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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핵무장을 반대하는 사람들
    최근 들어서 동북아의 국제정치 지각변동과 안보 불안요소의 증대로 인해 한국의 핵무장에 관한 관심과 지지여론이 학계와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와 학계의 신중함에 비해 일반인 사이에는 진작부터 한국의 핵무장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핵 자체의 위험성과 인류에 대한 파멸적 요인들로 인하여 할 수만 있다면 지구상의 모든 핵은 폐기 하여야한다. 그러나 이것은 꿈에서나 이루어질 실현 불가능한 일로서 상대의 자제와 평화만을 바랄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생태다.안보영역의 관점에서 한 국가의 안보는 궁극적으로 생존이 걸린 공공적 사안이다. 국제정치 영역에서는 안보를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동맹과 세력균형이론 또한 현실적 생존관계에서 비롯된 것들로 이상주의를 주장하는 학파들의 논리위에 서 있다.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현실주의적 경향은 주류적 시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게 제공하는 핵우산과 한미동맹은 한국의 안보역량을 제공해주는 메커니즘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안보 자율성과 주권을 제약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나아가 한국의 독자성에 대한 주변국의 불신을 초래하여 다른 나라와의 보다 넓고 긴밀한 협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의 독자적 안보의 구축을 힘쓰기 보다는 방해와 통제에 두고자 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때 답답하고 분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대 세력의 첫 번째는 모두 다 인지하듯이 미국이다. 미국의 반대 논리는 ?자신들의 핵우산 제공과 지역정세 불안?을 앵무새처럼 늘 상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퇴조와 국제정치의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들로 볼 때 미국을 믿는 것은 위험한 러시안 룰렛게임에 목숨을 거는 행동과 같다. 최근 국제정치 연구 분야의 관심 주제로 떠오른 것 중 하나가 ?미국의 국제적 무질서와 이율배반을 야기하는 원인 규명?이 국제정치학의 새로운 연구 주제로 제기되었다는 것은 국제사회가 미국을 더 이상 믿지 못한다는 뜻으로 특별히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 점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미국의 주장은 순전히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국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두고자 하는 일방적 행태이다. 미국의 과거와 현재의 외교정책을 보면 국제적 유 불리에 따라 언제든 손을 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 시작한 프랑스의 핵개발을 미국이 강하게 반대와 압력을 행사하자 프랑스는 미국에게 “파리를 위해 뉴욕을 포기 할 수 있는가?”라고 반박하며 프랑스의 안보를 위해 수 천 개의 미국의 핵폭탄 보다 몇 개의 프랑스 핵폭탄이 자국의 안보에 훨씬 안전하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우리도 똑같이 미국에게 되물어야한다. “미국은 남북의 7천 5백만의 한국인과 서울을 위해 3억 5천만의 미국인과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는지” 강력한 질문을 던져야한다. 다행히도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케이토연구소의 저스틴 로건 같은 미국인 중에는 “한국의 핵무장이 북한과 이란이 핵무장을 하는 것보다 미국에게 이로우며 한국이 미국을 적대시할 나라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음을 국내 반대 세력들은 귀담아 들어야한다. 정작 찬성해야할 자들은 반대를 하고 이방인이 오히려 염려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반대 세력은 한국에 넓게 퍼진 비이성적 친미 지식인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이 반대한다, 한국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괴상한 논리를 내세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 정보기관의 국내여론 조작과 거짓된 안보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끊임없이 자신들과 한국 지식층의 입에서부터 일탈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흘려보낸다. 미국이 금기시하면 한국은 군소리 없이 따라야한다는 뜻인가? 반대자들은 정보와 여론장사를 통해 미국에게 보상을 받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자신의 가정사까지도 관여하도록 용인하는 너그러운 사람일 것이다. 조선의 사대주의자들이 중국을 등에 업고 정치를 농단한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한국의 안보를 더 이상 미국이나 그 어떤 나라에게도 기댈 수 없다. 이제는 결단하고 행동으로 나서야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다가올 사태에 어두운 먹구름에 갇힐 것이다. 한국의 핵무장이 오히려 동북아와 미국 모두에게 안보 위험을 제거하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주지 시켜야한다. 한반도가 더 이상 강대국들의 장마당이 되도록 용인할 수 없다.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5-27
  • 미국의 위험한 도박
    성경의 예언대로 세상은 종말의 끝을 향한 영적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와중에 열방들은 주의 말씀대로 점차 이성을 잃을 것이다. 그 열방 중 하나인 슈퍼파워 미국이 분별력을 잃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의 경고를 계속하여 외면하며 교만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처럼 심판의 길로 깊숙이 들어서고 있다. 하나님이 미국에게 허락한 힘과 부를 교만과 우상으로 더럽히며 건너지 말아야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일전에 ?미국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 10여 차례 글을 쓴 적이 있다. 미국의 신실한 주의 종들 또한 미국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보내고 있으며 그 중 헨리 그루버 목사는 “하나님이 미국을 심판하지 않으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해 사과하여야한다”는 미국 심판의 불가피성을 고하고 있다. 필자는 선지자나 예언자는 아니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시대의 징조와 상황을 통해 미국의 교만한 영적 행위와 위험한 정치적 행동들을 진작부터 우려하고 있었다. 2015년 4월 27일 전범국 일본에게는 그동안 허락하지 아니한 미 상하의원 합동연설을 아베총리가 최초로 의회 연설대위에 섰다. 이는 미국의 절박한 정치, 경제, 군사적 필요와 일본이 자국의 국내외적 불안함을 해소하려는 양국의 이해가 일치되어 만든 정치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장차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불안 심리를 증폭시킨 한국 언론들의 ‘새우’에 빗댄 어리석고 무지한 보도가 국민의 불안을 야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견고한 행동에 서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여 주의 말씀을 지키며 본연의 사명에 힘쓸 때 그 뒤의 모든 일은 주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 문제는 이 나라의 교회의 자세에 달려있다. 물질과 세상의 정욕과 탐욕에서 결단력 있게 하나님께 돌이켜야한다. 특히 교회 리더 들의 진정한 참회와 그 뒤를 성도들이 동일한 마음으로 뒤따라야한다. 한국교회가 복음전도의 사명과 평화의 전파자로서의 사명에 충실할 때 이 민족은 하나님이 돌보실 것이며 또 다시 전쟁의 화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시대를 깨닫지 못하고 무너진 여리고성을 수축하고자하는 일본의 거짓과 교만은 예비 된 화를 앞당겨 하나님이 준비하신 칼날에 엎드러지고자 자처함이다. 주변정세가 어지러울수록 한국 정치지도자들은 도덕적 반성과 정의에 대한 신념을 갖추어야한다. 주권과 외교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정당한 요구와 정경분리의 확고한 원칙에 따라 미·중·일 외교에서 유연하고 당당한 자세를 취해야한다 2009년 한·베트남 외교관계에서 국력에서 훨씬 뒤쳐진 베트남에게 한국이 무릎을 꿇는 외교 굴욕의 사태가 있었다. 한국은 주권과 국익 앞에서는 강대국들에게도 물러나지 않는 베트남과 이스라엘의 외교를 배워야한다. 나아가 지도자들의 도덕적 양심을 회복하고 국민의 단결과 정직한 행동들의 교육과 의식 혁명에 힘을 쏟아야한다. 누구든지 미국에게 애굽의 부류와 같은 일본과 손을 잡고 그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사회적 행위들을 멈추어야한다. 불과 200년의 역사를 사진 미국이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에게 가해자 일본의 왜곡된 역사 행위를 묻어두라는 것은 주제넘은 오만불손한 행위이다. 반성은커녕 진실을 왜곡하며 과거를 지향하고 있는 일본을 저지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연합하여 오히려 동아시아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도 아시는 바다. 이는 미국 스스로 자기 발에 차꼬를 채우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애굽을 붙들어 주는 자도 엎드러질 것이요 애굽의 교만한 권세도 낮아질 것이라.”(에스겔30:6)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터전위에 세워진 미국이 우상과 악을 즐기는 일본과 연합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금한 애굽을 붙들어 주는 행위이다. 이는 하나님을 상대로 한 위험한 도박행위이며 치명적 자살행위이다. 이와 같은 때에 헨리 그루버목사와 테리 베넷목사는 “하나님은 일본의 견고한 것들을 무너뜨릴 것이며 한국은 미국을 의지하지 말고 주를 의지해야한다”며 사랑이 담긴 조언을 하고 있음에 감사해야한다. 교회와 위정자들은 미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이 이 나라를 마지막 때에 귀하게 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의 비전과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5-14
  • 하나님의 사람, 대통령의 사람
    나라가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고 국가의 국제적 위치와 안보가 심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100년 만에 다시 잠에서 깨어난 옆집의 용(중국)은 주변국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고 망조 들린 일본은 미국의 환심과 지지를 업고 진실을 숨기는 것에서 몇 발짝 앞서 조작까지 자행하며 ?가든파티의 스컹크?처럼 주변 정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중국은 과거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씻어내고 옛 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도광양회를 벗어 버리고 구체적으로 힘의 투사를 진행하면서 미국이 구축한 국제질서를 배척하며 끊임없이 이에 도전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한국만 태평성대다. 무슨 두둑한 배짱이라도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상황을 보면 그러한 것도 아니다. 그저 기회주의자처럼 운명의 바람이 그저 잘 지나가길 바라는 요행만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사람들의 역할은 막중하고 그 사명감이 남달라야한다. 세계의 역사와 각 나라의 운명의 결정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에게 민족의 앞날을 의탁하고 간절한 도우심을 구해야한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교회와 성도라는 이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부끄럽고 두렵다. 시민들이 ?교회가 국가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들 누가 그 앞에서 당당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지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보자. 고개를 떨 굴 수밖에 없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목회자와 장로의 전성시대라고 SNS에서 나돌고 있다. 그 의미가 긍정적이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추악한 나쁜 이미지로 통하고 있으니 이 얽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가슴이 먹먹하다. 얼마 전 자원외교의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 기업의 회장이 “억울하다, 나는 MB맨이 아니라 박근혜 사람이다” 하소연하며 쪽지와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나는 전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직 대통령과 정권의 인사들을 위해 충성을 다 했는데 왜 나를 못 잡아서 안달이냐는 일종의 항의 표시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학력도 짧은 사람이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고 한 때 잘 나가다가 결국 정치인들에게 토사구팽 당했다고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들의 특성을 이 분은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게 조언 하나 드리고 싶다. 만일 어쩔 수 없이 정치 쪽에 기대어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면 절대로 ?가지고 있는 티?를 보이지 말라 충고한다. 그들은 당신의 소유가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거머리처럼 붙어 있다가 바닥이 보이면 떠날 것이며 또한 순종의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언제라도 칼을 들이댈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사람의 인격과 있는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뒤의 물질에만 관심을 둔다. 이런 자들에게 고인과 같은 일반인이 당해낼 재간은 없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 자살!, 그런데 그 후의 일이 더 충격적이다. TV화면에 비친 분향소의 모습에서 빨간 십자가와 ?고 000 장로?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이 장로였어!’라는 탄식이 삐져나왔다. 또 다른 유다를 생각하며 그리고 고인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나는 “현직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말에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느꼈다. 고인이 된 사람의 신앙관이 어떻고 그가 속한 교회의 신앙교육이 어떻고 하는 진부한 말들은 하고 싶지 않다.다만 하나님을 믿었다면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닥친 환난을 묵묵히 견디고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을 칠뿐이다. 한 영혼을 귀히 보시며 악인이라도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이신데 왜 하나님을 찾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아가 당당히 법정에서 사실을 진술하고 잘못한 것은 인정하되 시종일관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뿐이다?라고 말했다면 하나님의 큰 자비와 은혜를 입었을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입에서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선 되어야한다. 대통령도 사람이고 시간이 흐르면 아무런 힘도 없고 기억도 하지 않는다. ?나는 대통령의 사람이다, 이 보다는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외칠 수 있는 교회(성도)라면 하나님은 결단코 교회와 이 나라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는 말인가! 그 분이 친히 나를 위해 싸울 것이고 그 앞에 누가 감히 설 수 있겠는가!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5-07
  • 여행 중 깨달은 주의 지팡이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위해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실까? 필자는 정말 드물게 “주는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고 바라보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믿음이 작은 연고일지 모르겠으나 일종의 확인하고픈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발동할 때가 있다. 주와 가까이 하지 못할 때면 항상 주가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 같아 두렵지만 주와 동행하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을 감사하면서도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다보면 어느새 무감각함에 빠져드는 자신을 보게 된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당연하다는 듯이 사는 인간들의 행동처럼 말이다. 어느 개그맨의 “~~해봐야 알지!” 하는 유행어처럼 산소도 없는 달 가운데 있어봐야 산소의 소중함과 그것이 주는 자유로움을 진정 느끼고 감사할 수 있으리라! 이렇듯 인간은 위중하고 고난 속에 있을 때 과거의 일상들과 소소했던 삶들에 대해 추억하고 눈물과 자책, 그리고 진정한 감사를 느끼는 반응이 느린 존재이다. 물론 그래봐야 시간이 지나다보면 또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겠지만 그나마 이러한 존재와 인생의 소중함을 느낄 만한 충격요법이라도 없으면 정말 세상은 ?요지경 속?이 될 것이다. 4월은 그 어느 월보다도 여행하기 정말 좋은 계절이다. 5월만 되도 벌써 더운 공기로 여행지에서 활보하기가 힘들지만 4월은 덮지도 춥지도 않으면서 몸이 움직이는 데 최적의 날씨와 환경을 제공한다. 지금 전국은 주말이면 여행객들과 산과 들, 거리의 꽃들로 화훼군락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배우자를 보내주신지 올해로 27년이 되었다. 젊을 때는 배우자의 존재를 당연하듯이 여기고 살다가 나이가 든 후 아내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부족한 나를 채워주시기 위해 기막힌 계획으로 나의 갈비뼈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감탄과 감사함을 뼈 속 깊이 느끼며 산다. 몇 년 전부터 결혼기념을 맞이해 아내와 1박 2일의 여행을 하고 있다. 올해도 강원도로 여행 일정과 계획을 세우고 새벽예배에 집에 남겨둔 자녀들을 위한 기도와 여행의 안전과 운전을 하나님께 의지, 보호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후 300Km가 넘는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오랜 시간 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의 한 휴게소에 들려 점심과 볼일들을 보고 다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꾸만 다시 휴게소에 들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강원도의 자연환경을 유난히도 좋아하여 강원도를 자주 여행하지만 항상 다니던 휴게소만 들리지 낮선 곳은 잘 가지 않는데 이번에는 전 휴게소에서 출발한 후 다시 막 바로 다음 휴게소를 들렸다. 잠시 용무를 본 후 차로 돌아와 타이어에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수석 앞 타이어를 보니 조금 주저앉은 것 같다. 자세를 바짝 낮추고 타이어 밑을 살펴보니 조금이 아니라 거의 바람이 빠져 타이어가 납작한 상태다. 순간 아찔함과 함께 본능적으로 휴게소 정비센터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주유소 옆에 타이어 공기압을 채워주는 기계가 있어 타이어에 바람을 가득 채우고 바퀴를 살피니 커다란 나사가 타이어에 박혀있다. 아직도 목적지를 70Km 이상을 남겨두고 고속도로를 주행한다는 것은 생명을 담보한 위험한 일이라 들었다. 네비를 보니 다행히도 바로 코앞이 IC여서 그곳을 빠져나와 보험서비스를 요청하여 수리를 끝내고 고속도로에 재진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안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주의 보호하심에 거듭 감사를 드렸다. 만일 타이어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 상태로 고속도로를 계속하여 달렸다면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아래 감추사”(시편 17:8) 안전하게 인도하셨던 주님은 무감각한 나를 강권적으로 다음 휴게소로 인도하시고 타이어를 보게 하셨던 것이다. 평범한 일상 하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눈으로 보고 싶어 했던 어리고 약하기만 나를 주님이 이러한 방법으로라도 일깨워 주시려하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두 번씩이나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구해주셨던 분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무감각하여진 일상 속에서 어리석게도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지?”하는 질문에 친절하게도 하나님은 “나는 너의 영원한 인도자이며 보호자”이심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주셨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며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23편, 121:3)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4-22
  • 사드(THAAD)에 담긴 미국의 국방정치
    예로부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요충지역으로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한반도는 주변정세와 국제정치가 요동 칠 때면 타국의 장마당이 되었다. 오히려 여러 카드를 쥐고 주변 정세를 활용하여 부국강병을 실현할 수 있는 천혜의 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으나 무지몽매한 정치지도자들은 현재도 이를 활용하여 구심력을 확보하기보다는 외세의 개입여지만 넓혀주고 있다. 최근 미국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지상 150Km고고도에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문제로 한국과 미·중·러 사이에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단언하건데 사드는 한국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순전히 미국의 국익과 군사전략 목적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국의 방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첫째, 만일 북한이 미사일을 한국에 발사한다면 미사일이 서울에 도달하는 시간은 불과 1~2분이면 도달한다. 이를 사드 레이더가 이를 포착하고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사드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겨냥한 대기권 밖에서의 방어시스템으로 한국과 같은 좁은 국토에서는 효용성이 없으며 미군 장성들도 검증되지 않은 사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둘째, 현재 한국과 미군의 정찰위성과 조기 경보기, 한국의 이지스함, 무인고도 정찰기 등으로도 북한의 움직임을 충분히 포착하고 타격할 수 있으며 북한 또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 아니더라도 장사정포와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만 가지고도 남한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진짜 의도는 무엇인가? 두 말 할 것 없이 미국의 안보다. 안보 결벽증에 걸린 미국은 소련이 무너진 후 중국을 최대 위협 적성국으로 설정하고 군사력의 초점을 중국에 맞추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일본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후 미국은 한미관계를 바퀴와 수레를 연결하는 축에 꽂힌 핀처럼 핵심관계라는 뜻의 ‘린치핀(linchpin)’으로 한국을 추켜세우고 있으나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한국이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없으면 한국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 안보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부소장인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미국은 그 시기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일본이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내부지향적 국가가 된다하더라도 일본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이 미군의 세계적 전략적 유연성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과의 협력과 도움을 우선적으로 추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한미동맹에 서명할 때 그 목적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보호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고 역사적 진실을 들추어냈다. 1850년대 일본을 개방시킨 페리제독이 아시아에 제1, 2도련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늘날 현실화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드의 한국 배치의 목적은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일본을 보호하고 한국과 일본에 제2, 3도련선을 구축하여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를 지키자고 하는 것이 미국의 숨은 진실이다. 한국은 일종의 최전방의 총알받이인 셈이다. 둘째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견제와 위기 시에 현장에서 적들을 격멸하여 어떠한 것이든 미국 본토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외교채널로 한국에 경고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중국과 러시아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 가해질 외교,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의 몫이다. 셋째는 미국의 방위업체들과 국방부, 의회와의 관계이다. 이들은 자국 기업이 개발한 무기에 대한 해외 판매의 일종의 성스러운 의무적 동맹을 맺고 있다. 방위산업은 구매자가 단 하나이고 판매자는 다수인 ‘구조적 수요 독점’의 특징을 갖고 있는데 미국 국방부만을 상대로 해서는 결코 돈벌이가 안 된다. 자국에서 개발한 무기를 해외에서의 실전적 테스트와 무기 수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때 무기 수출을 위해 동원되는 미국의 수법은 주변정세의 위화감 조성, 상대국가에 대한 압박, 경제적 카드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판단과 자체 개발이라는 카드를 통해 중국, 러시아에게는 주권국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미국에게는 부당한 요구와 압력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이참에 확실히 각인시켜 주권과 국익을 지켜내야 한다.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4-09
  • 목사님, 목사님 어디로 가셨습니까?
    나라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배는 산으로 올라가고 민초들은 경제적인 고통 중에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이다. 전국 곳곳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구속과 탄핵을 주장하는 전단지가 뿌려지고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앙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교회를 욕되게 하고 자신의 탐욕을 채운 전임 대통령과 대선을 조작하고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선거부정을 넘어 국가내란죄를 저지른 현직 대통령과 그 수하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여권이 주장한 소위 사초라 하는 남북정상회담기록물과 노무현 전직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논두렁 시계의 진위가 모두 법원에 의해 거짓, 조작되었다고 밝혀졌다. 또한 북의 소행으로써 다른 반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자 했던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MB가 퇴임하자 국내외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처음부터 이 사건의 수사와 정부의 해명은 의문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점을 제기하는 국민을 끊임없이 종북으로 몰아세우고 대통령을 비방한 전단지를 뿌린 사람들에 대해 처벌하라는 경찰의 지휘라인이 시민들의 궁극의 분노를 사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땜질식 위기처방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설령 현 정권의 때에 운 좋게 넘어갔다 하더라도 다음 정권에 들어서도 국민들의 분노와 처벌 진실규명 등의 요구는 계속 될 것이고 마땅히 하여야한다. 재판하는 자들은 정의로움을 버리고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억울하게 하며 진실을 가리고 사실을 왜곡하는 일들이 버젓이 대로를 종횡무진하고 있으나 오히려 이러한 자들에 대해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왜곡된 지지와 침묵으로 용인하고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교회의 교적부에 이름만 올렸을 뿐 전혀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어용정치 교회지도자들이야 정해진 길로 가겠으나 문제는 성도와 국민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할 목회자들이 죄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하나님이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이다. MB를 뉴 라이트라 칭하며 장님이 장님을 웅덩이로 인도하듯 뉴 라이트의 중심에 있었던 목회자들, MB의 부정과 죄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질책하지 아니하고 그저 대통령과의 연을 자랑삼고 세상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스스로 아는 체 하며 나라와 국민을 깊은 수렁으로 인도했던 목회자들, 대선부정에 대해 진실을 파악하기보다는 정부의 종북 놀이에 함께 동참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서도 완고하고 악의적인 정부의 정치적 기만행위에 신문광고로 정부를 편들던 목회자들, 2014년 12월 전쟁설을 예언하던 거짓 전도사의 말에 현혹되어 그를 초청하여 성도들을 영적 혼란에 빠뜨린 교회들, 현재 그러한 목사님들은 어디로 갔으며 지금은 어찌 잠잠하고 침묵하고 계시는지요? 최근 리퍼트 주미 대사의 피습사건에 모 교회가 한 일은 참으로 민망하여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다. 외국인이 교회가 왜 저런 식으로 외국 대사에게 과잉 호의와 충성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부끄러워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어느 네티즌의 말에 격하게 공감이 간다. 하나님은 세상 권력자들의 행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공의로운 심판으로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직 주의 백성이라 하는 자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의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심은 도를 넘어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고 위정자와 국민을 잘못 인도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나 이에 대한 회개와 국민에 대한 사과나 자인도 보이고 있지 않다. 잘못에 대한 반성이 있다면 반복됨이 없어야하나 계속하여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아직도 주의 말씀과 세상 사이에 오락가락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이사야58:1)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현재 이 나라의 교회 지도자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교회는 두려워하여야 한다. 부산의 어느 한 시민의 시위 팻말에서 ”이게 나라냐! “하는 질타의 소리에서 보듯 이 나라는 정부의 통제력과 권위에 국민이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더더욱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교회 안에서 조차 보기 힘들어졌을 만큼 심히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이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모두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고 철저히 자복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되 정치현장에 다시는 기웃거리지 말아야한다. 이것이 국민을 향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책임을 지는 일이다.
    • 지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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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01
  • 기울어가는 미국, 그리고 주권자의 심판!(5)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모 라디오 기독 방송에서 국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목사님이 정치인과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청취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목사님은 MB 에 대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위를 선양한 분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필자는 목회자도 세상에 대해서는 분별력이 없기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향후 나라일이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명색이 한국과 세계에 유명세를 타는 분이라고 알려진 목사님도 저러한데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분별력 없는 정치성 발언으로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과 조롱이 한때 유행처럼 번져나간 것이 근래의 일이다.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국내외에 알려진 목사님도 주의 영광을 먼저 생각지 아니하면 세상일에 무지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해였다. 그때 필자는 그 목사님에게 한국정치와 이명박, 하나님이 이 나라에게 하시는 말씀 등의 내용이 담긴 장문의 편지를 등기로 보낸 적이 있는데 읽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MB의 부정과 탈법, 탐욕, 실책 등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의 따가운 비판에 대해서 목사님은 지금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영적인 리더 들의 생각과 판단력이 이 정도이니 일반국민들이 따라 배울까 겁이 난다.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큰 선악을 끼치는지 한국교회는 각별히 조심해야한다. 무엇이 진정 하나님의 공의와 국민을 위한 길인가를 생각하고 자신의 명성과 명에를 자랑하지 말고 성령이 말씀하는 현상을 제대로 듣고 국민들의 진정한 진리의 스승이 되어야한다. 한·미간의 관계에서 생뚱맞게 교회와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이유는 한국의 대미 관계의 속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한국의 기독교와 대통령을 비롯한 기독 정치인들이 미국에 대해 맹목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향이 미국과의 종교적, 정치적 동질성을 자랑스러워하고 상대의 본심과 행동에 관계없이 일방적 짝사랑을 나타내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국익을 침해받는 일이 많음에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침묵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자랑으로 내세우는 일이 많다. 국제정치는 힘(POWER)의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정론이지만 이것이 맹목적이고 일방적 짝사랑 일 때는 결국 뒤통수를 맞게 되어 있다. 미국이 근현대사에서 대한제국과 한국을 일방적으로 따돌리고 일본에게 식민지배의 허용과 분단과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을 우리 국민과 교회는 어찌 그리 관대하며 현재의 것만을 바라보는지 참으로 답답할 일이다. 한국에게 미국은 현재나 미래나 이용할 가치가 있는 힘 있는 이웃이라는 냉철한 시각으로 한·미관계의 사고를 재정립해야한다. 특히 정 많은(?)한국은 이러한 국제적 사고방식이 그 어느 나라보다 필요하며 모든 국민이 국제정치적 감각을 몸에 체득해야 과거의 조선과 같은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게 된다. 미국을 아직도 한국의 진정한 우방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한 것이며 국제정치의 속성을 모르는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우방과 적은 없다”는 말은 강대국들의 피눈물 나는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부시 대통령의 국방고문을 지낸 리처드 필은 미국이 남한의 대북정책에서 화해의 기미가 보일 때 협력하지 않는 이유를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남한의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안보이고 남한 사람들과 미국 국민들의 이해관계는 다르다”라는 말로 잘라 말했다. 또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차머스 존슨 교수는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곳에 평화가 오는 것”이라며 숨겨진 속내를 드러냈다. 그곳은 당연히 한반도이다. 간단한 사실이지만 이것이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고착화된 정책이며 그들의 본심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세계정책과 국익의 일부로 치부한다. 이제 혈맹과 한국전쟁의 은인이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지 말아야한다. 이용가치가 없으면 언제든 용도폐기 할 수 있는 냉엄한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이 그러하듯 한국도 미국을 이용가치로 여기고 연연하지 말아야 피도 눈물도 없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동맹과 국익은 구별해야한다. 이 땅에서 진정한 우방과 도움의 손길은 하나님이심을 특히 영적 지도자들이 정확히 인지하고 국민들에게 알려 주어야한다. 모든 열방은 하나님에게 통의 한 방울의 물처럼 보잘 것 없다. 한 방울의 물과 같은 미국에게 당당할 수 있는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워주길 간절히 기도해야한다.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3-18
  • 기울어가는 미국, 그리고 주권자의 심판!(4)
    기울어가는 미국, 그리고 주권자의 심판!(4) 미국의 전략적 음모(2)20세기 중반 이후에 자동차, 철강, 조선, 기계 등 세계 중화학공업의 제조 산업을 제패하던 미국은 1970년대에 이르러 이들 산업에서 서서히 손을 떼기 시작하였다. 정부도 이들 산업에 대한 지원을 줄여나가고 대신에 에너지와 식량과 같은 교통수단의 필수적인 원천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유지의 수단인 식품산업에 전력을 기울여 나갔다. 키신저가 “석유를 통제하면 모든 나라를 통제할 수 있으며 식량을 통제하면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정부에 미래의 세계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 이후 미국은 실제로 이들 에너지와 농업과 식품산업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였다. 세계인들은 우주를 왕복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에너지와 1차 산업 같은 개발도상국들이나 하는 산업에 왜 저리 관심을 기울일까 의아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진작부터 눈에 잘 띄지 않는 농업과 에너지산업을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세계를 영구히 장악, 조종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에너지와 농업을 국가의 전략 수출산업으로 육성시켜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 나라가 현대적인 산업과 발전에만 치중하도록 관심을 기울이도록 한 후 정작 자신들은 다른 길로 달려갔다. 현재 석유와 가스와 같은 에너지와 관련된 전쟁과 쿠데타, 암살, 종교 갈등의 배후에는 거의 모두 미국이 배후에 있다. 최근에는 석유와 식량산업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주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그것은 근본적인 목표라기보다는 미국외교의 전통적 특성인 반사외교에 따라 가상적국을 만들어 놓아 전쟁의 합법성을 확보하고 애국과 민주주의, 세계평화라는 명분으로 끊임없이 국민들을 세뇌하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는 1%도 채 안 되는 극소수의 정치, 경제 엘리트들뿐이고 이는 세계 최대 인종 전시장인 미국에서만이 도덕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미국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로서 실지적으로 자신들의 본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이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세계를 장악하고 자신과 혈육들의 부와 안위만 확보된다면 그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고 있음을 오랜 세월동안 보여주었지만 정작 세계가 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2003년 수단의 다르푸르에서 발생한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37만의 사상자와 270만의 난민 발생을 두고 워싱턴은 이를 대량학살이라 규탄하고 수단의 내정에 간섭할 채비를 갖추고 기회를 엿보기 시작하였다. 서방 언론은 미국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NATO 연합군과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야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고 세계 각 나라도 미국과 서구 언론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그러나 그 내막에는 미국의 추악함이 있었다. 수단에서 대량의 석유가 발견되고 중국이 이에 접근하자 미국은 수단인민해방군을 훈련시켜 정부에 반기를 들게 하고 인접 국가들을 동원하여 전쟁을 부추겼다. 그리고 수단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방관하면서 인종 학살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세계를 자극시켜 자신들이 개입하여 수단의 원유를 독차지하려는 음모를 단행하였다. 또한 21세기 신 아편이라 불리는 유전자변형식품(GMO)은 1985년부터 미국정부의 지원 하에 록펠러 재단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식량생산의 증대‘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구체적으로 연구, 개발하여 지금은 대량생산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미국은 이를 WTO(세계무역기구)를 통해 각 국에 강제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GMO의 해악은 과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으나 미국정부와 언론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 보도를 금지시켰고 세계 각 나라의 정치인들도 미국의 요구와 압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가지의 사례를 들었지만 미국의 악행은 잘 짜여 진 규범처럼 늘 이런 식 으로 어두움 속에서 항상 장기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여 왔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와 우주,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혹자는 미국이 엄청난 축복을 받고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과, 폭력, 물리적인 압박과 교만으로 다른 나라를 괴롭히고 자신들의 배만 충족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영적인 이스라엘은 국가와 개인이나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한다. 나와 내 나라만 잘 먹고 잘 살려 발버둥치는 것은 악이요 죄인 것이다. 말씀에서 떠난 미국은 주권자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가 없다.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자의 법칙이다.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3-06
  • 기울어가는 미국, 그리고 주권자의 심판!(3)
    미국은 2차 대전 후 소련과 더불어 양극체제를 형성한 이래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세계를 홀로 독식하는데 있어서 소련은 미국에게는 항상 거추장스런 걸림돌이었다. 때로는 소련과 더불어 세계의 분쟁지역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곳에서 약소국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 소련과 타협, 대립을 반복해왔으나 그것은 항상 미국의 불만과 초조함을 불러 왔다. 결국 1980년대 레이건대통령의 대 소련 군사 강경책과 소련의 에너지 수출산업에 대한 목줄을 죄어 소련을 붕괴시키고 유일한 지구상의 왕좌로 등극한다. 이후 미국은 자신들의 왕좌를 영원히 견고이하고 세계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과 음모를 계획하고 착실히 실행에 옮겨왔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지난 30~40년 동안 준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세 가지 전략은 통화정책, 에너지, 식량·종자 산업이다. 그리고 이를 실력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정악화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지 못하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의 절대적 유지이다. 양적인 군사력을 넘어 이제는 상대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도록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는데 매년 6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2-27
  • 기울어가는 미국, 그리고 주권자의 심판!(2)
    오늘날 미국이 겪고 있는 위기와 경제적 추락은 정치, 경제, 도덕성에서 분열과 혼란 및 타락의 길을 걷고 마침내 몰락의 길을 걸었던 로마제국의 경우와 아주 흡사하다. 원로원과 소수 지도자가 군림하였던 과두정치 체제와 탁월한 법률과 제도, 피지배인 들에게 주어진 시민권 으로 불과 50만의 인구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가 당대의 초강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신들이 공들여 세운 제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삼고 분열과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패권 국가들인 로마와 포르투갈, 영국 등의 부의 근원에는 약탈의 경제가 존재하고 있다. 약탈로 채워진 부는 흥청망청 쓰여 졌고 시간이 갈수록 모순과 혼란으로 재정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갈수록 나라는 빚더미에 올라섰다. 기울어져 가던 로마를 멸망시킨 마지막 펀치는 로마화폐의 붕괴였다. 화폐가치의 하락은 로마의 경제를 회생할 수 없도록 주저 앉혔고 시민들과 로마를 지탱하던 모병제의 군인들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불과했다.
    • 지난 칼럼
    • 평신도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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