 말씀은 ‘만나’가 되어 우리를 먹여 살렸다. 돌아보면 광야의 시간은 오히려 축복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심을 가장 깊이 체험한 시간이었고, 구속사 말씀이 진정으로 우리를 살리는 말씀임을 확신하게 됐다. 지난해 법적 판단도 대부분 유리하게 나왔는데? = 감사할 뿐이다. 애초 사실이 왜곡돼 있었기에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 믿었다. 면직과 출교가 모두 무효로 돌아가며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심지어 나를 구속시키기 위해 23억이나 로비했다는 고발이 자기들 내부에서 나왔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나만 무너뜨리면 된다는 저들의 발상이 참으로 무서울 지경이다. 허나 그것이 착각인 것은 구속사 말씀을 붙들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절대 어떠한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바로잡고 계신다. 우리 성도들은 지금도 자신을 평강제일교회의 성도라 고백하며, 비가오나 눈이오나 교회 앞 정문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아하론선교센터에서의 부흥이 심상치 않다. 목사님도 놀라셨을 것 같은데? = 솔직히 나 역시 놀랐다. 임시 기도처소임에도 매주 새로운 성도들이 나오고 있다. 복도까지 의자를 놓아야 할 정도다. 이것은 오직 구속사 말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분쟁은 우리의 시간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의 대부분의 시간은 구속사 말씀 전파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이다. 지금은 ‘아하론’의 시기다. 올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 그렇게 되길 기도하고 있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 안에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가 용서로, 원망이 중보로 바뀌고 있다. 그 변화를 볼 때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준비가 마무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끝으로 2026년을 시작하는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우리의 분쟁은 서로는 물론 한국교회 전체에 큰 실망과 상처를 남겼다. 2026년은 하나님의 치유가 임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 평강제일교회는 피눈물의 기도가 쌓인 터 위에 세워진 교회다. 이 교회는 결코 상처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회복될 것이며, 이 어려움을 통해 오히려 한국교회를 이끌어가는 교회로 다시 쓰임 받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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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2
  • [신년 공동 대담] 성락교회 개혁 9년 “모두가 함께했기에 승리한 시간”
    지난 2017년, 한국 사회와 교계에 큰 충격을 던졌던 성락교회의 개혁 선포가 어느새 9년 차를 맞았다. 故 김기동 목사의 비리 의혹에서 시작된 이 사태는 단순한 분쟁을 넘어 교회 시스템의 전면적 개선과 신학적 갱신으로 이어지며, 한국 교회 역사에 전례 없는 ‘자발적 개혁 투쟁’의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그 과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1,500여 건에 달하는 고소·고발과 물리적 충돌, 그리고 가족마저 갈라놓는 아픔 속에서도 개혁측 성도들은 담대히 ‘광야의 은혜’를 고백하고 있다. 이에 공동취재단은 2026년 새해를 맞아 성락교회교회개혁협의회(이하 교개협)의 하재구 안수집사(교개협 대표), 윤형식 목사(목회자 대표), 윤준호 목사(법무팀장) 등 3인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향후 비전을 들어보았다. ▲ 개혁 9년 차를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하재구 안수집사(이하 하재구):감회가 새롭다. 김기동 목사의 사과를 요구하던 작은 움직임이 하나님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 예배를 막기 위해 세워졌던 ‘철문’을 기억하는가? 하지만 그 철문은 성도들의 신앙의지를 꺾지 못했다. 지난 8년은 우리의 영적 눈과 귀가 새로 트이며 ‘교회를 교회되게’하기 위한 신앙의 귀한 노정의 시간이었다. 윤형식 목사(이하 윤형식):스포츠의 VAR 제도처럼, 사람을 속일 순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지난 시간의 추악한 거짓이 하나님의 추상같은 눈앞에 그 진실을 드러냈다. 개혁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진실에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윤준호 목사(이하 윤준호):하나님은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 가장 컸다.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본연의 신앙을 다시 일깨웠다. 또한 '함께'의 힘에 대해 새삼 느꼈다. 지난 9년은 혼자라면 절대 견뎌내지 못했을 시간이다. 개혁성도들의 기도와 노력이 하나로 모였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요즘 교회 내부 분위기는 어떠한가? 하재구: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요즘 성도들은 평생의 신앙생활 중 가장 행복하며,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시는 간증을 입에 달고 살 정도다. 여전히 예민한 법적 분쟁이나 다툼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와 관계없이 우리의 예배는 더없이 뜨겁다. 성도들의 마음도 이전보다 훨씬 굳건해졌다. 초기에는 일희일비하는 행태가 많았지만, 지금은 쉽게 요동치 않고, 우리 본연의 목표와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윤형식:목사로서 사실 성도들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아픈 측면이 크다. 하 집사님 말대로 우리 교회 분위기는 더없이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의 고통이 적어진 것도 아니다. 분쟁은 현실이고 개혁의 과정은 여전히 고단하다. 감사한 것은 성도들이 이를 너무도 담대히 인내해 주고 계시다는 것이다. 우리 개혁의 방향을 믿고 지지하며, 이를 위해 한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다. ▲ 생각보다 개혁의 시간이 길어지는 느낌이다. 내부의 피로감이나 이견도 클 것 같은데? 하재구:개혁에 대한 안과 밖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외부에서 성락교회 개혁을 바라보는 기준은 대부분 법적인 측면 혹은 분쟁의 진행 여부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개혁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궁극적 목표점이다. 법적인 부분은 그 중 하나의 영역일 뿐, 그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특정인에 소유됐던 교회를 다시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우리는 청지기로써의 역할을 다하는 것, 이를 시스템으로 구축하고 성도들 전체에 체화하는 것이 우리의 개혁이다. 분쟁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개혁이 지체되지는 않았다. 윤준호:우리의 분쟁 시간이 길어진 것은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교회 대표자에서 탈락한 김기동 목사를 대신해 그의 아들인 김성현을 임시사무처리자로 올리며 사태가 커졌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다. 여기에 코로나 3년의 시간은 한국교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우리에게 있어서도 잠시 멈추는 시간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개혁은 매우 안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성도들이 꿈꾸어 가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고, 교계와의 교류도 활발하다. 법적인 소송은 우리 개혁의 전부가 아니라, 단지 개혁의 길에 장애물을 치워주는 도구일 뿐이다. 개혁의 시작 “철문으로 막을 수 없었던 진실의 눈을 뜨다” 광야에서 만난 ‘행복한 좌절’과 신앙의 자유 ▲ 출애굽(개혁 선포) 이후 9년째 광야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어떠한가? 윤형식:예배의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다. 서로 마음과 뜻을 합해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인 본연의 신앙을 회복하는 시간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꿈만 같은 일상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우리가 광야에서 새롭게 만난 자유 함으로 너무도 행복한 좌절을 주고 있다. 하재구:지금 우리 교인들 누구에나 물어도 모두가 “행복하다”는 공통된 대답을 할 것이다. 이것이 과장이 아닌 것은 윤 목사님 말대로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상과 개혁을 세밀히 이끄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전에는 교회가 커지고 끝없이 부흥할 때 성도들은 막상 힘들어 했다. 개혁 전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을 때, 세상에서의 목표를 상실하고 그저 빨리 삶을 끝내고 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하지만 개혁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새롭게 경험하고는 이제 천국을 그렇게 인식하는 개혁성도는 없다. 이제는 신앙과 삶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새로운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 (구)베뢰아, 소위 김기동 목사와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낸 것인가? 윤형식:과거의 우리들은 설교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다. 심지어 김기동 목사가 주일에 설교한 것을 요약해서 각 예배당 별로 설교하라는 지시를 듣기도 했었다. 김기동의 베뢰아라는 틀 안에서 모든 설교와 교육이 이뤄졌고, 외부의 어떠한 생각도 개입되면 안됐다. 이제는 교계의 정통 교회와 목사님들을 보며 성경을 보는 법을 다시 배우며, 성경에서 벗어난 가르침은 배제하고 있다. 지금 내외적인 수많은 노력과 연단을 하고 있으며, 때가 되면 우리에게 이러한 신학적 선언을 할 때가 오리라 본다. 하재구:과거에는 우리 교회 안에서 김기동 목사의 저서 외 다른 것을 보거나 다른 설교를 듣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이제는 외부와 자연스레 소통하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변했다. 지금은 정통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책을 보는 것에 어떠한 괴리감도 없고, 불편함이 없다. 그 속에서 예전에 깨닫지 못한 다양한 은혜를 체험한다. 윤준호:과거에 나는 유학을 떠나기 전 베뢰아신학연구소장을 맡을 정도로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내가 알던 부분과 신학적 자유의 영역이라고 용인했던 부분이 선을 넘어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보였다. 매일 1분씩 늦는 시계는 평소 우리에게 어떠한 체감도 주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이 쌓여 하루를 늦추고, 끝내 1년을 늦추듯이 언제부터인가 어긋난 우리의 시간이 어느새 너무도 많이 벌어져 있었다. 지난 8년은 벌어진 간격을 메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조만간 법적 분쟁이 일단락되고 나면, 한국교회 전체가 충분히 납득하고 인정하고 축복해줄만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새 출발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 성락교회 분쟁과 개혁 성공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지대하다. 성도들이 이단·부정과의 연결고리를 직접 끊겠다며 들고 일어선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재구:교계의 관심은 우리의 개혁이 흔들림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매우 중요한 동력이었다. 외부의 끊임없는 협력과 격려는 우리 개혁의 방향을 이끄는 나침반을 흐트러지지 않게 붙잡아줬다. 이제는 과거를 떨치고 한국교회와 함께할 수 있는 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다. 조만간 개혁의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한국교회에 좋은 개혁의 선례가 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 윤형식:교계에서 여러 목사님들과 강사, 문화 사역자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성도들 앞에 선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을 교계에서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사실 과거의 우리들은 세상의 차가운 시선 앞에 움추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개혁을 선포한 후, 교계에서 우리를 따스히 감싸주고 응원해주며, 우리가 신앙의 껍질을 깨고, 세상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기적 같은 일이다. 성도들에게 전하는 고백 “당신들은 우리의 이적이자 자부심” 사도행전적 회중 정치를 구현하는 건강한 침례교회로 ▲ 개혁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나? 하재구: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앙 안에서 자유함이 가장 크다. 과거의 성락교회는 담장 안에 갇힌 우리만의 공동체였지만, 이제는 세상과 자유로이 소통하는 지역 공동체가 됐다. 개혁 이전에는 수만명이 출석하는 교회임에도, 지역과 교류하거나 나눔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작게나마 지역민과 우리의 복음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윤형식:처음에는 우리에 대해 교계가 매우 조심스런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외부의 많은 목사님이나 강사, 사역자들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심지어 한 번 오셨던 목사님들이 기쁨으로 주변 목사님들에 우리 개혁측을 추천해 주고 계신다. 이제 우리가 한국교회와 위화감 없이 함께하게 됐다는 반증이다. 이 모든 것이 개혁을 시작하게 한 하나님의 은혜다.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듣고 싶다 윤준호:‘교회를 교회답게’라는 구호를 더욱 구체화 하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침례교회이면서도 제대로 된 회중 교회를 이루지 못했다. 사회의 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이어야 하는 것이 바로 침례교회의 회중 정치인데, 한 사람의 독재로 이름뿐인 침례교회를 해왔다. 이제 우리가 그동안 꿈꾸던 완전한 침례교회로 나아가고자 한다. 변형된 권력형 집단이 아니라 사도행전적 교회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교회다운 교회다. ▲ 지나온 시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면? 하재구:교개협을 처음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수십년동안 신앙의 동역자와 후원자로 믿었던 사람들과의 갈등이었다. 가족 안에서도 편이 갈려 폭력과 인격 모독을 겪어야 했다. 이는 사회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처절한 아픔이었다. 하지만 올바른 교회를 세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천 명의 성도가 불편함을 참으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이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혼을 고민할 만큼의 가정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오직 신앙심으로 이 자리를 지켜주신 성도님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성락교회에 쏟았던 젊은 날의 헌신과 사랑이 컸기에, 이 교회를 반드시 제대로 된 교회로 다시 세우겠다는 성도님들의 책임감이 지금의 우리를 가능케 했다. 윤형식:솔직히 고백하자면, 과거 부목사 시절에는 김기동의 일탈을 몰랐다는 변명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결코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개혁 이후 성도님들이 우리 목회자들을 비판하고 비난해도 달게 받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러나 성도님들은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전히 저희를 영적 리더로 신뢰해 주셨다. 우리 성도들은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와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다. 여전히 이 자리에 머물며 저희의 부족한 리더십을 경청해 주시는 성도님들이 가장 큰 고마움이다. 윤준호: 교회 안에 계신 성도님들은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교회를 잠시 떠나 계신 ‘범(汎) 성락교인’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는 그분들을 ‘교회를 나간 사람’이라 부르지 않는다. ‘잠시 피해 계신 분들’이라 믿는다. 떠나 계셔도 마음은 편치 않으실 텐데, 여전히 기도와 물질로 헌신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탄원서와 연명부로 힘을 실어주신다. 우리가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바로 그 ‘함께’의 소중함에서 나온다. 한때 ‘성락교회’라는 이름이 지우고 싶은 악몽이었다면, 이제는 가장 많이 회개한 교회, 가장 진실된 교회로 거듭나 그분들에게 부끄러움을 넘어선 자랑스러운 교회로 돌려드리고 싶다. 공동취재단 대담:유주형 국장(새누리신문) 정리:차진태 국장(교회연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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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6-01-02
  • [특별대담]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선 목사
    근 수년 새 한국장로교총연합회의 분전이 그야말로 눈에 보일 정도다. 한때 한교총, 한기총, 한교연 등에 밀려, 교계 연합운동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지만, 연합운동의 계속된 혼란 속 장로교 연합이라는 확고한 노선이 빛을 발하며, 이제는 그 어느 단체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케 됐다. 특히 금번회기 대표회장에 오른 이선 목사(예장백석)의 존재가 매우 눈에 띈다. 한 때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중심에서 큰 활동을 보였던 이선 목사가 매우 오랜만에 다시 연합운동의 일선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선 목사의 연합운동 복귀를 놓고 교계 일선에서는 나름 신선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존의 몇명의 지도자들이 3~4개 연합단체를 돌아가며, 대표를 맡는 상황에 검증된 지도자인 이선 목사가 그들만의 지겨운 굴레에 변화를 줬다는 것이다. 이에 본보는 이선 목사를 만나 금번 한장총 대표회장에 오른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한장총 대표회장에 오르셨다. 먼저 소감을 부탁 드린다. = 일단 저를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린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 준 모든 회원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한국교회가 전체 6만교회 쯤 된다고 봤을때, 한장총에 속한 교회가 4만 3천교회 쯤 되니, 한국교회 전체의 약 70%가 한장총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이 거대한 연합단체의 대표를 맡는다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결단과 거대한 책임이 따르는 직책인데,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임기 내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 생각한다. 매우 오랜만에 교계 연합운동에 복귀하셨는데? = 지난 2003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제3대 총장이 되며 연합단체 활동을 관뒀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연합운동을 멀리 한 것 같다. 그동안 매우 바쁘게 지냈다. 국제문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백석대학교 실천신학대학원 원장 일을 하며, 목회는 물론 교육에 전념해 왔다. 나에게도 매우 보람된 시간이었다. 그런 중에 한국교회 최고 연합기관인 한장총의 대표회장을 맡게된 참으로 감회가 새롭게 어깨도 무거운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복귀한 만큼 설렘도 크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충성으로 일하겠다. 오랜만에 복귀한 종로5가(한국교회 연합운동)의 모습은 어떠한가?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 내가 연합운동을 한참 하던 시절은 아무래도 인물이 중심이었다. 교단이나 배경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뛰어넘어 초교파적으로 인물이 교계를 이끌어가는 문화였다. 허나 지금은 교계가 철저히 몇몇의 대형교단 중심으로 재편된 듯 싶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대형교단 위주로 돌아가고 그 곳에서 대표도 맡고 행사도 진행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중소형교단이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다. 이제는 이런 부분들에 대한 분명한 조정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크기와 숫자에 관계없이 역량있는 리더들에게 연합운동의 기회가 열려야 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역할도 집중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교회의 메시지가 여러갈래로 나뉘다 보니, 그 무게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근래 한장총의 대내외적 위상 회복이 눈에 띈다. 마치 과거의 무게감을 찾아가는 느낌인데 목사님이 보실 때는 어떠한가? = 한장총은 올해로 43년 단체다. NCCK를 제외하면 가장 오래된 연합기관이라고 볼 수 있댜. 처음에는 장로교단 5곳이 모여서 시작한 한장총이 이제는 26개 교단, 4만 3천여명의 성도가 함께 하는 최대 연합단체로 부상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 한 번의 분열도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다른 연합단체들이 여전히 분열로 크게 몸살을 앓고 있지 않나? 한장총은 태동 이래 단 한 번의 분열 없이 장로교의 연합과 일치라는 본연의 목표를 충실히 감당해 왔다. 금번회기 한장총의 주요 사업은 무엇인가? = 총 7가지의 계획과 목표를 갖고 있다. 먼저 ▲증경회장 및 각 교단 총회장 초청을 통한 내실화로써 신년하례회, 3.1절 기념 예배, 부활절 기념 예배, 6.25 상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 8.15 광복절 기념 예배, 한국장로교의 날 찬양축제 등을 소외되는 교단이 없도록 다같이 하고자 한다. ▲평양장대현교회 부흥운동 120주년을 앞두고 장로교 부흥운동을 코람데오 영적각성 기도회로 전개할 예정이다. ▲ 원로 및 은퇴 목사 섬김을 하겠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사회복지 활동을 할 것이다. ▲청소년, 청년 수련회 등 다음세대 세우기를 위한 캠프와, 신학생 등 미래 목회자를 위한 찬양제 및 기도회를 실시하겠다. ▲미국, 필리핀 등등 세계 장로교회와 연대 및 선교 대회 등을 통해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이 일을 감당하겠다. ▲교회 출산 장려운동 및 돌봄 참여사업을 홍보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하겠다. 새해 한국교회를 전망 한다면? = '한국교회 트랜드 2026'을 보면 내년 한국교회의 방향을 ①심플처치 ②AI와 목회의 결합 ③강소교회 ④청빙 ⑤호모 스피리추얼리스 ⑥무속 ⑦돌봄 사역 ⑧여성 교역자 ⑨헌금 ⑩이주민 선교 등 총 10가지로 예측했다. 이 중 특히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바로 '강소형 교회'라고 본다. 지금 교회는 세속으로부터 온갖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작은 교회들은 이를 감당해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강소형교회의 기본은 교회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구원받는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신학적으로 ‘은혜의 수단’ 이라 하며, 이는 말씀 기도 성례다. 이를 회복할 때 한국교회가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앞에 교회가 지켜야 할 가치와 함께 발맞춰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 미래라는 단어 앞에 무조건 언급되어야 할 것은 바로 다음세대다. 저출산 고령화의 현실 앞에 다음세대의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다. 교회가 이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젊은세대들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또한 AI시대에 시급한 적응이다. AI시대는 결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일단 행정이나 미디어 등에 있어 AI에 대한 적응은 필수적이다. 허나 AI에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은 바로 영성이다. 이는 AI로 결코 대체될 수 없는 가치로 예배와 영혼구원은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다. 교계 연합구도에서 한장총이 차지하는 본연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 간단하다. 장로교회의 연합이다. 한국교회 중 장로교회가 차지하는 비율은 70% 이상이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뻗친 장로교의 물결은 한국교회의 주류가 됐다. 한장총은 장로교회 연합이라는 본연의 역할만 집중하면 곧 한국교회를 위한 본연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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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22
  • [특별 인터뷰] 광주중앙교회 한원석 목사가 말하는 아버지(고 한기승 목사)의 삶과 목회
    정통 보수개혁신학을 바탕으로 호남 목회의 큰 축을 담당했던 한기승 목사(광주중앙교회 원로)가 지난 5월 23일, 향년 66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한 이들은 충격과 동시에 엄청난 상실감을 마주해야 했다. 그가 맡았던 한국교회 입지와 교단 내 기대도 컸지만, 신학 목회 정치 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출중한 그의 실력은 위기의 한국교회를 위한 확실한 파훼법이 될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에 대한 묘사는 "큰 별이 졌다"는 종료형보다는 "큰 별이 되어 올라갔다"는 완성형이 훨씬 어울려 보인다. 물론 완성에 대한 숙제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가 남긴 목회에 대한 철학과 정신, 신학 정체성, 순결한 신앙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것은 그를 존경하던 자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고 한기승 목사의 아들 한원석 목사는 요즘 새삼 아버지의 위대함을 체험 중이라고 고백했다. 새롭게 광주중앙교회의 담임으로 취임해,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버지가 행했던 일들을 바라보니, 과연 본인이 이 일을 어찌 감당할까 싶을 정도로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아버지를 닮은 목회를 하고 싶어졌다. 굳이 자신의 목회를 위해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려 발버둥 칠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했던 아버지의 고집을 이을 생각이라는 것이다. 이에 본보는 최근 한원석 목사를 만나, 그의 아버지 고 한기승 목사의 목회와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 드린다. 아직 경황이 없을텐데, 현재 교회는 어떤 상황인가? = 교회는 평안하다. 워낙 아버지 때부터 훈련이 잘 된 중직과 성도들이라, 스스로 너무 잘하신다. 사실 제가 많이 배우면서 일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많다. 워낙 성도들을 사랑하신 분이다 보니, 성도들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계신다. 나 역시 굳이 억지로 이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성도들을 위해 일부러 그 흔적을 그대로 놔두고 있다. 주보도 예전 그대로고 그 속에 들어간 목회 칼럼도 계속 유지 중이다. 아버지의 가르침 중에 기억에 남는게 있다면? = 목회에 대해 늘 '물'의 철학을 얘기하셨다. 물이라는 것이 특별한 형태가 없지 않나? 주변의 모양에 순응해 자신의 형태를 맞추는게 물이다. 어느 그릇이든지 그 모양을 그대로 따르고, 심지어 흐르다 앞이 막혀 있으면, 옆으로 돌거나, 잠시 기다려 물을 채워 위로 넘어간다. 아버지는 늘 '물'과 같은 목회를 하신 분이다. 예전에는 이 말을 그저 흘려 들었는데, 막상 이 자리에 서보니, 아버지의 철학이 절실히 공감가기 시작했다. 다만 그것이 내가 가능할까 의문이 크다. 어쩌면 그렇게 사신 분이 생전의 예수님이셨는데, 내가 이를 따라가려면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아버지 역시 남을 무조건 이해하고, 존중하며 모든 사람에게 맞추려 노력하셨지만, 뒤에서 남모를 상처와 스트레스를 달고 사셨던 분이다.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 이익이 아닌 손해를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허나 그 분은 아픔과 상처를 남이 아닌 본인이 감내할 수 있는 것마저 감사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아버지는 생전 남을 참 많이 도우셨던 것으로 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 오지 선교사, 영세 언론 등 그야말로 주변에 자기 모든 것을 나누기 바빴던 분인데? = 솔직히 옆에서 보면 기가 찰 정도로 남을 돕는데 열심이셨다. 자기는 밥을 굶어도 다른 사람들이 힘든 것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시는 성격이신데, 오죽했으면, 가족들이 아버지 신용카드를 못 만들게 할 정도였다. 매번 나갈 때마다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힘든 사람들을 다 주고 오시기에, 카드까지 만들면 혹여 집이 거덜나지(?) 않을까 염려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신용카드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만든 게 유일했다. 아버지는 남을 도울 때 아무 계산도 하지 않았고, 돌려받을 생각은 더욱 하지 않으셨다. 그저 모든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갚는 것이라 생각하셨다. 심지어 못된 오해로 오랜 기간 자신을 비난하는데 열중이던 사람까지 도움을 주셨다. 그 사람이 퍼뜨린 거짓뉴스로 교인들 상당수가 떠날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사실 나는 아직 이 부분까지는 100%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목사도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일까지 품고 감내하실까? 제 아버지이지만 정말 그릇이 다른 분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고 한기승 목사님은 교단은 물론 교계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는 분이셨는데, 아버지로서의 한 목사님과 목회자로서의 한 목사님에 각각 점수를 준다면? = 아버지로서는 0점이다. 아버지는 평생 교회만 알고, 성도만 생각하시던 분이다. 어렸을 적부터 가족과 보낸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목회에만 매진하셨다. 오죽하면 수년 전 내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잠시 미국에 머물면서 함께한 2주 정도가 내 인생에서 아버지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이었다. 반대로 목회자로서는 100점이 부족할 정도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교회와 성도 일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정말 교회를 위해 사신 분이다. 교회의 장로님들도 아버지의 진심과 열정을 알다보니, 생전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한 적이 없으셨다. 지난 일이지만 지난 부총회장 선거에 출마하셨을 당시 의도적인 거짓과 공격으로 정말 많은 상처를 받으셨다. 옆에서 보기 힘드셨을 텐데? =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거짓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에 화가 났고, 다음은 힘들어 하는 아버지를 보며 함께 힘들었다. 그러다 막판에는 도대체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궁금하더라. 나는 아버지가 부총회장에 출마하신다고 했을 때 옆에서 정말 많이 말렸다. 그 힘든 일을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지 이해 못했고, 추악한 정치의 틈에 끝내 적응 못하던 아버지를 지켜보며 너무 속이 상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버지는 그 의문이 바로 자신이 총회장을 하려고 한 이유임을 설명하셨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총회, 신학 정체성이 바로 서는 총회를 만들어 교단을 새롭게 하고 한국교회를 정결케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계셨다. 이제서야 말하는데 사실 아버지는 부총회장 선거 때 첫 번째 암 수술을 받으셨다. 다들 이번에 처음 암에 걸려 돌아가신 줄 아는데, 정확하게는 재발된 것이다. 다만 천성이 주변에 걱정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셔서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뿐이다. 심지어 교회에도 알리지 않은 채 수술을 받고 단 일주일 만에 아무렇지 않게 강단에 섰는데, 성도들에게는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쉬었다고 하셨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가족들이 아버지의 출마를 얼마나 만류했겠나? 그러나 아버지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면 그렇게 무리를 하셨겠나? 그 분께는 한국교회를 살리겠다는 사명 하나 뿐이셨다. 고 한기승 목사님이 생전 그토록 반대하셨던 WEA가 오는 10월 한국에서 총회를 연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 안타깝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다. 분명 잘못된 것인데, 어찌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한국에서 총회까지 열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이 크다. 더구나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교단 분들이 주축이 되어 한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다. 그래도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 보수개혁신학의 핵심 아닌가? 아버지가 우려했던 일이 결국 이렇게 벌어진다는 것에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현재 광신대를 주축으로 한 동문 목회자들이 적극 반대에 나서고 있어 다행이다. 아버지는 정규오 목사님이 세운 보수개혁 신학의 기치를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바친 분이다. 아버지의 헌신이 위기의 때에 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그나마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 어떤 목회를 하고 싶나? = 두 가지다. 먼저 아버지를 이어 올바른 신학을 지켜 나가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 당연히 쉽지 않겠지만, 근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왜 그렇게 신학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아버지는 신학이 올바로 서야 성도가 바로 서고, 교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생각에 조금도 어긋남 없이 신학을 지키겠다. 두 번째는 기독교의 문화를 창출하는 교회를 구축코자 한다.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 정말 부러웠던 것이 바로 그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자리잡은 기독교 문화였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주류 종교이지만, 일상에서 기독교 문화를 찾기란 너무도 힘들다. 이 곳 광주를 기독교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 아버지는 늘 천국을 소망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 가족들에게 자신은 이제 천국으로 가니 슬퍼하지 말라 하시며, 조용히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나 역시 천국을 소망하며, 아버지와 같은 목사가 되고 싶다. 아직 아버지만큼 할 수 있을지 자신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목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인터뷰/탐방/문화
    • 인터뷰
    2025-06-30
  • [인터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74차 총회장 이경은 목사
    총회장에 연임되셨는데, 소감을 부탁 드린다. = 부족한 종을 지지해 준 모든 총회대의원 목사님들과 교단 선, 후배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전국에서 총회 대의원 목사님들이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셔서, 기쁘고 행복한 총회를 치르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우선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총회장으로 선출해 주신 총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이번 74차 총회가“다시 성령으로 RE:Spirit”(행 1:8)라는 외침으로 계속적인 성령운동의 진보적인 발걸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 금번회기 가장 우선되는 정책이 있다면? = 첫째, 성령운동에 더욱 매진하겠다. 성령운동은 우리 교단의 정체성이며, 한국교회가 어려운 시기를 넘어서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작년부터 성령운동을 외치고 출발했다. 올해에도 계속해서 달리다 보면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제 다시 성령운동이 시작되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달리다 보면 성령운동은 급속하게 확산될 것이다. 이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와 전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파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단 청년들을 다음세대 리더로 키우겠다. 교단 청년들이 성경적인 양육 프로그램을 통해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워 앞세대를 든든히 뒷받침하고 다음 세대를 힘있게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겠다. 그동안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아바드리더시스템이라는 실천적이며 성경적인 양육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세대와 성도들을 교회와 가정을 지키는 용사로 세운 충분한 경험과 열매들이 있다. 교단 청년들을 다음세대 리더로 키운다는 것은 본 교단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십자가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미치도록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다. 셋째, 목회자들의 권위 회복과 교회의 예배 회복을 위해 힘쓰겠다. 한국 교계 목회자들의 권위가 실추된 지금, 먼저 본 교단 목회자들의 권위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섬기겠다. 목회자들의 권위 회복을 위한 각 교회들의 예배 회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 회복에 노력하는 한편, 이단의 어떠한 위협으로부터도 교회를 지키기 위한 교육 사업에 힘쓰겠다. 올해 주제인 ‘다시 성령으로 RE:Spirit’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 올해 교단 총회 주제를 “다시 성령으로 RE:Spirit”(행 1:8)으로 정했다. 성령운동의 회복이 우리 교단 정체성의 회복이며, 부흥과 성장의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회복도 성령운동만이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총회장으로서 교단 성령운동을 강력하게 강조하면서 해나가고 있다. 성령운동의 본질과 방법은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교단 내에서 변혁적 교회 성장 세미나를 계속해서 개최하고 함께하는 것도 성령운동으로서의 말씀운동과 기도운동을 정착시키기 위한 이유다. 교단과 한국교회 연합사업에 대한 비전이 있다면? = 저는 교회와 교단의 연합사업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참여하고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의 역사성과 정통성은 본 교단에 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교단 위상을 강화하는 일에 나아가 한국교회 연합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0주년 기념 한국교회 영적대각성운동본부를 통해,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등을 통해 연합의 일들을 감당했다. 물론 저는 총회장으로서 본 교단의 근간인 역사성과 정통성을 흔드는 행위에 대해 결코 타협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총회의 현안들을 원칙과 절차를 따라 유연하게 능동적으로 처리해 나감으로 내실과 도약을 적절히 조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원칙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총회를 운영해 나갈 것이다. 우리 교단 스스로가 단단하고 당당해야 한국교회를 향한 대외 활동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낼 수 있다. 당부의 말이 있다면?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한다. 반복적인 이야기이지만 성령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 나갈 것이다. 교단의 화합된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체육대회 및 기도회 및 부흥성회, 선교사 대회, 군장병 침례식 등을 지원하는 한편, 교단 내 훌륭하신 목사님들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도록 준비하며, 교단 내 미자립교회와 개척교회들이 힘을 얻고 자부심을 얻을 수 있도록 임원 목사님들과 머리를 맞대어 논의하고, 성령운동이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하겠다
    • 인터뷰/탐방/문화
    • 인터뷰
    2025-05-20
  • [특별 인터뷰] WCC보다 교묘한 WEA의 이중성 “위선에 속지 말아야”
    WEA서울총회(공동조직위원장 오정현 목사, 이영훈 목사)가 교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강행 의지를 보이며 한국교회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교계는 이미 학자들에 의해 검증된 신학적인 문제는 물론, WEA 이후 한국교회를 휘몰아칠 후폭풍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 이를 그저 넋 놓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본보는 앞서 예장합동측을 중심으로 조직된 WEA서울총회개최반대연합회 회장 맹연환 목사를 만난데 이어, 이번에는 사무총장 김용대 목사(영광대교회)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용대 목사는 인터뷰에 앞서 WEA서울총회개최반대연합회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전제했다. 첫째는 오정현 목사나 사랑의교회를 겨냥한 모임이 아닌 철저히 'WEA'를 배격하기 위한 순수 신학 운동이라는 점과 둘째는 정치나 이권을 배제한 목회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는 사실이다. 불필요한 이슈나 추측으로 자신들의 순수한 목표를 흐리지 말라는 게 김 목사의 당부다. 김용대 목사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WEA가 거짓 복음의 가면을 쓴 왜곡된 기독교임을 확실히 했다. 정통 보수개혁주의를 수호하는 한국교회, 특히 예장합동측과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김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원론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다. WEA를 왜 반대하는가? = 간단하다.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기독교가 아니고, 올바른 신학이 아니다. 오히려 WEA 문제를 진영 간 대립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슈를 심히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가 WEA를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의 신학, 신앙이 아니라는 매우 간단한 이유에서다. WEA가 갖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 비복음 등 우리 한국교회가 반대해야 할 이유는 수만가지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심각한 문제를 지닌 WEA를 한국교회에 갑자기 아무 제재 없이 풀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WEA 이슈는 어느날 갑자기 제기된 뜬금없는 내용도 아니다. NAE(구 WEA) 시절부터, 정규오 박사, 박형룡 박사 등이 이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며, 이를 저지해 왔다. 우리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막아온 거짓된 WEA가 우리 시대에 아무렇지 않게 용인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기에 우리들이 발 벗고 나서게 됐다. 'WEA서울총회개최반대연합회'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궁금하다. = 지지와 우려의 목소리, 모두를 듣고 있다. 대다수 분들이 우리 연합회의 활동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 주신다. 합동측 교회가 벌인 일을 합동측 내부에서 수습하고자 하는 노력에 많이 공감하시고 응원해 주신다. 실제 대부분은 WEA를 반대하시며, 오히려 한국교회 내 WEA를 적극 찬성하는 분들은 찾기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사랑의교회나 오정현 목사님이 한국교회 내 차지하는 위치, 혹은 영향력이 있기에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리시는 것 같다. 허나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누군가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도, 세력을 키워서 본격적인 대립을 하겠다는 의도로 만든 조직이 아니다. 그저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기에, 진리 수호에 제 역할을 다할 뿐, 우리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다.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사실 이번 WEA 논란에 합동측의 기여가 크다. 합동측이 그동안 WEA에 대해서 태도가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 나도 그 부분이 매우 속상하다. 확실하게 '반대' 결의를 했어야 하는데, 찬성하지 않는 수준의 결의를 한 것이 화근이 됐다. (합동측은 지난 106회 총회에서 WEA에 대해 '가입한 적이 없으니, 제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실시한 3차례의 공청회에서 WEA에 대한 문제는 모두 드러났다. WEA의 신학적 심각성이 이미 공론화가 되었음에도 정말 말도 안되는 결의가 나온 것이다. 신학은 양보와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의 문제다. 절대적 가치를 찬반토론에서 결정할 수 있나? 오류가 분명한 것을 어떻게 찬반을 통해 결정하는가? 교단 정치가 진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하는데, 잘못된 정치가 오히려 진리를 망가뜨린 꼴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WEA를 찬성하셨던 분들도 WEA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분들이 WEA가 정말 문제 없다고 100% 확신했다면, '찬성'을 명시하지 않은 애매한 결의에 만족했겠는가?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이런 결의를 했던 것이다. WCC에 이어서 WEA까지 강력히 반대하는 한국교회를 보면서 일각에서는 세계교회와 어긋난 '고립'을 염려하기도 하는데? = '고립'을 너무 과하게 우려할 필요가 있나? 신학은 그 순수성을 지키는 데 있어 '고립'이 훨씬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실제 과거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모두 다 고립을 택했었다. 그들의 천국 신학과 믿음은 당시 거짓 율법에 물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예수님의 '고립'이 망했나? 그 고립이 로마를 넘어 유럽으로 뻗쳤고, 결국 세계를 정복했다. 그 고립이 지킨 진리는 단 한 가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이었다. 예수님의 사역에 확장성은 없었다. 하지만 참된 진리를 담은 '고립'은 특별히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 어느 지식보다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다.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고립됐지만, 가장 확장성 있는 복음을 전하신 분이다. 우리 연합회는 열려있다. 하지만 신학과 신앙의 진리를 논하는데 타협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을 뿐이다. 한국교회 역시 늘 열려 있어야 하지만, 진리에 부합하지 않다면 그 어떤 배경이 있더라도 과감히 배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고립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은 진리 안에 고립될 때 진정 땅 끝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WEA서울총회 조직위는 WCC를 강력히 반대하면서, WEA는 이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 그러한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 수준도 안된다. 이미 WEA와 WCC가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들이 WCC에 대한 한국교회의 반감을 적극 공감하는 것은 마치 WEA가 WCC의 대척점에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크다고 본다. 혹시라도 WEA가 WCC와 다르게 순수 정통 복음을 지닌 참된 기독교 단체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로 큰 오산이다. WEA는 WCC는 물론, 로마가톨릭, 이슬람과도 매우 밀착되어 있다. WEA는 WCC처럼 에큐메니칼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WEA 홈페이지에는 로마가톨릭, 무슬림, 정교회, 동방교회, 에큐메니칼 교단과 신앙고백의 경계를 초월해 비개신교 교회들과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명시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지난 2013년 WCC 부산총회에 WEA 신학위원장이었던 토마스 쉬르마허가 참석해 'WCC의 선교선언문'에 함께 동참한 사실도 있다. WCC는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히기에 한국 보수교회가 그동안 이견 없이 반대해 온 반면, 거짓복음으로 포장된 WEA는 겉모습에 속아 이를 강하게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WEA야말로 종교다원주의의 극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위선에 속지 말아야 한다. WEA서울총회 조직위 발족 직후 오정현 목사와 만났다고 들었다. 당시 어떤 대화를 나눴나? = 지난해 11월 말 쯤에 나와 세 분의 목사님이 사랑의교회를 찾아 오정현 목사님을 만났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속상했었다. WEA서울총회를 다른 교회에서 했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나서지 않았겠지만, 우리 교단을 대표하는 사랑의교회가 이 일을 주도했다니, 정말 가슴 아픈 마음으로 당시 만남에 나섰다. 그때 나는 오 목사님께 WEA가 아닌 새로운 세계기독교기구의 설립을 제안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라 하지 않았나? WCC, WEA 등 기존 세계기구의 문제가 명확하다면,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오히려 한국교회가 기독교의 신학적 순수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오 목사님은 사랑의교회라는 세계적인 교회의 담임으로 계시고, 오 목사님이 속한 우리 합동측은 세계 최대 장로교단이자, 세계최대선교기구(GMS)를 보유한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 어느 곳보다 훨씬 더 나은 세계기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현 세계교회에서 한국교회가 가지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역사의 중심에 있는 오 목사님이 이러한 일을 하신다면 향후 10~20년은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적극 지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WEA만 아니면 얼마든지 목사님을 돕겠다고 말씀 드렸다. 허나 원하는 답변은 듣지 못했다. 'WEA서울총회개최반대연합회'와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간의 대립이 염려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오정현 목사님이나 사랑의교회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없다. 우리는 순수히 WEA를 반대하는 것이지 오 목사님이나 사랑의교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큰 일 하시는 오 목사님을 매우 존경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일에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없다. 누구를 고발코자 한 것도, 정죄코자 한 것도 아니며, 오직 진리에서 벗어난 WEA를 반대하고자 한 것이다. 여전히 오정현 목사님을 사랑하며, 그 분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합동측 노회들 상당수가 이번 봄 정기회에서 WEA서울총회와 관련한 헌의안들을 통과시켰는데? =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수년 전 공청회 당시 WEA의 유해성은 우리 교단에 모두 공론화 된 사실이다. 그 당시 유야무야 애매한 결의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결코 WEA를 용인한 것은 아니기에, 대놓고 열리는 WEA서울총회에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오는 9월 총회에서 우리 교단은 'WEA서울총회 개최'를 허용할 것인지, 불허할 것인지에 대한 결의가 있을 것이다. 바라는 것은 이번 결의가 단순히 행사 하나를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WEA 자체에 대한 완전한 반대로 명시되었으면 한다. WEA가 우리 교단의 신학과 맞지 않으면, 교류를 단절해야 한다는 강력한 결의가 필요한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한국교회에 속한 각 교파와 교단에 따라 신학의 정체성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본질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다. WEA와 같은 연합기구는 하나 됨을 위한 것이다. 연합을 반대하거나 하나됨의 필요성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학과 신앙의 올바름이 없고, 진리가 담보되지 않은 연합은 무슨 의미가 있나? 무조건적인 하나됨보다 올바른 진리와의 하나됨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 연합회가 하는 일은 신학운동이다. 정치운동이 아니다. 혹여라도 WEA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우리 연합회를 정치단체로 호도하려 한다면 이는 절대 용납치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가 이 부분을 확실히 인지하셨으면 한다. 혹여 저들이 말하는대로 WEA서울총회에서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교다원주의적인 행태도 하지 않고, WCC와 교류도 없고, 친동성애적 행보도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그것은 WEA의 정체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WEA는 총회가 열리는 국가의 구미에 맞게 자기 옷을 바꿔 입는다. 한국교회가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등을 적극 반대하기에 이에 대한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가능성이 높지만, 6년 후 다른 나라에서 개최할 때는 어떠한 본색을 드러낼 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오직 복음의 진리다. 우리의 선진들은 진리 앞에 과감히 목숨을 내던졌다. 그들이 목숨을 구걸코자 불의와 타협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순결한 복음을 받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가 다음세대들에 오염되지 않은 순결한 백색의 복음을 물려줘야 할 때다. [대담: 차진태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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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02
  • [인터뷰] 바울로 거듭난 북한판 사울의 고백 "나를 부르신 이는 오직 하나님"
    북한 내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김일성 대학의 박사이자, 금수저조차 발 아래 둔 엘리트 집안의 출신성분, 여기에 '노동당 당비서'라는 금빛 명함은 한때 그가 북한에서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를 쉽게 짐작케 했다.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권력과 부, 지상낙원이라 믿었던 자신들의 유토피아 안에서 실체 없이 천국을 증언하는 신의 존재에 침을 뱉었던 장본인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은 실현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애초 그에게 사울의 삶을 허락했던 것은 오직 바울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었고, 신을 부정하는 위치에서 가장 진실되게 신을 증언하게 함으로, 그를 향한 자신의 계획과 기대를 알게 하셨다. 한국 망명 12년차의 노희창 목사, 본보는 이달 초 국제독립교회연합회(WAIC)에서 새롭게 목사안수를 받은 그와 만나 지난 과거와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심도깊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세상 부러울 것 없던 북한 최고 엘리트인 그가 생사의 고락을 넘나들며 만나게 된 하나님의 은혜와 한국에서 신학을 하며 깨닫게 된 김일성 주체사상의 경악스러운 실체를 증언한다. ▲ 처음 뵙는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린다. = 북한에서 건너 온 노희창 목사라고 한다. 얼마 전 국제독립교회연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현재 북한 전문 사역단체를 운영 중이다. 지난 2015년 북한에서 한국으로 망명했는데 북한에 있을때는 노동당 행정부 대건설지도부의 당비서를 맡고 있었다. 북한에서 당비서라 하면 그야말로 실세 중의 실세다. 재정 인사 모든 부분이 당비서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을 정도다. 흔히 우리 안에서는 당비서를 '작은 김일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당비서를 욕하는 것은 곧 김일성을 욕하는 것이고 이는 곧 반역이다. 당비서는 총리도 해임 가능하고, 군단장 어깨의 별도 뗄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지녔다. ▲ 북한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였는데, 어떤 이유로 한국에 오게 됐나? = 김정은의 집권 이후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장성택 처형 사건이 2013년에 발생하게 된다. 장성택은 내가 속한 행정국의 부장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삼촌이라 부를만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장성택 처형과 동시에 그와 가까운 측근과 그 가족까지 모두 타겟이 됐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체포 1순위였다. 당시 나는 러시아에 출장 중에 있었는데, 장성택 처형과 동시에 나를 노린 체포조가 러시아로 곧장 날라 왔었다. 내가 체포조 출동을 안 것은 그들이 약 30~40분 거리까지 나를 추격해 온 상황이었고, 앞뒤 잴 것 없이 오직 살기 위해 도망쳤다. 가까스로 그들 손에서 벗어난 나는 국제사회에 망명을 신청했고, 한국 국정원의 연락을 받아 독일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 러시아를 탈출하는 과정이 매우 긴박했을 것 같다. 실제 어땠나? = '긴박했다'는 말로 어찌 그 처절한 과정을 표현하겠나? 잡히면 무조건 목숨이 날아간다고 봐야 하는데, 정말 살기 위해 도망쳤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정말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게 하나님의 은혜고 기적 아니겠나?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그 때 내가 러시아를 탈출하며 처음으로 십자가를 제대로 봤던 일이다. 사실 나는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녀서 십자가는 낯설지 않았지만, 워낙 주체사상에 세뇌되어 있던 터라, 종교나 신의 존재를 절대 인정치 않았다. 허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 저 멀리 산골 마을에 십자가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정말 있다면 제발 좀 살려 달라. 그럼 내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말하고 있더라.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신 것이다. ▲ 대한민국에 처음 온 느낌은 어땠나? = 살았다는 안도감이 컸지만, 동시에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아픔도 동시에 밀려왔다. 나는 러시아에 있던 터라 곧바로 도망갈 수 있었지만, 북한에 있던 우리 아들 둘은 곧바로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고, 아내(본처)는 그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한동안 술만 마시고 살았던 것 같다.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밀려오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도 북한에서 꽤 잘나갔는데,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아무리 돌려도 연락 오는 곳이 없더라. 그러면서 내가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과 회의감이 수시로 밀려오며 거의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술만 먹었다. ▲ 북한 김일성 대학에서 박사까지 한 것으로 아는데? 한국에서는 쉽지 않았나 보다. = 김일성 대학에서 박사를 취득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한 두해 노력으로는 될 일도 아니고 10년 이상 공부하며 엄청난 학문적 성과를 내야 가능한 일이다. 박사라 하면 당의 부부장급, 군의 군단장급이다. 단순한 인재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 우리 집안도 보통이 아니었다. 평양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주체사상탑'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다. 백두산 만수대 동상, 중앙당 청사 등 온갖 주요 기념비와 개선문 역시 우리 아버지가 설계했다. 이런 이력들이 해외에서는 크게 인정받았었다. 내가 중동에 12년, 러시아에 3년 있었는데 내 능력에 대해 다들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줬다. 하지만 한국은 전혀 달랐다. 아무리 이력서를 내고 알아주는 곳 없이 나중에는 직업소개소를 전전키도 했다. ▲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됐나? = 한국에 처음와서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처음으로 교회를 갔고, 거기서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도 큰 감흥은 없었고, 이후 자신감을 잃은 채 술독에 빠져 살았다. 다행히 한라그룹에서 내 능력을 알아봐줘 입사할 수 있었다. 허나 사업을 하겠다고 한라에서 나와 땅을 샀는데, 알고보니 사기 아닌 사기였다. 매일 라면 한 개, 소주 한 병을 먹으며 자본주의의 참혹함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한 번은 술을 먹다가 바닥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서 일주일만에 깨어나기도 했다. 술에 취해 우연히 본 창 밖의 십자가를 보며, 러시아 탈출을 떠올리며 한참을 울다가 쓰러진 것이다. 그때 창 밖 교회에서 찬양이 들려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등 뒤에서'라는 곡이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깨어나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다. 나보다 10여년 먼저 한국에 온 탈북민 아내는 절실한 신앙인이었고, 만나는 동안 나를 끊임없이 전도했다. ▲ 노동당 당비서까지 했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 사실 처음에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북한은 애초에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단어도 쓸 수 없고, 모든 종교는 '미신 행위'로 간주해 이를 제재한다. 나는 미신행위를 제재하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역시 북한에 있을 때는 신은 철저히 거짓이며, 종교는 사람의 정신을 빼앗아가는 마약과 같다고 믿었다.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바뀌기 쉬웠겠나? 더욱이 사업이 다시 잘되면서 간절함도 사라졌었다. 허나 나 스스로는 안 바뀌는데 하나님이 나를 가만 두지 않으시더라. 자신을 외면하고 내가 사업에만 몰두하니 그 사업을 거둬 가셨다. 이를 보며 집사람이 "성경에 주시는 것도 하나님 거두시는 것도 하나님이란 구절이 있다"며, 나 몰래 감신대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렇게 조금만 다니다가 아닌 것 같으면 관둬야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나갔는데, 1학년 2학기 때 하나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하시고, 감동을 주셨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을 박해했던 사울에서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이 되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 신학을 하면서 어땠나? 북한의 주체사상과 비교될 것 같은데? = 막상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하니 남들보다 습득이 빨랐다. 내가 그래도 북한에서 박사를 할 정도였다. 북한에서는 대학에서 책을 효율적으로 읽는 법을 따로 배운다. 이를 성경에 접목해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어느새 눈에 확 들어오더라. 사실 성경을 읽으면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세상을 만드시고, 세상을 운영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내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했다. 놀라운 것은 내가 평생을 최고로 여겼던 북한의 주체사상이 바로 성경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보면서 생각도 못했던 주체사상을 발견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알고보니 김일성 주체사상의 바탕이 바로 성경이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주체사상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경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절대 알려져서는 안되는 비밀이었고, 어쩌면 북한에서 절대 주민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것 역시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던 듯 싶다. 나는 주체사상을 지금도 줄줄 외울 정도다. 주체사상에 있어 나만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기에, 내 눈에만 보이는 교묘한 짜깁기가 상당했다. 이에 집사람과 함께 '북한과 선교'라는 책을 집필하고, 주체사상이 성경을 복사해 만든 거짓 사상임을 폭로했다. 이 책을 한국교회는 물론 북한 전문가들이 반드시 읽고, 북한을 제대로 알기를 바란다. 지금 한국은 북한을 전혀 모른다. 어찌보면 10%도 모르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해 30%만 알아도 한국의 극렬 좌파 운동은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 이번에 국독연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셨다. 느낌이 어땠나? = 안수를 받는 순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온 몸에 전율이 일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이 나를 오라하신 이유가 이것이구나 내게 이 일을 하라고 하셨구나는 깨달음이 오면서 마음이 너무도 평안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시아를 탈출할 때 봤던 그 십자가가 그 때 다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당시 십자가를 보며 나를 살리신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 지식으로 예측키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국독연을 만나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 드린다. 많은 분들이 국독연을 추천해 주셨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은혜롭고 또 진실하신 분들이다. 이번에 집사람과 함께 정말 많이 울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고, 우리 가족을 사랑하심이 느껴지니 더 이상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바울로서의 새 사명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 현재 북한선교 전문 단체인 북한선교실천연합을 이끌고 있다. 나보다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노동당의 선전방식을 가장 완벽히 알고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이 곳으로 불러내심은 곧 북한으로 다시 가서 그들을 구원하라는 뜻일 것이다. 한국식 선교보다는 북한에 맞는 선교방식을 개발해 북한에 효율적으로 복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 탈북민 목회자와 선교사를 양성하고 이들을 통해 실제적인 사역을 하겠다. 앞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 <대담: 차진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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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9
  • [특별대담]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직전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 한장총 그리고 세기총까지 교계를 대표하는 연합기관들을 모두 섭렵하며,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잡은 정서영 목사(예장개혁 총회장)가 오랜만에 기자를 만나 지난 소회를 밝혔다. 대표회장으로 일했던 모든 기관들이 모두 그에게 의미가 있었지만, 최근까지 전력했던 한기총에 대한 감상은 매우 남다르다. 소위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기총을 다시 교계의 중심에 올려놓은데 이어, 보수신학 정체성을 확고히 구축하며, 한기총만이 가질 수 있는 정제된 색깔을 조합해 냈다. 이에 본보는 2년의 한기총 대표회장 임기를 끝내고, 잠깐의 휴식기를 갖고 있는 정서영 목사를 만나, 한기총과 한국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정서영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아무래도 한기총 얘기를 먼저 여쭤봐야겠다. 처음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어떠셨나? : 지금에서 말하지만 사실 최악의 상태였다. 변호사가 임시 대표회장을 맡아 3년을 이끌어 왔기에 아무래도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했다. 한기총의 존재감 역시 교계에 거의 잊혀진 상태였다. 실제 그 당시 한기총하면 금권, 타락, 부패 등의 부정적 단어들이 연상되며, 다 끝난 기관으로 인식됐었다. 그 당시 많은 분들이 내게 대표회장을 맡아주기를 요청했던 것은 내가 아무래도 교계 연합운동에 많은 경험이 있으니, 한기총을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큰 책임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한기총이 죽으면 한국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기총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보수 기관이다. 한기총도 한기총이지만, 한국교회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대표회장직을 수락했다. 대표회장 임기 중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무엇인가? : 일단은 이미지 쇄신이다. 부정부패, 금권선거 척결을 우선으로 했다. 실제 지금 한기총의 선거에는 단 돈 10원도 쓰이지 않는다. 그게 내가 만든 문화다. 현 고경환 대표회장께서도 선거 기간 중에 밥 한 번 먹자고 한 사람이 없다고 얘기하지 않으셨나? 사실 처음에 내가 출마했을때 여러 요구가 있었는데 다 거절했다. 처음에는 불만들이 있었겠지만, 결국 다들 한기총 쇄신을 위해 협력해 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기총의 정체성을 쇄신하는 일에 많이 신경을 썼다. 한기총은 보수다. 그런데 어느샌가 한기총의 보수 정체성이 많이 흐릿해진 감이 있었다. 그래서 WCC WEA 동성애 등을 반대하는 한기총의 정강정책을 만들었다. 한국교회는 보수의 한기총, 진보의 NCCK로 흘러갈 때 가장 안정적이었다. 보수와 진보가 양 수레바퀴로 서로 건전한 균형과 견제를 이뤄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한교총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른다고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건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면에서 나는 한교총은 교단 연합체가 아니라 교단장연합회라고 생각한다. 교단 연합체가 되려면 신학과 신앙이 같아야 한다. 어떻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교단과 찬성하는 교단이 함께 할 수 있나? WCC 회원교단과 보수 교단이 함께하는 것이 가능한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이다.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는 부분을 일각에서는 다소 편향됐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는데? : 이는 두 가지로 확고히 구분해야 할 것 같다. 한기총은 신학적으로 분명 타협할 수 없는 보수다. 개혁주의 보수신학을 추구하는 것이 한기총이며, 그런 의미에서 WCC와 WEA 등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편향되다는 부분은 정치적인 부분이다. 허나 우리 한기총은 특별히 어떤 정치 이념이나 정당에 국한되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빨간색도 파란색도 아니다. 다만 성경과 기독교 신학에 근간해 우리사회의 그릇된 부분에 선지자적 목소리를 낼 뿐이다. 실제 한기총은 정치적으로 여야를 구분치 않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한기총의 성명은 여야가 아닌 한국교회를 향한다. 또한 정강정책에 나와 있듯이 국가의 자유민주주의를 헤하는 일을 강력히 저지하고 있다. 교회 역시 자유로운 신앙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이는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외부에서 한기총이 정상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한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 : 당연히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열악한 재정은 물론이고 교계의 편견에 맞서야 했다. 위에서 말했지만 이미 밖에서는 한기총을 망한 기관으로 생각했던 시기였다. 일단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다행히 내가 교계 연합운동을 오랫동안 하며,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교계 중진 지도자들을 만나 한기총의 새로운 변화와 그리고 한기총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며 한기총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지난해 예장합동측이 한기총 복귀를 목적에 뒀던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정적 결과였다. 내가 처음 왔을 당시에만 해도 합동측이 복귀한다는 것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합동측의 한기총 복귀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거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합동측도 한기총의 교계 대표성과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임기동안 한교총과의 통합을 꾸준히 추진하셨는데, 안타깝게도 결국 불발 됐다.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 과거 하나의 보수기관이었던 한기총에서 한교연, 그리고 한교총이 분열해 나가면서 한국교회의 혼란이 커졌다. 당연히 한기총의 이름으로 다시 통합하는 것은 우리의 염원이었고 책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식 통합을 할 수는 없었다. 통합은 추진하되 절대 끌려가는 통합은 하지 않았다. 나는 한기총을 살리려고 대표회장을 한 것이지, 통합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누가봐도 말도 안되는 통합안을 들고와서 이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무시한 처사다. 통합 불발의 가장 큰 원인은 불공정한 통합안이었나? : 한교총이 제시한 불공정한 통합안이 분명 결정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한교총에 속한 WCC, NCCK 소속 교단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대한 부분이 컸다. 한기총은 애초 태동이 너무 진보적으로 흘러가는 NCCK에 대항해 만들어진 보수기관이다. 그런 한기총이 지금 WCC NCCK 등과 함께한다면 이는 설립목적이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한교총은 노골적으로 임기 내내 종교지도자협의회의 기독교 대표권을 뺏어가려고 시도했다. 그런 모습이 어찌 통합에 임하는 단체의 자세인가? 결국 한교총은 종지협 진입에 실패하자 천주교, 불교와 함께 '제2의 종지협'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천주교 불교 등으로부터 거절당했다.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 간단하다. 과거처럼 보수의 한기총, 진보의 NCCK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보수라고 해서 진보가 완전히 없어지면 안된다. 보수는 진보가 있을때 보수일 수 있고, 진보 역시 보수에 비교해 진보로서 포지션이 가능하다. 그게 바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견제와 균형이다. 중요한 것은 건강한 보수, 건강한 진보가 될 수 있느냐다. 그런면에서 한기총은 지난 2년간 건강한 보수가 되기 위해 매우 애를 썼다. 일부 진보들이 한기총을 극보수라고 비난키도 하는데, 정부나 사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왜 극보수라고 하나? 그게 연합기관의 일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권 때 '교회 폐쇄법'까지 발의됐는데, 그것을 가만히 두고 봐야 하나? WCC 문제로 통합을 거부했는데, 그것을 극보수라고 말하면 되나? 우리가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건전한 진보가 아니라 좌경화되어 있는 사상이다. 현 시국에 대해 할 말이 많으실 것 같다. : 나는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일하면서 한국교회의 목소리를 최대한 내는데 주력했다. 교회는 침묵해서는 안된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분명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자기 목숨을 버렸는데, 우리가 그 자유를 지켜야 함이 당연하지 않나? 허나 안타깝게도 교회의 의식이 많이 죽었다. 어느 순간 목사가 직업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하나님 입장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 2년간 정말 많이 수고하셨는데, 이제 좀 여유가 생기셨을 것 같은데, 올 한해 계획이 있나? : 사실 계속 바쁘다. 한기총도 대표회장만 내려놨을 뿐, 통합위원장으로 여전히 한기총을 위해 일하게 됐다. 밖에서는 대표회장을 하고 곧바로 위원장을 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한기총을 위해 올해도 일 할 수 있다면 된다. 그리고 예전부터 기획했던 유튜브를 시작하려 한다. '정서영TV'의 초안을 만들고 여러 콘텐츠를 개발 중인데, 아무래도 내가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 이를 활용해 한국교회를 위한 다양한 일을 유튜브를 통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교계 주요 이슈에 대한 해석이나 토론 등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다니며 찍은 사진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나누려는 콘텐츠도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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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17
  • 매달 교회에 영수증 제출하는 담임목사 "원칙이 신뢰를 만들죠"
    10년만에 다시 찾은 수원 천성교회(담임 김두열 목사)는 빨간 벽돌이 짙은 90년대 교회 특유의 외관은 여전했지만, 그 내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1층에는 너무도 깔끔한 교회 카페가 들어섰고, 지하 대예배실은 작은 콘서트홀을 보는 듯 했다. 가장 큰 변화는 내실이었다. 10년 전 60명 남짓했던 교인들은 어느새 350명으로 늘어났고, 교회 재정도 탄탄해졌다. 넘치지는 않더라도 부족함 없이 다양한 사역을 감당할 정도로 성장했다. 애초 천성교회가 꿈꾸던 강소형교회의 표본을 이룬 것이다. 그 바탕에는 김두열 목사가 부임 이래 이제껏 고수한 원칙 목회가 크게 한 몫 했다. 이에 본보에서는 김두열 목사를 만나, 지난 변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오랜만이다. 10년만인 것 같은데··· 교회가 많이 성장한 듯 하다 = 예전에 처음 인터뷰를 했을때, 우리 교회가 갓 60명을 넘었을 때다. 당시 강도사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참 안정적으로 교회가 성장해 왔다. 사실 신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전도사 신분으로 담임 사역을 했었다. 처음에 20명 정도 됐었는데, 미숙한게 많다보니 교회에서 먹고 자며, 부족함을 메웠었다. 그러다 보니 한 해 10명, 혹은 20명씩 교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전에 교회에 새로 나오는 교인 분들을 통계를 내보니, 무신자는 20~30% 정도 밖에 되지 않더라. 70% 이상이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수평이동으로 우리 교회를 오신건데, 그 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교회에서의 상처와 아픔, 실망이 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교회 부흥이 전체적으로 주춤한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교인들의 믿음이 옅어진 것은 아니다. 교회에 실망한 것 뿐, 믿음 자체가 사라진게 아닌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신앙의 열정을 충족할 좋은 교회를 찾고 있었다. 그렇다면 수원 천성교회는 어떻게 사람들이 찾는 좋은교회가 됐나? = 딱히 특별하게 한 것은 없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칙에서 어긋나지 않게 했을 뿐이다. 특히 재정에 있어서 철저히 원칙을 지켰다. 사실 교회의 문제로 꼽히는 것 중 단연 첫번째가 재정 아닌가? 그렇기에 애초부터 재정에 있어 어떠한 예외도 없이 철저하고자 했다. 먼저 우리 교회의 모든 재산은 법인에서 관리한다. 담임목사 명의로 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담임목사가 재정에 관여할 일도, 그럴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은 재정부에서 원칙에 맞게 집행하면 될 뿐이다. 물론 법인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솔직히 매우 번거로운게 사실이다. 개인이 하면 매우 편한 일을 법인으로 처리하다보면, 복잡한 과정이 많다. 하지만 처음 운영 원칙을 세울 때,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그렇게 하는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보니 성도들에게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다. 유야무야 넘어갈 것도 없다보니, 모든 것을 성도들에게 자유롭게 공개한다. 매달 재정 공개를 원칙으로 하다보니 성도들이 믿고 따라오더라. 담임목사의 목회비는 어떻게 하나? = 우리교회는 담임목사 뿐 아니라, 모든 부서들이 법인카드를 만들어 쓴다. 매달 초, 일정금의 지원금을 각 부서에 지급하고, 한 달 동안 각 부서들은 자유롭게 사역에 맞게 사용하고, 월말 결산에 이를 보고한다. 물론 영수증 첨부는 필수다. 나 역시 법인카드를 사용하며, 매달 그 모든 사용 내역을 직접 정리해 재정부에 보고한다. 담임목사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지급된 금액이 남았다면 결산 때 다시 반납하고, 다음 달에 다시 지급받는다. 당연하지만 대단한 일이다. 일찍 시작한 목회에서 쉽지 않았을텐데? = 제가 고2때 원로목사님의 건강이 악화되시고, 교회가 힘들어졌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급히 신학교에 들어가서 그해 10월부터 교육 전도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부교역자실에서 먹고 자면서, 새벽예배를 일주일에 3~4번 이상 섬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참 많이 성장하고 축복도 많이 받았지만, 몸이 매우 고됐던게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부교역자들의 현실이 결코 남일 같지 않다. 그래서 웬만하면 우리교회 부교역자들에게 목회를 하면서 개인 돈을 쓰지 않게 한다. 너무 과하지 않은 범주 내에서 교회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목회자 사례비를 공무원 호봉에 준해 지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 그렇다. 우리교회는 공무원 호봉표를 기준으로 하는데, 담임목사는 5급, 부목사는 6급, 전임 전도사는 7급 중 각 호봉에 맞게 지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지표다. 그저 당회 결정에 의해 원칙 없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준에 맞춰 지급되어야 문제가 없는데, 안타깝게도 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부득이 매년 발표되는 공무원 호봉표를 기준 삼아 지급하고 있지만, 교단이나 교계 대표성을 가진 곳에서 목회자 사례비 기준을 책정해 주면 훨씬 유익할 듯 하다.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자 사례비가 천차만별이지 않나? 현실상 모든 교회가 똑같을 수 없더라도, 사례비 기준표가 있다면 어느 정도 그 차이가 메워질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나? = 많은 종교의 지도자를 성직자라 부르는데, 그 중 유일하게 기독교의 목회자만 결혼을 한다. 나는 신학을 하면서 왜 우리 기독교의 성직자들만 결혼을 하고, 도시 중심에서 사역을 하는지를 많이 고민했었다. 결국 종교개혁자들이 의도했던 것은 성직자라 해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삶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게 아니었을까 싶다. 목회자들이 끝까지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에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나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큰 교회를 경험치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합신교단에 자리잡고 많은 선배 목사님들과 교류하면서 새롭게 배우는게 정말 많다. 큰 교회는 그 나름대로 하나님이 그 분께 많은 영혼을 맡긴 이유가 있었고, 작은교회는 그에 맞는 확실한 소명이 있었다. 노회 목사님들이 잘 이끌어 주고 계셔서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배우며 목회하고 있다. 근래 목회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 공간 재구축이다. 우리 교회가 1990년에 지은 건물이나 보니, 안전문제가 가볍지 않다. 특히 주일예배에 200명 이상이 한 공간에 있다보니, 그 하중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인원은 늘어나는데 공간 활용이 쉽지 않다. 담임목사로서 교인들을 위해 이 부분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다. 일단 근처 공간을 더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우리교회는 돈을 쌓아두지 않고 그때마다 맡겨진 일에 모두 쓰다보니, 여유 돈이 남아 있지 않다. 지난해 1억 2천만원을 지원해 협력교회를 세웠다. 지교회도 아니고 우리 교단도 아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기꺼이 지원했다. 또한 매년 다양한 명목의 장려금을 교인들에게 지급한다. 이 외에도 앞으로 우리 교회를 소그룹 중심으로 바꿔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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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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