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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사순절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기를
    지금은 오는 4월 첫 주 부활주일을 앞두고 사순절(四旬節, Lent)) 기간이다. 교회력에서 사순절은 주의 고난을 기념하는 40일의 금식기간이다. 이는 주님의 공생애를 앞두고 행한 40일 금식을 함축하고 있다.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이 고난주간이고, 주님은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 기간 매 주일날과 부활주일은 사순절의 40일에 들어 있지 않다. 역사적 기독교는 이 사순절 기간을 금욕하며 기도하고 엄숙하게 보냈다. 하루에 한 끼 또는 두 끼를 금식하며 참회기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례지원자들은 이 기간에 성경과 교리를 공부하고 신앙고백을 엄수했다. 이는 부활절 전야에 다짐하는 마음가짐의 일부이기도 했다. 이 역사는 현대교회에서도 당연히 그대로 이어져 가고 있다. 특히 로마교회와 그리스교회는 사순절을 대단히 중요시 한다. 또 교회력을 중시하는 역사적 교회는 사순절 기간에 교회 안팎의 색깔도 대부분 검은 천으로 꾸몄고, 설교 역시 주의 고난에 맞추었다. 개신교회 중에는 루터교가 이를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같은 의식과 정신이 많이 헤이해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서방교회나 동방교회처럼 고행의식에 빠지거나, 지나친 금식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영성을 가다듬는 것은 개혁교회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사순절 내내 하루 한 끼 정도 금식하고, 또 노래방이나 영화관이나 자신을 위한 유흥을 멀리하고, 관련 성경구절을 읽으며, 암송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려면 담임목사가 먼저 사순절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의식이 있어야 하겠다. 그래야 교인들에게 사순절에 대한 신앙적 의미를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정국을 극복한 한국교회가 올 사순절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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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7
  • [연지골]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 고대 기독교가 낳은 가장 탁월한 교부 중 한 분이 역사상에 '어거스틴'이라고 불리우는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이다. 그의 원명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이다. 그는 354년 11월 13일, 북아프리카의 타케스테(Tagaste) 라는 조그만 촌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는 이교도였고, 어머니 모니카(Monica)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어머니의 기도와는 달리 육체의 쾌락과 미로를 끝없이 방황하며, 한때는 마니교에 미치고, 학문적 회의주의와 플라톤의 관념론에 빠져 헤맸다. 그로 인해 당시의 젊은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자와 동거하며 아들도 낳았다. ◇ 그러나 그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기도와 밀라노에서 만난 교부 암브로시우스의 설교와 아타나시우스가 쓴 '성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읽고, 33세의 나이에 회개하고 변화를 받아 기독교 세계 전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유익을 끼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387년 부활절 주일에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로부터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 회심자인 알리피우스(Alypius)와 일곱 살 짜리 아들 아데오다투스(Adeodatus)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마침내 아들로 인해 오랜 기간 극심한 영적 고통을 감내해온 신실한 어머니 모니카는 그녀가 죽기 직전에 그 기도와 기대가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세례를 받은 그 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 이탈리아 티베르 강 어귀의 오스티아에서 그녀의 나이 56세에 아들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아데오다투스도 그 다음 해에 죽었다. ◇ 어머니와 아들이 죽고 난 후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 그곳에서 집필에 몰두하며 열심히 가르치고 봉사하며 교회를 섬겼다. 그의 명성이 온 기독교 세계에 퍼져 389년에 장로로 임명되어 설교자가 되었고, 396년에 누미디아의 해안도시 히포의 감독이 되었다. 밀라노에서 회개하고 암브로시우스로부터 세례 받은 지 9년 만에 장로(목회자)를 거쳐 감독(주교)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집을 수도원으로 삼아 순수한 삶을 추구하며동료 사역자들과 함께 살면서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430년 8월 28일 조용히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을 이어 설립된 수도회가 '아우구스티누스회'이다. 훗날 이 수도회가 종교개혁자 루터를 배출했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책은 '참회록'(The Confession)이다. "당신은 저희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으며,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안식하지 못하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성'(The City of God)과 명상록(Meditations)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를 확립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요, 저술가이다.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온 것이다. 루터도, 칼빈도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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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7
  • [연지골] 주교 암브로시우스
    ◇ 초기 기독교가 교리 논쟁이 한창이던 4세기에 유명한 교부 중에 암브로시우스(Ambrose, 374-397년)가 있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주교로서, 저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에게 세례를 베푼 멘토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암브로시우스가 주교가 되는 과정이 특이하여 교회사에서 크게 회자되는 사건이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당시 서방제국의 주요 지역 가운데 하나인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와 라인강 서쪽 지역)를 통치하는 총독의 아들이었다. 그는 로마에서 고위 관료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이탈리아 북부를 다스리는 집정관(장관)이 되었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로마 다음 가는 제2도시로서 황제들이 자주 거주하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로마 사회의 새로운 종교로 등장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도시였다. ◇ 그런데 암브로시우스가 374년, 그곳 장관으로 부임한 때에 이 도시의 주교가 죽고 후임자 선출 문제를 놓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직전 주교는 니케아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아리우스 파의 카바도키아 출신 아욱센티우스(Auxentius)였다. 그때 가톨릭 파와 아리우스 파 간에 후임은 서로 자기네 편 사람을 주교로 세워야 한다며 분열이 일어났다. 대다수 시민들은 정통 파인 가톨릭 쪽에 지지를 보냈지만, 발렌티아누스 2세 황제의 어머니인 유스티나 황후가 아리우스 파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둘로 갈라져 있었다. 이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가운데 여차하면 유혈 사태가 벌어질?조짐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자신에게 이 사태를 진정시킬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암브로시우스는 이 험악한 분위기를 설득키 위해 중재에 나섰다. ◇ 다행히 양측은 그의 의견에 동의해 주교를 뽑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양측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암브로시우스가 회중?앞에 나서서 발언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뒤쪽에서 한 소년이 손을 번쩍 들고 "암브로시우스를 주교로 세우세요, 암브로시우스를 주교로 세우세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거기 모인 회중은 일순간에 압도되어 "아멘, 아멘!" 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그 당시 세례도 받지 않은 교리문답자에 지나지 않았다. 암브로시우스는 당황하여 "나는 아직 세례도 받지 않았는데 무슨 주교입니까 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밀라노 시민들은 가톨릭 파든, 아리우스 파든 어느 한쪽에서 주교가 나오게 되면 곤란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중립적인 암브로시우스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 자칫 큰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그는 결국 8일 만에 승복했다. 곧바로 사제들이 세례(44세)를 베풀고, 이어서 밀라노 주교로 임명했다. 세례로부터 주교가 되기까지 불과 3일이 걸렸다. 그런데 그는 이때부터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자신이 가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평생을 교회를 위해 산 초기 기독교 세계에 위대한 주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불교의 진리를 깨닫는 수행 중에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있다. 돈오돈수란 말은 불교의 수행 진리를 오랜 기간 배우지 않고도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깨닫는 것을 뜻한다. 이후 암브로시우스는 아리우스에 대해서 단호히 비판하고, 니케아 신앙이 승리를 거두게 하는데 이비자했다. 암브로시우스는 바로 기독교의 정통주의와 그 사상을 돈오돈수 한 셈이다. 오늘날에도 우리 교계에는 전통 있는 교단이나 명망 있는 신학교를 나오지 않고도 정통성과 깊은 영성을 가진 설교자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이들이 기독교 진리를 돈오돈수 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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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연지골] 라틴 교부 제롬
    ◇ 초대교회 교부 중 탁월한 인물에 제롬(Jerome, 345-420)이란 라틴(서방) 교부가 있다. 교회사에서는 그를 가리켜 히에로니무스(Heronymus)라고도 한다. 그의 원래 라틴 명이 <소프로니우스 에우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이기 때문이다. 그는 달마티아 접경 지역인 스트리디온(지금의 헝가리 지방)에서 부유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18세 때 로마에서 귀족의 자녀들과 함께 유명한 문법학자 도나투스(Aelius Donatus)와 수사학자 빅토리누스(Victorinus)의 지도를 받아 법률가가 되었다. 그는 아주 근면하고 공부에 충실해 철학자 키케로(Cicero)를 비롯한 고전 작품을 읽었다. 그는 로마에서 세례를 받고 엄격한 금욕생활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 그는 극단적인 금욕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가 죽게 될 만큼 극심한 금식 중에?희한한 꿈을 꾸었다. "영에 사로잡혀 어떤 힘에 끌려가 빛이 매우 밝은 심판대 앞에 섰다. 주위에 눈부신 빛을 발하는 어떤 분 앞에 엎드려 차마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 분이 '너는 누구며 무엇하는 사람이냐 '고 물었다. 이에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분은 다시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키케로의 추종자이다. 네 보화가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 순간 그는 괴로움 속에서 '오 주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외치면서 통곡했다. 그는 이후로 다시는 세상적인 책들을 읽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는 이 맹세를 가지고 꿈에서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 제롬은 라틴 교부 가운데 가장 박식하고, 가장 웅변력이 뛰어나고, 가장 흥미로운 저자로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생애를 다하는 날까지 쉬임 없이 가르치고 배우고 글을 썼다. 하루라도 끼니를 거르면 안되듯 책 없이는 살 수 없었다. 당시 기독교 세계는 주전 250년에 유대인 학자들이 번역한 헬라어 성경(칠십인역)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칠십인역은 번역상의 오류도 있었고, 그것을 필사하고 또 다시 필사하는 과정에서?실수는 증가하였다. 이를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면 전혀 엉뚱한 내용이 되기도 했다. 이에 제롬은 라틴어 성경을 히브리어로부터 직접 번역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장년이 된 후에 시리아 광야에서 5년간 금욕생활을 할 당시 회심한 한 유대인에게서 히브리어를 배웠다. ◇ 이후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가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위해 정착한 곳은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근교였다. 그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 시설과 교회를 세우고, 여성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많은 책들과 사본들에 둘러싸여 번역사업에 착수했다. 제롬은 랍비 바르 아니나(Bar-anina)를 비롯한 여러 유대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 사업을 시작한지 2년 후 주후 405년에 불후의 라틴어 성경인 '벌게이트'(Vulgate)역을 출판했다. 이를 '불가타'역이라고도 한다. 초기 기독교 세계에 칠십인역이 끼쳤던 것 같은 영향을 불가타역은 라틴 기독교 세계에 끼쳤다. 그는 철학자요 수사학자요 문법학자요,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통한 학자였다. ◇제롬은 해석학과 교회사와 교리적, 윤리적 저서 등 수없이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또 신구약 성경주석도 썼다. 창세기, 대선지서, 소선지서, 전도서, 욥기, 시편, 마태복음,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의 주석을 남겼고, 교부들과 성인들의 역사, 기독교문학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논쟁적인 교리적 . 윤리적 저서들 가운데는 아리우스파 논쟁, 오리게네스 논쟁, 펠라기우스 논쟁 등도 다루었다. 그가 친구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낸 많은 서신들은 오늘날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당시 교부들의 삶과 교훈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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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연지골] 동방 교부 아타나시우스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교회 역사에서 니케아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언제나 'the Great'라는 칭호가 붙어 다닌다. 그리고 그는 훗날 '정통신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아타나시우스는 297년경 이집트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랐다.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Alexander)는 소년 아타나시우스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그를 데려다 가르쳤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비서로 삼고 얼마 후 교회의 집사(부제)로 임명했다. 아타나시우스는 고전과 성경, 교부들의 저서들을 공부하면서 금욕자로 생활했다. △로마의 박해 아래 있던 교회는 313년 콘스탄티누스로부터 로마의 ‘합법적 종교’로 인정받아 박해시대가 끝나고, 그리스도론에 대한 견해가 갈라져 있던 교회는 전체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교회회의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니케아에 제1차 세계기독교공의회를 소집했다. 이때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더 감독을 보좌하는 집사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 회의를 지켜보던 아타나시우스는 회의장에서 아리우스주의를 논박하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옹호하는 열정과 지성을 드러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후 장로가 되었다가 328년에 임종을 앞둔 알렉산더 감독의 천거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으로 지명되었다. △325년 니케아에서 아타나시우스의 ‘동일본질’파가 정통신앙이 되고, 아리우스의 ‘유사본질’파는 이단이 되었음에도, 당시에는 아직도 아리우스파가 황실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설득하여 아리우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유배지에서 돌아오도록 했다. 이제는 그들의 공격으로 오히려 아타나시우스가 면직과 추방에 거듭 처해졌다. 첫 번째 유배생활은 트레브에서, 두 번째는 로마에서, 세 번째는 이집트 사막에서 수사들과 함께 보냈다. 황제 율리아누스는 추방된 주교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아타나시우스가 다시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네 번째 다시 이집트로 추방되었다. 362년 율리아누스가 죽자 후임 황제 요비아누스에 의해 다시 교구로 돌아왔으나, 얼마 안가 요비아누스가 죽고 아리우스주의자인 황제 발렌스가 즉위하자 367년에 다섯 번째 다시 추방됐다. 그의 유배생활은 모두 20년이나 되었다. △그는 기독교 정통신앙의 옹호자였지만, 수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아 20년 간의 유배를 견디고, 마침내 373년에 76세의 나이로 아직 아리우스주의와의 투쟁의 종결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교구에서 눈을 감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를 향해 다신론자들, 무신론자들, 거짓말쟁이들, 개새끼들, 이리들, 적그리스도들, 마귀들이라고 불렀다. 교회는 정통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적들로부터는 그토록 심한 증오를 받았고, 그를 지지하는 신도들로부터는 그토록 큰 사랑을 받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 “위대한 계몽자” “하나님의 교회의 모퉁이돌”이라고 칭송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기독교 변증서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니케아 신앙에 대한 교의서로서 '수사들에게 보내는 아리우스파의 역사', 금욕주의를 강조한 '성 나토나우스의 생애'가 있고, '시편 주석'을 비롯한 수많은 편지와 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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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7
  • [연지골] 동방 교부 오리게네스
    △ 교회사에 나타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역사적 인물 몇을 소개하고자 한다. 3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교리문답학교 교장을 지낸 교부 오리게네스(Origenes, 오리겐)는 "성자께서 창조한 영원한 세계는 영적(靈的) 세계이다. 이 영원의 세계에서 모든 영들은 동일한 영광과 덕으로 지음을 받았고,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도록 창조되었다. 이 영들 가운데 어떤 것은 이 자유를 덕되고 고결하게 사용해서 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천사라 부른다. 또 다른 영들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남용해서 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마귀가 되었다. 그러나 또 천사들처럼 복종하지도, 마귀들처럼 불순종하지도 않은 제3의 영들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인간이다. 이들 모든 영들은 동일하게 창조되었다. 천사들을 위해서는 하늘이 창조되었고, 마귀들을 위해서는 지옥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라고 했다. =이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영들의 세계가 먼저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해석에서 온 것이다. 즉 천사와 마귀와 인간은 모두 영원한 영들의 세계에 속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위해서 창조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의 세계'를 잃었다. 곧 에덴에서 쫓겨난 실락원이다. 그런데 흔히 인간의 속성을 천사도 되고, 마귀도 된다고 한다. 어떤 인간은 천사처럼 선량하고, 또 어떤 인간은 마귀처럼 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다. 과연 세상에는 그런 두 종류의 인간 모습을 어디에서든 찾아 볼 수 있다. 이웃의 약함을 자신의 아픔인양 측은히 여기고 돌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웃의 약점을 이용해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아가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천사처럼 사는 사람이고, 후자는 마귀처럼 사는 사람이다. △ 주후 185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오리겐은 교리문답학교의 클레멘스의 지도하에 신앙과 지식교육울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202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박해 때에 순교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이미 성경전서를 암기했으며 성경 해석에 심취했다. 오리겐은 평생 금욕생활을 해 고기와 술을 먹지 않았고,, 주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순종하여 겉옷도 한 벌만 가지고 지냈고, 신발도 한 켤레 이상 소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성 교리문답자들과의 유혹과 추문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여 교회법에 따라 성직자가 될 수도 없었다. 228년에 오리겐을 아끼던 예루살렘의 알렉산더와 가이샤라의 테옥티스투스 감독에 의해 장로로 임명되었으나, 교회법을 위반하고 기독교를 부패시킨다는 이유로 교리문답학교 교사직과 장로직을 박탈 당했다. △ 오리겐은 기독교역사에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교리를 누구보다 강력히 지지했지만, 심각한 이단적 오류도 남겼다. 그의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예를 들면, 육체의 부활에 대한 부정, 영혼의 선재와 역사 전 타락, 영원한 창조, 구속 사역이 지구 외의 별들에 거주하는 자들과 모든 이성적 피조물들에 확대, 모든 인간과 타락한 천사들의 최후의 회복 등이다. 이는 정통신앙에서 인정되지 않는 이단설이다. 그리하여 이 위대한 신학자는 그가 죽은 뒤인 543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한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아직까지 불분명하게 남아있었다. 오리겐의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공헌은 성경 해석학이다. 그의 해석 원칙은 육적(somatic), 혼적(psychic), 영적(pneumatic)이라는 삼중 형식을 가진다. 그는 니케아 이전의 여러 헬라어 구약성경 사본을 비교하면서 본문들에 나타나는 차이점에 주목했다. 그것이 '헥사플라'(Hexapla)라는 여섯 본문의 대조 성경이다. 그 외 성경 주석과 교리서 등 약 300여 권의 책을 남긴 대표적 동방교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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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7
  • [연지골] 성도의 교제
    ◇역사적 기독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통적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가 사도신경이다. "I Credo, 나는 믿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사도신경은 초대교회 박해 시대부터 단편적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6세기 경, 보편적 기독교를 지칭하는 가톨릭의 정통 신앙고백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역사적 기독교가 채택한 수많은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많은 성도들이 사용해온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사도신경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이어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의 그리스도 주' 되심을 고백하며, 성령의 사역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고백한다. 그리고 죄 사함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는 것이 사도신경의 내용이다. 이 가운데 특이한 것은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성도의 교제'(The Communion of Saints)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맺은 모든 인간 관계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곧 여기에서 고백하는 '성도의 교제'이다. 이 세상에서의 성도 간의 교제는 육적 인간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인 '새 예루살렘'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6장 '성도의 교통'은 "모든 성도들은 성령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어, 그의 은혜와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영광 안에서 그와 교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성도들은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 연합에서 떨어져 있다면, 진정한 성도라 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미날리티(Nominality)이다. 자신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고, 기독교인으로서의 모범된 삶을 산다고 자부할지라도, 교회공동체의 연합 안에서 교제가 끊어졌다면 진정한 성도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공동체에서 '가나안'(안나가) 교인으로 전락한 노미날리티는 이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 드리고, 매일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헌금은 모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고, 또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 드린다 할지라도, 거기에 성도의 교제가 빠졌다면 그 예배는 온전한 예배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의 날은 성도들의 사귐을 위한 특별한 교제의 날이다. 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일예배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제는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성도(聖徒)의 사귐'(Holy Communion)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공동체 내에서 성도 간의 분쟁이나, 또는 목회자와 교인 간의 갈등은 옳지 않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라는 고백은 우리의 찬송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그가 어떤 교파, 어떤 개교회에 속했던 간에 모두가 '하나'이고, 또 '하나'가 되어 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현대교회에서도 성도의 교제를 중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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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8
  • [연지골]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
    ◇ 법무부장관 한동훈은 후보자 시절,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일명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이대로 통과되면 결국 국민만 손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가 당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을 함부로 팔지 말라'는 항의를 받았다. 이에 한동훈은 그 법을 집행할 법무부장관 후보자로서 침묵하는 것은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라고 되받았다. 이 말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뿐 아니라, 목회자에게는 더욱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성경은 한 사회의 지도자가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벙어리 개'와 같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고 규탄한다(사 56:10,11). ◇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 이 세상에서 '목회자'라는 직업은 정치인처럼 권력이나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처럼 인기를 누리거나 돈벌이가 되는 직업도 아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의한 봉사직일 뿐이다. 이 봉사직은 더우기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거나 또는 경제적 이득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사명감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직업의 종사자들보다 더 직업윤리 의식이 강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직은 매우 힘들고 따분한 직업이 된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과 다른 점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는 자부심이 함께 있는 것이다. ◇ 양심의 문제 역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 있어 가장 우선하는 것이다. 장로회 정치 원리 제1조는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각인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어...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목회자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그런데 목회자가 세상 권력이나, 교권이나 혹은 상사나 선배의 눈치를 살피느라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바른 목회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는 그가 그 직업에 충실한 바른 직업인인가, 아니면 사이비 직업인인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양심은 천부적인 것이고, 또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이 양심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 이의 양심은 수정같이 맑고 깨끗하여 작은 먼지에도 반응하지만, 어떤 이의 양심은 발바닥같이 둔하여 왠 만한 모래알에도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벙어리 개'란 말은 도둑이 담을 넘는 것을 보고도 짖지 않는 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개는 집에서 애지중지 키울 이유가 없다. (요즘 애완견의 경우는 좀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사회가 건강하려면 한동훈과 같이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군에서 많이 일어나야 한다. 목회자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목회자들이 이 말을 중요한 화두로 삼는다면 우리 교회와 사회가 매우 건강해 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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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4
  • [연지골] 부활의 날인가, 부활 주일인가
    올 해(2022년) 4월 17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과 '부활 주일'이 같은 날 겹친 날이다. 부활절을 ‘부활의 날’로 할 것인가, ‘부활 주일’로 할 것인가는 초기 교회의 논쟁 중에 가장 첨예한 문제였다. 주후 325년 니케아 이전의 교회는 두 가지 절기를 지켰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유월절(니산월 14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오순절 날에 이르는 오순절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유월절과 부활절은 가장 깊은 슬픔과 가장 높은 기쁨이 만나는 연속적인 행사로 연결되었고, 이를 '파스카 스타우로시몬'(pascha staurosim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파스카 아나스타시몬'(pascha anastasimon)이라고 불렀고, 후에는 이를 '부활절'(Easter)이라고 했다. 파스카 스타로우시몬은 슬픈 금요일에 해당하고, 파스카 아나스타시몬은 기쁜 주일에 해당하는 날로서, 이 주간은 두 큰 사건을 기념하는 거룩한 주간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유월절 양'(고전 5:7)이 우리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예언적 예표로 이해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통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 받은 사건이 곧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가 구속될 일을 예표했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의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 성 금요일부터 그리스도가 부활한 17일 부활절 전야까지는 금식 기간으로 지켜졌다. 이 때 교회에는 부활절 철야 기도회가 있었다. '부활절 철야'는 온 회중이 각별한 신앙심으로 새벽까지 철저하게 지켰다. 구속 사역으로 완성한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점차 기독교 유월절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부활절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유월절 시기와 금식일의 시기에 관하여 지역의 교회마다 관습의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로 인해 격렬한 논쟁이 발생했다. 소아시아 교회를 비롯한 동방 교회는 니산월 14일에 엄숙한 금식으로써 기독교 유월절을 지켰다. 그리고 금식을 마치는 17일에는 성찬과 애찬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취된 기독교 유월절과 구속의 잔치를 베풀었다. 니산월 14일 저녁에 베푼 성찬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한 것이었다. 이 관습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죽으셨다는 사상을 강력히 내포하고 있었다. 이들을 '14일파'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교회와 또 다른 서방 교회들은 부활절을 음력 3월 보름 다음에 오는 주일 날(일요일)에 '부활 주일'로 기념했다. 이로 인해 초기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부활의 날'에 기념할 것인가, '부활 주일'에 기념할 것인가를 놓고 오랜 기간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 문제는 교회 밖의 세상에서 볼 때, 교회의식의 통일성이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였다. 이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325년 제1차 세계기독교공의회인 니케아에서 부활절 문제를 논의한 결과 로마교회의 관습을 따라 춘분 이후(3월 21일)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을 '부활 주일'로 지키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르면 부활절이 이르면 3월 22일부터, 늦으면 4월 25일 사이에 오게 된다. 그리하여 부활절은 '부활의 날'이 아니라, '부활 주일'에 지켜지도록 강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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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2
  • [연지골] 언더우드 기념관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총회가 에큐메니칼(통합측)과 엔에이이(합동측)로 갈라진 이후, 한국교회에서 최근 하나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쾌거를 이룬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 8일, 통합측 서울노회 소속의 경신학원(이사장 이효종)과 합동측 경기노회 소속의 혜화동 혜성교회(담임목사 정명호)가 이룬 '언더우드 기념관' 준공식이 그것이다. 지상 3층, 지하 4층, 연면적 3,500여 평 규모의 언더우드 기념관은 혜화동 서울성곽을 끼고 자리잡고 있는 경신중고등학교(교장 신광주) 부지에 들어선 체육관 및 교육시설이다. 여기에는 강당(예배당), 체육관, 주자장 등이 들어서 있다. 주일에는 혜성교회의 예배실과 교육관으로 사용된다. 이 건물은 경신학원이 부지를 내고, 혜성교회가 건축비를 담당해 136년 전 이 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름으로 준공한 것이다. 경신학원과 혜성교회는 언덕 위에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이 언더우드 기념관은 설계에서부터 내외부 설비와 완공까지 혜성교회가 건축비 250억원을 들여 준공해 경신학원에 기증했다. 1,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은 평일에는 학교가 사용하다가 주일날에는 혜성교회가 에배당으로 사용한다. 학교측과 교회측이 이같은 시설 건립을 계획하게 된 배경은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학교 운동장이 잔디구장으로 바뀌면서 주일날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던 혜성교회가 주차 공간이 사라지자 학교측과 협의한 끝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학교측은 숙원이던 강당과 체육관이 마련되고, 교회측은 주차장과 새로운 예배당이 확보된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학교와 교회가 서로 필요에 의해서 강당을 지어 학교측에 기증하고, 주일날 교회가 사용하는 사례는 더러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교단이 다른 학교측과 교회측이 서로의 필요를 위해 윈윈하게 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장로교회에서 '통합측'과 '합동측'이라고 불리우는 두 교단은 1959년 제00회 총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문제로 논쟁하다, 서로 간에 사소한 감정을 넘지 못하고 에큐메니칼운동의 주체인 WCC를 지지하는 'CAL측'과 미국 복음동지협의회를 지지하는 'NAE측'으로 갈라졌다. 그 후 칼측은 서울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하고 '통합측'이라 불렀으며, 엔에이측은 서울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하고 '합동측'이라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교단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파 신앙고백의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갈라져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장로교파이다. 그런데도 이 두 교단의 답답한 지도자들 중에는 마치 상대를 이단시 하며 거부해왔다. 그래서 한때는 양 교단 목회자 간의 강단교류를 아예 금지하는 등 형제를 정죄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교단 간에 성취된 에큐메니칼적 업적은 한국교회의 하나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곳곳에서 이런 사업이 논의되고 성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라고 함과 같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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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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