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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국회의장, 형님이 적격입니다
    정치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 지도자는 뛰어난 경력과 자질과 경험과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와 희생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될 때, 본인도 국가도 국민도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정치인들의 수준과 생각과 행동이 실망을 넘어,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300 의석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171석을 차지하였다. 그러니 국회의장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할 것이 뻔하다. 국회의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회를 민주적이고, 선진국형으로 만들 수도 있고, 또는 다수당의 횡포를 도와주는 후진국형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또 국회의장의 중립적 태도는 국회에서 여•야의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은 국회를 난장판으로, ‘정글의 법칙’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4명의 다선 의원들이 후보로 나왔으나, 두 사람은 당 대표의 입김으로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선의의 경쟁과 조직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되는데, 먼저 당 대표가 막강한 권력으로 ‘교통정리’를 해 버린 것이다.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두 명의 후보가 남았는데, 한 명은 명심(당 대표의 의중)이 당심이며, 당심이 곧 민심이라고 했다. 명심과 당심은 모르겠으나, 민심은 아니라고 본다. 누가 이런 폐쇄적이고, 일당 독재적이고, ‘더불어’와 ‘민주’를 뺀 당을 계속 지지한다는 것인가? 이들은 지난 총선에서 자신들을 찍어주지 않은 49.5%의 국민들까지도 ‘민심’에 억지로 잡아서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러자 또 한 후보는 명심으로 알려진 당 대표가 ‘형님이 딱 적격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맞받아친다. 입법부의 수장이며,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 자리가 ‘형님’ ‘아우’가 결정하면 되는 것인가? 하기야 어느 모 방송의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현 야당 대표를 ‘대통령’이라고 아나운서가 말해 버리는 기가 막힌 일도 벌어졌다. 국회의원은 우리 헌법에서 당익이 아닌 국익을 우선 해야 되는데(제46조) 이들은 당익 정도가 아니라, 사익(私益)에 준하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현재 야당의 당 대표는 여러 가지 사법적 혐의로 인하여 여러 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정말 사법부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래서 어떤 권력이나 힘 앞에서도 ‘법의 평등 정신’을 구현한다면, 그는 사법의 정의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그 명심이 곧 민심이라니, 제정신이 있는 국민이라면 정신이 번쩍 날 말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는 ‘형님....’ 어쩌고 하던 사람으로 결정되었다. 명심이 민심이라는 아부도, ‘형님’ ‘아우’ 관계보다는 못한 모양이다. 야당 대표는 국가 서열 8위이다. 그런데 국가 서열 2위의 국회의장을 마음 먹는 대로 만드는 나라, 그런 일을 벌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권, 우리의 민주주의적 권위와 가치가 이처럼 추락해도 되는 것인가? 오죽 하면 같은 야권에서도 ‘자괴감이 든다’는 사람도 있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이라고 쓴소리를 했을까? 힘은 모두 소진하면, 힘이 없는 것과 다름 없다. 거대 힘을 가진 정당이 그 힘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집과 만용을 위해서 쏟아낸다면, 그들도 국민들에게도 결코 유익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힘이 있는 정당의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어렵다. 부디 국민들이, 국민들의 대표로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선출해 주었으니, 제발 자신들의 조직을 결속하고, 분풀이하듯 힘을 다하지 말고, 국가 전체를 위한 일에 진력하기 바란다. 요즘은 정치권을 보면서, 두렵고 안타까우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게 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큰 권력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놓으신 것을 찾을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4-05-17
  • [기자수첩] 민찬기 목사의 부총회장 출마,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찬기 목사(예수인교회)가 결국 세번째 부총회장 출마를 공식화 했다. 수많은 논란과 불법에 대한 지적, 결정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의 '출마 불가'를 골자로 한 유권해석까지 있었으나, 이 모두를 무시하고 그의 소속노회는 지난 16일 민찬기 목사를 제109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추천일 뿐 후보 확정은 아니며, 오히려 선관위는 앞선 결정에 기반해, 민찬기 목사의 후보 추천을 반려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아직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번 결정이 야기할 총회의 혼란이다. 이미 민 목사의 출마설이 불거져 나온 올 초부터 총회 내부는 상당한 혼란이 지속되어 왔다. 총회선거규정 제3장 9조 6항 ‘동일 직책에는 2회만 입후보가 가능하다(단,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의 해석을 두고, 법 전문가들의 자문까지 받아가며, 치열하게 대립했다. 결정적으로 민 목사의 소속 노회는 다소 애매할 수 있는 '불소급원칙'의 적용이 가능한지를 선관위에 질의했고, 선관위는 내부 투표를 거쳐, '불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선거 공고를 통해 이번 선거의 원칙을 분명히 고지했지만, 서울북노회는 결국 이를 무시하고 민 목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현재 민 목사측은 개정 정관의 '불소급원칙'의 적용에 집착하고 있다. 자신이 두 번 출마한 것은 맞으나, 불소급원칙에 따라 첫 번째 출마는 개수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불소급원칙'의 적용 여부를 떠나, 민 목사가 103회, 106회 두 번에 걸쳐 부총회장에 출마했던 것은 지울 수 없는 팩트라는 점이다. 총회선거규정 제3장 9조 6항이 목표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 사람의 독점적 출마를 막아 총회원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다양한 인재들의 등용으로 총회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 취지는 해당 규정을 승인한 모든 총대원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언제부터인가 스스로의 정당성은 '법'으로 증명하려 하고 있다. 양떼를 돌보는 하나님의 사명자라 불리며,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을 자처하는 이들이 고작 '최소한의 도덕'일 뿐인 '법'에 집착해 당당함을 과시한다. 허나 목회자는 성경적 윤리, 최대한의 도덕 속에서 자신의 양심을 증명해야 한다. 법을 떠나 자신의 양심이 진실을 알고, 하나님의 직시하심을 인정한다면,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민 목사는 자신을 추천한 노회원들에게 "노회에 불이익이 안가게 하겠다"며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허나 민 목사의 이러한 다짐이 너무도 이기적인 것은 그의 3회 출마 욕심은 나비효과가 되어 다음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예비후보들은 물론 총회 전체의 질서를 흐트러뜨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민 목사가 노회에 대한 불이익을 우려하기 전에 총회의 질서, 후배들을 향한 배려를 먼저 생각했다면 과연 이렇게 출마에 집착했을까 싶다. 더욱이 그가 언급한 '좋은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 반드시 출마에 성공해 부총회장에 당선되겠다는 것인가? 총회를 이토록 혼란스럽게 만들고, 결국 부총회장에 당선된다한들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좋은 결과인가? 부총회장 선거는 특정 당선자의 승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모두의 승리, 총회의 승리가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이겨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4-17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우리는 총선을 제대로 치룬 것인가?’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4년 전과 비슷한 의석으로 또다시 여소야대가 되었다. 헌법개헌 저지선과 대통령 탄핵 마지노선조차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우려가 되는 가운데 현 여당이 참패를 당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인데, 그중에 한 정당에서(혹은 군소정당과 합하여) 의원 200명이면, 헌법을 개정할 수 있고, 대통령을 탄핵 소추할 수 있다. 또 국회의원 180석이면 국회선진화법(다수당의 횡포와 독주를 막기 위해 2012년 개정됨)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 법에는 국회의장 본회의 직권상정 제한,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최장 90일간 논의, 안건신속처리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말하는데, 이런 협력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리고 패스트트랙(다른 당의 협조 없이 법안 강행 처리)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필리버스터(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강제로 종료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의석 150석이면 국무총리 임명 동의,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 대법관 임명 동의, 법안 단독처리, 예산안 단독처리, 상임위원장 다수 확보, 대통령을 제외한 탄핵소추 의결, 계엄해제 요구, 국회의장직 확보 등을 갖게 된다. 따라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을 확보하였고, 조국혁신당의 12석 등 범야권이 192석이 된 상태이다. 그야말로 야권은 대통령을 직접 건드리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부도 여당도 이런 거대 야당의 도움 없이는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번에 대거 당선된 야권 의원들은 과연 국민들의 지도자감이 되는가? 현재 민주당 대표인 이재명 씨는 과거 전과 4범이 있는데 그에 대한 시비도 끝나지 않았고, 현재에도 3가지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 대하여 ‘셰셰’하면 된다는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에 출마한 나경원 후보에 대하여 ‘나베’라고 하였다. 이는 ‘나경원+아베’라는 것으로 즉 친일파라고 선전전을 한 것이다. 이 나베라는 말은 일본어로 ‘냄비’라는 말도 되는데, 이는 여성의 성(性)을 비하하는 것이며, 여성에 대한 강한 경멸의 의미가 있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리고 수원에 출마한 김준혁 씨는 근거 없이 6.25 때 김활란 이대 총장이 이대생을 미군에게 성상납했다고 발언했었고, 심지어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서도 성적인 막말을 하였다. 전 최강욱 의원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것을 빗대어 말하면서, ‘암컷이 나와서 설친다’고 하여 큰 논란이 있었다. 이는 민주당 사람들이 여성 혐오에 대한 DNA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안산에 출마한 양문석 후보는 자신의 딸 이름으로 불법 대출한 것이 드러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재산 신고가 잘못되어 선관위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이다. 그리고 조국혁신당을 만든 조국 씨는 자녀의 입학 비리 문제로 부인이 이미 4년 형을 살고 있고, 본인도 2심까지 유죄가 나온 상태이다. 뿐만이 아니라, 이 당의 비례대표 1번인 박은정 전 검사는 그의 남편에 대한 ‘전관예우’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후보는 전에 음주와 무면허 운전으로 전과가 있는 사람도 있다. 또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의 울산시장 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은 황운하 씨도 조국당을 통하여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일반 서민들의 도덕적, 윤리적, 상식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된다고 하니 허탈하다. 우리가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하여 참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싸가지(이조시대 한양에는 4대문이 있었다. 동대문(仁), 서대문(義), 남대문(禮), 북문(智)를 뜻하는데, 이 4가지가 없는 것을 사가지가 없다고 하였고, 이를 전라도 사투리로 싸가지로 표현한 것)없는 인사들을 뽑아놓고 앞으로 4년 동안 그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결정을 한 국민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는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이 차지하게 되면서, 그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평등법’ ‘군형법개정안’을 발의하고,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주는 ‘생활동반자법’ ‘건강가정기본법’ ‘모자보건법’ ‘민법개정안’ 등을 발의하는 것을 보았다. 또 코로나 때는 감염병 예방법이라며,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각 시설을 폐쇄하거나 간판을 떼 가는 등의 법안을 뚝딱 만드는 것도 보았다(그것이 교회를 대상으로 하면 교회 시설이 폐쇄되고, 교회 간판도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야 현 정권을 심판한다하여 거야 정당을 만들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가진 거대 야당들의 횡포가 시작된다면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가진 가치나 성경적 가르침에 대하여 반하는 일들이 세차게 몰려오고 있다. 한국교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4-04-12
  • [기자수첩] 총선 결과에 초조해진 한국교회, 소강석 목사의 ‘원 리더십’ 재조명
    다시 한 번 여소야대 정국이 현실화 됐다. 지난 4.10 총선에서 국민들은 불통의 현 정부를 탓하며 야권에 힘을 실었다. 총 300석의 의석 중 진보계 정당(민주당, 조국혁신당, 새로운 미래, 진보당)이 189석을 차지했고, 보수계 정당(국민의힘, 개혁신당)은 111석에 그쳤다. 교계의 적극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보수권은 진보권에 지난 4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향후 4년간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게 됐다.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허나 기독교적 입장에서 포괄적차별금지법 등의 반사회적 악법 포화를 막아냈던 지난 4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새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을 듯 싶다. 실제 진보세가 강했던 지난 제21대 국회에서 성혁명, 가족해체, 표현의 자유 억압, 친권 침해 등을 골자로 한 악법이 무려 50여개 이상이 등장했다. 그리고 해당 발의의 대부분은 민주당, 정의당 등 진보 진영 의원들에 의해 이뤄졌다. 다행히 한국교회 등의 적극적인 반발과 저지로 결국 대부분의 제정 시도가 무산되기는 했지만, 문제는 해당 법안을 발의했던 의원들 상당수가 이번 제22대 국회 입성에 다시 한 번 성공하며, 재발의는 불 보듯 뻔하게 된 사실이다. 오히려 그들 입장에서는 지난 21대의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치밀하게 보완된 법안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기에 이전보다 분명 더욱 힘든 고난의 시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답답한 것은 오늘의 위기가 지난 수년 간 지독히도 예측했던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한교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그토록 지적하고 외쳤던 ‘원 리더십’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예측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왜의 침략을 예측해 ‘10만 양병설’을 주창한 율곡 이이처럼 소 목사는 한국교회의 대대적 위기가 반드시 반복될 것이라고 외쳤었다. 앞선 코로나 시기는 한국교회를 향한 정부의 예배 탄압과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절정에 이르던 때로, 외부의 공격과 내부의 분란이 한국교회의 생명력을 실시간으로 갉아먹던 정말 아찔한 시간이었다. 이런 때에 등장한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는 특유의 걸출한 정치력으로 서서히 상황을 반전시켰다. 정부, 국회, 지역을 넘나드는 그의 협상과 정치는 사회와 교회를 절체절명의 절벽 끝에서 끌어올렸다. 그런 소 목사가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강조했던 것이 있으니 바로 '한국교회의 연합'이었다. 당시 소 목사는 "지금은 당장 위기를 넘겼을 지 모르지만, 제2의 코로나, 제2의 포괄적차별금지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현재의 분열된 한국교회로는 이를 막아내기 힘들다.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교회가 하나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실제 3년여의 시간을 오직 연합에 매진키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교회는 하나되지 못했고, 위기를 막아낼 최소한의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했다. 잠시잠깐의 안정에 머물러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외면한 결과로 반사회적악법 제정을 더욱 강하게 밀어부칠 제22대 국회를 넋놓고 바라보게 생겼다. 더욱 암울한 것은 과거 정치권과 대등한 줄다리기를 펼쳤던 소 목사와 같은 걸출한 지도자가 교계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교계는 다가올 위기 극복을 위해 이미 정치권에서 한 발 물러나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소 목사의 정치력에 다시 기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근본적인 대안은 특출난 인물이나 특정 권력이 아닌, 위기에 맞설 상시적인 대응 시스템, 즉 '원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충분히 예측된 위기와 고지된 대안, 하지만 아무런 변화없는 한국교회의 현실, 이번 총선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교회 스스로의 방만을 꾸짖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4-11
  • [기자수첩] 소강석 목사가 제시한 ‘존중’과 ‘반대’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
    교계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의 정계 진출이 일단 무산됐다.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어제(13일) 임태훈 전 소장의 비례대표 '컷오프'(공천배제)를 통보했다. 앞서 야권의 임 전 소장의 비례대표 추천 소식이 전해진 후, 기독교계는 각종 성명과 메시지로 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며, 굵직한 여러 논란을 일으켜 온 임 전 소장이 국회에 진출했을 시 파장을 우려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군대 내 동성애를 막는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개정에 앞장서며, 교계 및 시민계와 크게 대립한 인물이다. 일단 더불어민주연합의 컷오프로 상황은 마무리 됐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교회의 스탠스는 분명히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서 일부 언론과 교계 단체는 이번 임태훈 전 소장의 비례대표 추천 사건을 '동성애자'에 초점을 맞춰 이를 비판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한국교회가 힘을 합쳐 '동성애자' 국회의원을 탄생을 막아야 한다는 뉘앙슨데, 이는 현 한국교회의 반사회적 악법 대응 정책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스탠스다. 정확히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그들의 증오한 적이 없으며, 당연히 단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의 사회적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을 막을 이유도, 막아서도 안된다. 그것은 '동성애자' 이전에 국민으로서 국가에서 보장한 합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이번 임태훈 전 소장의 정계 진출을 우려한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가 그동안 보여온 동성애 관련 행보들이 매우 그릇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확히는 '군형법 제92조' 폐지를 중심으로, 반사회적, 반성경적 악법 형성에 앞장섰던 그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 일어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이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린 소강석 목사는 혼잡했던 한국교회의 스탠스를 매우 간결히 정리하며, 주목을 끌었다.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한 매우 합리적인 입장이다. 소 목사는 "동성애자도 일반인과 똑같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열어야 한다"며 국가가 부여한 임 전 소장의 ‘정치 참여권’을 철저히 존중하면서도, "(임 전 소장은) 군 내에서 지나치게 동성애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며, 군 기강도 무너뜨리는 우를 범했다. 이런 분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다면 포괄적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위한 평등법 추진에 올인할 것"이라는 그의 행보와 사상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표했다. 교회는 그 특성상 총선에 있어 매우 중립적인 위치여야 한다. 그럼에도 선거와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소 목사는 바로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향후 사회 혹은 교계 진보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복기하며, 한국교회의 '동성애 혐오 사건'으로 일방적으로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비차원이라도 한국교회는 종교적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더욱 상식적이고, 또한 합리적인 대응을 펼쳐야 한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4-03-14
  • [기자수첩] 한국교회여 '중앙'처럼 개혁하라
    한국교회의 위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이제는 완연히 고착되는 분위기다. 아이들로 북적이던 주일예배의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거리에 넘쳐나던 교회 전도지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삶의 중심점이 교회에 있던 그 시절 그 때의 당연했던 일가족의 일상은 어느새 믿음의 계보가 단절되며, 서로의 신앙조차 공유치 못하는 암울한 시대가 됐다.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인지와 이에 따른 각성, 근본적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당장 어제 오늘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굳이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핑계대지 않더라도 이미 한국교회는 충분히 무너졌고, 심각한 위기였다. 당장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던 지난 2017년, 우리는 제2의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며, 한국교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었다.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문을 닫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자각과 함께,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많은 대안과 방편을 연구했던 지난 2017년은 한국교회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했을만큼,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진심같았던 자성과 강력했던 구호에 비해 변화를 위한 별다른 실천은 없었다. 여전히 목회자의 도덕은 바닥에 맞닿았고, 성도들의 신앙은 가벼웠으며, 한 번 선을 넘은 교회의 세속화는 돌아올 수 없는 질주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이단들의 행태는 더이상 막을 수 없을만큼 퍼져 나갔다. 어쩌면 그 사이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 펜데믹'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무지와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했다. 한국교회 스스로 자초했던 일련의 위기와 목회자들의 양심없는 무책임함이 어느새 모두 코로나 탓으로 둔갑됐다. 한국교회가 무너진 것도, 침체한 것도, 부흥이 끊어진 것도 모두 코로나 때문이라는 매우 훌륭한 핑계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외면하고, 남들의 눈치만 보는 자세로는 결코 '제2의 종교개혁'은 불가능하다. 현 시점 국가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는 사실 10여년 전부터 교계 내에서 제기됐던 '다음세대 부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한국교회는 지난 10년간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었다. 그런 한국교회가 오늘날 국가의 '저출산 문제'에 앞장선다는 현실은 자랑스럽지만 한편의 씁쓸함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 한국교회는 예장 중앙총회의 개혁 정신을 충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 백기환 총회장이 설립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중앙총회(총회장 이영희 목사)는 근래 지독했던 교단 분쟁을 이겨내고, 완전한 정상화를 이룬 교단이다. 개혁 초기,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부패한 기득권을 몰아내고, 온전한 정상화를 이루기까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결국 총회 모두가 하나된 의지로 이를 이뤄냈다. 중앙총회 개혁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로 꼽을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진단 △하나님의 의를 위한 망설임 없는 실천 △총회원 전체의 하나된 힘, 바로 그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2017년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진단은 많았지만, 이에 대한 실천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관은 이후 한국교회 분열의 고착화로 이어지며,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 중앙총회가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했던 당시의 교단 개혁을 이뤄낼 수 있던 비결은 이 세가지 쟁점 모두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 중에 단 한가지라도 부족했다면, 오늘의 회복된 중앙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분쟁 초기부터 개혁을 이끌었던 류금순 전 총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총회원들의 결집력은 24번의 고소고발을 모두 승리로 이끈 전무후무한 무용담을 만들어냈다. 사실 중앙은 개혁에 있어 매우 훈련된 교단 중 하나다. 정도는 지키되, 시대의 흐름은 거부하지 않았다. 고 백기환 총회장은 과거 시대의 그릇된 편견 속에서도 여목제도를 실시해 한국교회의 선도를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여목의 존재는 매우 파격적인 제도였지만, 고 백기환 총회장과 중앙총회는 여목제도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물결임을 분명히 인지했다. 기왕 해야 한다면, 매우 성경적이고, 올바르게 실시해야 한다는 기조로 여목제도를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중앙총회가 이끈 여목제도는 현재 한국교회 전체로 자리잡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앙은 또 다른 개혁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중앙총회는 전권위원회를 통해 '목사 이중직'을 허용키로 했다. 현재 목사 이중직에 대한 교계의 의견은 매우 분분하며, 신학적 논란으로 이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단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미 현실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미 이중직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며, 기본적인 공과금조차 내지 못한 채, 교회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한 교회의 목회자들은 택시, 주유소 등에서 일하며, 교회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이런 목회자들에 교단의 '목회자 이중직 금지 조항'은 아무런 의미없는 사실상 사법(死法)화 된지 오래다. 중앙총회는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하되, 그 정도(正道)를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막을 수 없다면 올바로 이끌고,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목회자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에, 이를 막연히 막을게 아니라, 차라리 신학적이고 현실적인 연구를 지원함으로, 이들이 신앙적 양심에 괴롭지 않고, 건강한 목회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 중앙의 목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중앙의 이러한 개혁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확신한 인지와 그에 따른 실천, 분명한 결단력이 결국 미래를 만들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총회는 지난 역사에서 여러 차례, 기득권이 만든 대세에 이끌려 쉽게 갈 수 었었지만, 그때마다 보장된 불의한 안정보다는 미래를 위한 가난한 개혁을 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단이 오늘날 교단개혁의 새로운 표본처럼 중앙의 존재를 한국교회에 드러내고 있다. 오랜 위기에 신음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지난 역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교회여, '중앙'처럼 개혁하라!"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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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기자수첩] 총선 전쟁에 함몰된 한국교회의 3.1절··· 그래도 소강석은 ‘연합’을 외쳤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지독했던 폭압에 맞서 전 국민이 하나되어 대한의 독립을 외친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가장 큰 자랑임이 분명했다. 세대와 계급을 초월한 비폭력 평화운동이라는 그 의미는 물론이고, 그 배경에 다름아닌 기독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민주 대한민국을 누리는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국교회의 성도로서 큰 자부심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3.1절 105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는 한국교회가 주도한 일부 대형 집회들을 바라보며, 지난 독립의 역사와 선진들의 희생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마주해야 했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이들의 3.1절 행사는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한국 기독교의 위용을 자랑하는 듯 하지만, 숭고한 ‘3.1정신’이 지배해야 할 그 속에, 그저 승리에 혈안이 된 ‘이념’만을 채워넣었던 그들의 집회는 적어도 우리가 아는 3.1절과 하등 상관이 없어 보였다. 선진들의 피흘림이 기억되지 않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17세 소녀의 희생이 빛바래진 이날의 풍경을 보며 우리가 3.1절을 기념했다고 자부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독한 ‘총선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이날의 3.1절은 총선 전쟁의 역사적 운명을 가를 중대한 전투지로 미리 선점됐고, 선봉을 자처한 이들 기독교 세력은 대한민국을 독립의 함성이 아닌 이념의 전투적 구호로 물들였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 어떤 이념을 품고, 구호를 외칠 수 있어도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당연히 이들의 구호는 결코 잘못되지 아니지만, 이날이 다름아닌 민족 전체가 하나되어 일제에 항거했던 3.1절이었다는 사실은 그 이성을 거부하고 있다. 이와달리 소강석 목사는 3.1절에 대한 매우 면밀한 연구가 돋보이는 메시지로 각광을 받았다. 인천기독교총연합회의 3.1절 기념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소강석 목사는 3.1절의 역사적 의의와 사건, 기독교적 의미, 3.1정신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심도깊은 내용을 설교에 담았다. 특히 우리가 익히 몰랐던 잊혀진 3.1절의 영웅들을 발굴하는 것과 3.1절과 기독교의 역사적 관계를 변증하는 노력은 그가 평소에 대한민국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반증했다. 일제 헌병에 팔이 잘리고도 만세를 외쳤던 광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윤형숙 열사, 열사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찰스 클라크, 맥퀸, 스코필드 등 기독교 선교사 등에 대한 일화, 그리고 기독교가 3.1운동을 주도한 배경을 연구한 그의 설교는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애국적이었다. 결정적으로 소 목사는 미완에 그친 3.1운동의 진정한 완성을 바로 ‘연합’으로 봤다. 이념과 지역의 극단적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연합단체마저 뿔뿔이 분열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며, 민족의 독립이라는 절대적 대의 앞에 이념, 지역,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가 됐던 ‘3.1운동’의 위대한 정신을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중대한 선택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총선 승리에 함몰되어 국가와 국민을 반으로 가르는 행위를 결코 교회가 주도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교회는 총선의 여파로 나뉘어진 틈을 메꾸고,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는 화합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만세 함성이 퍼지는 3.1절의 아침에도 ‘이승만의 위대한 민주주의 건국’과 ‘김구의 치열했던 독립투쟁’이 양립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곱씹으며, 지금 우리가 ‘3.1정신’의 하나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 지 차분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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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1
  • [기자수첩] 인터콥 ‘불법집회’ 오명에 당한 마녀사냥 3년··· 누가 보상할텐가?
    코로나 펜데믹에 대한 전 세계적 공포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지난 2020년 11월, 경북 상주의 BTJ열방센터에서 열린 한 집회 이후 상당수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코로나 확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우려가 워낙 컸던 탓에, 언론들은 BTJ열방센터와 해당 집회를 주도한 인터콥 선교회를 자극적으로 비난하는 기사들을 앞다퉈 쏟아냈고, 그 와중에 해당 사건은 ‘인터콥의 방역수칙을 위반한 불법집회’로 결론 맺어진다. 이후 인터콥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선교단체라는 점과, BTJ열방센터가 경북 상주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콥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은 '한국교회'와 '상주시' 두 곳으로 확산될 기미를 보인다. 인터콥 혹은 BTJ열방센터를 감시·감독해야 할 교회와 지자체가 그 책임을 소홀히 한 탓에 코로나 확산을 야기했다는 비난을 받을 상황에 처한 것이다. 위기를 느낀 지자체와 한국교회의 대처는 매우 빠르고 단호했다. 철저한 선 긋기와 꼬리 자르기, 그리고 이에 더해 인터콥을 향한 비난의 행렬에 스스로 앞장서 국민과 언론의 돌팔매를 부추기기도 했다. 혹시라도 인터콥을 향한 여론의 불똥이 자신들의 안위를 조금이라도 해할까 전전긍긍하며, 인터콥을 앞장서 정죄했던 그들의 선택은 결코 냉정하지 못했던 지나친 과오였다. 특히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이었던 '한국교회총연합'은 "인터콥이 방역수칙을 위반했고, 참가자를 숨겼으며, 감염검사에 응하지 않는 등 반사회적 행동을 벌였다"는 내용의 성명으로 완전한 선긋기에 나선다. 여기에 인터콥의 신학적 문제가 그동안 주요교단들로부터 제기되어 왔다는 코로나와는 전혀 별개의 이슈를 언급하며, 여론 앞에 한국교회와 인터콥을 분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교총 역시 이 때의 ‘꼬리 자르기’가 그저 미온적 대처일 뿐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음을 금세 깨달았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반복되는 교회 내 확산 앞에 더 이상 내 줄 꼬리는 존재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꼬리 자르기’보다 더욱 최악이었던 것은 인터콥에 대한 신학적 공격이었다. 인터콥의 방역 논란이 거세지던 시점에 '8개교단 이대위'는 인터콥의 신학적 문제를 더욱 부추기는 결론을 냈고, 이에 힘입어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동년 총회에서 인터콥에 대한 제재를 격상하게 된다. 또한 예장합신측의 인터콥 '이단 규정' 역시 이러한 맥락에 있었음을 부정키 어렵다. 주목할 것은 '집회' 9개월 전인 2020년 2월 KWMA가 인터콥과 관련한 매우 의미있는 성명을 냈다는 점이다. KWMA는 인터콥이 사역지도에 적극 임했고, 자발적으로 추가 사역지도를 받기로 했다며, 한국교회가 인터콥을 선교 형제로 품어줄 것을 요청 했었다. 하지만 인터콥에 대한 한국교회의 선 긋기 행태가 분명해지자, 완전히 입장을 바꿔 인터콥 정죄에 나섰고, 이후 예상되는 혼란에 인터콥은 스스로 탈퇴를 발표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터콥을 한국교회의 형제로 품어달라 했던 KWMA 안에는 예장합신을 포함해 주요 8개 교단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은 시작됐다. 일방적인 여론 속에서도 미약하나마 잡음이 계속되자 뒤늦게나마 해당 사건의 진상을 파악키 위한 교계 일각의 노력이 시작된다. 국제기독교이단대책협의회(이하 국이협)와 한국목회자선교협의회(이하 목선협)은 공동으로 진상조사단(공동단장 김정만 김찬호)을 꾸리고, 약 1개월에 걸쳐 집중 조사를 펼친다. 결과는 놀라웠다. 당시 인터콥의 집회는 11월 말 방역 기준인 사회적거리두기 1단계에 맞춰 진행됐고, 상주시에 집회신고까지 완료한 합법적 집회였다는 것, 심지어 상주시 공무원이 직접 현장까지 나와 이를 점검하고 방역에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터콥이 코로나 검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언론의 보도와 달리 홈페이지, 공지, 전화, 문자 등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약 20여 곳의 언론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정정·삭제’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반전은 사건 3년여가 지난 1월 중순 법원이 해당 사건과 관련한 대부분의 소송에서 인터콥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됐다. 당시 집회에 불법은 없었고, 방역수칙을 어기지 않았으며, 공무원들의 정당한 공무 집행 역시 방해한 적이 없다는 판결이다. 오랜 싸움 끝에 결국 무죄를 증명한 인터콥은 환호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쁨은 점점 씁쓸함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당시 인터콥에 대한 무고한 비난에 앞장섰던 두 곳 중 '상주시'는 법의 판결로 정당한 심판을 받았지만, 한국교회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BTJ열방센터 사건 이후 인터콥은 그야말로 처참할 정도로 한국교회에 짓밟혔다. '과학(의학)'의 영역에서 발생한 코로나 논란을 '신학'의 문제로 정죄 했던 일부 한국교회의 행태는 냉정을 잃어버린 비이성적 대처가 분명했지만, 애초 잘못 끼운 단추를 누구하나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결국 현재에 이르러 침묵을 택했다. 작금에 이르러 법원은 인터콥이 확실한 '피해자'임을 보증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지난 날의 과오를 인정치 않으려는 한국교회의 침묵은 지금도 목숨을 걸고 이슬람 국가에서 사명을 다하는 2,000여명의 인터콥 평신도 선교사들의 헌신을 짓밟고 있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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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8
  • [사설] 최재영목사는 한국교회에 사과하라
    요즘 우리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이슈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이다. 이 사건은 윤 대통령에 대한 대선 불복 세력이 꾸민 정치 공작 몰카 함정취재임이 밝혀졌다. 이 사건을 만든 세력에는 재미 교포 최재영이라는 목사도 끼여있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라는 최 목사는 김건희 여사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다며 김 여사에 접급해 300만원 상당의 명품백을 선물로 건넸다고 한다. 이 명품백은 이 사건을 꾸민 유튜브측에서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최 목사는 이 전달 과정을 손목에 찬 시계에 장착된 카메라로 몰래 녹화해 그동안 윤 대통령을 공격해온 유튜브 서울의소리를 통해 방송했다. 김건희 여사는 그들의 악의적 숫법에 철저히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고소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정치적 이슈로 삼아서 야당이 물고 늘어지니 큰 사단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목사가 끼였다는 것은 교회가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 목사라는 사람은 현재 한국교회 목사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한국교회 주변에서 목사가 된 사람은 분명한 것 같다. 한국교회에는 약 20만에 이르는 목사가 있다. 한국교회 목사 교육과정은 대체로 엄격하다. 목사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최소 3년을 더 신학과 영성을 공부해야 하고, 여기에 2년 혹은 3년을 더 연수한 후에 목사가 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목사가 대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다가 목사를 배출하는 교단이 수백 개로 갈라져 있으니 목사가 된 후에 엉뚱한 짓을 하고 다녀도 통제할 기구도 없다. 그러다보니 사기 사건 등 경제 문제나 온갖 사회적 비리에 목사가 끼어 있다. 한국교회 전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앞의 최재영 목사는 어떤 교단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목사가 되었는지 알려지진 않았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한다면 목사로서 당당하게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비난할 것은 비난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진실을 말해야 하는 목사가 어떻게 범법조직의 사주를 받아 몰카 시계를 차고, 그것도 고향 사람이라며 대통령 부인에 접근해 대통령실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가. 이는 한국교회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 행위이다. 20만 목사와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당연히 한국교회에 사과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24-02-15
  • [사설] 교계, 선거철에 ‘가짜뉴스’에 주의해야
    성경 여호수아 2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전쟁이 끝나자 그 전쟁에 참가했던 강 동쪽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자신들의 유업으로 받은 지금의 요르단 땅으로 되돌아가며 요단 가에 한 기념단을 쌓았는데, 이 일이 가나안 땅에 남아있던 이스라엘에게 강 동쪽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거역하고 독립하려 한다는 소식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에 온 이스라엘 회중이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며 저들과 싸워야 한다고 흥분했다. 그때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일어나 각 지파의 대표를 보내 저들의 진위를 먼저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 대표들이 가서 확인한 결과 저들이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배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나안 땅에 있는 지파들과 자신들이 '하나'라는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단을 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명백한 '가짜뉴스'로 인해 자칫 오해와 불신으로 부족간 큰 전쟁을 치를 뻔한 사건이었다. 어느 시대나 가짜뉴스는 생산된다. 온갖 매체가 횡행하는 현대사회는 더욱 그러하다. 어떤 이들은 큰 악의 없이 '아니면 말고'식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개인이나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속으면 개인이든, 공동체든 할 것 없이 오해와 분열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므로 사실 가짜뉴스는 매우 엄중한 범죄인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러한 혜안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선거철만 되면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린다. 교회도, 사회도구성원들이 이런 가짜뉴스를 매우 경계해야 한다. 이미 제22대 총선의 선거정국이 시작되었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집단에서 생산되는 주장일지라도 그대로 믿고 전파하지 말고 다시 한번 팩트를 확인해 봐야 한다. 더우기 목회자의 언행은 신도들에게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가짜뉴스에 속아 그것을 그대로 전파하게 되면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는 신도들이 피해를 입게된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가짜뉴스는 우리 사회만 혼란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도 혼란케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 80~90년대에는 많은 교회들이 지역주의로 갈라진가짜뉴스로 인해 서로를 저주하며 갈등했다. 그런 일이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 연지골
    • 사설
    2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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