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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소강석 목사가 제시한 ‘존중’과 ‘반대’의 구분이 중요한 이유
    교계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던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의 정계 진출이 일단 무산됐다.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어제(13일) 임태훈 전 소장의 비례대표 '컷오프'(공천배제)를 통보했다. 앞서 야권의 임 전 소장의 비례대표 추천 소식이 전해진 후, 기독교계는 각종 성명과 메시지로 이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간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며, 굵직한 여러 논란을 일으켜 온 임 전 소장이 국회에 진출했을 시 파장을 우려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군대 내 동성애를 막는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개정에 앞장서며, 교계 및 시민계와 크게 대립한 인물이다. 일단 더불어민주연합의 컷오프로 상황은 마무리 됐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교회의 스탠스는 분명히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서 일부 언론과 교계 단체는 이번 임태훈 전 소장의 비례대표 추천 사건을 '동성애자'에 초점을 맞춰 이를 비판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한국교회가 힘을 합쳐 '동성애자' 국회의원을 탄생을 막아야 한다는 뉘앙슨데, 이는 현 한국교회의 반사회적 악법 대응 정책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스탠스다. 정확히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를 혐오하거나, 그들의 증오한 적이 없으며, 당연히 단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의 사회적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을 막을 이유도, 막아서도 안된다. 그것은 '동성애자' 이전에 국민으로서 국가에서 보장한 합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이번 임태훈 전 소장의 정계 진출을 우려한 이유는 그가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가 그동안 보여온 동성애 관련 행보들이 매우 그릇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확히는 '군형법 제92조' 폐지를 중심으로, 반사회적, 반성경적 악법 형성에 앞장섰던 그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 일어날 사회적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이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린 소강석 목사는 혼잡했던 한국교회의 스탠스를 매우 간결히 정리하며, 주목을 끌었다.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한 매우 합리적인 입장이다. 소 목사는 "동성애자도 일반인과 똑같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삶을 열어야 한다"며 국가가 부여한 임 전 소장의 ‘정치 참여권’을 철저히 존중하면서도, "(임 전 소장은) 군 내에서 지나치게 동성애를 보호하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며, 군 기강도 무너뜨리는 우를 범했다. 이런 분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다면 포괄적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위한 평등법 추진에 올인할 것"이라는 그의 행보와 사상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표했다. 교회는 그 특성상 총선에 있어 매우 중립적인 위치여야 한다. 그럼에도 선거와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소 목사는 바로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향후 사회 혹은 교계 진보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복기하며, 한국교회의 '동성애 혐오 사건'으로 일방적으로 호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대비차원이라도 한국교회는 종교적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더욱 상식적이고, 또한 합리적인 대응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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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4
  • [기자수첩] 한국교회여 '중앙'처럼 개혁하라
    한국교회의 위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이제는 완연히 고착되는 분위기다. 아이들로 북적이던 주일예배의 풍경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거리에 넘쳐나던 교회 전도지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삶의 중심점이 교회에 있던 그 시절 그 때의 당연했던 일가족의 일상은 어느새 믿음의 계보가 단절되며, 서로의 신앙조차 공유치 못하는 암울한 시대가 됐다.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인지와 이에 따른 각성, 근본적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당장 어제 오늘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굳이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핑계대지 않더라도 이미 한국교회는 충분히 무너졌고, 심각한 위기였다. 당장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던 지난 2017년, 우리는 제2의 종교개혁을 부르짖으며, 한국교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었다.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문을 닫는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자각과 함께,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많은 대안과 방편을 연구했던 지난 2017년은 한국교회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했을만큼,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하지만 진심같았던 자성과 강력했던 구호에 비해 변화를 위한 별다른 실천은 없었다. 여전히 목회자의 도덕은 바닥에 맞닿았고, 성도들의 신앙은 가벼웠으며, 한 번 선을 넘은 교회의 세속화는 돌아올 수 없는 질주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이단들의 행태는 더이상 막을 수 없을만큼 퍼져 나갔다. 어쩌면 그 사이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 펜데믹'은 이러한 한국교회의 무지와 게으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했다. 한국교회 스스로 자초했던 일련의 위기와 목회자들의 양심없는 무책임함이 어느새 모두 코로나 탓으로 둔갑됐다. 한국교회가 무너진 것도, 침체한 것도, 부흥이 끊어진 것도 모두 코로나 때문이라는 매우 훌륭한 핑계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외면하고, 남들의 눈치만 보는 자세로는 결코 '제2의 종교개혁'은 불가능하다. 현 시점 국가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저출산 문제'는 사실 10여년 전부터 교계 내에서 제기됐던 '다음세대 부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한국교회는 지난 10년간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었다. 그런 한국교회가 오늘날 국가의 '저출산 문제'에 앞장선다는 현실은 자랑스럽지만 한편의 씁쓸함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황에 한국교회는 예장 중앙총회의 개혁 정신을 충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 백기환 총회장이 설립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중앙총회(총회장 이영희 목사)는 근래 지독했던 교단 분쟁을 이겨내고, 완전한 정상화를 이룬 교단이다. 개혁 초기,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부패한 기득권을 몰아내고, 온전한 정상화를 이루기까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결국 총회 모두가 하나된 의지로 이를 이뤄냈다. 중앙총회 개혁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로 꼽을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진단 △하나님의 의를 위한 망설임 없는 실천 △총회원 전체의 하나된 힘, 바로 그것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2017년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지와 진단은 많았지만, 이에 대한 실천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관은 이후 한국교회 분열의 고착화로 이어지며,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 중앙총회가 모두가 불가능이라 말했던 당시의 교단 개혁을 이뤄낼 수 있던 비결은 이 세가지 쟁점 모두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 중에 단 한가지라도 부족했다면, 오늘의 회복된 중앙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분쟁 초기부터 개혁을 이끌었던 류금순 전 총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총회원들의 결집력은 24번의 고소고발을 모두 승리로 이끈 전무후무한 무용담을 만들어냈다. 사실 중앙은 개혁에 있어 매우 훈련된 교단 중 하나다. 정도는 지키되, 시대의 흐름은 거부하지 않았다. 고 백기환 총회장은 과거 시대의 그릇된 편견 속에서도 여목제도를 실시해 한국교회의 선도를 주도한 인물이다. 당시 여목의 존재는 매우 파격적인 제도였지만, 고 백기환 총회장과 중앙총회는 여목제도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물결임을 분명히 인지했다. 기왕 해야 한다면, 매우 성경적이고, 올바르게 실시해야 한다는 기조로 여목제도를 과감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중앙총회가 이끈 여목제도는 현재 한국교회 전체로 자리잡게 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중앙은 또 다른 개혁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중앙총회는 전권위원회를 통해 '목사 이중직'을 허용키로 했다. 현재 목사 이중직에 대한 교계의 의견은 매우 분분하며, 신학적 논란으로 이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단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미 현실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이미 이중직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를 겪으며, 기본적인 공과금조차 내지 못한 채, 교회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한 교회의 목회자들은 택시, 주유소 등에서 일하며, 교회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이런 목회자들에 교단의 '목회자 이중직 금지 조항'은 아무런 의미없는 사실상 사법(死法)화 된지 오래다. 중앙총회는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하되, 그 정도(正道)를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막을 수 없다면 올바로 이끌고,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목회자들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에, 이를 막연히 막을게 아니라, 차라리 신학적이고 현실적인 연구를 지원함으로, 이들이 신앙적 양심에 괴롭지 않고, 건강한 목회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 중앙의 목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중앙의 이러한 개혁 정신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확신한 인지와 그에 따른 실천, 분명한 결단력이 결국 미래를 만들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총회는 지난 역사에서 여러 차례, 기득권이 만든 대세에 이끌려 쉽게 갈 수 었었지만, 그때마다 보장된 불의한 안정보다는 미래를 위한 가난한 개혁을 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단이 오늘날 교단개혁의 새로운 표본처럼 중앙의 존재를 한국교회에 드러내고 있다. 오랜 위기에 신음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지난 역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교회여, '중앙'처럼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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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기자수첩] 총선 전쟁에 함몰된 한국교회의 3.1절··· 그래도 소강석은 ‘연합’을 외쳤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지독했던 폭압에 맞서 전 국민이 하나되어 대한의 독립을 외친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가장 큰 자랑임이 분명했다. 세대와 계급을 초월한 비폭력 평화운동이라는 그 의미는 물론이고, 그 배경에 다름아닌 기독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민주 대한민국을 누리는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국교회의 성도로서 큰 자부심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3.1절 105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는 한국교회가 주도한 일부 대형 집회들을 바라보며, 지난 독립의 역사와 선진들의 희생 앞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마주해야 했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이들의 3.1절 행사는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한국 기독교의 위용을 자랑하는 듯 하지만, 숭고한 ‘3.1정신’이 지배해야 할 그 속에, 그저 승리에 혈안이 된 ‘이념’만을 채워넣었던 그들의 집회는 적어도 우리가 아는 3.1절과 하등 상관이 없어 보였다. 선진들의 피흘림이 기억되지 않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17세 소녀의 희생이 빛바래진 이날의 풍경을 보며 우리가 3.1절을 기념했다고 자부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독한 ‘총선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이날의 3.1절은 총선 전쟁의 역사적 운명을 가를 중대한 전투지로 미리 선점됐고, 선봉을 자처한 이들 기독교 세력은 대한민국을 독립의 함성이 아닌 이념의 전투적 구호로 물들였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 어떤 이념을 품고, 구호를 외칠 수 있어도 이성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당연히 이들의 구호는 결코 잘못되지 아니지만, 이날이 다름아닌 민족 전체가 하나되어 일제에 항거했던 3.1절이었다는 사실은 그 이성을 거부하고 있다. 이와달리 소강석 목사는 3.1절에 대한 매우 면밀한 연구가 돋보이는 메시지로 각광을 받았다. 인천기독교총연합회의 3.1절 기념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소강석 목사는 3.1절의 역사적 의의와 사건, 기독교적 의미, 3.1정신의 현대적 계승에 대한 심도깊은 내용을 설교에 담았다. 특히 우리가 익히 몰랐던 잊혀진 3.1절의 영웅들을 발굴하는 것과 3.1절과 기독교의 역사적 관계를 변증하는 노력은 그가 평소에 대한민국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져왔는지를 반증했다. 일제 헌병에 팔이 잘리고도 만세를 외쳤던 광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윤형숙 열사, 열사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찰스 클라크, 맥퀸, 스코필드 등 기독교 선교사 등에 대한 일화, 그리고 기독교가 3.1운동을 주도한 배경을 연구한 그의 설교는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애국적이었다. 결정적으로 소 목사는 미완에 그친 3.1운동의 진정한 완성을 바로 ‘연합’으로 봤다. 이념과 지역의 극단적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연합단체마저 뿔뿔이 분열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며, 민족의 독립이라는 절대적 대의 앞에 이념, 지역,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가 됐던 ‘3.1운동’의 위대한 정신을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중대한 선택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총선 승리에 함몰되어 국가와 국민을 반으로 가르는 행위를 결코 교회가 주도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교회는 총선의 여파로 나뉘어진 틈을 메꾸고,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는 화합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만세 함성이 퍼지는 3.1절의 아침에도 ‘이승만의 위대한 민주주의 건국’과 ‘김구의 치열했던 독립투쟁’이 양립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곱씹으며, 지금 우리가 ‘3.1정신’의 하나됨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 지 차분히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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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1
  • [기자수첩] 인터콥 ‘불법집회’ 오명에 당한 마녀사냥 3년··· 누가 보상할텐가?
    코로나 펜데믹에 대한 전 세계적 공포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지난 2020년 11월, 경북 상주의 BTJ열방센터에서 열린 한 집회 이후 상당수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코로나 확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우려가 워낙 컸던 탓에, 언론들은 BTJ열방센터와 해당 집회를 주도한 인터콥 선교회를 자극적으로 비난하는 기사들을 앞다퉈 쏟아냈고, 그 와중에 해당 사건은 ‘인터콥의 방역수칙을 위반한 불법집회’로 결론 맺어진다. 이후 인터콥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선교단체라는 점과, BTJ열방센터가 경북 상주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콥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은 '한국교회'와 '상주시' 두 곳으로 확산될 기미를 보인다. 인터콥 혹은 BTJ열방센터를 감시·감독해야 할 교회와 지자체가 그 책임을 소홀히 한 탓에 코로나 확산을 야기했다는 비난을 받을 상황에 처한 것이다. 위기를 느낀 지자체와 한국교회의 대처는 매우 빠르고 단호했다. 철저한 선 긋기와 꼬리 자르기, 그리고 이에 더해 인터콥을 향한 비난의 행렬에 스스로 앞장서 국민과 언론의 돌팔매를 부추기기도 했다. 혹시라도 인터콥을 향한 여론의 불똥이 자신들의 안위를 조금이라도 해할까 전전긍긍하며, 인터콥을 앞장서 정죄했던 그들의 선택은 결코 냉정하지 못했던 지나친 과오였다. 특히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이었던 '한국교회총연합'은 "인터콥이 방역수칙을 위반했고, 참가자를 숨겼으며, 감염검사에 응하지 않는 등 반사회적 행동을 벌였다"는 내용의 성명으로 완전한 선긋기에 나선다. 여기에 인터콥의 신학적 문제가 그동안 주요교단들로부터 제기되어 왔다는 코로나와는 전혀 별개의 이슈를 언급하며, 여론 앞에 한국교회와 인터콥을 분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교총 역시 이 때의 ‘꼬리 자르기’가 그저 미온적 대처일 뿐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음을 금세 깨달았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반복되는 교회 내 확산 앞에 더 이상 내 줄 꼬리는 존재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꼬리 자르기’보다 더욱 최악이었던 것은 인터콥에 대한 신학적 공격이었다. 인터콥의 방역 논란이 거세지던 시점에 '8개교단 이대위'는 인터콥의 신학적 문제를 더욱 부추기는 결론을 냈고, 이에 힘입어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동년 총회에서 인터콥에 대한 제재를 격상하게 된다. 또한 예장합신측의 인터콥 '이단 규정' 역시 이러한 맥락에 있었음을 부정키 어렵다. 주목할 것은 '집회' 9개월 전인 2020년 2월 KWMA가 인터콥과 관련한 매우 의미있는 성명을 냈다는 점이다. KWMA는 인터콥이 사역지도에 적극 임했고, 자발적으로 추가 사역지도를 받기로 했다며, 한국교회가 인터콥을 선교 형제로 품어줄 것을 요청 했었다. 하지만 인터콥에 대한 한국교회의 선 긋기 행태가 분명해지자, 완전히 입장을 바꿔 인터콥 정죄에 나섰고, 이후 예상되는 혼란에 인터콥은 스스로 탈퇴를 발표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터콥을 한국교회의 형제로 품어달라 했던 KWMA 안에는 예장합신을 포함해 주요 8개 교단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은 시작됐다. 일방적인 여론 속에서도 미약하나마 잡음이 계속되자 뒤늦게나마 해당 사건의 진상을 파악키 위한 교계 일각의 노력이 시작된다. 국제기독교이단대책협의회(이하 국이협)와 한국목회자선교협의회(이하 목선협)은 공동으로 진상조사단(공동단장 김정만 김찬호)을 꾸리고, 약 1개월에 걸쳐 집중 조사를 펼친다. 결과는 놀라웠다. 당시 인터콥의 집회는 11월 말 방역 기준인 사회적거리두기 1단계에 맞춰 진행됐고, 상주시에 집회신고까지 완료한 합법적 집회였다는 것, 심지어 상주시 공무원이 직접 현장까지 나와 이를 점검하고 방역에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했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인터콥이 코로나 검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언론의 보도와 달리 홈페이지, 공지, 전화, 문자 등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약 20여 곳의 언론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정정·삭제’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반전은 사건 3년여가 지난 1월 중순 법원이 해당 사건과 관련한 대부분의 소송에서 인터콥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됐다. 당시 집회에 불법은 없었고, 방역수칙을 어기지 않았으며, 공무원들의 정당한 공무 집행 역시 방해한 적이 없다는 판결이다. 오랜 싸움 끝에 결국 무죄를 증명한 인터콥은 환호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쁨은 점점 씁쓸함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당시 인터콥에 대한 무고한 비난에 앞장섰던 두 곳 중 '상주시'는 법의 판결로 정당한 심판을 받았지만, 한국교회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BTJ열방센터 사건 이후 인터콥은 그야말로 처참할 정도로 한국교회에 짓밟혔다. '과학(의학)'의 영역에서 발생한 코로나 논란을 '신학'의 문제로 정죄 했던 일부 한국교회의 행태는 냉정을 잃어버린 비이성적 대처가 분명했지만, 애초 잘못 끼운 단추를 누구하나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결국 현재에 이르러 침묵을 택했다. 작금에 이르러 법원은 인터콥이 확실한 '피해자'임을 보증하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지난 날의 과오를 인정치 않으려는 한국교회의 침묵은 지금도 목숨을 걸고 이슬람 국가에서 사명을 다하는 2,000여명의 인터콥 평신도 선교사들의 헌신을 짓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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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8
  • [기자수첩] NCCK를 통해 본 한국교회 진보의 미래
    지난 수 년간 '한기총-한교총' 연합기관 통합에 대한 이슈가 한국교회를 뒤덮은 사이, 교계 연합운동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NCCK다. 한때 한기총과 더불어 한국교회의 2대 연합기관으로 자리했던 NCCK는 지난 수년 새 한국교회에서 그 존재감을 완전히 지웠다. 이러한 NCCK의 쇠퇴는 한기총-한교총의 이슈가 워낙 컸던 탓도 있지만, NCCK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기감, 통합 등 NCCK 핵심교단의 잇단 탈퇴 시도와 교계 전반에 강력히 형성된 반NCC 기류,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의 정점을 찍은 이홍정 총무의 사퇴는 오늘날의 NCCK가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NCCK의 몰락, 반NCCK 운동의 시작은 바로 지난 2013년 WCC 제10차 부산총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합동-통합, 기감-예감의 분열을 야기할 만큼 한국교회의 최대 논란이었던 WCC를 한국교회에 유치하는데 앞장섰던 NCCK는 이를 반대하던 보수세력과 진솔한 대화를 일절 거부하며, 일방적인 총회를 치르게 된다. 종교 다원주의와 혼합주의 그리고 공산주의의 개입, 여기에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 사건까지 이미 숱하게 해명해야 할 것들이 많았던 WCC를 두고, 별다른 해명없이 이를 반대하던 한국교회 대다수의 목소리를 그저 "WCC에 대한 무지"라 폄훼했던 NCCK의 당시 태도는 한국교회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국교회를 버린 매우 광오한 상황을 자처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WCC 제10차 총회에서 '동성애 옹호' 이슈가 본격 발발하며, NCCK는 WCC와 더불어 한국교회 보수의 강력한 공격에 직면한다. 허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WCC 제10차 총회가 불러온 한국교회의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지만, NCCK와 WCC의 회원교단들은 별다른 해명없이 보수진영의 반발을 묵과했다. 기독교 신앙, 성경의 해석 등에서 분명 해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지만, '엘리트 주의'에 심취된 이들은 여전히 보수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한국교회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런 오만한 진보진영의 '엘리트 주의'는 이후 성 정체성, 동성애 이슈 등에서 한국교회는 물론 일반 시민계와 정면 충돌하게 된다. 인권센터를 앞세워 동성애자와 동성애 단체에 인권상을 주고, 동성애 성행위를 용인하는 군형법을 지지하며, 나중에는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성명까지 내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 금한 동성애를 조장하는 이러한 NCCK의 태도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차이를 넘어 반성경적 행태라는 강력한 비난에 휩싸였고, 급기야 핵심교단인 기감측이 탈퇴를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 10월 총회에서 결정될 기감의 탈퇴는 현재 분위기로는 막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뿐 아니라 예장통합측 역시 김의식 총회장이 WCC에 대한 반대를 공식 표명하고, NCCK에 대한 이념적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등,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기류가 NCCK를 휘감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일각에서는 NCCK가 이미 기독교 단체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매우 충격적인 주장까지 하고 있다. NCCK가 과거에는 기독교 단체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일반 시민단체로 그 성격을 완전히 바꿨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은, NCCK는 어느새 성경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념에 성경을 끼워맞추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성애라는 기독교의 양보할 수 없는 이슈조차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념에 기대어 그릇되게 해석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 단체로서 행할 수 없는 것으로 이는 최후의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크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진보의 한 축이었던 NCCK의 부활이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재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은다. 중요한건 NCCK 스스로의 의지다. 기독교 단체로서 다시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을지, 아니면 기독교를 더욱 지우고 완전한 시민단체로 전환할지는 NCCK가 선택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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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2024-01-27
  • [기자수첩] NCCK는 왜 ‘동성애 반대’를 말하지 못하나?
    "NCCK는 동성애를 찬성한 적이 없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 "NCCK는 동성애자의 형편을 고려하지만 그 자체를 찬성한 적은 없다" NCCK의 제72회 신임회장에 오른 윤창섭 회장과 신임 김종생 총무가 NCCK의 동성애 관련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현재 NCCK의 동성애 및 포괄적차별금지법 이슈는 NCCK의 최대 회원교단인 기감과 통합측의 탈퇴가 거론될 만큼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사실상 단체의 존립과 맞닿아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제72회 총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진지한 논의와 해당 이슈에 대한 NCCK의 명확한 입장이 나올 것으로 기대 됐었다. 하지만 이날 NCCK의 주 관계자들은 관련 이슈를 애써 외면하거나 피하는 모습이었다. 오죽 했으면 기감의 한 목회자가 "NCCK가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없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이라는 핵심적 이슈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다. 연합과 일치를 외치지만 엄청난 장벽이 느껴진다"는 지적을 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신임회장의 기자회견 시간에 해당 이슈가 다시 거론되기는 했지만, 뭔가 석연찮은 답변으로 오히려 찝찝함을 더했다. 다시 한 번 위 내용을 살펴보자. "NCCK는 동성애를 찬성한 적 없고, 성경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답변인데, 언뜻 NCCK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이는 매우 애매한 답으로 질문의 요지를 피해나간 것을 볼 수 있다. 동성애 포괄적차별금지법 이슈의 핵심은 "NCCK는 과연 동성애를 반대하는가? 찬성하는가?"다. 반대와 찬성 아주 간단한 답만 필요할 뿐이다. 허나 "동성애를 찬성한 적이 없다"는 이들의 대답은 굳이 답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언뜻 '반대'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조금 더 생각하면 "NCCK는 동성애를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매우 위험한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성경은 근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답변 역시, 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어디까지 성경의 입장, 즉 가르침일 뿐, 그것을 NCCK가 그대로 따르고 수용하는지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NCCK가 동성애를 반대하는가?"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과연 NCCK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아직 기독교 단체로서의 성경적 정체성은 남아 있는가? 우리는 성경이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동성애를 NCCK도 절대 반대하고 있다는 당연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3-11-24
  • [기자수첩] 소명 기회도 얻지 못한 ‘인터콥’, 세상 법원도 외면하나
    세계 최대 이슬람 선교단체로 꼽히는 인터콥선교회(본부장 최바울/ 이하 인터콥)가 예장합신측을 상대로 제기한 '총회(이단)결의취소' 소송이 1심에서 결국 기각됐다. 법원이 '종교 단체'의 내부 문제라는 이유로, 사건의 핵심에 대한 판단은 사실상 거부한 것인데, 인터콥측은 불의한 교권에 대한 호소를 세상 법정 마저 들어주지 않는다며,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인터콥은 지난해 9월 예장합신측이 제107회 총회에서 자신들을 이단으로 결의하자, 법원에 이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인터콥은 이전까지 한국교회 일부 교단으로부터 경계, 교류 및 참여 금지 등의 낮은 단계의 제재를 받기는 했으나, '이단 결의'는 합신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해당 결의가 이례적이었던 것은 그간 이단 연구 및 정죄에 가장 앞장섰던 예장통합측조차 당해년도 총회에서 인터콥에 대해 "신학적인 문제는 없다"는 확인을 했을 만큼, 교계적으로 인터콥에 대한 여론이 다소 누그러지던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합신측은 당 회기 인터콥을 이단으로 정죄하기까지, 필수적으로 거쳤어야 할 당사자에 대한 소환 혹은 의견진술 등의 절차를 생략했기에 인터콥은 강하게 이에 반발했다. 결국 인터콥은 "모든 재판의 기본인 '소명의 권리'조차 무시된 '일방적 정죄'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를 법원에 제소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이번 재판의 핵심은 인터콥의 '이단' 여부가 아니라, 합신측의 '절차상 하자' 여부였다. 합신측이 이단 정죄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할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명백한 '절차상 하자'일 것이고, 하자가 분명한 결의는 효력이 없다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있어 관건이 됐어야 할 '절차상 하자' 여부는 애초에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법원은 '절차상 하자'가 아니라, 합신측의 결의에 따른 인터콥의 피해 여부에만 집중한 것인데, 결국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는 결론에 이를 기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합신측과 인터콥이 전혀 연관이 없는 별개의 단체라는 사실에 근거했다. 합신측의 결의는 그저 주관적 판단에 따른 내부적인 것으로, 인터콥은 합신측과 관계가 없기에, 그에 따른 영향도, 피해도 있을 수 없다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피해’라는 것은 법적인 부분과 실제적인 부분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인터콥은 선교단체로 스스로 이익활동을 벌이거나, 헌금을 걷는 조직이 아닌, 한국교회 성도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는데, ‘이단 정죄’는 단체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리며, 재정적인 심각한 타격을 야기한다. 이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흩어진 인터콥 선교사들의 안전을 매우 위태롭게 하는 것은 물론, 선교사로서의 명예를 크게 훼손시키며, 그들의 선교 활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한 교단 내부의 결의라고는 하나, 이미 한국교회는 주요 교단들의 ‘이단 연구’를 공유한지 오래기에, 현실적으로 결코 교단 내부에만 한정된 영향력을 갖지 않는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합신측은 자신들이 위원장으로 있는 ‘10개교단 이대위원회’를 통해 해당 문제를 공론화 하며, 자신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국교회에 대한 도전으로 확대키도 하는 등, 스스로 이를 교계 전체로 확산시키도 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관건이 됐던 ‘절차상 하자’ 여부는 판단조차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인터콥 뿐 아니라, 한국교회 이단 연구의 ‘신뢰’와도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 부분이 생략되며, 판결의 찝찝함을 더했다. 무기화된 일부 ‘교권’에 우려 심각··· 견제마저 불가능 이번 판결에 대해 합신측 이대위 관계자는 “정통신학을 훼손하는 사상으로부터 한국교회를 지켜낼 좋은 발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이대위가 언급한 '좋은 발판'이 과연 무엇이냐는 부분이다. 이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합신측은 재판 내내 종교 단체 내부의 결정을 사회법이 '절차 위반' 등을 이유로 위법성 여부를 따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었다. 종교 단체 내부의 결정은 '위법'이 됐든 '불법'이 됐든 사회법이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좋은 발판'은 바로 교단 결의의 '절대성'을 보장받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회법도 침범치 못할 교단 결의의 '절대성'은 말 그대로 절대적 권위를 보장받은 만큼, 주체가 되는 각 교단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할만한 '좋은 발판'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교단들의 판단이 그에 걸맞는 절대적 신뢰를 갖추지 못한 탓에, 매 사안 마다 내외적으로 논란을 야기하며, 그 과정에 억울한 피해자들도 상당수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교권으로부터 외면받은 피해자들이 유일하게 호소할 곳은 사회법 뿐인데, 세상 법정마저 위법이든 불법이든 이를 관여치 않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상대적으로 '좋은 발판'이 아닌 '허공 위 부러진 발판'이 되어 교권의 일탈을 오히려 부추길 우려가 있다. 더욱이 일부 교단들의 무기화 된 '교권'이 교계 내부적으로도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이에 대한 ‘견제’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은 교회의 자성적 측면에도 결코 환영할 일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인터콥 논란, 납득할만한 연구·결론으로 종결해야 인터콥은 한국교회에 있어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었다. 허나 중요한 것은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인터콥은 계속해서 성장했고, 이제는 단일 선교단체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할 만큼, 세계 선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는 것은 인터콥은 무조건적인 정죄나 퇴출보다는 이해와 교육을 통해 한국교회 세계 선교의 최고 동력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 역시 있다는 현실적 전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논란에 대한 철저히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연구와 결론이다. 그것이 심지어 ‘이단’으로 결론이 날 지언정, 당사자인 인터콥은 물론 한국교회 모두가 납득할만한 연구 과정과 결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간 일부 교단의 인터콥 연구는 다소 주관적이고 때로는 감정적인 평가까지 있었던게 사실이다. 일부 선교지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이나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일을 놓고, 전체의 문제로 확대 시키는가 하면, 사실과 다르다고 증명된 것조차 여전히 정죄의 도마 위에 올렸다. 특히 지난 2020년 10월 일어난 ‘BTJ 열방센터’의 코로나 확산 사건은 여론에 휩쓸려 과학의 문제를 신학의 문제로 정죄한 한국교회 오류의 가장 대표적인 예다. 당시 ‘BTJ 열방센터’의 확산이 코로나 공포와 맞물려 언론에 대대적으로 문제화 되자, 한국교회 연합단체를 포함한, 주요 교단들은 인터콥에 앞다퉈 선을 그으며, 일부는 ‘경계 대상’으로까지 결의했는데, 이후 당시의 집회가 지자체의 허락을 얻어 공무원의 감독 하에 방역 수칙을 준수해 치러졌던 것이 확인되며, 뒤늦게 사건이 재조명됐었다. 그나마 이를 불법집회로 잘못 보도했던 대다수 언론들은 ‘정정’ 혹은 ‘반론’ 보도로 이를 바로 잡았지만, 여론에 휩쓸린 정죄를 했던 일부 한국교회는 아무런 정정 없이 이에 침묵했었다. 한국교회가 인터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따른 ‘논란’을 해소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고, 잘못이 있다면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만 사실을 벗어난 지적과 절차를 무시한 정죄는 이러한 계도의 기회조차 차단한 채 논란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3-11-20
  • [기자수첩] 교단장 배제하는 통합측의 한장총 인선, 문제 없나?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정서영 목사/ 이하 한장총)가 오는 11월 14일 '제41회 정기총회'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상임회장 경선에 벌써부터 관심이 뜨겁다. 예장통합측 김순미 장로와 예장합동측 권순웅 목사가 맞붙은 이번 상임회장 경선은 통합과 합동이라는 장자교단 간의 경쟁 외에도, '목사 vs 장로', '남성 vs 여성' 이라는 매우 예민한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근래 한국교회 연합단체에서 볼 수 없던 단체장 경선이라는 점과 라이벌적 요소가 가득한 두 후보 간의 이력은 점차 쇠락세를 면치 못하는 한장총에 새로운 반전을 가져다 줄 충분한 '흥행 요소'로 보이지만, 어째 이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선은 매우 불편한 듯 보인다. 불편함의 중심에는 한장총을 대하는 통합측의 태도에 있다. 통합측은 그간 여타 교단들이 교단의 현직 교단장 혹은 교단장을 지낸 인물을 후보로 낸 것과 달리, 별개의 인물들을 후보로 추천해 왔다. 지난 20여년 간 통합측은 이종윤 목사(2009년), 채영남 목사(2016년), 김수읍 목사(2019년) 등 총 3명의 대표회장을 배출했는데, 이 중 교단장 출신은 채영남 목사 단 한 명 뿐이었다. 법은 아니어도 대표회장은 교단장 출신이 한다는 회원들의 암묵적 불문율을 통합측은 반복적으로 무시해 온 것이다. 소속 교단들이 한장총 상임회장 후보에 교단장 출신을 내미는 것은 한국 장로교를 이끄는 대표 연합단체의 권위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단장의 역임 여부는 검증된 지도자라는 신뢰와 인지도에 따른 인물의 무게감이 다르기에 단체의 권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이는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가 소속 교단의 현직 총회장들을 당연직으로 임원에 올리며, 교계 내외의 확실한 대표성을 인정받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가뜩이나 지난 시간 한장총을 만만히(?) 보는 듯한 통합측의 인선에 타 교단들의 불만이 큰 상황에, 이번에 또다시 비교단장 출신의 평신도 후보를 내밀었다는 사실은 이들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기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통합측이 또다른 연합단체인 한교총과 NCCK를 대하는 온도가 한장총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통합측이 한교총이나 NCCK에 비해 한장총을 낮게 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통합측은 실제 한교총의 태동 이후 김태영 목사, 류영모 목사 등 현직 총회장을 앞세워 많은 활동을 해 왔고, NCCK 역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진보의 중심 교단으로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 한장총은 이들에 비하면 통합측의 우선순위에 확실히 멀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주변에서도 느껴지는 이러한 통합측의 분명한 온도차는 장로교 연합운동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현재 상당수의 회원 교단들은 이번 통합측의 인선에 상당한 비판과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밖으로 표출하기를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대두되는 여성, 평신도라는 이슈가 이러한 통합측의 본질적 문제를 오히려 '물타기'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과거 진보 보수의 연합운동을 모두 아우르겠다는 통합측의 정체성이 점차 애매해진 회색빛으로 변해가며, 이에 대한 교계의 비판이 커지는 상황에, 이제는 한장총 내부에서도 그 진정성이 지적되며, 통합측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3-11-11
  • [기자수첩] 부처에게 귀의하겠다는 기독교의 목회자들
    종교 혼합주의, 다원주의를 염려하는 말은 단순히 WCC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이미 우리 한국교회 저변에는 혼합주의가 매우 뿌리깊게 자리 잡았고, 이제는 더이상 기독교의 절대적 유일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기가 도래했다. 진보 기독교계가 이번에는 제대로 사고를 친 모양새다. 이들은 오는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및 300일 추모 대회'를 가질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문제는 '삼보일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삼보일배(三步一拜)는 세 걸음 걷고 한번 절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으로,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이다. 그것도 단순한 수행법이 아니라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의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뜻으로, 1보에 부처님께 귀의하고, 2보에 법(가르침·진리)에 귀의하며, 3보에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매우 절대적인 불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이 '삼보일배'를 무려 기독교 목회자들이 한다는 것이다. '10.29 할로윈 참사'는 전 국민 모두가 슬퍼했고, 또 안타까워 한 불의의 사고였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서로 엇갈리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교회가 사망자를 추모하고, 또 유족을 위로하고자 하는 꾸준한 노력은 분명한 의가 있다. 하지만 왜 그 방법을 굳이 '불교'의 수행법으로 해야 하는가? 아무리 '추모'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의 목회자들이 삼보일배를 하는 것을 과연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기독교'는 단순한 사상이나 문화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은 아무 종교와 혼합해도 되는 그런 타협의 가치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절대적 구원을 믿는다면, 적어도 부처에게 귀의하겠다는 '삼보일배'는 입에 담아서도 안될 것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3-08-19
  • [기자수첩] 얇은 '매트’와 투박한 ‘샤워기’에 담긴 새에덴교회의 진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이제 마지막 폐영식만 앞두고 있는 가운데, 대회 파행의 책임에 대한 공방이 심히 뜨거워지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메이저 대회인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일부 언론들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에 엄한 한국교회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이틀새 주요 공중파 언론들이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한국 대원들이 외국대원들과 비교해 열악한 교회시설에 배정됐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국민들의 공분을 자극했다. 해당 기사는 '역차별'이라는 키워드로 타 인터넷 언론들로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교회는 아이들을 매트 한 장 달라 주고, 강당 바닥에 재운 몰염치한 곳이 됐다. 당시 보도에 등장한 경기도 용인의 한 교회는 바로 새에덴교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이자, 한교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소강석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다. 현 시점 한국 기독교의 얼굴이라 볼 수 있는 새에덴교회가 한순간에 아이들을 천대한 교회가 되어버린 것은 결코 일개 교회만의 문제로 끝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보도의 전체적인 주제는 교회가 아니었다. 잼버리 대회가 숙소 배치 후에도 여전히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는 고발과 비판이 목적으로, 교회는 바로 그 비판을 위한 매개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론들의 시선이 심히 왜곡될 수 밖에 없었다. 대원들이 강당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고, 개조된 세면대에서 샤워를 한 것도 맞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이 '천대'가 아니라 교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점이다. 새에덴교회가 대회 조직위와 지자체 등으로 부터 숙소제공 협조를 요청받은 것은 고작 하루 전이다. 전교인 수련회가 한창이던 상황에 이를 수락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지만, 곤경에 빠진 아이들을 섬기겠다는 결단으로 모든 인력을 잼버리로 돌리게 된다. 언론에서 ‘얇은 매트’라고 표현했던 그 매트는 밤새 전국을 수소문해 무려 대구에서 공수해 온 매트다. 서울 경기 지역 내 매트는 씨가 말랐고, 그나마 구입 가능한 매트는 너무도 얇았기에 아이들이 편히 잘 수 있는 두꺼운 매트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뒤진 노력의 결과였다. 언론이 지적한 대로 제대로 된 샤워실은 갖추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 최대한 불편치 않도록 교역자들이 밤을 꼬박 새며 수도를 교체하고, 샤워기를 설치했던 것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샤워실을 제공해 주지 못한 미안함의 수고였다. 무엇보다 언론이 담아내지 않은 것은 바로 새에덴교회와 소강석 목사의 진심이었다. 새에덴교회에 입소한 400여명의 대원들은 숙소 이전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대부분 새에덴교회에 남길 희망했다. 교회를 찾은 처음 그 순간부터 메디컬처치팀을 가동해 아이들의 건강부터 체크했고, 더위에 지친 아이들의 체력을 위해 고열량의 식사와 아이스크림, 생수, 간식 등을 무제한으로 제공했다. 이 뿐 아니라 아이들이 캐리비안베이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내도록 지원했다. 오히려 소강석 목사와 교역자들은 단 한순간이라도 아이들이 불편한게 있을까 긴장을 놓치 못한 채 며칠을 보내야 했다. 공간이 분리된 2인실 방에 푹신한 침대가 있고, 번듯한 샤워실이 갖춰진 숙소로 갈 수 있었지만, 대원들은 자기 의지로 ‘얇은 매트’와 투박한 ‘샤워기’를 택했다. 새만금의 땡볕에서 제대로 된 돌봄 없이 고생을 거듭한 그들의 숙소 선택 기준은 별점보다는 제대로 된 보살핌이 먼저였던 것이다. 언론이 그토록 비꼰 ‘매트’와 ‘샤워기’는 대원들에 있어 ‘역차별’이 아니라 바로 ‘최고의 섬김’이었다. 소강석 목사는 언론 보도로 한참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SNS를 통해 자기 교회를 찾은 대원들을 먼저 챙겼다. 혹여라도 아이들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다른 숙소로 보내주고자 했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새에덴교회에 남겠다기에 감사함으로 더 깊이 섬기겠다고 전했다. 소 목사는 "편안하고 편리한 시설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교회의 진심이 아이들의 편안한 웃음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교회에서 웃고 즐기고 있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잼버리 대회의 가장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아이들이다. 이제 고작 하루 밖에 남지 않은 지금, 새만금에서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보듬는 것은 최고급 시설이나 화려한 공연이 아닌 바로 대한민국의 진심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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