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지난 칼럼
Home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여성칼럼 기사

  • 이런 목회자가 되게 하소서
    먼저 정직하고 멋진 인격의 소유자로 소명을 받은 후에 목회하게 하소서 매일 지성소를 다녀온 듯 두려운 마음으로 행하게 하소서 99%가 아닌 순금 같은 종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전한 종이 되게 하소서 늘 성실하고 성결하여 가정에서 존경받아 본이 되게 하시며 목회자의 가정이 깨어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청결한 양심과 순수함으로 세상 명예와 욕심 물리치게 하시어 흠이 없는 종으로 끝까지 존경받고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상담후 성도들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묵직한 입이 되게 하시고 특별히 선택된 귀한 목자임에 감사드리며 맡겨진 양떼들을 부지런히 보살피게 하소서 권력을 이용하여 나와 다르다고 양을 내치기보다 어떤 희생과 역경 억울함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허물을 끌어안게 하소서 능력과 기적을 행하기보다 사랑이 우선임을 깨닫게 하소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신뢰있는 종으로 설교와 삶이 일치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심을 잊지않게 하소서 아부하는 자들로 인해 성도들을 보는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특별한 지혜를 허락하소서 목소리의 컴플렉스로 인해 위축되지 말고 주신 음성에 감사드리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랑의 음성을 구사하여 더 큰 은혜와 감동을 주게하소서 실수를 했을때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정직한 종이 되게 하시며 받는것에 익숙하여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세상 지혜를 이용하여 남의 양떼를 훔치는 삯군목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하늘의 지혜로 행하게 하소서 경제의 어려움과 목회 성공을 위한 압박감으로 인해 건강을 잃는 일이 없도록 평안을 주시고 육체를 따라 계획한 세상것들이 교회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소서 크다고 큰교회가 아니며 작다고 작은교회가 아니고 오직 아버지의 마음에 흡족한 교회가 가장 큰 교회임을 기억하게 하시며 자손 대대로 축복하소서 행여 목회자의 권력으로 교회를 다스리며 그것을 좋게 여기는 성도들이 없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종이되어 하늘의 지혜와 지식으로 잘 양육하게 하소서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된 '하늘나라 CF광고모델의 주인공'임을 기억하게 하셔서 아름다운 하늘나라를 잘 선전하는 최고의 CF모델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순전한 모습으로 말과 행동 표정을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그대로 보여지게 하소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듯, 교회 강대상의 장식은 자연스럽고 심플하게 목회자의 의상도 자연스럽고 수수하게 보여지는것에 치중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우선임을 깨닫게하소서 바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처럼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뒤로 물러나 격려하는 모세처럼 후배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원로 목사님이 되게 하시어 '목사님으로 인해 정말 행복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으로 은퇴 후가 더 멋지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먼 훗날까지 '걸어 다니시는 예수님'으로 기억되는 교계의 롤모델이 되게 하시고 남은 여생 주님의 축복 속에 행복한 여정이 되게 하시고 자손대대로 하늘의 복이 넘쳐나게 하소서 주신 사명 다 마치고 주님 품에 안기는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 받는 귀한 종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8-18
  • 아, 옛날이여 (1)
    내 고향은 경기도 용인에서 먼 '어비리'인데, 69년도에 수몰지구가 되어 물로 가득찬 인공호수다. 사방에서 맑은 물이 흘러 물고기와 먹거리가 풍부한 부자마을로 경치좋고 인심이 후했다. 그 물을 이용해 물레방아로 수력발전을 일으켜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전기불을 켜고 살았다. 이웃동네 사람들이 밤에 전기불이 환하게 켜진 우리 마을을 바라보면 무척 부러웠다고 한다. 일찍이 새마을 운동을 했기에 소문이 나 타 지역에서 견학과 소풍을 오면 냇가에서 물을 떠 마시곤 했을 정도로 청정지역이었다. 더운 여름날 방과후 먼 집으로 가다보면 왜 그리 목이 말랐는지. 길가에 우물이 있는 집은 으레 지나가는 나그네와 우리들의 몫이었다. 그러기에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서 '물 좀 주세유' 라고 하곤, 주인의 허락도 없이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친구들과 돌려가며 벌컥벌컥 마셨던 그 물 맛! 어찌나 시원하고 달고 맛있었는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보리가 피는 늦은 봄날, 운전을 하고 가족들과 드라이브를 하면서 창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똥거름 냄새가 들어와 빨리 문을 닫았다. 70년대 말쯤 어느 외국인이 코리아의 봄냄새 때문에 괴롭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때 깔깔대고 웃으면서 속으론 무척 창피했다. 시골에서 살 때는 당연한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냄새가 사라졌다. 그 시절에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닦아 먹으면 야채와 과일이 꿀맛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몸에 좋아도 제대로 세척하지 않으면 농약은 물론이고 방부제, 착색제, 왁스, 화학제품들 즉 독을 먹는 것과도 같다. 요즘은 국내에 수입되는 여러 야채와 과일이 점점 많아져 다양하게 맛볼 수가 있어서 좋다. 그런데 문제는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먹음직스럽고 싱싱하게 공급하기 위해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가 의문이다. 땅도 공기도 오염이 되어 깊은 산속에 들어가 직접 재배하지 않은 이상, 도시근교나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서 유기농으로 키웠다 해도 안심하고 먹어서는 안된다. 난 시골출신 인데도 특히 먹거리는 청결하게 씻은 다음 요리를 한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식초 소금 농약세정제를 빠뜨리지 않고 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교회를 섬기는 친한 권사님으로 부터 남편(집사님)이 직접 개발한 천연 농약세정제를 선물로 받았다.설명서대로 과일과 야채에 사용을 했더니 상상도 못할 정도로 농약이 빠져나오고 기름이 둥둥 뜨는 것이었다.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것 좀 봐 다른 사람들은 어떡하니?'라고 걱정을 하면서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오랜시간 동안 지켜봤던 그 부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정직하고 성실한 성품답게 육을 살리는 제품을 개발했기에 마땅히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너무 좋고 감사해서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어 의아하다 못해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혹시 나를 오해하는 것이 아닌지. 그래도 상관없다. 좋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목사들도 돈을 벌기위해 성도들을 이용하여 다단계를 하는 이들이 더러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물질만능, 외모지상주의로 성형은 기본이고, 몸에 좋은 것들을 먹으며 복근운동을 하는 것이 유행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몸에 좋은 야채나 과일을 어떻게(How) 세척해서 가족의 건강을 지켜야 하는지 깨어 있어야 한다. TV만 켜면 요리 연구가, 셰프, 남자 연예인들까지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게 요리를 잘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재료들을 어떻게 세척했을지 궁금하다. 바라기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언제나 정직한 크리스챤 기업들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래서 음식을 맘놓고 먹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똥거름 냄새가 나서 코를 막고 뛰어 가던 시절,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을 친구들과 돌려가며 마시던 때가 새삼 그리워진다. 아, 옛날이여~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7-19
  • 김 영 실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
    7월의 파랗고 맑은 하늘처럼, 우리의 인생길에 먹구름은 끼지 말고 항상 행복하길 우리는 간절히 기도한다. 행복해 보려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귀여운 자녀도 낳고, 일도 열심히 해서 돈을 모은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돈으로 큰 집은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살 수 없고, 비싼 치료비는 낼 수 있으나 건강을 살 수는 없음을 바보가 아닌 이상 잘 알고 있다.돈이 우리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에 없으면 물질이 없으면 무척 불편하지만, 이것이 행복의 해결책은 아니다. 더구나 나의 행복을 남편이나 아내가, 혹은 자녀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기에,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나가야 한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도, 목숨을 건 핍박을 견디며, 어두운 굴속에서도 행복하게 지냈던 것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까지도 힘들게 살았던 우리가, 오늘날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행복한 시절을 맞이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 헤매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됨은 슬픈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방글라데시에서 온 분에게, 그들 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의 최고라는 것이 부러워 물어보았다. 대답은 엉뚱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가난해서, 비교할 대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행복’이란 단어도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하였다. 지금은 대한민국 시민권을 받는 것이 행복의 목표라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일하고 있다고 한다.선진국 사람들과 행복한 유대인 가정을 보면, 그들의 입에서는 “Thank you!-고마워요!” “Excuse me!-실례했어요!” “I'm Sorry!-미안해요!” “God bless you!-하나님의 축복을 빌어요!” “I love you!-사랑해요!”라는 대화를 끊임없이 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대화는 가정에서 부부와 자녀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다. 그들은 한집안에 살면서, 옷깃만 스쳐도 혹은 식탁위의 소금 통을 집어가면서도 “Excuse me!" 와 ”Thank you!"를 연발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동물과 식물, 옷, 자동차, 심지어 음식에게도 “I love it!"라고 표현한다. 이런 말들은 하루 종일 수백 씩 사용되는 문장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비싼 집이라 해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폐허가 되고 무너지는 이유는, 사람의 기운과 언어의 좋은 파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부모로부터 칭찬과 좋은 언어를 듣고 자라난 선진국 자녀들의 얼굴은 모두가 영화배우와 같다. 그들의 산과 들과 건물까지도 아름다운 것은 좋은 파장의 언어와 좋은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내 자녀가 행복하길 원한다면, 오늘부터 우리 가정에도 이런 대화들이 오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며칠 전 음식점에서는 2돌 지난 아들을 안고 들어온 엄마의 대화를 들었다. “너 자장면 먹을래? 짬뽕을 먹을래?” 아이는 딴청을 계속 피웠고, 엄마는 다그치듯 소리를 높여가며 몇 번을 물었다. 그 장면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2돌짜리 아들은 자장면과 짬뽕의 차이점을 잘 모른다. 그 엄마는 아직 아기인 아들을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린아이가 동생을 볼 때도 우리는 그 아이를 어른으로 취급하는 실수를 한다. “형이니깐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네가 더 크니깐 양보해야지! 목사 아들이니깐 참아야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면서 부모 노릇을 하는지... 자녀들에겐 미안하다는 말 뿐이다.언어를 바꾸자! 자녀와 야외나 등산을 가서 나무와 꽃을 볼 때도 칭찬의 언어를 내고, 멋진 바위와 맑은 하늘에 감탄하며,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감사함을 자녀들 앞에서 말하자. 길가에 어린 새싹이 피어 있는 것은 되도록 밟지 말고 비껴가는 배려심도 자녀에게 보여주자. 그리고 나의 아들과 딸이 되어주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항상 들려주자. 틀림없이 훌륭한 하나님의 자녀로 자랄 것이다.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7-08
  • 한여름에 들려오는 소리
    또다시 여름이다. 세상은 짓푸른 나뭇잎들의 녹색 은총으로 빛나고, 칸나, 양귀비, 패랭이, 접시꽃 등의 붉은 꽃이 섬광처럼 하늘 향해 불꽃으로 타오른다. 그렇게 여름은 녹색의 은총과 붉은색의 은총으로 메마른 사막 같은 세상을 생기로 일렁거리며 빛으로 살아있음을 일깨운다. 어디선가 곳곳에서 여리고성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마다 견고하게 진치고 있던 가슴속의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소리다. 이 소리야말로 한여름이 들려주는 은총이다. 하늘의 소리다.하늘을 울리는 큰 소리, 천둥이다. 벼락이 치고 번개가 번쩍인다. 땅에만 관심을 쏟던 영혼들은 잠시나마 두려움에 하늘을 바라본다. 그 번갯불 속에 은밀하게 숨겨졌던 치부가 드러난다. 아, 이대론 죽는다는 지나온 삶에 대한 자책이 오히려 섬광처럼 번뜩이는 영감으로 떠오른다. 그때 어린양의 피가, 우리 어둔 영혼의 문설주에 우슬초로 뿌려진다. 여름날의 붉은색의 은총이다. 자연 붉은 줄을 여리고 성벽에 내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숨죽이며 기다렸던 기생 라합이 떠오른다. 기생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주막을 찾아온 여리고 군인들의 이런저런 소문을 들으며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미 듣고 알고 있었다. 때마침 두 이스라엘 사내가 자신의 주막으로 정탐하러 왔다. 하늘이 열려 하나님을 이미 알고 있던 라합의 눈엔 이제 땅의 눈도 열렸다. 살몬이라는 사내를 보는 순간 번개가 치는 듯 몸이 떨리고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그렇게 그들의 저 숨이 막히도록 뜨거운 사랑의 드라마가 시작된 것이다. 서로의 약속은 이루어졌다. 그 밤에 성벽에서 줄로 달아 내린 붉은 줄이 증표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이 성을 쳐들어 오는 날 이 창가에 붉은 줄을 그대로 드리워 내리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이스라엘 민족은 여리고 성에 도착하여 여섯 번을 침묵하며 돌고 마지막 일곱째 날, 함성으로 그토록 견고한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린다.하늘이 빚어낸, 하나님의 섭리. 그렇게 하여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어두운 환경의 기생이었던 그녀는 마침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 구세주의 조상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믿음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그녀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上天下地)에 하나님이시니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기생 라합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꿰뚫는 혜안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다. ‘넓다, 크다, 확 트이다’라는 라합의 뜻처럼, 그녀는 생각과 믿음이 넓고 큰 사람이었다이렇게 생명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남편의 축복까지 받은 라합은 자녀인 보아스를 신앙으로 잘 양육하였으며 이는 보아스가 이방 여인 룻을 보았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을 택한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며느리 룻도 시어머니 라합과 더불어 여호와 신앙을 더욱 돈독히 믿음을 전수한 결과 이 유전은 결국 다윗을 낳은 예수님 족보의 조상이 되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비천한 라합이 예수님의 가계의 족보에 올랐다.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깊다 했나? 거짓과 술수와 공포와 쾌락이 판을 치는 죄악이 관영한 이때야말로 그녀처럼 풍문으로라도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창녀 막달라 마리아 역시 뜨거운 사막으로 들어가 회개하며 주님 향한 사랑으로 삶을 마감했다 한다. 그래서 도나텔로는 막달라 마리아를 결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늙어 회개하며 고행하는 주름투성이의 구도자로서 조각했다. 그러나 기도하는 손의 형상만큼은 젊고 섬세하고 고결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피폐한 육체 속에 깃든 영혼의 숭고함을, 불멸성을 나타낸 것이리라.오늘도 여름만이 뿜어내는 녹색과 적색이 절정으로 치달으며 바람이 분다. 긍휼의 바람이다. 태우는 소멸의 바람이다. 다시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바람이다. 어서 붉은 줄을 내릴 일이다. 저마다 하늘의 소리 들으며 자신의 영혼 깊은 곳으로.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6-30
  • 행복하고 싶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이 행복하길 원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가 너무나 가난하여 먹을 것도 모자라 아이들의 키가 클 수 없었고, 땔감이 없어서 나무를 찍어가니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었습니다.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보니, 한국의 집들은 초라하고 산에는 나무도 없는 민둥산뿐이었지요. 칭찬을 잘하는 성품을 가진 선교사님들이었기에,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와, 하늘이 너무나 높고 푸르네요!’라고 이 나라를 축복하며 기뻐했습니다. 오늘 속초에 강의가 있어 장시간 운전을 하였는데, 눈에 들어오는 산과 들은 내가 어려서 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산은 나무들이 꽉 들어찼고, 하얗고 핑크빛을 내는 벚꽃은 온통 산을 뒤 덮는 듯 피어있었고, 개나리와 진달래도 함께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의 솜씨며, 그분의 축복 속에 이루어졌음을 감사하며 찬송하니 운전의 피곤함도 사라졌습니다.이렇게 우리나라가 축복의 땅이 되었기에, 우리의 가정도 더욱 축복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자주 등장합니다. 자녀를 모진 매질로 죽게 하고, 부모를 내 ◎⃝는 자녀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어린 자녀들의 뇌 발달 단계와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 기준으로 생각하여 자녀가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운다고 생각하여 부모는 노를 발합니다. 그러나 어린 자녀들은 뇌 발달과 언어발달을 위하여 눈만 뜨면 계속 움직여야 하고, 질문을 쉬지 말아야 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탐험해야 합니다. 그러다 귀중한 것을 망가뜨릴 수고 물을 쏟을 수도 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눈에는 말썽으로 보이기 때문에 아이를 구박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되기 전, 부모교육은 필수 과목이지만, 교회가 이를 앞장서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나이가 어린 자녀일수록 내 자녀를 잘 키워 효도하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부모님들의 소망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효도를 강조하는 민족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나라와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효도교육의 결과가 너무나 다르게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기에 유대인들은 모든 방면에 성공적인데, 특히 부모에 대한 경외심과 효도도 전 세계 일등일 수 있을까요?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성경 그대로 믿는 유대인들은, 산하제한을 하지 않기에 자녀가 보통 8명이 넘습니다. 큰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데, 한쪽 의자는 항상 비어있습니다. 그 의자의 주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시지 않지만, 그러나 항상 그들과 함께 그곳에 앉아, 식탁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의 내용을 듣고 있음을 자녀들에게 눈으로 보여주고 입으로 가르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들의 식탁 대화는 무척 친절하고 긍정적이고 화기애애합니다. ‘하나님은 해처럼 웃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도 웃는다!’는 그들의 철학대로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엄마와 아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말을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들려줍니다. 조부모에 대한 칭찬의 언어들을 듣고 자라는 자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상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식탁에서 부모의 입을 통하여, 웃어른이나 선생님, 혹은 영적인 지도자나 이웃에 대한 불만 불평을 식탁에서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효도의 뇌를 결코 키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키와 몸이 자라는데, 식탁에서 부정의 언어를 함께 먹는 자녀는 불행하고 부정적인 일생을 가지게 되는 결과를 나으니까요. 부모들이여! 오늘도 내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시급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부모들이 어떤 언어와 행동을 가정에서 행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6-02
  • 오월엔 나무처럼, 새처럼 - 이미옥
    산을 오릅니다. 산 속의 품에 안기려 산을 오릅니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풍겨오는 오월의 아름다운 봄날은 푸른 기운으로 온 세상을 가득 채웁니다. 그래서 사랑밖에 다른 것은 전혀 할 줄 모르시는 그분 생각에 저절로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내 마음의 한가운데, 그 사랑이 계시니 그것으로 기쁨이 넘쳐납니다. 나무 위에서 희롱하며 놀던 새 한 쌍이 서로 앞서며 뒤서며 포로록 사랑의 날갯짓으로 푸른 창공을 향해 날아오릅니다.아 푸르구나, 오월은 우리들 세상, 입술에서 노래가 불리어집니다.“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새삼 어린이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란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웬지 그런 말하면 바보 소리 들을 것 같고, 현실에선 마치 꿈 같은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2016년, 올 새해 첫날 바닷가에서 받은 꿈이 더 절절하게 아프게만 느껴집니다. 표현할 수 없는 뭔가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한 기대와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갑니다. 그 싱싱한 푸른 소금의 나라에서 보내온 꿈. 하이얀 포말 속에 담기어 온 꿈, 어찌 잊겠습니까?그 꿈을 말하려면 2015년, 12월 9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환상의 섬, 외도가 바로 보이는, 서이말 등대가, 수선화로 가득한 공곶이 마을이 이웃하는 거제도의 그 바다는 양떼구름을 동원시켜 잊고 있던 삼십년 전의 꿈을 흔들어 깨워주었습니다.YAM(바다). 이 땅의 푸르디 푸른 청소년을 위한 꿈의 터. 그 일을 위해 금정산 정상에 올라 늘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는 나뭇잎이 달린 나무 앞에서, 번제단을 닮은 움푹 파인 장소에서 아이들 나라를 위해, 그 푸른 생기의 하늘의 소망을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분도 흔쾌히 웃으시며 이 꿈의 일에, 아이들나라 일에 관여해 주시어 드디어 2002년에 YAM(Youth Awakening Movent)가 출범하고 그 아이들은 너른 바다 품에 안겨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며 잘 자라났습니다.그러나 웬일인지 그 배가 좌초된다는 조짐도 없이 바다를 향한 항해가 끝이 나고 2008년엔 선장이신 목사님까지 아버지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래도 그 꿈을 놓을 수 없던 이는 굳이 부산청소년센터의 간사라는 호칭을 지금까지 고수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금정산가나안 동산엔 곳곳마다 청소년들을 위한 장소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그렇게 양떼구름. 2015년 12월 9일. 거제 바다 위의 하늘에 어디서부터 연유한 것인지 양떼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구름(비행기)을 타고 많은 양떼들이 몰려오는 꿈을 다시 꿈꾸게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랬던가요? 참으려 해도 뼛속에서부터 타오르는 불꽃으로 인해 말씀을 외칠 수밖에 없다는.. 다시 갈릴리로,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그렇게 그 양떼구름을 본 뒤부터 지난날에 함께 하셨던 은혜의 때를 기억하고 다시 기대하고 다시 기다리고 ... 그렇게 다시 삼십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아이들 나라를 다시 꿈꾸게 된 것입니다. 바보들만이 꿀 수 있는 꿈 같은 이야기, 아이들 나라 이야기.그 이야기가 다시 새로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그때 함께 꿈꾸었던 이들을 찾아가고 또 새롭게 함께 이 꿈을 이루어갈 이들을 만나고 하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한겨울날 헐벗은 겨울나무들이 지난날의 화려했던 여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돌아올 봄을 꿈꾸고 있듯이 지난날을 그리워하기 보다 그때를 기억함으로써 오히려 앞날을 기대하며 기도하며 기다립니다.그래서 지난날의 기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날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들로 인해 진정한 아이들 나라로 생기 넘치는 젊음이 뛰노는 곳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비단 금정산, 거제 앞바다만이 아닌 온 지구촌이, 오늘도 자라나는 나무처럼, 사랑의 기쁨에 날아오르는 새처럼, 사랑이신 생명이신 그분 품속에서 아이들처럼 싱싱한 삶이길, 이토록 눈부신 아름다운 오월의 봄날에 꿈꾸어 봅니다.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5-12
  • 김 영 실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
    아이들이 자라서 벌써 또 다른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방 자라버린 자녀를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경청’과 ‘친절’이란 단어는 예수님의 성품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내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는데 좋은 키워드입니다. 어린 예수님이 성전안에 머물면서 어른들과 성경말씀을 나눌 때 집중하여 ‘경청’하셨기에, 부모님과 친척들이 고향을 향해 길을 떠난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사역하실 때는, 큰 소리로 애원하는 장님의 소리도 경청하시며 반응하셨고, 열 두해 동안 혈루 병을 앓은 여인의 작은 신음소리도 들으셨습니다. 또한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경멸하는 바리새인들의 음성도 들으시고, 제자들의 다투는 소리도 다 듣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찾아왔을때는 친절히 맞이해 주시고 안으시고 축복해 주신 이야기도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경청’이란 어려운 단어는, 어린 자녀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데서만 사용하는 것으로 어른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예배시간에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해!”라는 잔소리를 아이들은 매일 듣고 자라납니다. 물론 아이가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경청하는 자세는 좋은 성품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녀의 말에 잘 경청하는 부모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셨는지요? 이러한 부모님의 모습은 바로 자녀를 성공의 지름길로 이끕니다. 사람의 여러 가지 기능 중, 가장 늦게 발달하는 것이, 정교하게 움직여야 발음할 수 있는 언어를 관장하는 ‘혀’입니다. 영유아기의 뇌는 엄마, 아빠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모든 말과 행동을 뇌에 잘 저장해 놓는 스펀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후, 언어뇌가 발달하고 혀가 정교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표현력이 생기는 5세쯤 되어서는, 그동안 들어왔던 단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경청’과 ‘친절’은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특급 첫 번째 숙제입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어야 하는데, 성격이 급한 부모님이 중간에 끼어들어 ‘그러니깐, 엄마가 뭐라고 했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결론을 내려 버리면, 아이는 사고력과 창조력을 키우질 못하고, 부모의 지시대로만 자라 창조력이나 지도력이 약한 사람으로 평생 살게 됩니다. 사고력과 창조력은 학교나 학원에서 키워주는 것이 절대! 아니라, 영유아 시절에 가정에서의 부모님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환경으로부터 시작하기에,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말하기 전 잘 생각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또한 자녀에게 용기를 주는, 때에 맞는 칭찬은 아이를 자신감 있으며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킵니다.그러므로 자녀와 대화를 할 때는 먼저 잘 경청을 한 후에, 아이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잠시 고민한 후, 친절히 천천히 대답을 시작하십시오. 선진국에서 잘 만들어진 가정 드라마나 멜로 영화를 잘 관찰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모와 자녀와의 좋은 대화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저도 아기의 젊은 엄마였을 때, 누군가가 이런 조언을 옆에서 해 주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자녀들로 키웠을 텐데! 벌써 성인이 되어 버린 아이들을 보며,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하고, 함부로 엄마가 된 것에 후회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약성서만을 지니고 있는데, 구약에는 ‘천국’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유대랍비에게 당신은 ‘천국’에 대해 어떻게 설교하십니까?라고 묻자, 그 대답은 ‘당신 마음속이 천국이 아니고, 당신이 속한 가정이 천국이 아니고, 당신 교회가 천국이 아니라면, 당신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경청’과 ‘친절!’ 우리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먼저 실천해 주어 여러분들의 자녀를 천국으로 인도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해 주세요.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4-15
  •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 - 김영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나,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는 것 한가진들 실어 안오리, 남촌서 남풍불제 나는 좋다나”아름다운 가사를 실은 이 노래는 민요처럼 부르면 민요같고, 가곡같이 부르면 명곡같다. 천천히 슬픈 마음으로 부르면 단조같고, 빠르고 즐겁게 부르면 장조다. 지금은 천국에 계시지만, 평소 음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나의 어린 시절 불러주셨던 노래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가요, 교육자가 되었다. 역사 내내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지냈던 우리네의 노래는 거의 슬픈 단조가 많지만,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기쁨이기에 즐겁고 명랑한 멜로디로 노래한다. 봄이 오면, 나는 다른 여러 개의 봄노래와 함께, 아직도 귓가에 들려오는 아버지 목소리의 ‘남촌’을 즐겨 부른다. 봄에는 봄노래를, 가을이 되면 가을 노래를, 노을을 노래하고, 파란 하늘에 대한 멜로디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인생길은 본인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행복을 선물한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꽃피는 사월이 되었다. 부모가 먼저 찬송과 기쁜 노래를 집안에서 항상 부르고 생활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행복하게 자란다. 아침에는 기독교 방송에서 나오는 찬송가를 같이 따라 부르던지, KBS FM 93.1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자존감’과 ‘자존심’은 말이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자신을 존 귀히 여길 줄 알며, 이웃과 친구들에게서 깊은 배려를 보인다. 이런 자녀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때에 맞는 칭찬이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아이가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한두 개 잘 다룰 줄 안다면, 그는 평생을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부모는 아기때부터 아이가 원하는 활동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면, 혼자서 밥먹기, 혼자 목욕하기, 설거지나 청소, 자동차 세차 돕기등... 아이가 원할 때 배려하며 같이 일을 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간혹 예쁜 옷을 버린다고 못하게 하는 분들을 만나는데, 아이의 뇌발달과 높은 자존감을 위해서는 조금 더 부지런히 세탁기 뚜껑을 열라고 나는 조언하고 싶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의 별명을 동물로 비교하여 부르는 것이다. 아들의 턱이 뾰족하다고 아들을 ‘메뚜기’라고 별명지어 부르거나, 식사를 잘한다고 ‘돼지’라고 부르는 것 등은 삼가야 한다. 아이의 외모가 생긴 그대로 하나님의 작품이며, 준수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부모님의 목소리로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높아야 누가 나의 외모를 보고 놀리고 괴롭히고 왕따를 시켜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내가 아는 성악가 중에 한분은, 키가 무척 작지만 어려서부터 항상 웃고 다녔다. 그분이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엔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다. 배가 고파 울면 어머니가 품에 안고 “아들아, 너는 하늘이 낸 선물이야!”라는 말씀을 음식대신 먹여 주셨단다. “키가 작으면 어떻고 얼굴이 검으면 어때? 넌 하늘이 낸 선물인데...” 어머니의 배려있는 말씀 덕분에, 그분은 현재는 미국에서 쥴리아드 음악원을 1등으로 졸업하고 음대 교수로도 재직하며 백악관을 드나들며 공연하고 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대인 관계가 원만할 수 없는데,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주로 많이 생각하게 되므로, 나를 존귀하게 생각하고 내면을 키우기 보다는, 남의 시선에만 치중하다보니, 주로 보이는 외모만을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3-17
  • 사순절 봄날, 새는 추락하지 않는다 - 이미옥 간사
    새가 하늘을 날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공중에서 선회만 할 뿐 그대로 제자리다. 느닷없이 피어난 하얀 매화 꽃 내음을 맡아서일까? 새의 날갯짓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자리다. 새가 봄 멀미? 그렇다면 어지러워 땅으로 떨어지면 될 것을 애써 공중에서 머무른다. 새의 본연을 지키려는 듯 온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해대는 새 한 마리가 잠시 심장을 멈추게 한다.저 새의 심장도 봄이 오는 계절 앞에선 꽃 멀미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히 작은 생는 하늘이 품에 받아들여 추락하지 않는다. 대신 전진하며 날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순간, 하늘에서 들려오는 메시지. “보았니? 네 모습이란다”. 언젠가부터 생명 없는 새처럼 날지 못하고, 그렇다고 추락하지도 못하고 겨우 목숨만을 잇고 가는 나의 삶의 모습이다. 분을 낼 일이 있어도 죄를 키우지 않고 스스로 자정시키는 바다처럼 어룽대며 벌겋게 달아오르다 재 한 줌 되어 영문 밖으로 버리어진 내 자화상.나의 영혼은 시편 기자의 입술을 빌려 애써 저 볼품없는 작은 새처럼 맴 맴 비상하지 못한 채 맴돌며 노래한다.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니”얼마나 살아 있는 동안 위선의 옷을 더 입을 것인가? 또한 찬양하는 삶이길 소망하며 나의 영혼은 얼마나 피흘릴 것인가? 누군가의 표현대로 생명의 90%가 증발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늙은 나이에 비로소 생명과 사랑에 버들개지 눈뜨듯 뜨여지는 때, 하늘의 부르심. 때가 차매 “마리아야, 마리아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이 황당한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5년 7월 5일. 그 후, 달맞이꽃빛을 한 노란 꽃잎을 마구 먹어댔다. 밤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나타나 안된다고 손을 내저으셨다. 애써 하늘의 싸인이라며 나중을 위한다며 그날을 일기에 적었다. 2015년 7월 22일.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인치듯 적었다. 마리아는 말하지 않았다. 요셉에게.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의 언어, 하늘의 일을. 땅의 사람이…. 그러나 안다. 하늘의 사람이면서 땅의 한 청년의 십자가의 죽음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간 것을. 이 사순절에 그래서 입안에서나마 간절한 기도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 길을 가는 것이라면 그냥 가는 것입니다, 라고. 이제 노란 꽃잎을 자신의 입술로 마구 집어넣어 먹어댄 이 땅의 여인들은 열매를 위해 씨방을 내놓고 부활의 재생의 힘을 키우며 하늘의 빛을 구할 것이다. 꽃은 열매를 위한 준비. 잎은 나무 전체를 위해 일하지만 꽃은 열매만을 위한다.다시 사순절 봄날, 새 한 마리를 통한 메시지를 묵상한다. 더 이상 한자리에 머물지 말고 그분의 역사가 펼쳐지도록 네 생명을 내놓으라. 네 죽음의 자리에서 부활의 생명이 꽃 피리니….하늘과 땅의 합일이야말로 인간이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며 인생의 최고의 길이고 목적인 것을. 그분이 오늘도 밤낮으로 업고 안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사랑가 불러 주신다. 사랑 사랑이야,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야.또 경상도 어디선간 그분 향해 절규의 노래를 목청에 피나는 줄도 모르고 외쳐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3-10
  • 북을 주다 - 성우 정 부 용 권사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우리 마을과의 거리는 약 2km가 넘어서 어린아이들이 걸어서 다니기엔 좀 먼 거리였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쉬려고 하면 '윗동네 아저씨 댁에 심부름 다녀오너라! 불 좀 때라! 동생을 업어 줘라!' 게다가 따가운 어느 여름날 창고 안에 있는 호미를 들고 먼 선산 밑에 있는 참깨 밭을 매러 가자며 앞장서시는 아버지의 명령에 동생과 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따라나섰다. 큰 냇물을 두 번이나 건너 참깨밭에 도착했다. 아버지께서는 참깨 대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해 잡초는 뽑고 호미로 흙을 수북히 쌓아 올려준 다음 꾹꾹 눌러줘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복(福)이 아닌 북을 주는 것이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눈썰미가 있어서 동생 수정이와 나는 꽤나 일을 잘해서 덕분에 팔뚝이 굵어져서 창피한 적이 많았다. 우리는 부농이라서 일꾼도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었건만 늘 일손이 모자랐다. 왜 그런 집안에 태어나게 하셨을까? 일도 안하고 우리 집 마당에 와서 맘껏 뛰노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식물에 북을 주면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북을 준 자에게 복(福)으로 갚아준다. 자연은 정직하다. 언젠가 미용실에서 할머니가 하시는 얘기를 들었다. 친한 친구가 가난해서 수업료를 못내 선생님께 야단 맞는 게 불쌍해서 대신 수업료를 내주곤 나중에 아버지께 혼났다고 한다. 그 친구는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고 하기에 “그럼 요즘도 연락하고 지내시겠네요?”라고 했더니 “에이, 그럼 인간이게?” 라며 몹시 서운해 하셨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자신의 목표를 이룬 후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슬프시게 하는 것을 보면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다 죄인이다. 과거에 잘 나갈 때는 영항력이 있어서 주위사람들과 후배들에게 북을 주는 역활을 했는데 지금은 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 도대체 이게 뭡니까? 영의 아버지나 육의 아버지는 왜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무슨 아버지들이 그렇습니까?” '라고 따졌다.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라 하신 길을 왔는데 광야와 사막의 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 했으면서도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나였다. 인도 하시는 대로 열심히 준비하며 달려왔는데 허락치도 않으시고 길은 막혀 앞이 보이질 않아 답답했다. 구정 전날은 주일 이었는데 습관대로 예배 전에 하나님께 기도 편지를 쓰고 설교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려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적었다. (삼하12;1~15/ 제목;당신이 그 사람이라) 나단 선지자가 다윗(나)을 향해 회개케 하는 내용이었다. '제가 바로 그 죄인입니다' 라고 하나님의 정한 시기에 다윗이 뜨거운 눈물로 회개를 했을 때 기뻐하셨다. 그리고 U턴을 하여 일평생 겸손한 삶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말씀이었다. 왜 하필 대한민국에, 하필 그런 집안에 태어나 힘들게 하셨을까? 또 평신도인 주제에 바쁘고 피곤하고 관심도 없는 목회자를 대상으로 감히 강의를 하게 하셨고 안 될 때 포기하고 방송으로 돌아가지 못한 나자신에게도 불만이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다 내가 한 거야'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려지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구정 전날 밤 우연히 '예수 우리 왕이여' 38장 찬양을 듣는 순간 또 '내가 한 거야' 라고 하셔서 '네 그렇군요. 저의 배후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여기까지 인도하셨는데 제가 잘못 했습니다. 교만 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울며 불며 회개를 했다. '이제 제발 남 탓 좀 그만해! 남들에게 북을 주고 잘 해줬던 것도 내가 능력을 줘서 한 거야' 라고 하셨다. '네 맞습니다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더 낮아지고 겸손하여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예쁘게 살겠습니다.' 라는 회개를 하고 단잠을 잤다. 구정날 아침 생전 처음 보는 찬란한 햇살이 너무나 아름다워 세상이 달라 보였다. 몸도 마음도 얼마나 가벼운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명절만 되면 그동안 힘들고 밉고 섭섭한 일들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솔직히 즐겁진 않았다. 그런데 미운 생각이 다 사라지고 모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냈다. 결국 복(福)을 나누고 북을 준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 지난 칼럼
    • 여성칼럼
    2016-02-1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