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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억지 같은 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마27:32) 신앙인들이 때때로 자기의 원대로 무슨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자기 뜻대로 될 때는 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도 은혜일 수 있지만 성경에 나오는 참된 은혜는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몬이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는 곳에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자, 예수님의 십자가를 시몬이 대신 지도록 하였습니다. 시몬은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로마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억지로 졌지만, 그가 그것을 짊어졌을 때는 ‘짊어지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짐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좀 더 편안히 오르실 수 있다는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당시에 느꼈던 소감을 그의 아내와 아들들인 알렉산더와 루포에게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억지 같은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까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아버지 품에서 계속 사랑을 독차지 하며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였던 형님들이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창37:27-28). 그는 형님들에게 팔지 말아달라고 애걸복걸하였습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가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서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또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서 2년 동안 있었지만, 최후에는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당시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일대에 7년 흉년이 들었지만, 애굽은 물론 가나안에 사는 아버지와 형제 가족 모두를 구원하게 됩니다(창세기43장-47장). 억지 같은 일들이 그야말로 큰 은혜가 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성경은 그러한 많은 일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의 집에 나귀가 도망을 갔습니다. 참 좋지 않은 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사울은 사무엘을 만나게 되어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삼상9:1-10:27). 그랬던 사울도 나중에는 타락하여 그의 충성된 신하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핍박을 피하여 블레셋의 시글락에 머물렀습니다.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는 그가 이스라엘과 싸우러 갈 때에 다윗도 함께 하도록 명하였습니다(삼상28:1).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방백들 때문에 싸우러 가지 못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그곳은 아말렉의 침투를 받아서 그의 처자식은 물론 부하들의 처자식과 재물까지도 약탈 당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다시 가서 모두 회복했습니다. 그가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를 받아 이스라엘과 싸우러 가지 않게 된 것이 블레셋 방백들의 억지였지만 그 일로 인하여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처자식과 재산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삼상 27장~30장).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하셨습니다(막1:12). 예수님께서 자원하셔서 광야로 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몰아내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사탄의 시험을 이긴 후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셨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아시아 지방으로 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허락지 아니하므로 방향을 마케도냐로 돌렸고 그곳에서 루디아 같은 신앙인들을 만나서 빌립보 교회를 세웠습니다(행16).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신앙인들에게 모든 일에서 유익만 되게 해주시지만, 특별히 억지 같은 일들이 은혜로 임할 때가 있습니다. 생활 가운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원하지 않는 일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잠3:6) 그 이름을 찬송하기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욥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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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순수하면서도 광활하렵니다.”
    작년 연말쯤이었던가요? 유럽 코스테 측으로부터 강사 요청 공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송원석 비서목사를 통해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멀리 비행기를 타고 다녀오는 것도 부담스럽고, 젊은이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도 역시 어색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몇 주가 흘렀는데 갑자기 코스테 대표이신 한은선 목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라도 들어보려고 안부 전화를 드렸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강사 결정이 다 되었습니까? 지금이라도 간다면 제가 설 자리가 비어 있습니까?” 그랬더니, “아이고, 소 목사님이 오신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듣고 갑자기 제 안에서 멋진 오해 혹은 거룩한 착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동안 쉬다가 작년부터 코스테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한번 가봐? 젊은 유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면 얼마나 소통이 되고 내 가슴속의 정열이 얼마나 전달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며칠 후 송원석 목사님을 통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대신 저는 밤 집회 한 번 하고 낮 특강 목회자 세미나를 하는 대신에,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낮 특강은 홍윤기 목사님이 맡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코스테 본부에서는 얼마든지 좋다고 해서 홍윤기 목사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갔습니다. 제가 바쁜 중에도 말씀을 많이 준비해 가지고 갔습니다. 준비한 말씀을 잘 전달하게 된다면, 저나 유학생들에게 인생의 플롯 트위스트(plot twist,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리부트(reboot)가 터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저도 오랜만에 가는 집회이기 때문에 제 사역의 신세계를 이루고 원정 V로그(Vlog)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시간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저 다음에 또 한 분의 스피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최 측에서는 저에게 미안했는지 10분 이상 더 하셔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아마 제가 늦게 간다고 해서 그렇게 스케줄이 짜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쩔 수 없이 준비해 간 말씀을 축약해서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젊은 유학생들과 소통을 나눌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첫날 저녁, 제가 집회의 포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제 안에 있는 젊음의 야성과 열정이 그들에게 순수하면서도 고스란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너무 피곤해서 집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왔지만, 제 메시지를 듣고 오래까지 남아 기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튿날 저는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아무래도 닫혀 있을 수 있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현대 목회 트렌드와 미래의 흐름을 이야기하며 그럴수록 생명을 붙잡고 가치를 붙잡고 무너져 가는 교회를 세워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회가 되는 대로 다른 분들의 메시지도 들었습니다. 역시 후배 목사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메시지는 대부분 단순하고 순수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 단순함과 순수함이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순수하다 보면 앳되게 보이는 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순수함과 함께 폭이 넓고 지경이 광활한 면도 있어야겠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대로 좀 연륜이 많은 목사님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역시 앳된 면은 보이지 않고 나름 노련하고 지경이 넓고 깊은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목요일 오전에는 홍윤기 목사님이 유학생들에게 특강을 하였는데, 아주 젊고 단순함을 유지하면서도 폭이 넓고 지경이 광활한 면이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제가 첫 안타를 쳤다면, 홍 목사님은 홈런을 친거죠. 저는 이번 코스테 집회를 통해서 “내가 더 젊어져야 되겠구나. 더 순수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장엄하고 폭이 넓고 더 지경이 광활한 설교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젊고도 웅장하며 순수하고 단순하면서도 지경이 넓고 광활한 설교 말입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수년 동안 가지 못했던 코스테 집회에 오랜만에 가서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강렬한 도전을 주었던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고, 후배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또 선배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을 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더 순수하면서 깊이 있고 폭이 크며 광활하고 웅장한 설교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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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이상길 목사의 ‘믿음은 행위로 나타나야’(약 2:14-18)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앞뒤 면과 같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행위는 같이 가야 하는 것이기에 믿음은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활 속에 행위로 나타나야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믿음과 행함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많은데,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는 말들이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행위로 증거 되는 믿음인 것입니다. 행위가 동반되어야 참 되고 올바른 믿음이므로 믿는 우리는 오직 행하는 믿음으로만 살아야 하겠습니다. 26절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행위가 따라가야 살아있는 믿음이라는 것이지요. 믿음이 원인이라면 행위는 결과입니다. 믿음이 나무라고 한다면 행위는 열매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야 생명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 롬 1:17)는 말씀은 말씀의 생활화를 말합니다. 믿음은 생각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삶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실천하는 삶은 믿음을 활성화시켜주고, 더 큰 믿음을 낳습니다. 말씀을 실천하는데서 만족이 있고, 감사가 있고, 헌신이 있고 기쁨이 더 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잘 지켜 의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시기에 말씀으로 우리의 생각, 행동을 다스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믿음을 생활화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게 있는 믿음이 비록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 믿음을 근거로 해서 행동으로 옮길 때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에 행동이 있을 때에 영력이 생겨나고,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은 합당한 열매로서의 행위가 나타나야만 합니다. 우리는 입술만의 신앙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행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입술의 신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신앙도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행위가 없으면 이 역시 죽은 신앙입니다. 사변적인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한 분으로 믿는 믿음은 바르지만 그것이 단지 지식에 멈춘다면 그러한 믿음은 헛되고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 생명의 실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이 실천이고, 그것이 실행이고, 그것이 행위인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행함은 눈에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은 보이는 행동으로 자신을 나타내게 됨으로 그 사람의 발자취를 통해 믿음이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하는 믿음으로 살아서 믿음이 온전케 되고 믿음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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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살아 있기에 글을 쓴다”
    확실히 요즘은 옛날 총회장 시절보다는 달리 조금 덜 바쁩니다. 총회장과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섬길 때는 분초를 쪼개가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마음은 바쁩니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까 때로는 불안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존재적 불안은 아니고 뭔가를 준비하지 못하고 미리 할 것을 해놓지 않았을 때 불안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설교 준비가 안 되었다든지 강의안이나 칼럼 등 써야 할 글을 미리 쓰지 않으면 심리적 불안이 오게 되는 거죠. 요즘 돌이켜 보니 시를 많이 못 쓴 것 같았습니다. 물론 ‘문학나무’에 성경인물 시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마는. 이번 주 같은 경우는 시를 많이 못 쓴 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압박감 같은 것이 들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는 고독해서 쓰기 시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고독해서 시를 쓰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이 살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 뿐만 아니라 일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심해서 쓰다가 보니까 나중에는 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그 시와 글이 자신을 이끌어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시를 안 쓰고 문인이 글을 안 쓰며 가수가 노래를 안하고 목회자가 설교를 안 하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글을 쓸 때 자기 인식을 하게 되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글과 삶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가 어떠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죽은 자는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불안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어 있으면 이런 불안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 불안이 끊임없이 창의적 세계로 가게하고 또 끊임없이 생명의 글을 쓰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글을 살고 있는 사람이 글이 안 써지면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해지겠습니까? 저는 전업 시인이 아니기에 시를 써도 되고 안 써도 됩니다. 이번 주는 시는 그만두더라도 목양 칼럼(아포리즘)이 잘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먼저 칼럼을 써 놓았습니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아들과 ‘건국전쟁’에 대해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글을 썼는데, 아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좀 어색한 것 같다고 해서 다른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다시 새로운 글을 쓰려고 하니까 깊은 사유(思惟)를 해야 했습니다. 문득 저는 글과 시, 시와 생명, 그리고 삶과 시간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구상해 보았습니다. 분명히 저는 시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시를 써도 되고 안 써도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반드시 시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시가 아니라도 반드시 글을 써야 하지요. 설교문이 됐건 칼럼이 됐건 기고가 되었건 글을 써야 합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창의적인 존재가 됩니다. 창의가 없는 한 저는 죽은 존재와 다름없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글을 써야 합니다. 아니 글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글이 어느 때부터 인가는 저를 창의적인 세계로 인도하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도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는 게 육신의 삶입니다. 물론 우리는 부활을 하고 예수 믿는 자는 영원히 천국에 거하지만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글을 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글과 함께 사는 사람이고 글을 사는 사람이고 글의 인생이 되고 글의 생명이 됩니다. 살아있으나 사유하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살기 위해서 오늘도 글을 쓰고 시를 씁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목양 칼럼을 쓰게 되고 새로운 시를 써야겠다는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써야 할 글이 많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어서 적어도 제 키만큼의 책은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은 턱없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물론 출판되지 않는 글 분량이야 제 키보다 훨씬 많지만요. 하여간 저는 앞으로도 창의적인 글을 쓰고 끊임없이 시를 쓸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한 생명의 글을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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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8
  • [언론회 논평] 이승만을 제대로 알아야 바른 역사가 보인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며,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해야 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부정적 프레임을 씌운 대로 잘못된 역사를 믿어 왔다. 또 그렇게 배운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그런 시각으로 후진들을 가르쳐 왔다. 특히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세력들에 의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전개해 왔다. 그런 가운데 최근 “건국전쟁”(The Birth of Korea)이라는 다큐멘터리(감독 김덕영) 영화가 나와서, 지난 2월 1일부터 전국의 145개 상영관에서 개봉되어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에 관한 것을 사실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거짓된 프레임을 씌워 철저히 부정적인 정치 지도자로 낙인찍어 왔다. 이 영화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도, 이렇듯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 가장 부각시켰던 부정적 이미지를 살펴 보면, 90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온 지도자를 ‘친일파’로 내몰아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초대 내각과 북한 김일성 정권의 내각을 살펴보면, 어느 쪽이 친일 정권이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당시 대한민국 내각의 구성과 출신을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 이시영 부통령, 외무장관 장택상, 내무장관 윤치영, 이범석 국방장관, 법무장관 이 인, 재무장관 김도연, 상공장관 임영신, 무임소장관 이청천 등 내각 17명이 모두 항일, 독립운동가로 채워졌다. 또 국회의장 신익희, 대법원장 김병로 등 행정, 입법, 사법부 수장도 역시 항일, 독립운동가로 세웠던 것이다. 반면에 북한 김일성 정권은 부주석 김영주(김일성 동생, 만주 헌병 보조원) 사법부장 장헌근(중추원 참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강양욱(도의원) 문화선전성 부부장 정국은(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보위성 부상 김정제(양주군수) 부수상 홍명희(임전대책위 가입 활동) 문화선전성 부상 조일명(학도병 지원 유세 주도) 검찰총장 한낙규(김일성대학 교수, 만주국 검사장) 공군사령관 이 활(일본 나고야 항공학교) 조선노동당 제주4.3사태 주동자 김달삼(일본군 소위) 등 다수의 친일 인사들이 북한 정권의 중요 보직을 맡았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로 몰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독재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아주 나쁜 대통령으로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이 의회와 언론의 역할을 제한하지 않았고, 4.19 이후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어느 독재자가 그런 모습을 보였던가? 거기에다 ‘남북 분단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45년 9월에 소련의 스탈린에 의하여 남북의 통행과 통신, 우편과 왕래를 일방적으로 차단하였다. 그리고 소련을 지지하는 정부를 북한에 세우기로 하였고,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여, 사실상 북한에서 정권을 먼저 세웠던 것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국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계획되고 실행된 일이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남북 분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인가? 또 ‘미제의 앞잡이’라고 한다. 6.25때 도망가기에 바쁜 ‘런승만’이라고 비판 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경제 지원을 얻어내고, 6.25 전쟁 중에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을 이끌어 내어, 이 나라를 공산 침략으로부터 지켜냈던 훌륭한 지도자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상호보호조약>을 통해서 오늘날까지도 이 나라의 안위와 국방을 튼튼히 만드는 초석을 단단히 다졌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이 6.25때 자신은 몰래 피신을 하면서, 서울시민들을 일부러 고립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적 실제와 진실을 잃어버리면, 마치 심각한 신체 장애를 가진 것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가게 된다. 이를 후대에게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에 대한 범죄를 물려주는 것이 된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더 먼 과거를 돌아볼수록 더 먼 미래를 볼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미국의 철학자인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이 영화를 본 젊은 세대는 학교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온갖 부정적인 것들만 배웠다고 한다. 이는 교육이 아니라, 교육을 빌미로 잘못된 이념과 악의적인 역사를 세뇌 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미 선배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목사이며, 흑인해방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주니어는 ‘우리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에 의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과 역사는 현재의 우리들이 만든 것이 결코 아니다. 당시를 치열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살았던 이승만 대통령과 선진들에 의하여 세워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후대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건국과 초대 대통령으로 국가의 기틀을 쌓아온 순기능을 모두 제거하고, 몰염치한 세력들에 의하여 오직 부정과 왜곡된 역사 몰이에 함몰된다면, 우리 스스로 뿌리와 줄기 없는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초대 대통령이며,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계속 비뚤어진 역사 주장을 반복하고, 정직하게 반성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역사를 만든 분들에 대한 배반이며, 다음 세대까지도 역사 앞에 큰 죄인을 만들어 가는 아주 잘못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바로 알도록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세워가야 하며, 많이 늦었지만 바른 역사를 만드는 기초석을 단단히 놓아가는데 국민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에서도 그런 가능성이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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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2-16
  • [언론회 논평] 어마무시한 10•29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라니?
    지난 해 4월 20일 더불어민주당의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보장과진상규명및재발방지를위한특별법안’(의안번호:21515)이 지난 1월 9일 국회를 통과하였다.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무소속 등 무려 183명이 발의자로 동참하였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남인순, 장혜영, 박주민, 노웅래, 도종환, 심상정, 우상호, 박 정, 서영교, 이수진, 김두관, 우원식, 윤건영, 권인숙, 정필모, 윤미향, 박홍근, 고민정, 이인영, 정청래, 이재명, 김민석, 김종민, 이재정, 윤영찬, 최강욱, 김영배, 강성희, 김의겸, 설 훈, 황운하, 김홍걸, 김남국, 홍영표, 박범계, 민형배, 안민석, 이상민, 홍익표, 윤후덕, 백혜련, 박병석, 김태년 등 모두 183명이 된다. 그 내용을 보면 17명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를 두는데, 진상규명조사를 위하여 자료와 물건 제출명령, 동행명령, 고발 및 수사요청, 감사원에 대한 감사 요구, 청문회까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피해 구제를 하는 것은 물론, 추모공원 조성, 추모기념관 건립, 추모제 개최를 할 수 있고, 추모 사업과 재단을 설립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에서 피해자들에게 생활비, 교육, 건강, 복지, 돌봄, 고용 등 다양한 것을 지원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피해자’를 규정함에 희생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3촌 이내의 혈족을 유가족으로 정하고 있다. 거기에다 이태원 참사 당시 해당 장소에 체류하였던 사람, 긴급 구조와 수습에 참여한 사람, 그 지역에서 사업장을 운영하였거나 근로활동을 한 사람, 현장에 체류하였던 사람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이태원 참사로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어 회복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있는 사람까지 광범위하게 대상을 포함시키고 있다. 참으로 놀랍다. 그래서 피해자는 생활지원, 의료지원, 심리치료지원, 법률지원, 그리고 배상과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법은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못 박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강제성을 더하기 위하여 이에 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엄청난 인신구속과 벌금형을 정하고 있다. 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리고 조사대상자 또는 참고인의 신원이나 조사 내용을 공개하고 사자의 명예를 훼손했을 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증인의 청문회 출석을 방해하거나 검증을 방해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그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물건이나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말 무시무시한 법이다. 이 특별법은 한마디로 미쳤다. 정말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2의 세월호, 혹은 5•18광주민주화법을 흉내 내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태원 사태는 2022년 10월 29일 서양 귀신놀이를 흉내 내는 ‘할로윈데이’에 많은 인파가 몰려 발생한 비극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국가 안보를 위해 앞장섰거나 국가적인 행사에 동원되어 희생한 것도 아니다. 당시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소정의 보상금과 장례비가 지급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듯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어 대처한다면, 우리나라는 거덜날 것이다. 이 법대로 하여 모든 피해자를 구제한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남인순 의원실은 조사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따른 비용을 설정했는데, 무려 96억 8,700만원을 추계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희생한 분들을 결코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오직 정쟁을 위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고장 난 기차와 같다. 이 법안에 대하여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이 법은 다시 국회로 보내져 재의결에 들어가는데, 제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정신을 차리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무엇이 진정이고, 무엇이 정도(正道)인가, 아니면 지나친 것인지를 알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될 때에도 재석 298명 가운데,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재석 177에 177명이 찬성하여 만들어졌으나, 이는 반쪽짜리 의결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21대 국회도 저물어간다. 새롭게 탄생해야 할 제22대 국회는 국가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는 국민의 대표를 올바로 선출해야 할 국민적 과제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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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4-02-16
  • [언론회 논평] 목사의 성직을 떠난 사람은 속히 목사직을 내려놓고 회개해야
    목사(牧師)를 성직자라고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직임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는 이름이나 명칭이 아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약 10년 정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학대학(일반대학 4년)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 3년을 마치고, 목사 고시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약 3년 정도 목사 후보생 기간을 거친 후, 드디어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될 때도 하나님께 분명히 서약하게 된다. 교단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겠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從)으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명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절대 소명에 종신토록 헌신하겠는가? 성경이 절대 무오(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신앙과 행위에 유일한 법칙임을 믿는가? 중생의 체험과 성령세례를 받았는가? 악의 세력과 이단 사조, 세속화와 자유주의 신학의 사조를 배격하며, 성경적 복음 신앙 노선과 교회를 굳게 지킬 것을 작정하는가? 핍박이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인내하고 충심으로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며, 교회의 성결과 화평을 도모하며 근실하게 사역하기로 작정하는가? 등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길은 때로는 험난하고, 유혹도 많고, 또 핍박도 각오해야 하는 성직(聖職)이다. 그러나 오늘날 목사직에서 이탈한 타락한 목사들을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매우 부끄러운 일이며, 목사직의 성실함을 아는 국민들에게 매우 죄송한 일이다. 또한 신앙을 본받고 따라야 할 일반 성도들에게도 머리 숙여 사죄의 마음을 갖는다. 목사직은 매우 신성하고, 신적 권위와 신탁(神託)에 의하여 그 사명과 직분이 행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직업처럼, 혹은 목사직을 이용한 세속에 물들고 타락한 모습을 볼 때, 한국교회의 대오각성이 필요하다. 각 신학교와 교단에서는 목회자 후속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참된 목회자상>을 계속 가르쳐야 한다. 최근에 목사라는 사람이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대통령 부인에게 함정을 파서 접근하고, 몰래카메라를 들이대서, 그 대화한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 편향된 언론 매체를 통하여 공개함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는 일반인도 그런 방법으로 타인에게 충격을 주거나 공격하지 않는 더러운 방법이다. 더군다나 북한의 공산주의와 자주 접촉한 후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가 했던 말을 보아도,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쓰는 ‘내재적 접근’이란 말을 쓴다. 이는 북한 공산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평화나 정의를 주장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는 한참 빗나간 모습이 되고 만다.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기독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교회를 가장 먼저 깨부수어야 할 적(敵)으로 본다. 그들은 종교를 아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영적으로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독교도 공산주의를 무신론, 유물론, 계급투쟁, 인민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산당과 그 핵심 세력의 권력을 위한 집단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 반대한다. 그런데 목사라는 사람이 공산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을 신봉하고, 또 여러 가지 불법과 꼼수를 통하여 나라를 혼란하게 만든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그에 대하여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약한 사람들을 돕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바른 정치를 하도록 기도하고 충고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비열한 방법으로 국가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기독교를 무너트리려는 공산주의 편에서 활약하는 것은 이미 목사의 소명과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다. 세상에서의 지도자는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국민들과 사람들이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목사로 세움 받은 사람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개(배교자, 회개 전으로 돌아간 자)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요한계시록22:15) 세상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직종이 있다. 교사들이다. 교사들이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면, 그들에게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직자이다. 특히 기독교의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떠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從)의 사명에서 벗어났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공동체인 한국교회에는 얼마나 많은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므로 전도의 문을 막는 것인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주지 못하는 목사라면 당장이라도 그 직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의 개인 구원을 위해서라도 힘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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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6
  • [언론회 논평] 대법원의 성전환에 대한 성별 정정은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지난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법원이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 신청 사건을 처리하며 성전환 수술 등을 참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 예규 일부 조항이 문제가 있다고 한 바 있다. 이에 대법원(대법원장 조대희)에서는 법원행정처로 하여금, 예규의 개정을 검토한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 대법원에서는 가족관계등록예규를 두고 있는데, 그중에 제550호에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이 있다. 이 지침 제6조의 트랜스젠더로서 성별정정을 하려면, 성전환 수술의 결과 생식능력을 상실했고,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한 지 여부, 미성년자가 있는 지의 여부, 성전환 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생식능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한다는 것이 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 소지와 인격권 침해가 발생한다며, 대법원에 예규를 전반적으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성전환 수술을 한다는 것과, 그에 따른 외부 성기의 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의 외관을 갖추는 것 등이 어려운 수술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중요 기준이 되는 예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법원이 성별 정정을 해준다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시민단체들이 그 부작용에 대하여 밝힌 바에 의하면, 남성의 생식능력을 유지한 채, 여성으로 성별 정정을 받은 사람이 여성 전용 시설을 이용할 때, 여성의 안전권이 침해된다고 하였다. 외국의 경우 남성의 성기를 가진 성전환자가 여성을 성폭행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또 여성으로의 생식능력을 유지한 트랜스젠더 남성과 생물학적인 남성 사이에 성관계를 통하여 임신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후 여성 선수로 활동하여 다른 여성 선수들에 비하여 월등한 경기력을 나타낸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고 하지만, 남성 성기를 유지한 사람이 발기한 남성 성기를 노출한 채, 다른 여성들을 위협하고 성희롱한 사건도 있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의 성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또 백번 양보해서 불가피하게 성전환 수술을 하고 성별 정정을 하게 될 경우에도, 이를 인정할만한 매우 합당한 증거를 통하여 사회 질서를 깨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개인 개인의 인권이 중요한 것은 안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나 국민 전체나 가정의 질서와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라면, 쉽게 그 길을 터주어서는 안 된다. 만약 대법원이 예규를 고쳐서 이런 혼란한 일들을 조장한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 더군다나 이런 무분별한 성별 정정이 이뤄져, 병역기피와 같은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국가의 존망을 흔드는 것이 된다. 국가 기관들이 국민을 위하고, 인권신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이번과 같이 있던 기준도 다 해제하고, 함부로 성별 정정을 해주겠다는 발상은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망나니 춤을 추는 것에 휩쓸리는 것과 같다. 정당한 기준마저 망실한다면, 그것은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큰 재난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법 상식과 인간 삶의 기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남녀의 양성 평등 기준을 확고히 세워야 한다. 대법원은 단순히 법관들의 모임이 아니라, 국민의 바른 생각과 법의 평등한 가치와 국민 모두에게 행복의 기회를 주는 국가 최고의 사법 기관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의 사무처리지침에서 예규(例規)로 느슨하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아예 법규(法規)로 규정하여 이를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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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6
  • [박정규 박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김수진 박사(1935-2023)
    본격적 지방교회사 연구 시대를 연 교회사학자 ‘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호남기독교 100년사’등 대표적 저서 많아 전라남도 신안 출신…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 김수진(金守珍)은 1935년 4월15일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에서 부친 김환웅과 모친 김길례 사이에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절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만주전쟁으로 인해 모든 물자를 약탈 당하고, 민중의 삶은 초근목피로 생명을 근근히 이어가는 처참한 시기였다. 그래도 수진이는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어린 시절을 구김살 없이 천진난만하게 자랄 수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조선말을 잃고 고향 미금국민학교에서 일본말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머리가 명석해 광주제일중학교로 진학하였고, 졸업 후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광주 숭일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는 부모님과 스승들의 보살핌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다져온 기독교 신앙교육이 그의 내적 발전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태어나던 해 유아세례를 받았고,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후에 그가 기독교 지도자가 되는데 큰 원동력이 되고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호남지방에 복음을 전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대학은 서울에 있는 단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는데, 미래를 위해서 외국어를 택한 것은 그의 혜안이었고 주님의 섭리였다. 대학을 마친 후엔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에 지원했다. 이는 목회자로서 소명의 길을 걷기 위함이었다. 그는 장로회신학대학을 마친 후, 당시 WCC로부터 제3세계 신학발전을 위한 T.E.F 기금을 유치해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역사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남장로회 선교부로부터 스칼라십을 얻어 일본 교토에 있는 동지사대학(Toshishd University) 대학원에서 신학석사(Th.M) 학위를 받았고, 이어서 미국 파사데나에 있는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D.Min) 과정을 거쳐, 코헨신학대학원에서 신학박사(Th.D) 학위를 마쳤다. 교회사 연구와 강의… 목회에 헌신 김수진이 이와같이 일본과 미국의 신학대학들을 섭렵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고 본다. 일제 때 국민학교에서 듣고 배운 일본어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것이 그의 역사신학연구에 기초가 되었고 학문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교회사 연구를 하면서, 특히 호남지방교회사를 연구하게 된 계기도 호남땅에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전해준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에 고마움도 있었지만,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호남땅에, 19세기 말 희망이 보이지 않던 척박한 시대에 복음과 의술, 교육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희망을 심어주고 무지를 깨우쳐 준 신문명의 선구자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동지사대학에서<일본기리시도교회사> 교수인 도이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도이는<일본기독교회사>를 쓴 학자요 교수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 유학을 온 김수진에게 학문적인 스승이 되어 주었고, 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는 모교인 장로회신학대학을 비롯, 대전신학교, 중앙신학교 대학원 등에서 한국교회사를 강의하며 목회를 겸해 헌신하였다. 그가 최초로<한국기독교회사>를 집필하면서 간행한 저서가 '호남편'이란 이름으로 그의 제자 한인수(韓仁洙)와 공편으로 낸 교회사 관계 저서이다. 이 책은 1980년 11월 30일 범륜사에서 간행했는데, 국판으로 430면에 이르는 본격적인 저서였다. 책의 명칭은<韓國基督敎會史 湖南篇>(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으로 되어 있다. 한국기독교 100년사 가운데 특정지역을 연구한 시초였다. 본 필자는 당시 대구 지방에서 목회를 하던 중 이 책을 단번에 밤을 새워 완독을 하고 감동을 받아, 그때부터 대구 경북지방 교회관계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1994년 <大邱地方敎會史>(대구지방교회사)를 낸 바 있다. 미국 남장로회, 호남지방에 수많은 지도자 배출 김수진의<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의 출간은 한국교회에서 직간접으로 지방교회사 연구에 불을 붙인 연구물로 기록될만 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저서가 간행된 후 한국기독교 역사가 한 세기에 접어들었고, 이에 발맞추어 한국교회사 연구에 기름을 부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즈음에 일반 역사학계에서도 소위 지방사 연구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간간히 역사있는 교회들이 80년사 혹은 90년사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각 교단 신학교에서도 한국교회사 관련 학위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능력있는 교회사학자들 중심으로 한국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학술연구단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김수진. 한인수가 펴낸<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의 편찬 내용을 보면, 표제에 걸맞는 호남선교를 위해 내한한 미 남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사진 14면,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자 및 6.25 동란 때 희생된 순교자 7면, 호남선교 역사 관련 화보 10면, 호남 출신 총회장 사진 3면 등이 있으며, 호남선교를 위해 헌신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어 편집상 많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이 저서를 뒷받침한 발간위원회 위원장 김종대 목사의 머릿말을 보면, 이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읽을 수 있다. "… 한국교회사 하면 이것은 장로회신학교가 있던 평양을 중심한 평안도와 황해도의 역사와 미 연합장로교의 한국선교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의 노고는 높이 평가해야 하고, 또 그 지방의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활동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 1892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의 충동에 그 넓은 곡창지대 호남땅을 밟기 시작했다. 이들도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 못지 않게 갖은 고생과 고난을 겪으며 복음을 전했다. 교회도 수없이 세우고, 병원도, 학교도 세웠다. 또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활동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경기도지방을 중심한 교회사도, 또 경상도지방을 중심한 교회사가 나올 때, 한국 전체 교회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한국기독교회사 호남편, 1980 p.61). 오늘날 호남지방 교회성장은 수난 당한 성도들의 '피의 열매' 저자 김수진 박사는 책의 머릿말에서 집필 소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활동했던 호남지방교회사를 엮어간다는 것은 여간한 고충이 아니었다. 이미 한국에 많은 교회사가 출간되었지만, 호남지방을 배경으로 한 교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되는 일이어서 자연히 자료를 준비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다. 모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데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여러 생존해 있는 증인들의 아낌없는 성원과 또 오래도록 간직했던 자료를 제공하는데 힘을 얻고 직접 지방을 답사하면서 얻어진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여기에 특별한 사관을 가지고 집필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료에 의거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것임을 밝혀둔다. 말없이 조용하게 호남교회(湖南敎會)가 성장하는 것처럼 느꼈지만 자료를 대하고 직접 만나고 교회를 답사했을 때, 호남교회들은 피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노력과 또 완고한 유교적 가정에서 이교도(異敎徒)의 기독교를 접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예수를 영접했다는 사실들이다.또 일제의 학정으로 인한 숱한 성도들의 곤욕, 누구나 다 겪여야만 했던 이 민족의 6.25 동란이었지만, 호남지방 교회만큼 수난을 당한 교회는 없으리라고 본다. 결국 이들의 피가 지금 호남 평야 넓은 들에 수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 피가 가는 곳마다 우뚝 솟은 교회를 볼 수 있으며, 산촌(山村)에서도, 수많은 도서(島嶼) 지방에서도 교회는 우뚝 솟아 있다. 막상 책이 손에 쥐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좀더 정확하게 기록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 밖에 없다. 그저 기쁨보다는 후회가 많다." (같은 책, p.63). 이 책 외에도 김수진 박사의 저서로는1994년 1월부터 전북일보 지상에 매주 연재한<전북 개신교 100년>이란 글을 모아<호남기독교 100년사>(1998)를 간행한 바 있고, <한국교회 평신도운동사>(1984), <6.25 전란과 순교자들>(1981), <호남선교 100년과 그 사역자들>(1993), <한일교회의 역사>(1990), <일본개신교사>(1992), <광주초대교회사연구>(1994), <일제의 종교 탄압과 한국교회의 저항>(1996) 등이 있다.
    • 칼럼
    • 박정규 목사의 한국교회사가 열전
    2024-02-1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강성률 목사의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을 누리라’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왕하3:27). 열왕기하 3장에는 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들 여호람 시대에, 모압 왕 메사가 새끼 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조공하였는데, 아합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여호람 왕이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함께 모압 왕을 치러 갔습니다. 그들이 길을 둘러 행한지 칠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생축에게 먹일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불러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그곳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면 물이 가득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큰 일은 ‘하나님께서 모압 사람도 그들의 손에 붙이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말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짜기 주변에 개천을 많이 팠습니다. 그러자 아침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식수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모압 사람을 쳐서 달아나게 하였습니다. 모압 왕은 그들이 이스라엘 연합국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맏아들을 취하여 그들의 우상에게 번제로 바쳤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여 고국으로 철군하였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압 왕이 항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 이스라엘을 섬겼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연합국은 그들이 그곳에 왔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철군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왕하3:18). 길을 행하다가 물이 가득하게 된 것은 큰 은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과정 중에 일어난 은혜였습니다. 더 큰 일은 모압 왕이 그들에게 항복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엘리사를 통하여 모압을 이스라엘에게 붙이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과 군사들은 모압 왕과 군대의 항복을 받기 전에는 철군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돌아서고 말았을까요? 본문에 대하여 쉬운 말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압 왕은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붙잡아 성벽 위에서 불로 태워 자기들의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이를 본 모압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고 분노심이 끓어올라 죽기 살기로 싸울 태세를 취하자, 이스라엘 연합군은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후퇴하여 고국으로 돌아갔다.” 모압 왕이 그의 맏아들을 불에 태워 바치자 모압 군인들에게 분노심이 폭발한 것입니다. 그 분노심에 그들은 죽기살기로 싸울 태세였습니다. 그것을 본 연합국이 겁에 질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모압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모압 사람들의 결사적인 항전 태도를 보고 떨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압 왕의 항복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차려놓으신 밥상을 두려움으로 인하여 먹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열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아낙 자손들의 강대함을 보고 마음이 녹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 당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구속 사역을 이루셨고,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으며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가운데는 구원받은 자답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방팔방에서 공격하는 사탄 또한 예수님의 승리하심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이 울부짖는 것은 단지 우리 안에 갇힌 짐승의 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담대하게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붙인 것을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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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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